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38
238. 봄
“어, 봄이 왔어?”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울적한 표정으로 학원에 들어섰다. 피아노 앞에 앉아 기다리던 선생의 고개가 그녀의 얼굴을 보곤 살짝 기울었다.
“무슨 일 있었어?”
선생의 질문이 던져지기 무섭게, 학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유를 설명했다.
“갑자기 연주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겨울이 걔보다 못한 것 같아요.”
겨울이란 이름은 굳이 학생의 입에서가 아니더라도 종종 듣던 이름이었다. 특히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이지. 이 동네에서 피아노 신동이라 불리던 아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먹구름을 눈 밑에 그렁그렁 달고서 학생이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선생은 그런 학생을 빤히 바라보다가 오히려 책을 덮었다.
“······?”
“초코우유 있는데. 하나 마실래?”
“네? 아, 네.”
자리에서 일어난 선생은 초코우유를 가져와 학생에게 쥐여주며 자양강장제 하나를 땄다.
나란히 앉아 들이키는 둘.
홀짝이는 학생과는 달리, 한 번에 툭 털어 넣은 선생이 물었다.
“겨울이가 그렇게 연주를 잘해?”
“후읍. 네. 잘해요.”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에 그녀가 다시 한번 묻는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잘하는데?”
“······손도 빠르고, 터치도 정확하고······어, 음······.”
학생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픽 하고 웃으며 몸을 돌리는 선생. 그녀는 자신의 제자의 기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살짝 나무라듯 물었다.
“네 실력으로 걔가 뭘 잘했는지 모르는 건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게, 제 차례가 뒤쪽이라 제가 연주할 거 생각하느라······.”
“그러면 네 뒤에 순서 애들 연주는 제대로 들었고?”
“······.”
“무슨 콩쿠르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학생을 보며 선생이 고개를 내저었다.
“심지어 콩쿠르에서도 안 그러는 사람이 있······아니지. 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천재니까 제외하더라도.”
“······?”
갸우뚱하는 학생의 반응에 입맛을 쩝 하고 다신 그녀가 말을 잇는다.
“그냥 불시에 하는 실기 평가에서조차 다른 사람 연주를 안 보면 어떡해. 너 계속 네 손만 보면서 살 거야?”
“그치만 다들 각자 꺼 준비하느라 바쁘던걸요.”
그 말에 선생이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옛 기억이 스치면서 여러 생각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기억들 속에서, 지금은 만날래야 결코 만날 수 없을 만큼 대단해진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면서 학교 멘토링에 무려 멘토 자격으로 온 사람.
‘멘토님, 솔직히 이건 저희끼리 알려주기 좀 그래요. 전력 노출이잖아요.’
자신의 뾰족한 대답에.
‘서로 실력을 안 보이고 숨기면, 뭔가를 제대로 배우는 게 가능해요?
더욱 날카롭게 답하던.
‘잘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지금의 자신을 만든 멘토링.
빙그레 웃으며 선생이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야 해.”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는 음악을 배우려고 학교도 가고, 학원도 다니는 거지, 게임을 하려는 게 아니잖아.”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에 선생이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저런 소릴 들었던 거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분명 자신은 변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대단해지면 대단해질수록 그가 했던 말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무게감이 커져갔다.
최고의 연주자이자, 이제는 명성만큼은 세계 3대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한 필하모닉’ 의 수장.
그만하면 인생의 멘토로 삼기엔 충분한 사람이잖나.
“내가 너한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그때 얘길 하곤 한다.
정말 행운이었다고.
“그때, 멘토님이 그랬던 것처럼.”
#
······교수?
뭔가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해본 주제였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진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투영되었는지, 양세종 교수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하지? 오래전부터 생각은 했었는데, 자네가 워낙 바빠서 말할 기회가 있어야지.”
그의 말에 주억이다가 머릴 긁적이며 되물었다.
“제가 뭔가를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을까요?”
그러자 양세종 교수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거기에 대해선 주인호 교수와 이종범 교수도 우려하더군. 교수들조차 전율하는 과제물을 내놓은 자네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면서. 예전에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에 나오던 밥 아저씨를 보는 기분이지 않겠냐며.”
“하하···.”
참 쉽죠? 라고 묻는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을 지었다. 남들한테 그런 모습으로 보이려나. 그래도 예전에 화원 예고 멘토링을 했을 땐 다들 집중하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그럴듯한 문제지. 적어도 창작과 관련된 수업에선 자네가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자넨 영감을 고르지만, 우린 찾는 입장이거든. 그것도 무슨 금맥 찾듯이 어렵게, 어렵게.”
힘겨운 시늉을 하던 양세종 교수가 표정을 바꾸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창작을 위한 장작을 넣어주는 역할이라면 어떨까?”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수업 중에 자주 쓰던 말.
‘국사도 잘 모르는데, 왜 서양 음악사를 배워야 하나 싶지?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알게 될 거야. 너희들이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서양 음악사는 창작을 위한 장작이란 걸.’
