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48
148. 충분한 사람들 (1)
사고가 부딪혀 사고가 난 듯했다.
경악한 채로 굳어버린 단원들의 표정.
눈빛에 여러 생각들이 홱홱 스치다가 이윽고 형광등마냥 뒤늦게 반짝이기 시작한다.
“···스타인웨이가 그 스타인웨이? 저기 저 피아노 만드는?”
“그렇겠지? 작곡가님이 스타인웨이 아티스트시잖아.”
“그치. 그런데 우린 아니잖아?”
“우린··· 그러게. 우린 왜···.”
“그야 같이 앨범을 만들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피아노를 생산하는 브랜드, 스타인웨이.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당연히 대단했고, 그들의 광고에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긴 연주자들에게 희소식을 넘어 엄청난 이벤트였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끓는다.
나는 입매를 올리고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저희가 광고 전체에 걸쳐 다 나오는 건 아니고, 해외 여러 음악가들을 섭외할 거라고 하네요. 이미 뉴욕 필과 베를린 필이 섭외가 되어 있어서 우리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살짝 실망할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2개가 출연하는데, 거기에 저희가 낀다고요?”
“그럼 국내용 광고가 아닌 거네요?”
“그 정도면 전 세계로 나가는 거 아녜요?”
“그렇···겠죠?”
내가 장작도 넣고 기름도 부었나 보다.
연주자들이 불길처럼 활활 타오른다. 눈빛도 얼굴색도.
“이건 당연히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강준서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주변을 홱홱 돌아보며 말했다.
“그, 선동하지 마시고요.”
내가 강준서에게 주의를 주자 연주자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가열된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덩달아 낄낄대던 강준서가 이번엔 돌연 손을 번쩍 든다.
“출연료는 어떻게 되는지······수아가 궁금한 것 같은데요?”
흠칫—.
고개를 돌려 강준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신수아.
“닥츠르······.”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는데 강준서는 마냥 해맑다. 주변에선 그 상황을 콩트 바라보듯 하는 연주자들이 쿡쿡대고 있었다.
내가 신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한 금액은 저도 아직 잘···.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으니 바로 알려드릴게요.”
“하아···네.”
그녀가 머리를 짚으며 자포자기한 얼굴로 끄덕였다.
사실 저게 맞는 거긴 하지. 가장 중요한 부분이잖나.
“그리고 혹시라도 안되시는 분들은 고민하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촬영 때만 잠시 자릴 피하면 되니까요.”
“······.”
잠시 침묵이 일자, 누군가 말했다.
“아무도 대답이 없으신데요?”
“그러네요.”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보면대 위에 올려둔 프린트물을 집어 들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앨범에 대해 본격적인 얘길 시작해볼까요?”
······.
연주자들이 각자의 보면대에 올려져 있던 계획서(?)를 아리송한 표정들로 훑어본다.
“그러니까······.”
“일단 곡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총 서른네 개예요. ”
“앨범 하나인 거 맞죠?”
“네 맞아요.”
질문을 받았고, 대답했지만 전혀 의문이 해소된 표정들은 아니다.
하나의 앨범. 서른네 개의 곡.
이런 건 처음 보는 것일 테니까.
“올해 안에 발매하는 게 목표입니다.”
“올해 안이면 거의 반년이고. 녹음은 그보다 빨라야 할 테니까······.”
“모르는 곡이 많아서 연습까지 생각하면 엄청 촉박하겠는데요?”
연주자들의 말에 내가 끄덕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보고 유선상으로 막 한다고 하면 어떡해요.”
“근데, 오히려 좋아.”
“그쵸. 이거 다하면 올해는 여러모로 따뜻하겠는데요?”
“적어도 반년은 일 없어서 눈치 보며 집에 들어갈 일은 없겠어요.”
맨 앞줄에 앉아있던 윤태환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유명한 음악가들부터 생소한 음악가들까지 다양하네요.”
