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위하여!”
잔에 담긴 술들이 이 잔, 저 잔을 넘어 넘실거렸다.
왁자지껄한 이곳은 희희치킨 본점이었다.
오늘치 촬영을 마친 드라마 팀은 희희치킨으로 회식을 온 것이다.
마지막 촬영은 아니지만, 지난 일주일간 고생해서 마무리한 장면이기에 내가 꼭 스태프들을 대접하고 싶었다.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던 채지수에게도 제대로 수고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말이다.
“자자, 여기 대표 아드님이 우리 한시우 배우인 거 다들 아시죠?”
“네-!”
차일남의 말에 스태프들 대부분이 흥겹게 동조했지만, 채지수는 아니었다.
“헉, 진짜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회식은 시우가 쏜다니까 맘껏 먹읍시다!”
“와아-!”
“고맙다 시우야. 잘 먹을게!”
내가 희희치킨 대표 아들이라는 걸 이제 알았는지 채지수의 커다란 눈이 더 크게 뜨였다.
“하하, 지수씨 몰랐구나.”
“시우가 여기 자주 데려와 줘.”
스태프들은 신선한 채지수의 반응을 보고 아주 신나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버지 사업에 누가 될까 일부러 희희치킨과 배우 한시우의 관계성은 밝히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지금이야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이기에 이제는 별로 상관없었다.
“치킨 먹고 싶으면 말해요, 누나. 제가 기프티콘 드릴게요.”
“오오- 치킨집 도련님답다!”
“멋지다!”
주변에서 더욱 호들갑을 떠는 스태프들에게 그만하라고 하면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원래도 촬영할 때면, 종종 한 번씩 아버지 치킨집에서 회식을 쏘곤 했다.
그래서 이쪽 업계에 오래 종사한 스태프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저 어릴 때부터 그래서 희희치킨 진짜 많이 먹었어요. 아, 맞아. 그래서 영화 보면 예전 희희치킨 가게 나오잖아요.”
남연수의 생생한 증언으로 스태프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소란스러워졌다.
“헉. 그 주인공들이 치맥하던 장면이 희희치킨이야?!”
“네. 잘 보시면 그때 저희 아버지도 살짝 출연하셨어요.”
이 이야기도 희희치킨에 회식을 하러 오면 꼭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였다.
지금이야 가게의 위치도 살짝 달라지고 아예 건물을 다시 지었기 때문에 그 외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버지에게 들어보니 아직도 가끔 외국인들이 치맥의 원조라며 희희치킨을 찾아온단다.
“그나저나 오늘 촬영 정말 대단했어. 오늘 댄스 장면은 정말 그림이 잘 나온 거 같아. 아까 이하영이 넘어지는 걸 잡아주는 건 애드립이지? 그거 그림 정말 좋았거든.”
“시청자들한테도 반응 진짜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그건 꼭 살릴 거야.”
차일남의 의기양양한 말에 맥주를 마시던 채지수가 뜨끔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
“음, 저….”
그러다가 눈알을 굴리던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그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미리 연습해뒀더니, 발이 안 꼬이고 잘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맞아. 둘이 연습 진짜 열심히 했다던데. 애드립도 그때 짠 거야?”
“연습 때 나온 건 아니고요. 오늘 촬영하다가 생각난 거예요.”
“이야…… 역시 한시우. 자자, 한잔 더 하자고! 천재 배우 한시우를… 위하여!”
“위하여!”
채지수는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맥주잔을 치켜들었다.
사실 아까 그 장면은 애드립이 아니었다.
진짜 채지수가 실수로 넘어질 뻔한 걸 내가 잡아준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한 번쯤은 그럴 거라 생각했는지, 정말 익숙하게 반사적으로 몸이 나가서 채지수를 잡아챈 것이다.
솔직히 나도 놀랐다.
“크으. 그리고 대사가 진짜 압권이었잖아요.”
“그거! 맞아. ‘괜찮아……? 발목은.’ 이거 말하는데 남자인 나도 심장이 떨리더라니까.”
“시우가 언제 그렇게 느끼하게 대사를 했어요!”
스태프들은 대본에 없지만 내가 애드립으로 날린 대사를 따라 했다.
사실 저것도 반사적으로 나온 거다.
정말 이하영을 연기하고 있는 채지수가 다친 건가 싶어서.
사방에서 스태프들이 나를 놀리느라 성화였다.
