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281
“아. 진짜 귀찮은데.”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가고 있잖아요.”
한강 선착장으로 향하는 검은색 세단. 꽤나 어려 보이는 남자와 그 옆에 앉아 있는 비서. 남자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왕 가시는 거 얼굴 좀 푸시죠?”
“누나는 존댓말 좀 푸시죠?”
“업무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 다 퇴근했는데 왜 누나만 업무 시간이야? 개인적인 파티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 예? 혜준 누나.”
남자의 말에 여자가 안경을 살포시 벗는다. 그리고 한껏 경고하는 표정으로 남자의 넥타이를 매만져 주었다.
“좋아. 그러니까 얼굴 좀 풀어. 넥타이는 가만히 내버려 두고. 애도 아니면서 왜 자꾸 이러니?”
“나는 서른까지가 애라 생각해.”
“또 시작이네.”
혜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김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고광의 뒷바라지를 했던 아빠. 자신이 그 뒤를 이어 고광의 비서팀에 입사했을 때는 묘한 눈물을 흘려 댔지. 기쁨인지 뭔지 모를···.
“우리 아빠가 일했을 때는 더 쉬웠을 거야.”
“사람은 보통 자기가 제일 힘들다 생각하지.”
“진심이야. 그때는 고대만 회장님도 현역이시니 관리가 잘됐을 거 아니야. 그런데 넌 어찌···.”
“하하하. 맞아. 둘째 큰아빠는 내가 회사에서 나갔으면 하는 눈치고. 아빠랑 엄마도 별 상관없어 보이고. 내가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신기해. 그지?”
혜준은 한숨과 함께 뒷말을 삼켜 버렸다. 그런 그녀가 재미 있다는 듯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남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셨어. 영민이 형이랑 싸웠어?”
“야!”
혜준의 고함에 운전기사가 힐끔거린다. 그 또한 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래서, 이래서! 가족끼리 아는 사람이랑은 만나면 안 되는 건데. 혜준은 이를 아득거리며 남자의 넥타이를 꽉 쪼였다.
“컥! 숨! 숨!”
“이대로 숨 끊어지기 싫으면, 파티 가서 잘하란 말이다. 이놈아.”
“아니. 비서가 이래도 돼?”
“아까는 업무 시간 아니라며? 조용히 하고 이리 와 봐. 머리를 하면 뭐 하니. 자꾸 내려오는데.”
혜준은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매만져 주면서 당부했다. 비밀리에 경영 수업을 하던 남자의 첫 공식 데뷔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앞날이 순탄할 것 아닌가.
“고민수.”
고민수, 고지훈의 아들이자 고광에서 유일하게 다음 세대를 이을 사람.
“네네. 혜준 누나.”
“솔직히 고광에서 뒤를 이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니. 영민 오빠도 회사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민국 사장님 역시 영원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순 없잖아.”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민수는 기분 좋게 혜준의 손길을 받았다.
“잘하자. 난 너만큼 고광을 사랑해.”
“오. 뭔가 낯 뜨거운 고백인데?”
“까불지 말고. 오늘 가면 천백해운 아들들도 올 거야. 이번에 고광이랑 한강 사업 두고 입찰 열리는 거 알지?”
“네네.”
“우리가 유리한 입장이라 분명 고깝게 나올 거란 말이지. 원래도 양아치 기질이 다분하다 소문 난 놈들인데.”
조잘조잘, 오늘 있을 파티에 대해 설명해 주는 혜준. 민수는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
‘어쩜 젊었을 적 고대만 회장님이랑 똑같이 생겼네.’
혜준은 사진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외모가 닮은 사람끼리 같은 길을 가는 것일까. 고지훈과 똑 닮은 고영민은 경찰의 길을, 회장과 똑 닮은 이 남자, 고민수는 경영에 뜻을 두었다.
“그거 말고 또 있지 않아?”
“있지. 많지. 기다려 봐.”