“그래서 제 이번 목표가.”
다시 한번 손에 들린 이름들을 읽어내려가며 덧붙였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름들이 유명해지는 거예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한, 훌륭한 음악가들이니까.
내 대답이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연주자들도 의욕적인 얼굴로 주억거린다.
그 사이로 강준서가 한가질 더 얹었다.
“이왕이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명해지면 좋겠네요.”
그의 시선이 손에 들린 종이가 아닌 콘서트홀을 담는다.
자연스레 연주자들도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곤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웃었다.
그렇게 모두의 웃음소리가 콘서트홀에 은은하고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다.
#
“저 왔어요.”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왔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셨기도 하고, 나도 조금 지친 상태였다. 적어도 내겐 남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게 음악보다 두어 배는 힘든 것 같다.
“왔니?”
엄마의 환대를 받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기에 얼른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 마침 서재에서 통화를 마치고 나온 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으며 내게 묻는다.
“그래서. 광고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별일 없으면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물을 따라 건네자 아버지가 통화하느라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컵을 비웠다.
“출연료도 정해졌어?”
“네, 이메일로 받았는데······ 금액이 좀 커요.”
“그래? 얼마나?”
“광고 완성본에 얼마나 나오냐에 따라 조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20만 달러를 주겠대요.”
“20만 달러면··· 대충 계산해봐도 2억 3천이 넘네.”
계산을 마친 아버지가 혀를 내둘렀다. 엄마도 놀랐는지 식기를 들고 오다가 멈칫한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찰랑거리는 물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다른 연주자분들은 500달러 내외에요.”
자리에 앉는 엄마에게도 컵을 건넸다.
그사이 나를 지켜보던 엄마가 툭 물었다.
“너는 같이 나누고 싶구나?”
정곡을 찌르는 물음이라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내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광고만으로도 자연스레 제 앨범 홍보가 될 텐데, 저는 그거면 충분하다 싶거든요.. 그래서 제 몫을 어느 정도 떼서 같이 나누고 싶은데. 또 이런 걸 저 혼자 정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여보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잠자코 내 얘길 듣던 아버지가 입을 뗐다.
“왜 나누고 싶냐가 중요하겠지? 그냥 단순히 친해서인지, 고마워서인지. 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만약 네가 동정 같은 게 아닌 정당한 이유를 찾는다면, 아빠는 찬성이야.”
아버지의 말에 내가 잠시 고민했다.
어려운 얘기다. 남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브리너 백작은 그런 존재였기에. 대가 없이 후원하면 그게 멋진 것 아닌가? 그게 백작다운 것이고, 귀족적인 것 아닌가?
“일단··· 고맙죠. 혹시나 본인들을 찾을까 봐 시간이 빡빡한 스케줄은 일부러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전화를 하자마자 모두 아무 조건도 안 듣고 와주겠다 말했고요.”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귀족이 아니다. 백작은 더더욱 아니지. 아버지는 한 회사의 대표다. 그것도 자신 때문에 가족과 직원 모두가 위태로워질 뻔했던, 마냥 착했던 대표.
내가 한가지 이유를 더 찾았다.
“그리고 미리 사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음? 사과는 왜?”
첫 앨범 같은 경우엔 내가 작곡가이기에 여러모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타협했다는 건 아니고, 그들의 실력에 맞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모두 작곡가가 따로 있는 곡들. 그렇기에 나는 곡마다 각각의 작곡가들이 되어 그들의 성향대로 녹음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이 순탄치 않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줄어들 테니까.
“앨범을 만들면서 제가 많이 괴롭힐 것 같거든요.”
“그건 좀 납득이 가네. 더 부려먹을 생각이니 거기에 맞게 임금을 올리겠다는 거잖아? 그럼. 그게 전부?”
또 뭐가 있을까?
한참을 갸웃거리다 툭 던지듯 말했다.
