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그대와 나의 피날레
국내로 다시 돌아온 내게.
민아가 갑작스러운 호출을 통보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너, 잊고 있었구나?”
그녀는 씩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잖아. 네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날이자, 네가 나한테 정식으로 고백한 날.”
“아, 맞다 그랬지.”
“어휴. 일에만 미쳐서 아주.”
“헤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그러면, 이제 얼마 후면.
그가 나를 떠나간 지 2년이 된다.
“그런데, 우리 리허설 얘기는 안 해?”
“이제 해야지.”
바로 악보를 펼치고 리허설 논의를 시작한다.
“레퍼토리 어때? 모차르트에, 베토벤에, 슈만에, 브람스에, 차이콥스키에, 라흐마니노프, 라벨까지 다 하자.”
“정말 무시무시하네.”
“그동안 참았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 맞다. 얼마 전에 비나 만났었는데.”
“정말.”
비나는 이제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작곡가였다.
이번에 박현성이 주연을 맡은 《스탠드 워 2》의 영화 음악도 비나가 맡게 되었으니까.
며칠 전 우연히 마주친 비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면서 내게 배부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가는 곳마다 내가 작곡한 음악이 들려서 스트레스야. 이게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고통이라고.’
‘솔직히 공감 안 되는데요.’
‘아니. 잘 들어 봐. 공항에 내렸을 때 내 음악이 들을 때까지는 좋았다고. 그런데, 병원을 가서 내시경을 받으려고 기다리는데, 들어가기 직전에 대기실에서 내 음악이 나와 봐. 어떤 기분인지.’
‘……그건 좀 그렇네요.’
와, 이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변화구다.
* * *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일상에서.
나는 묘한 부재를 다시 느낀다.
‘어?’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나는 리허설 중에 멍때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앗! 지휘자님이 망가졌다!”
“오래 쓰기는 했지…….”
‘아르스 노바’ 녀석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내 정신을 빠르게 깨웠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음악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자, 여러분. 미안합니다. 제가 잠시 멍때렸네요. 연습번호 B의 6마디 후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와, 지휘자님! 그러면 안 되지!”
“맞아요! 지휘자님만 보고 들어온 오케스트라인데!”
“하하하하.”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상인데.
왜 이렇게, 정말 왜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시큰할까.’
모든 것이 충만한 듯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는 지금 내 연주를 놓고 어떤 말을 했을까.
[김리듬. 정신 차려.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고! 네 머리가 잘린다고 해도, 손이 움직일 수 있어야만 해!]그래. 그럴 것이다.
내게 항상 애정 어린 비판을 잊지 않던.
나의 친애하는 적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 * *
그런 행복한 부재에 갑작스러운 전환을 가져다준 것은, 바로 전수정의 방문이었다.
“김리듬. 이걸 좀 봐 주겠어?”
그녀는 민아와 같이 있는 내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그 메모를 보는 순간.
내 손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 《다프니스와 클로에》 잘 들었어, 김리듬. 정말 놀라운 연주였어. 그동안 많이 성장했구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희성예고 연습실 피아노에 끼어 있었어. 마치, 우리가 발견하기만을 바랐던 것처럼.”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아직,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어.”
나는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학교로 가자. 지금, 당장.”
“김리듬.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
“그래.”
그렇게, 나와 민아와 전수정은.
우리의 모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전수정은 학교 복도를 걸으면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중성자별의 시간 지연은 관측 가능할 정도로 느리지. 지구의 시간이 10년이라면, 중성자별의 시간은 8년일 정도로.”
“그렇다고 들었어.”
“즉, 우주의 시간은 동일하게 돌아가지 않아.”
그녀와 나와 민아는, 햇빛이 비추는 윤성의 사진을 지나 나의 사진이 걸린 복도 앞을 통과했다.
“그 말은, 어딘가에는 시간이 이곳보다 지연된 평행세계가 있다는 얘기지.”
“그게 정말이야?”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인 건 부정할 수는 없지.”
우리는 마침내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절망하고, 좌절하던 그날.
더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연주하던.
그날과 똑같은 연습실에.
“그 말은, 이 우주 어딘가에는 정윤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얘기야. 그것도, 너에 대한 기억을 가진 채로.”
“그런데,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만나지?”
“음악으로.”
