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state Developer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Epilogue
쿠오오오오……!
지옥왕의 날개가 사납게 공간을 휘저었다.
거친 날갯짓이 그의 몸을 빠르게 쏘아 보냈다.
쿠우우우……!
드넓은 허공.
새하얀 공간을 가로지르며 지옥왕은 고개를 들었다.
수백 갈래로 확장된 시야로 이곳에서 움직이는 모든 존재의 패턴을 파악했다.
그가 급강하를 개시했다.
쿠와아아아-!
여섯 다리를 접었다.
날개가 더욱 광포하게 포효했다.
목표물을 향하여.
자비 없이.
난폭하게.
내리꽂히듯 착지했다.
쿠웅!
지옥왕이 만족스럽게 혀를 날름거렸다.
이 공간 전체를 점령한 파괴적 존재답게, 주위를 사납게 쓸어보았다.
– ……!
그의 시각에 포착된 미약한 존재들.
지옥왕의 거친 아가리가 과자 부스러기를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아니, 집어삼키려던 순간이었다.
파리채가 지옥왕을 내리쳤다.
찰싹!
거침없이 데스크를 후려친 파리채.
지옥왕은 가까스로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파리채에 맞아 으스러져 죽는 꼴을 모면했다.
더욱 사납고, 거침없이 날았다.
그런 지옥왕의 주위로, 거대한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언니? 그거 놓치면 어떡해요?”
“그럼 뭘로 잡아. 병원에서 에프킬라 뿌릴 수도 없고.”
“됐고요. 줘 봐요.”
“그래, 이것아. 넌 잘 잡는지 보자, 어디.”
“일단 구경해 보시라니까요?”
깔끔한 데스크.
그곳을 지키던 두 간호사가 수다를 나누었다.
그걸 보며 지옥왕은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이곳은 지극히 위험하다.
얼른 도망치자.
그의 더욱 바빠진 날갯짓이 병원 복도를 가로질렀다.
복도 옆 어느 병실에서는 낡은 티브이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다음은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소식입니다. 다들 2년 전, 쇼트트랙 결승선 스케이트날 내밀기를 아직 기억하실 텐데요. 당시 대한민국 역사상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 주었던 쇼트트랙의 김기훈 선수가,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1,000미터에서도 금빛 질주를 이어 가며 또 하나의 귀중한 금메달을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럼 뜨거운 동계올림픽 현장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위이이잉!
힘찬 날갯짓 너머로 낡은 티브이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 뒤로도 지옥왕의 비행은 끝나지 않았다.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몇 층인가를 오르락내리락.
간신히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했다.
다시금 병원 복도를 무법자처럼 질주하며 날았다.
그러다가 어느 남자가 내지른 손뼉에 맞았다.
짜악! 찍-!
한때 지옥을 호령했던 지옥왕.
그러다가 환생문에 빠져 다른 차원의 똥파리로 태어났던 그는, 이렇게 새로운 삶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아, 이기 뭐고. 병원에 와 이른 게 날라댕기고 난리고.”
서른 중반의 남자가 투덜거리며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는 방금 자신이 어떤 위업(?)을 세웠는지 까맣게 몰랐다.
한때 차원계의 저승을 관리하던 신적 존재가.
환생을 거쳐 미물로 태어난 끝에.
자신의 손뼉 스매싱 한 큐에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꿈에조차 알 도리가 없었다.
남자는 그저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걸음이 향한 병원 복도 한쪽.
그곳에 노인이 있었다.
남자가 노인에게 꾸벅 인사했다.
“장인으른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지예. 그르다 탈나십니더.”
“아니야, 아니야. 우리 손주가 저기 있는데 내가 지금 쉴 때인가?”
“그래도 좀 쉬시야 됩니더. 그라다가 팍 쓰르지믄 우짤라고 그라십니까.”
“쯧쯧, 내 저거 두고 쉬려니 발길이 안 떨어져서 그래.”
“그래도 괘안을 겁니더. 우리 아가 몸무게가 쪼금 모자라서 글치, 그래도 의사쌤이 자가호흡은 잘한다 캤으니까 하루 이틀만 저기 있다가 나올 겁니더.”
“그런가?”
“예, 장인으른.”
남자와 늙은 장인.
둘의 시선이 복도 벽의 유리를 향했다.
투명한 유리 너머의 실내, 인큐베이터가 보였다.
인큐베이터 속에는 사내아기가 있었다.
갓난아기, 방금 환생한 망나니 로이드 프론테라는 생각했다.
‘저 말투 참 신기하네. 목소리는 왜 또 저렇게 우렁차? 그나저나, 내가 저 남자 아들인가.’
오늘 오전에 태어난 그였다.
아직 눈을 뜨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그럭저럭 들렸다.
남자와 노인의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고 요란한 까닭이었다.
‘시끄러운 가족이네.’
그들이 자신의 새로운 가족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망나니 로이드는 내심 투덜거렸다.
고래로 태어나고 싶었는데.