“그냥요.”
가장 중요한 건데,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다.
“그냥······그만큼 받을만한 사람들이에요. 충분히.”
앨범 속 무명의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
모차르트와 충분히 한 앨범에 실릴만한 훌륭한 작곡가들이잖나.
아직 사람들이 못 알아볼 뿐이니까.
“지인으로서 하는 말이니? 아니면 앨범의 제작자로서 하는 말이니?”
“당연히 앨범의 제작자로서요.”
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고.
“그건 완벽히 납득되는구나.”
아버지가 웃었다.
옆에서 어쩐지 흐뭇하게 우릴 지켜보던 엄마가 ‘아빠가 그렇다면 나도 찬성’이라며 수저를 든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조금 가벼운 내용의 흔한 대화들이 반찬들과 함께 곁들여진다. 예컨대 엘리베이터에서 강아지를 마주쳤는데 갑자기 엄마를 따라 내려서 너무 귀여웠다느니, 박 팀장이 내일 결혼기념일인 걸 잊고 있다가······ 이건 전혀 안 가벼운데? 장르부터가 호러잖아.
아무튼, 그런 이야기꽃이 몇 번을 피고 졌다.
우리는 그동안 밥그릇을 완벽히 비웠다. 그리고 그즈음에 아버지가 다시 음악 얘길 꺼냈다.
“아 참 그나저나, 앨범 작업 끝나면 OST 하나 해볼 생각 있어?”
“당연히 있죠. 근데 앨범 준비 때문에 반년 정도는 바쁠 것 같아서요. 영화 음악 특성상 의뢰가 들어오면 바로바로 작업 들어가야 하잖아요? 엄청 촉박하고.”
“그렇지. 원래는 그게 맞는데. 좀 요상해졌어.”
팔짱을 낀 아버지가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이제는 3년이고 5년이고 기다리겠다네. 감독들이나 제작사들이.”
“저를요?”
끄덕이는 아버지. 예약 표를 끊어달라는 감독이나 제작사 대표들이 있다는 얘길 듣긴 했는데, 5년까지 기다리겠다는 건 좀 황당하다. 그때 본인들이 뭘 만들 줄 알고?
“일단 그럼 목록 보내주실 수 있어요?”
“응. 정리해서 보내줄게. 그렇다고 아빠 회사 일이라서 억지로 할 필요는 절대······.”
이어지는 노파심에 내가 단호히 고갤 저었다.
“아빠.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음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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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입니다.”
불과 며칠 전 전화로 듣던 목소리가 연습 준비가 한창인 콘서트홀에서 들려왔다.
스타인웨이의 아티스트 책임자 마크 윌런이 내게 악수를 건네며 활짝 웃어 보인다. 그의 뒤로는 딱 봐도 촬영팀이구나, 싶은 비주얼의 외국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이분이 촬영 감독입니다. 서호님 팬이에요.”
마크가 옆에 서 있던 키 큰 외국인을 소개했다. 그러냐며 내가 인사하자 그가 큼직한 손으로 내게 악수를 청한다.
그러는 동안 콘서트홀 내부를 쭉 둘러본 마크가 내심 놀란 눈빛으로 감독에게 말했다.
“사진보다도 훨씬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요.”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자 감독이 설명을 해주었다.
“걱정을 좀 했었거든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어서 현장을 찾아온 건데, 그래도 광고라는 게 그림이 나와야 하잖아요. 근데 지금 오히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나아요. 그림 나오겠는데요?”
“아아.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저희는 연습에만 집중하면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알아서 다 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감독에게 알겠다 말하고, 나는 연주자들에게로 돌아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입 끝을 살짝 올렸다.
사실 걱정도 안 된다. 연주가 시작되면, 언제 긴장했냐는 듯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어미 새를 찾듯 나를 따라오는 시선들을 보며 내가 피아노 앞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여러 대의 카메라가 오로지 우릴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