“음악으로.”
민아의 질문에, 나와 수정이 동시에 대답했다.
나는 바로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준비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하지?”
“김리듬. 마에스트로 정윤성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봐.”
그 순간, 모든 의문이 녹아 버리고.
단 하나의 해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귀신이 나온다는 연습실로 숨어들어 연주했었고…….
“베토벤의 《월광》을 연주했어.”
“바로 그거야.”
나는, 처음 그날의 마음가짐으로.
그러나 그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율이 이는 음악을 연주했다.
음산하고 고요하면서도 심원한 1악장을.
깊은 두 심연 사이, 부드럽고 맵시 있는 2악장을.
그리고, 연주하는 이도 듣는 이도 남김없이 삼켜 버리는, 광기 어린 광상으로 가득한 3악장을.
마침내 마지막 광상을 끝내고 건반에서 손을 떼자.
손가락을 베이지 않았는데도, 핏방울이 떨어진다.
“김리듬!”
“괜찮아, 민아야. 베인 게 아니야.”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없던 문이 생긴 것을 보았다.
“…….”
나에게 향한 문으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민아와 전수정을 돌아보면서 인사했다.
“금방 돌아올게.”
“그래. 최대한 빨리 돌아와.”
나는 민아를 향해 미소 짓고는.
다시 돌아서서, 문을 향해 다가갔다.
* * *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은.
낯설지만,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한 긴 복도를 걸어가자.
마침내, 대기실이 보였다.
쿵. 쿵. 쿵. 쿵.
망치 소리처럼 커진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 마에 선생님.”
당신이 거기 있다.
처음에는 놀라고.
다음에는 당황하던 당신은.
곧, 환하게 웃으며.
나를 강하게 껴안는다.
“먼 길을 돌아왔어요, 선생님.”
“그래.”
나는 아침처럼 하얗게 웃었다.
“당신과 다시 한번 연주하려고.”
“그래. 정말, 정말 고맙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그러면, 이제 같이 음악을 연주할까?”
“좋아요.”
환상으로 건축한 연주회장에서.
그와 내가, 이제 연주를 한다.
그가 지휘봉을 잡고.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안정감 있는 화음에서 출발하지만.’
점점 뒤틀리는 음악이.
황홀한 블루 오렌지의 음색으로.
이 환상의 연주회장에, 수놓인다.
냉혹에 갇힌 망령들이여.
이 지옥 같은 황홀함에 도취하라.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눈꽃 같은 2주제에 취하라.
‘그리고, 음악은 다시 극야의 세계로.’
지난번에는 온전하지 못했던 코다가.
이제, 완벽하게 펼쳐진다.
‘이제는, 주단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음악을.’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피아노가 자아내고, 클라리넷이 함께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추억이 묻어나는 회상록.
‘그리고, 마지막 3악장을.’
조용하게, 의미심장하게.
그러나 마침내 거친 포효로.
윤성과 나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충돌한다.
‘후회 없이 돌진해라!’
다시 한번, 귀기 서린 음악을.
선혈의 환상을 창조하는 음악을.
그대와 나의 약속인 음악을.
전율을, 창조하라.
“우와아아아아아아앜!”
* * *
연주회가 끝나고, 수십 번의 커튼콜을 받은 후에야 우리는 재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 마에 선생님.”
“정말 고맙다, 리듬아.”
나를 꽉 끌어안은 그는.
이제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선생님. 울지 마세요.”
나는 눈물 어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결국,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의 눈동자가 휘어지면서.
내게 웃음을 건넨다.
“리듬아.”
“네, 선생님.”
“돌아가기 전에, 네게 건넬 선물이 있어.”
그는, 악보를 집어 내게 건네고는.
“너의 ‘환희의 송가’를, 이것으로 연주해라.”
낡고, 때 묻고, 더럽혀졌지만.
광휘로 빛나는 ‘환희의 송가’ 악보가.
그의 손에서, 천천히 내게로 넘겨졌다.
* * *
‘아르스 노바’의 다음 콘서트는.
조금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이었으니까.
하지만 단원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반드시 포디엄에 있어야 할 지휘자가.
연주 시간이 코앞인데,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마침내 문이 열리고.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포디엄에 선 지휘자 김리듬은.
입 모양으로 단원들에게 사과했다.
