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35
235. 한서호의 인기
“필리온이 글을 하나 더 올렸어요.”
SJ 본사가 있는 중구 끄트머리에 위치한 더 클래식 사옥.
마침 쩍 하고 하품을 하며 나온 유정욱 팀장에게 홍보 담당자가 소식을 전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필리온이란 이름엔 여전한 무게감이 있었다. 게다가 한때는 한서호를 궁지에 몰아넣었던(-정작 한서호는 여유로웠지만) 평론가잖나.
머리를 쓸어넘긴 유정욱 팀장이 콧등을 긁으며 말했다.
“이제 완전히 복귀할 생각인가 보네.”
“뭐, 서호의 음악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하니까요. 근데, 서호가 복귀해달라고 했다는 기사까지 굳이 내야 할까요?”
“뭐, 서호 부탁이잖아. 예전 생각하면 나도 여전히 좀 그런데, 이번 기회에 서호의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저도 아직 얄미워서 그렇죠.”
홍보 담당자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이에 피식 웃은 유정욱 팀장이 다가가며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필리온이 올린 글은 뭔데?”
“평론이에요.”
“누구 연주?”
“연주가 아니라, 곡에 대한 평론이에요. 그것도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라온 익명의 작곡가가 만든 곡.”
“익명? 닉네임이 뭔데?”
“잠시만요······.”
마우스를 달깍거린 홍보 담당자가 말꼬릴 올렸다.
“까뮤······ 라는데요.”
“까뮤? 그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깐부?”
“그거 아니고.”
직원 중 한 명의 말에 칼같이 고개를 저은 그가 턱을 매만졌다. 그 사이, 홍보 담당자가 타자를 두드렸다.
“이거 꼬냑 이름인데요? 그 와인 숙성해서 만든 드럽게 비싸고 독한 술!”
“아 맞다. 예전에 본부장님하고 마셨다가 죽을 뻔한 거!”
손가락을 튕긴 그가 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사운드 클라우디래······.”
평소였다면 클래식 평론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곳이었다. 심지어 필리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서호가 브리너라는 부캐로 사운드 클라우디에 클래식 바람을 이끌었다지만, 여전히 ‘아마추어들의 장’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기 때문.
“이 까뮤라는 사람도 서호가 필리온한테 추천해준 작곡가라네요.”
“허, 그래?”
“이 정도면 필리온도 그냥 이제 서호 팬이나 마찬가지 아녜요?”
“뭐,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 싶다.”
“역시 안티와 팬은 한 끗 차이인 건가······.”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그럴듯한 말이라 유정욱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주억였다.
“서호 매력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맞아요. 서호가 매력 쩔긴 하죠. 근데 이상한 게······.”
“뭐가 이상해?”
“전 솔직히 이 일 시작하면서 서호 스캔들 걱정 좀 했었거든요? 능력도 능력인데, 워낙 이게 되니까.”
휙휙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는 홍보 담당자.
웬만한 배우 못지않게 훈훈한 외모라 모두가 동조했다.
“근데 서호가 또 그런 쪽은 아예 관심 없는 것 같아서 내심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꼬릴 늘렸다. 그리고 툭 결론을 내렸다.
“애가 이상하게 나이 지긋하신 분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직원들의 머릿속에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다.
클래식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이들.
3대 오케스트라의 수장부터, 바드 대학교의 셀린 교수, 예술의 전당의 윤 교수와 심지어 자신들의 모회사의 모회사인 SJ 백한길 회장까지.
“정말 그러네?”
“약간 손자 같아서 이뻐하는 그런가?”
“근데, 또 귀여워하고 그런 느낌보단 오히려 의지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지. 서호 말이면 완전히 신뢰하는 편이지.”
갑자기 튀어 오른 색다른 주제에 직원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던져댔다.
이를 지켜보던 유정욱 팀장도 사뭇 진지하게 이에 대해 분석했다.
“나이답지 않아서 그런가? 서호 보면 가끔 나보다 어른 같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
#
“아이고, 아주 아주 팬입니다!”
등 굽은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이며 날 올려다보고 있다.
이 작은 문구점의 사장님이었다.
퍽 오래되어 보이는 곳이라 누군가 날 알아볼 걱정은 안 했는데, 바로 들켰네.
“감사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답하자, 할아버지도 마주 웃는다.
그는 내가 건넨 지폐를 받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주 음악 잘 듣고 있어요. 예전에 여기가 음악사였거든요. CD 팔고. 그보다 전엔 테이프 팔고. 그보다 더 전엔 LP도 팔던.”
“아아, 진짜 오랫동안 여기 계셨겠네요?”
“그럼요. 예전에 그 누구야, 이 학교 양세종 교수님 있죠? 그분도 아주 옛날에 여기 와서 해외 유명 독주회 CD 사가고 그랬어요.”
하나, 둘, 서이, 너이······.
중얼거리며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할아버지.
“이제 다음부턴 한서호 음악가님이 오셨다고 해야겠네요.”
“양세종 교수님이 서운해하시겠는데요?”
“어쩔 수 없죠. 장사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
끌끌거리며 웃음을 흘린 그가 봉투에 음악노트를 넣으며 물어왔다.
“아니, 그나저나. 세계적인 음악가님도 음악노트를 다 사러 다니시네?”
“오늘 가지고 나온 걸 다 써서요.”
“그러게 많이 가지고 나오지 그랬어요. 영감이란 게 갑자기 떠오르고 훅 사라진다던데. 항상 넉넉히 들고 다녀요.”
“그러게요. 다음부턴 넉넉히 들고나와야겠어요.”
“아이구, 파는 놈이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 아녜요. 다음에도 조금 들고 오셔요. 그래서 자주 들려줘요.”