나도 이제 스무 살이건만, 종종 스태프들과 차일남의 눈에는 내가 아직 때의 아이처럼 보이나 보다.
“으하하! 진짜 똑같다. 어, 시우야. 그치?”
“저보다 잘하시는데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스태프들의 농담을 들으며 따라 웃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채지수가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고맙습니다.”
술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한 채지수가 살며시 웃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괜히 그게 진짜 실수라고 밝혀서 이 좋은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자, 다음은 서비스. 로제 치킨 나갑니다.”
“아니, 아버지. 뭘 이렇게 많이 줘.”
우리 테이블로 갓 튀긴 새로운 치킨을 가져오는 아버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제가 할게요, 아버님!”
“저 주세요, 아저씨.”
채지수와 남연수가 동시에 일어나서 외쳤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맥주를 한잔 마시다가 이내 목에 걸려 격한 기침을 뱉어냈다.
‘아버님……?’
채지수가 방금 아버님이라고 한 건가?
하긴 한솔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도 아버님이라고 하니 이상할 건 없다.
없는데…… 어째 채지수가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
시간이 지나 의 마지막 촬영 날이 되었다.
오전 촬영은 이하영과 황희의 키스씬이 있었다.
키스씬이라고 해봤자, 백스테이지에서 가볍게 쪽 하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로맨스물에서 키스씬은 아주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나와 채지수는 여러 번 리허설을 거듭하고 있었다.
“시우야, 그쪽 말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봐.”
가벼운 키스씬이라 해도 그림이 어떻게 나올지가 아주 중요했다.
차일남이 각기 다른 각도를 여러 번 요구하며 리허설 중이었다.
입술을 부딪치지는 않고 이렇게, 아님 이렇게 고개를 기울여보며 카메라에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잡히는지 체크했다.
“마지막에 시우 놀랄 때, 눈 조금만 더 크게 해보자. 그리고 지수 옆머리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데… 머리 좀 묶어볼까?”
이번 장면은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채지수가 허리를 숙이고 스치듯 하는 키스씬이었다.
덕분에 채지수는 이런저런 각도를 확인하기 위해 서서 허리를 숙이고 내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으으.”
“누나 허리 아파요?”
30분 넘게 이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 말이 들렸는지 차일남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어어, 미안하다. 지수야. 허리 많이 아프겠네. 아예 지수가 시우 다리에 좀 앉아봐.”
“네?”
채지수는 갑작스러운 차일남의 말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얼굴만 나올 거니까 아예 시우 다리에 앉아서 가보자. 그래도 상관없지?”
“괜찮을까요?”
“네. 앉아도 돼요. 누나 허리 아프잖아요.”
얼굴만 나온다는 말에 채지수가 조심스럽게 내 다리 위에 앉았다.
아직도 내가 많이 불편한가.
살짝 힘을 주고 힘을 다 싣지 않는 채지수의 모습에 내가 얼른 말했다.
“힘 빼도 돼요. 누나. 편하게 앉으세요. 그러고 오래 있으면 힘들잖아요. 벌서는 것도 아니고.”
“음, 크흠. 알았어요.”
헛기침을 한 채지수의 무게가 다리에 살짝 느껴졌다.
그렇게 리허설이 계속되다가 만족스러운 각도를 찾은 차일남이 자연스럽게 촬영으로 넘어갔다.
“액션!”
채지수가 내 무릎에 앉아 이하영의 대사를 쳤다.
“그냥… 잘하라고.”
짧은 대사 후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채지수.
이내 대본에 적힌 반응대로 황희 역을 맡은 내 눈이 커졌다.
그 상태 그대로 촬영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차일남의 컷소리만 기다리고 있는데, 다행히 금방 소리가 들려왔다.
“컷! 오케이. 아, 한 번만 더 찍을 걸 그랬나?”
“잘 나온 것 같은데요?”
그대로 오케이가 나오자, 차일남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촬영이 길어지는 걸 좋아하는 스태프는 없기에 내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촬영은 금방 끝났다지만, 리허설 시간을 고려하면 짧은 것도 아니었다.
이 짧은 장면을 위해 한 시간을 가까이 투자했으니까.
그 정도로 공을 들였으니 단번에 차일남 PD의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나 보다.
“미안해요. 무거웠죠.”
그리고 차일남의 오케이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채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내 다리 위에서 일어났다.
“아뇨. 괜찮아요. 가벼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껏해야 50kg도 안 나갈 여자의 무게가 무거울 리가 있나.