‘늦어서 미안.’
‘아,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주!’
나는, 객석과 무대에서 나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
민아와 어머니, 전수정, 정선율, 희재 선배를 포함한 나의 자랑스러운 관객들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고는, 지휘봉을 들었다.
압도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이.
바로 연주회장에 구축된다.
‘우주가 발생하는 그 순간을, 재현해라.’
공허한 5도에서 시작한 음악은.
서서히, 그러나 불가역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구축하더니.
돌연 격렬하게 폭발하면서 관객을 압도한다.
‘멈추지 말고.’
한번 시작한 연주는 활주로를 떠난 비행기와 같다.
붙잡으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가공할 상승기류를 타고 같이 날아야 한다.
같이 몰아치고, 같이 폭발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음악이 아니다.’
2악장.
베토벤이 창조한, 가장 경이로운 스케르초.
누군가는 가장 높아지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가장 깊어지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최대치의 진폭을 원하며.
누군가는 핵심이 되기만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돌진해서는.
‘이렇게 빠르게?’
핵심을 타격했다.
윤성이 전달하고, 내가 완성하는.
환희의 축전으로 가는 스케르초다.
‘감당하기 힘든 속도다.’
그래. 통상적인 템포의 두 배나 빠르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이런 템포가 틀렸음을 방증할 법칙도 없고.
[예술에 법칙이 있는 것은, 바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야.]윤성의 말이 맞다.
긴장의 순간이 지나가면 이완이 와야 하지만.
나는 계속 팽팽하게 끌어당기기만 할 뿐, 이완으로 돌입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바로 지금.
너희들의 영혼에 불을 붙여라.
‘그래. 이게 바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지.’
그러나, 이 음악도 아니다.
‘이제는 3악장의 시간이군.’
낙원과도 같은, 지복과도 같은.
엘리시움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인.
지극히 아름다운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그러나,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한없이 가늘게 이어지는 실타래를 잇듯.
그렇게, 노래하고, 또 노래하라.
‘자, 하지만 이 음악도 아니다.’
마침내, 거대한 불협화음이 폭발하면서.
마지막 4악장이 시작된다.
‘1악장을 부정하고, 2악장, 3악장도 부정한다.’
마침내, 아주 낮은 곳에서.
천천히, 꾸물거리면서 오르는 ‘환희의 주제’.
‘인류가 창조한 지고의 다섯 음계를.’
너희들이, 점화해야 한다.
서로 호흡을 맞춰 가면서.
섬짓한 곡예를 연이어 완성시켜 간다.
‘그래. 이것이 바로, 진정한 환희다.’
수없이 선을 넘으며, 심지어 사선마저 헤치고 달려온 이들만이 같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처음의 불협화음이 다시 달려들지만.
이제는, 인간의 목소리가 동참해서.
그 어둠과 파괴를 완전히 몰아낸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stimmen, und freudenvollere!
“벗들이여! 이 노래가 아니다! 더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모두 하나 되어 부르자!”
이 가공할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흩어진 수많은 파편을 모아.
완벽한 프레스코를 완성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오케스트라 정중앙에 서 있는.
지휘자밖에 없다.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 엘리시움의 딸들.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항상 앞으로 나서던 저 사람만이.
우리를 더 높은 경지로 끌고 갈 수 있다.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it!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 그대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이제는, 하나의 덩어리로 어우러진다.
모두 입을 모아 노래하라.
진정한 환희인 자유를.
모든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온 인류의 가장 소박하고 강렬한 소망을.
Seid umschlungen, Millionen!
만인이여, 모두 포옹하라!
이제, 진정한 마지막 순간이다.
거장이 마지막 붓질을 긋듯.
당신이 내게 건넨 선물을.
경이로운 피날레로 완성하라!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Götterfunken!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환희의 마지막 음표가 끝나자.
귀청이 떨어질 듯한 격렬한 환호성이.
연주회장을 뒤흔들었다.
나는 내게 환호성을 보내는 관객들 틈에서.
미소 짓는 윤성의 모습을 보고는.
구김 없이 웃었다.
‘당신과 나의.’
‘마지막 피날레가.’
‘마치, 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활짝 꽃을 피운 편도나무처럼.’
‘이렇게, 이 자리에서.’
‘환희의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귀신들린 예고천재』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