또 인간인 거냐고.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떤 세상인 거냐고.
한편으로 그는 아까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환생의 문, 이상했어.’
마침내 죽음 후의 안식을 얻었던 자신이었다.
지옥의 끄트머리.
그곳에 마련된 플랫폼에서.
예전에 자신의 육신을 강탈했던 가짜 놈, 김수호와 작별했더랬다.
놈의 배려와 양보 덕분에 환생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었더랬다.
‘하. 그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워해야 하는 건지.’
조금은 헷갈려서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몸을 빼앗았던 건 미운데.
그 후로 망령이 되어 이승과 저승을 방황했던 걸 생각하면 한 대 치고 싶은데.
우연히 만난 지옥에서 자신을 도와준 걸 생각하면 한편으론 덜 미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고맙다, 김수호.’
날 환생시켜 준 은혜, 잊지 않으마.
네 배려와 양보, 언제까지고 새기고서 새 삶을 살아가마.
망나니 로이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한편으로 전생에 대한 후회도 곱씹었다.
‘아버지, 어머니, 줄리앙.’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그들에게 서운했던 일들?
그런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이 행패를 부렸던 못난 기억들만 자꾸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며 대들면 안 됐던 건데.
그때 어머니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던 건데.
그때 줄리앙 녀석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해야 했는데.
‘그리고 하비엘 아스라한.’
자신을 호위하던 기사.
그놈의 냉랭하던 눈초리도 떠올랐다.
‘그래, 넌 내가 경멸스러웠겠지.’
충분히 그럴 법하다.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 줄리앙이 그런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그저 쓰레기처럼 무가치한.
남들에게 민폐만 끼친 삶이었다.
‘다들, 죄송합니다.’
절로 코가 찡해졌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
그걸 곱씹으며 다짐했다.
이번 생은 성실하게 살자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선량하게 살자고.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가며 주위에 도움이 되자고.
그렇게, 김수호 그놈 같은 삶을 살아 보겠노라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되새겼다.
지금의 마음가짐과 각오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곧 있으면 환생의 법칙에 의해 다 잊게 될 전생의 기억과 다짐이기 때문이었다.
‘환생의 문을 지나면서 안내사항을 들었지. 새로운 삶을 받아서 다시 태어나면, 새 육체가 지닌 지적 능력만큼의 전생의 기억을 지닐 거라고. 하지만 그 기억,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고.’
분명 그렇게 들었다.
새로 태어나서 새 이름을 불리면.
그 순간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망나니 로이드는 그 법칙을 상기하며 절박한 다짐을 거듭 반복했다.
한데 그때였다.
인큐베이터 바깥.
유리창 너머 복도에서.
이쪽의 아빠와 외할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자네, 혹시 애 이름은 생각해 둔 게 있는가?”
“예?”
“아직 없나?”
노인의 묻는 소리.
남자의 멋쩍은 듯한 대답.
“아, 실은 생각해둔 게 있긴 합니더.”
“그런가. 흐음, 그래도 자네, 내가 중하게 하는 이야기 좀 들어볼 수 있겠는가?”
“예, 듣고 있습니더.”
“고맙네. 실은 말일세. 아까 내가 용한 작명가한테서 정말로 좋고 길한 이름을 하나 받아왔다네.”
“이름을…… 작명가한테서예?”
“그렇지. 작명가가 말하기를 애 사주로 봐서 이 이름이 하늘이 내려준 듯이 안성맞춤에 딱이라더구만.”
“어떤 이름입니꺼?”
“팔봉이. 김팔봉.”
“…….”
“어떤가. 자네도 마음에 드는가?”
“…….”
남자가 침묵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망나니 로이드는 다급함을 느꼈다.
‘싫다고 말해! 어서! 그건 좀 아니잖아!’
세상에나.
김팔봉이라니.
이쪽 세상의 작명법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그렇다곤 해도 듣는 순간 어쩐지 몸서리가 쳐지는 이름이었다.
‘그건 아니야. 진짜 좀 아니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완전 아니야! 그러니까 거기 당신, 아니, 아빠! 거절해! 제발! 김팔봉은 진짜 아니라고!’
위기감이 쑴펑쑴펑 피어났다.
진심으로 남자를 응원했다.
다행히 이쪽의 진심(?)이 닿은 걸까.
이내 남자의 곤혹스러워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어, 으음…… 저기, 장인으른요.”
“음? 왜 그러나?”
“다시 좀 생각해 보시믄 안 될까예?”
“왜? 자네는 팔봉이가 마음에 안 드는가?”
“으음, 이런 말씀 드리기는 진짜 죄송한데예, 아무래도 그그는 쫌…….”
“어허. 혹시 투박해서 그러는가? 괜찮네. 사내아이는 이름도 좀 투박하고, 구수~한 맛도 있고 그래야지. 응?”
“아, 그래도 좀…….”
“허허허, 이거 20만 원이나 주고 받은 이름인데.”
“…….”
“허허어. 애 이름 이걸로 하면 평생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면서 복 받고 산다던데.”