다만, 무겁진 않고 이상하게 다리가 열이 나는 듯 뜨겁긴 했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오전 촬영을 마무리하고 오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기로 했다.
스태프들이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고 나서 이상하게 나른함을 느끼고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촬영지 의자에 앉아있지 않았다.
이곳은 영국의 바텐베르크 성이었다.
꿈인가?
바로 얼마 전 다녀왔던 영국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건 400년 전의 영국의 모습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내가 앉아있던 고풍스러운 방에서 복도로 나갔다.
그러자 아주 그리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기억 속의 바텐베르크 성안에 하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듯 나를 그냥 스쳐서 지나갔다.
이 시대의 복색이 아닌, 현대인의 복장을 하고 있는 날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꿈이 확실하네.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몽환적인 기분에 젖어 바텐베르크 성지를 걸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신기함을 느끼며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다.
올리버와 함께 산책을 하던 장미정원과 비밀공간처럼 덤불 속에 숨겨져 있는 티 테이블.
구불구불한 관목 사이를 지나 본관과 별관의 모습도 바깥에서 바라보았다.
꿈이어서 그럴까.
현대 영국에 찾아가서 확인한 바텐베르크 성과는 다르게 푸른 담쟁이 덩쿨로 뒤덮여 위풍당당한 위상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도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성지 내를 구경했다.
그러다 무의식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바로 노아가 갇혀 지내던 성 안쪽의 탑이었다.
탑 바깥에 서서 꼭대기를 바라보자, 노란 머리칼에 허여멀건 얼굴을 하고 병들어 보이는 사내가 창가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노아…….”
내 중얼거림에 창밖을 보고 있던 금발 머리의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노아만큼은 내가 보이는 듯 정확히 눈을 맞춰왔다.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놓인 듯한 얼굴.
죽기 직전 나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노아의 초점없는 눈을 보니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노아를 향해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들며 나직하게 말했다.
“너한테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야. 노아.”
언젠가는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꿈에서나마 전해본다.
***
꿈에서 깨어나 몽롱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옆에 놓인 황금색 가면을 바라봤다.
방금까지도 촬영에서 내가 썼던 가면이다.
과거, 노아가 무대에 오를 때 뒤집어썼던 그 황금 가면과 비슷한 생김새.
설마… 노아의 이야기를 연기하고 있어서 이런 꿈을 꾼 걸까.
오후에는 이 가면과 작별하는 황희의 장면을 찍을 예정이다.
그런 날, 다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아의 꿈을 꾸다니.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는 듯이 말이다.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노아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제 내 곁에 나를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가족, 친구, 동료들이 많다.
그는 아직 모를 것이다.
노아가 모르는 미래에는 이러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오늘 내가 해준 말이 그에게 닿았으면 싶었다.
이 미래의 단편이나마 전해졌다면 그 공허한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채워지지 않았을까.
혹시 모르더라도 상관없었다.
꿈에서 시우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한시우로 다시 살아올 그를 위해 나는 오늘도 연기할 것이다.
지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더 단단한 배우로 성장할 것이다.
아까의 일은 정말 꿈인 듯 눈앞에 촬영 현장이 너무나 선명했다.
“하하하, 진짜 웃긴다. 들었어요, 시우씨?”
“네. 감독님이 가끔 그런 장난을 치실 때가 있죠.”
웃으며 이야기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목소리에 슬쩍슬쩍 노아의 얼굴이 스치지만, 그뿐이었다.
“그럼 마지막 장면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태프의 외침에 황희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감정을 잡고 가면을 쓴 채 무대 중앙에 섰다.
차일남이 카메라에 나에게 고정하자, 내가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플래시와 카메라 렌즈들.
그리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모습이 가면 너머로 보였다.
객석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지금까지 믿고 찾아준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나를 향하는 순간.
“스탠바이하시고…….”
이내 차일남의 스탠바이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무대에 서서 황금가면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왼손으로 가면을 벗고, 오른손에 들려있는 잔을 치켜들었다.
“지금까지 함께해준 여러분을 위해 건배.”
다시는 이 광경을 못 보리라 예감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이 두 번째 삶에 나와 함께 걸어와 준 모든 이들의 얼굴이 객석 속 관객들 위에 덧씌워졌다.
그들을 생각하자니,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고마움을 담아 미소 지었다.
관객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그들을 향해.
–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