할아버지의 너스레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인 한 장 해줄 수 있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며 사인을 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돌아보니 내 사인을 어디에 걸지 이리저리 대보는 중이다.
유쾌한 할아버지를 만나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며 한 블럭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대학교 후문 앞 작은 카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자리로 직행했다. 진즉에 식은 커피와 수북한 악보들이 나를 반긴다.
‘확실히 한국이 이런 건 편하단 말이지.’
짐을 두고 잠시 다른 걸 사러 나갔다 온다니.
외국에선 엄두도 못 할 모험이었지만, 여기선 괜찮다. 기껏해야 자리를 탐내는 학생들만 있을 테니.
자리에 앉아 음악노트를 꺼내는데, 가벽 뒤쪽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히 엿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귀가 좋아서 말이지. 게다가 익숙한 이름도 들려오고.
“졸업하면 솔직히 한 필하모닉 들어가고 싶긴 한데······.”
“이번에 추가로 단원 뽑는다는 얘기가 있긴 하더라.”
“그니까. 근데 그거 쉽지 않을 것 같아. 경쟁률 엄청 치열할 거 아냐. 첫 모집 때도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는데, 지금은 세계 4대 오케스트라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솔직히 세계 4대 오케스트라는 별명은 퍽 민망하다.
아무리 내 단원들이라지만, 실력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뉴욕, 베를린, 빈의 연주자들과는 큰 차이가 나니까.
물론 한 필하모닉만의 특별함이 있고, 우리가 만든 음악적 스토리가 탄탄하기에 그렇게 불러주는 거겠지만.
“차라리 지난번에 영입된 연주자들처럼 한서호 눈에 띄는 게 빠를 듯.”
“학교가 같으니 눈에야 띌 수 있겠지. 문제는 귀에 못 띄는 거고.”
지금 그 반대긴 하지. 얼굴은 안 보이지만, 귀엔 들리고 있으니.
당연히 내가 여깄다는 걸 들킬 생각은 없기에 더욱 조심하며 음악노트를 펼쳤다. 옆엔 두툼하게 쌓인 오선지들이 나를 반긴다.
30장이나 들고 나왔는데, 다 써버린······.
‘다음부턴 못해도 50장씩은 들고 다녀야겠다.’
문방구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넉넉하게.
더 클래식 직원들이나, 연주자들은 내가 들고 다니는 오선지의 양을 보고 놀라면서도 그럴 거면 차라리 패드를 사서 들고 다니라는데, 나는 연필과 종이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다. 그것 때문이라도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영감을 옮기고 싶었다.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향수 같은 거려나.
가볍게 웃으며 연필을 잡았고, 이내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이번엔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헌정곡.’
발터의 헌정곡을 만들며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정했다. 그리고.
‘음악에 사람을 담아내기.’
어떤 헌정곡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이번 앨범에 담아내고 싶은 두 가지 키워드를 적어 놓고서 다음으로 대상을 떠올린다.
역시, 시간순이 좋겠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기분 좋은 사각거림을 느끼며 다시 고민한다.
곡명은······.
교향곡의 아버지?
너무 식상하지.
나만이 지을 수 있는 제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 더 고민했다.
내게 하이든은 어떤 사람이었지?
아무리 고민해도, 그를 떠올리면 한 장면부터 떠오른다.
나를 죽음에서 끌어내 생으로 옮겨놓은 그 광경!
그는 내게 있어, [첫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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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수고하셨어요.”
대학교 졸업식 연주 연습을 마치고, 나는 악보를 챙겨 지휘대를 내려왔다.
단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그들에게 인사하며 곧장 작업실로 향하려다가 악장인 강준서만 따로 불렀다.
새로운 단원들을 뽑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새로운 단원들은 잘 적응하고 있어요?”
“물론이죠.”
강준서가 싱그럽게 웃었다. 말투와 표정이 너무 불편해서 내가 손을 휘적거렸다.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해줘요.”
“그러지 뭐. 아무튼 아주 잘 적응했어. 지난번엔 우리끼리 삼겹살 회식도 했거든. 그때 2차로 노래방도 가고 엄청 재밌었는데······.”
“······.”
“······.”
“둘이 있어도 편하게 하지 말죠.”
“에이, 왜 그래···요. 지휘자님.”
발터의 고독함을 ‘나 빼고 회식’으로 이해하며 강준서를 흘겼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이제 추가로 더 뽑아도 문제없겠네.’
기존의 단원들도 단합이 안 되는데, 숫자를 늘리는 건 어불성설이잖나.
소리도 잘 어우러지고, 사람들도 잘 맞고, 이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슬슬 오디션 보려고?”
강준서의 물음에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에 장례식에서 연주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거든요. 악기는 많을수록 좋다는 걸. 물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탈 나겠지만.”
“그러니까······ 소화할 수 있단 얘기네?”
씩 웃었다. 강준서도 고개를 흔들며 ‘말해 뭐하겠어’라고 웃는다.
“아 참, 그, 오늘 뭐 해?”
“저요? 딱히 일정은 없고 작업실로 가겠죠?”
내 대답에 목덜미를 긁적인 그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그러면 시간 좀 낼 수 있어?”
“왜요?”
“나 태환이 형 만나러 가는데, 너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뜻밖의 이름이었다. 반가운 이름이었고.
호르니스트 윤태환.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 단원이 될 순 없었지만, 한때 함께 앨범을 만들었던, 그리고 ‘한 필하모닉’이라는 이름을 작명해준 그였다.
반가움에 화색 하며 말했다.
“와, 좋아요.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러자 씩 웃으며 악기 정리하고 로비에서 만나자는 강준서.
나는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표정을 슬쩍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