“…….”
다시금 입을 다문 남자.
망나니 로이드는 속으로 더욱 다급하게 외쳤다.
‘이봐요, 영감님? 외할아버지? 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잖아? 그 이름 무슨 신관한테 축복이라도 받았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 이름 가지고 선 넘으면 안 되지!’
설마 이대로 저 소름 끼치는 네이밍이 자신의 새 이름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걸까.
그는 초조함에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행히도, 그가 두려워하던 사태가 당장 벌어지진 않았다.
“으음, 그라믄 장인으른예. 제가 깊게 생각 좀 해 보겠습니더.”
“그래, 그래. 그래 보게. 이왕이면 좋게 생각해 보고. 비록 자네가 염두에 둔 이름이 있다곤 해도, 그래도 용한 분 말씀 듣고 지은 이름이 아무래도 더 낫지 않겠나? 응?”
“예에. 일단 고민 좀 해 보고예, 으르신.”
“그래. 알겠네.”
남자와 노인의 말소리가 드문드문,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듯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망나니 로이드는 급격한 노곤함을 느꼈다.
‘후우, 일단은 다행인가.’
저 소름 끼치는 이름이 당장 결정되진 않았다.
눈치로 보아선 자신의 아빠인 남자, 저 이름을 내키지 않아 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좀 대들고, 주장도 확실하게 해 봅시다, 좀.’
제발 남자가 그래 주길.
망나니 로이드는 바라고 또 바랐다.
한데 그 사이 몸이 더욱 노곤해졌다.
졸음이 삽시간에 몰려왔다.
‘아, 갓난아기라서 그런가…….’
견딜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의식이 스르르, 감겼다.
멀어졌다.
아득해졌다.
포근해졌다.
망나니 로이드는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졌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사이 몇 번인가 멍하니 깨어났던가.
그리고 다시 곤하게 잠들기를 반복했던가.
망나니 로이드가 제대로 의식을 차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뭘까.’
그는 몸 주위의 감각에 집중했다.
어쩐지 아까와 누운 자리가 달라진 것 같았다.
공기도 조금 바뀌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안고 있는 건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포근한 느낌이 몸을 감싸왔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바로 곁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얼라 깼다.”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까와는 달리 최대한 음성을 낮춘, 소곤소곤 속닥이는 듯한 소리였다.
뒤이어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여보. 그냥 그 이름으로 해도 되겠어요?”
“뭐, 그래 해야지. 워낙 장인으른이 완고하시가꼬.”
“나중에 알면 서운해하실 텐데. 일부러 작명소에도 다녀오셨다던데.”
“괘안타. 그라믄 니는 아 이름이 팔봉이 되도 좋나?”
“……아뇨, 그건 좀.”
“그르체? 나도 글타. 아무리 장인으른이 뭐라 하시도 그그는 좀…….”
남자와 여자의 대화.
아빠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
그걸 들으며 망나니 로이드는 안도했다.
아무래도 팔봉인지 뭔지 하던 끔찍한 이름, 부부가 거절하려는 듯했다.
‘그럼 내 이름은 이제 뭐가 될까.’
이제 곧 그게 정해지리라.
그러면 자신이 지닌 망나니 로이드의 기억은 사라지리라.
완전한 새 인생으로, 새로운 앞날을 걸어가게 되리라.
‘이번엔 열심히 살자. 꼭 그럴게요.’
전생에 죄송했던 이들.
가족과 주위의 모두들.
그들을 향해 굳게 다짐했다.
지금의 다짐을 잊지 않겠노라고.
기억이 사라져도 무의식에 꼭 새겨 간직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사이, 커다란 손이 다가왔다.
이쪽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쓸어만졌다.
“아가 우째 이래 작은고.”
“그만. 애 울어요.”
“그래도 이쁘다 아이가. 하하.”
“아이, 참.”
“어쨌거나. 그라믄 이름 정한그다?”
남자의 물음에 이쪽을 감싼 여자의 따스한 품이 작게, 움직였다.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망나니 로이드는 긴장했다.
어떤 이름을 받게 될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걱정하고, 기대하는 사이.
아빠가 될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들리나? 내가 니 아빠다. 진짜 반갑데이.”
‘…….’
어?
저도 모르게 멈칫.
그 사이.
전생의 기억이.
하나씩 차례대로.
거품처럼 차근차근.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렸던 나날의 프론테라 영지.
따스했던 햇살 속 가족 나들이의 추억.
하비엘을 놀리고는 도망쳤던 어떤 하루.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가장 소중했던 추억들이.
“그르니까 우리 아들?”
하나씩 차례대로.
거품처럼 차근차근.
“반갑다, 수호야. 우리 아들, 김수호.”
아빠의 따스한 손길이 사르르.
이마를 매만지며 볼을 어르고.
한때 망나니 로이드 프론테라였던.
이제는 아기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김수호가 아빠를 향해 처음으로 방긋 웃었다.
– 역대급 영지 설계사,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