민수의 말에 혜준이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아빠 손에 잡혀간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당사자 포함 가족에 사촌에 뭐, 친구들까지 합치면 거기 있는 놈들 죄다 나를 적으로 알 텐데.”
그의 말이 맞았다. 대대로 이어져 오는 기업 경영인들이 많다 보니, 한 번쯤은 고지훈의 가시에 찔렸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가서 너무 힘들지 않게···”
“됐어.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건 없을 테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혜준은 의아하게 되물었다. 아주 예전에, 고지훈이 처음 선상 파티에 데뷔했을 때도 사건 사고가 꽤 있었다고 들었다. 주위의 눈총을 산 지금,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거기 모인 놈들, 다 사업가잖아.”
민수가 고개를 들어 보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어린아이 같다가도, 이럴 때는 백 년 산 노인처럼 보이니.
“사업가라는 사람이 공과 사를 구분 못 해서야 되겠어? 가서 나한테 하는 행동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이놈이 진짜배기 사업가인지, 부모 잘 만난 어중이떠중이인지.”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세단은 얼마 안 가 선착장에 도착했고, 민수와 혜준은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파티장으로 들어섰다.
“저쪽, 회색 넥타이가 우국생명 4세. 옆에서 얘기하고 있는 남자는 자영그룹 회장의 오촌 조카입니다. 그리고 저쪽은···.”
“이야. 다들 사진발 잘 받으시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흐음. 그리고 저쪽이 아이리트증권 사장 아들 맞죠? 하하. 잘생겨서 긴장 좀 했는데 내가 낫다.”
“까불지··· 아닙니다.”
혜준은 민수의 곁에 딱 붙어, 누가 누구인지를 설명했다. 이미 사진으로 한 번씩 훑었던 얼굴들이지만 실물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쪽이 파티 주최인 EN그룹 막내아들, 차훈입니다.”
혜준의 시선을 따라, 민수 역시 시선을 옮겼다. 차훈이라는 남자는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떠들다가, 둘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잠시 양해를 구하는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안녕하십니다. 혜준 실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이야. 여전히 멋지십니다. 같이 계신 이분 역시 고대만 회장님과 꼭 닮은 걸로 보아, 고민수 씨군요?”
그는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적절한 격식과 예의를 차린다. 민수 역시 반갑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파티 멋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런 자리를 잘 안 즐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의 이런 자리가 처음 아니냐는 뜻의 물음. 고민수가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앞으로 즐겨 보려고요.”
“역시 듣던 대로 호쾌하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제 친구들을 소개해 드리죠.”
혜준은 걱정스러운 눈빛 반, 다독이는 눈빛 반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의 역할은 여기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지켜봐야 했다.
“자자. 다들 처음일 텐데.”
차훈은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민수를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고광의 고민수 씨.”
“어머. 세상에. 저 처음 봬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송전자 박승철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민수 씨. 우노도스투어 민경입니다. 이야.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물이 정말 멋지시네요!”
민수를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하며 다가왔다. 고광이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그룹인 데다, 국민적인 지지를 포함하면 부동의 탑이었으니. 4세 중, 경영에 뛰어드는 사람은 고민수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차기 고광의 수장 아니십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하하. 아직 둘째 큰아버지도 있고, 할아버지도 정정하신데.”
미래의 고광 주인이라는 뜻이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죄다 눈을 반짝이며 고민수에게 달라붙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반감 섞인 시선을 알아챌 수 있었으니.
“이런 자리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한 남자의 말에 주위의 시선이 쏟아졌다. 천백해운의 아들인 김천만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민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 웃음을 띠었다.
“EN그룹에서 여는 파티는 빠질 수 없죠.”
“왜. 아버지가 너무 엄하셔서 밖에서는 술도 못 먹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아. 저희 아버지는요.”
재벌의 몸으로 처음 경찰이 된 남자. 자신의 형까지 잡아넣었을 정도로 법에 칼 같다는 소문이 만연했다. 김천만은 그걸 비꼬는 것이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 먹고 개 헛짓거리하는 놈들이 문제라는 입장이어서요. 저는 주사가 꽤 얌전한 편입니다만, 혹시···?”