감을 잡은 듯한 내 얼굴을 본 양세종 교수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적어도 내 서양 음악사 시간에서 자네의 발표들은 전부 최고였거든. 저걸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지? 가 아니라,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었어. 나조차도 배운 것들이 많았지. 그리고 편지가 공개되어 그것들을 확인했을 땐······.”
그의 눈이 반짝일수록,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깃들었다.
“전율이 일더군. 자네가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과 너무 흡사해서.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 것 같았어.”
“하하하하···.”
내 생에 이렇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본 게 언제더라.
순간 찔끔해서 몸까지 움찔할 정도였다.
다행히 양세종 교수는 자신의 말 할에 빠져 보지 못한 듯하지만.
“자네가 모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더군.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클래식도 결국은 고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그러니 고전이 사라질 일은 없다고. 오히려 연주만 되던 시대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거라고.”
“······.”
······문득 빙긋이 웃는 양세종 교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그의 방을 넓게 보았다.
양쪽으로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다.
손을 뻗으면 대부분이 내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바흐가 뿌린 씨앗들이 만개했던, 하이든부터 모차르트, 파가니니와 슈베르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음악의 전성기였던 시기였으니까.
그 모든 시간들이 기억들과 함께 내 양옆에서 콸콸콸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물론 당장 결정하긴 어렵겠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얘기야.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며, 고전을 가르쳐 보는 게 어떻겠는지. 분명 둘 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야.”
턱 끝을 쓸어내린 양세종 교수가 덧붙였다.
“그걸 한 사람이 하지 말란 법도 없고.”
#
“후아.”
널따란 밴 안에서 안전벨트를 풀은 채이연이 긴장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가 백미러로 그런 그녀를 확인한다. 그녀와 고등학교 동창인 이호익이었다.
“차도 막히는데, 사람은 더 막혔네.”
대학교로 들어오는 길이 서울 퇴근길 고속도로를 방불케 한다. 밀려드는 사람들. 모두가 졸업식을 위해 모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채이연이 아쉬운 목소릴 냈다.
“뭔가, 이젠 너무 멀다~.”
“누가 멀어?”
“서호. 너무 유명해졌어.”
채이연의 말에 이호익이 픽 하고 웃었다.
“칸 영화제에 초청도 받은 여배우가 뭐?”
“그래도 쫌··· 느낌이 다르잖아. 서호는 무슨 문화제가 된 것 같아.”
이번만큼은 이호익도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선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긴 하지. 한느라고 불리더만.”
“쩝.”
“그래도 너한텐 50만 팬이 있잖아.”
“서호는?”
“아마 셀 수도 없겠지?”
부슬부슬 웃은 채이연이 내릴 준비를 했다. 오늘은 그녀의 졸업식이기도 했기에.
부산한 그녀를 기다리며 이호익이 말했다.
“아마 한국예대 역사상 가장 많은 연예인이 참석한 졸업식이지 않을까 싶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신기하지만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한서호의 축하 공연이 예정되는 순간부터, 졸업식이라기보단 콘서트에 가까워졌으니까.
오죽하면 학교 측에서 인원에 철저히 제한을 했을까. 물론 원성이 자자해져 라이브 방송을 틀기로 하긴 했다.
“난 여기서 보고 있는다?”
이호익이 의자를 비스듬히 누이며 핸드폰으로 방송을 틀었다.
“다녀올게.”
채이연이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사람이 워낙 많아 파도에 쓸리듯 건물 안으로 향했다.
안내원에게 학생임을 증명하고, 자신을 알아본 토끼 눈을 향해 살짝 웃어준 뒤, 강당으로 들어섰다.
푹 눌러쓴 모자챙 너머로 강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도 여러 가수들의 콘서트로 많이 사용된 화려한 강당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꾸며져 있는 느낌이었다. 학교 쪽에서도 힘을 많이 쓴 거겠지.
그녀 또한 졸업자이지만 굳이 앞으로 나서진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앉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애초에 졸업식보단 친구의 공연이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기다림 속에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여느 졸업식처럼 지루했지만, 뒤의 순서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총장의 길고 긴 이야기에 동태눈깔처럼 변해갈 무렵.
“······.”
기다리던 순서가 시작되었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서서 준비를 시작하고, 그 뒤로 한서호가 무대에 나타났다.
그의 등장만으로 활시위가 팽팽해지듯 큰 강당에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뒤늦게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과연 졸업식에서 한서호는 어떤 연주를 보여줄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게, 채이연에게까지도 느껴졌다.
‘오랜만이네.’
채이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한서호의 무대를 보는 게 솔직히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자신도 너무 바빴잖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있었다.
윤짜르트 촬영 당시, 마을 축제 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한서호의 모습.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작은 바람이 불어오고, 살며시 떠오른 마음을 흔들거리게 만들었던.
별처럼 수놓아진 조명 사이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 흩날리는 이름 모를 꽃잎들까지도.
모든 게 생생했고.
지금, 그 모습이 겹쳐 보였으며.
마침내, 한서호의 손짓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
분명 실내인데, 갑자기 밖으로 나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음악이 바람처럼 청중을 훑는다. 그리고 뒤이어 보여지는 것은······.
사계, 봄.
꽃들의 만개(滿開)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