고민수는 한껏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넘겼다.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얼굴을 굳히는 김천만. 주위 사람들도 그만하라는 듯이 살짝 그를 말린다.
“아 참. 그나저나 광고 정말 잘 뽑으셨던데요.”
“제가 했나요. 밑에 직원들이 열심히 했죠.”
“효과가 꽤 좋았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이번 신차 출시랑 맞물려서···.”
그들은 바로 사업 얘기를 중점으로 두며, 화제를 돌렸다.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시간.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 역시 커져만 갔다.
“야.”
구석에서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혜준. 갑작스러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불콰하게 취한 김천만과 친구들이 혜준에게 다가온 것이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저기, 고민수 비서 맞지?”
“네. 맞습니다만.”
혜준이 팔짱을 낀 채로 대꾸했다. 보아하니, 개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떤 개수작인지는 들어 보고 응대를 해야 하니.
“얼굴도 반반하고, 듣자 하니 능력도 좋은 것 같던데. 좀 더 큰물에서 놀 생각은 없어?”
“하하하. 큰물이요?”
고광을 두고서 어디가 큰물이란 말인가. 혜준은 진심으로 웃고 말았다. 스카우트 제의는 수도 없이 받아왔다. 고광의 수족 같은 위치다 보니 혜준이 갖고 있는 정보나 고광의 뒷이야기가 경쟁사에는 꽤나 매력적으로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고 멍청한 제안은 또 처음이군.
“웃어?”
“죄송합니다. 많이 취하신 듯한데···.”
“이게 고광 밥 빌어먹는다고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네. 야. 야.”
김천만이 혜준의 이마를 쿡쿡 밀어 대며 위협했다. 슬금슬금, 주위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지고. 혜준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고민수의 첫 파티였다. 자신 때문에 망치는 건 원치 않았으니.
“사장님. 명함이라도 주시면 제가 다시 연락을···.”
그때였다. 고민수가 김천만의 손을 잡아 틀었다.
“남의 비서한테 무슨 짓이야?”
이런. 혜준이 이마를 쥐어 싸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제발 적당히 하자는 뜻으로 슬쩍 민수의 팔을 잡아당긴다.
“민수야.”
“뚫린 입으로 설명 좀 해 보시죠. 김천만 씨.”
상당히 거친 언행에 김천만 역시 울컥 소리를 질렀다.
“파티에서 얘기도 못 나누나? 하! 이래서 가정 교육을 잘 받아야 하는 건데. 형제끼리 물어뜯는 콩가루 집안이라 그런가.”
“콩가루 집안 같은 소리 하네. 그쪽이야말로 작은 동생이랑 연예인 하나 같이 만나다가 회장한테 빠따질 당했다며?”
“뭐?”
느닷없는 폭로에 김천만이 당황해한다. 주위에서 그 얘기를 주워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민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한강 사업 입찰 따려고 온갖 구린 짓 하는 거 우리가 모를 줄 알아? 그래도 너희는 안 되니까 가만히 있는 거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어린놈이!”
“애쓰지 마라. 안쓰러우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 아무리 고광이라도 천백해운을 무시···.”
“무시할 만하더라고. 그리고 그건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걸?”
고민수의 말에 김천막이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찌 하나같이 분위기가 이상했다.
“지금 너만 모르고 있는 것 같네.”
“뭘 말이야!”
“이 사람, 우리 사촌 형 애인이거든.”
민수가 혜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민수의 사촌이라 하면 딱 한 명이지 않은가. 현재 고광의 실세인 고민국의 아들이자, 고지훈의 뒤를 이어··· 아니, 그보다 더한 미친개 소리를 듣는 남자. 고영민. 김천만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뭔가, 잘못 건드린 기분이 확 올라왔으니.
“너는 이제 뒤졌다.”
민수가 방긋 웃으며 손으로 목을 그어 보였다.
끝
ⓒ 배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