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55
255.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1)
온몸에서 가시가 돋아나는 듯한 통증이 전신 구석구석을 덮쳐왔다.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는 극악의 고통.
평소엔 꼼짝도 안 하던 나의 근육이 놀라 경련을 일으켰고, 마치 심장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 역동(力動).
그래, 나는 역동적으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일페르소가 기함하며 그런 나를 받쳐 들었으나, 노쇠한 그의 몸은 더 이상 내 떨림을 이겨낼 수 없었다.
덜덜덜덜————.
찰나가 영원 같다.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비로소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언젠간 이러다가 갑자기.
······세상이 암전되겠지.
이 예언만큼은 내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정확할 터.
바들거리며 바닥을 헤집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도 이토록 힘없이 무너지진 않는다.
그런 내 모습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비정상적인 고통은 정상적인 사고를 끊어버렸다.
적어도.
끼익—.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기 전까진 그랬다.
“헙······.”
새하얀 손이 붉은 입술을 가렸다.
작은 얼굴은 손바닥에 가려져 동그란 두 눈만 내민 채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보고 있다.
······나를.
그 사실 하나가 끊어져 있던 사고를 접지한다.
그러자 내 의지가 이끄는 대로가 아닌, 병마의 의지대로 꿈틀거리는 내 꼴이 그려졌고.
그 어떤 것도 덮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통증 위로 절망이 빽빽이 드리운다.
“끄윽···끄윽···.”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보석 같은 눈이 추한 모습을 담는다.
그 어떤 시선도 꿋꿋이 참으며 살아왔는데, 저 시선 하나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하다.
‘저게 대체 뭐야. 너무 끔찍하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지금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는 걸.
······그건 그녀의 목소리를 한, 나의 자존감(自尊感).
극심한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이 감기고 있었다.
동시에, 어느새 주제도 모르고 활짝 열려있던 내 마음의 문도 닫혔다.
#
······병마(病魔)의 승리였다.
놈은 음악으로 되찾은 나의 생(生)을 단번에 무너트릴 시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방법을 찾은 듯했다.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음악을 즐기며, 거장들과 담소를 나누고, 음악의 예언가라는 과분한 별명까지 얻어······.
정말 내가 뭐라도 된 양 그렇게 행복해하는 나를, 놈은 보고 싶지 않았겠지.
그래서 내가 가장 절망할 순간에 찾아온 거다.
그러니······.
결국, 내가 부른 거나 마찬가지인가.
행복해지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그러려고 해서.
“정신이 드십니까.”
“······일페르소.”
정신을 차리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잠시 멈추고서 걱정 가득한 일페르소의 얼굴을 보았다.
“많이 놀랐지? 오랜만에 찾아온 통증이라······.”
느릿하게 그를 달랬다.
그러자 더욱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말한다.
“그걸 왜 백작님이 걱정하십니까. 정작 고통스러우셨던 건 백작님인데······.”
“일페르소.”
“네, 백작님.”
“나 몸 좀 일으켜줘.”
점점 격양되는 일페르소의 말을 끊고, 그의 부축을 받아 상체를 일으켰다.
자연스레 창밖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맑았고, 햇살이 쨍하다.
“날씨가 좋네.”
내 말에 일페르소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끄덕였다.
“네, 정원에도 꽃이 만개했습니다.”
“보기 좋겠어.”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 나가시기엔 몸 상태가······.”
정원으로 나가자 할 줄 알았는지, 일페르소가 지레 겁을 먹길래 내가 얼른 말했다.
“나갈 생각 없어. 그리고······ 마에스트로를 불러줘.”
“하이든님을요?”
“응.”
······하이든이 내 방으로 찾아온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가 봐도 헐레벌떡 달려온 게 느껴지는 노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선언했다.
“단원들 면담을 더는 못 할 것 같아요.”
아주 잠깐, 안타까운 눈빛을 내비치던 하이든이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레 통보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아닙니다. 감사 받아야 할 분이 뭐가 미안합니까.”
“그래도요.”
누군가 독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혀끝이 쓰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선택이 정말 내게 독처럼 아픔을 줄 거란 걸. 그럼에도 지금은 이 선택뿐이란 것도.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많이 아쉬워할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 그럴 거다.
나와 음악 얘기하는 게 그토록 좋다고 활짝 웃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실리 양이 백작님을 잠시 뵙고 싶어 합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그녀가 일페르소를 통해 면담을 요청했다.
“······.”
“안 된다 전하겠습니다.”
다음날도.
“백작님 아실리 양이······.”
또 그다음 날도.
“오늘도 아실리 양이 올라와서······.”
계속해서 그녀는 나를 만나고자 했고, 나는 그것을 막았다.
마침내 일페르소가 더는 아실리에 대해 얘길 꺼내지 않게 되었을 때, 내가 도리어 물었다.
“이제 더는 만나려 하지 않나 보네.”
“······아실리 양 말씀하는 거죠?”
“어, 어.”
시선이 바닥을 굴렀다. 참 웃긴 일이다. 그렇게 거절해놓고, 이제 와 이렇게 아쉬운 사람처럼 묻는다는 게.
잠시 나를 내려다보던 일페르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뇨. 제가 백작님께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 왜?”
카페트 문양처럼 복잡하게 움직이던 눈을 들어 올리자, 일페르소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말을 전할 때마다 백작님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요.”
“그래서 물어봤던 거구나? 앞으로도 절대 만나지 않을 거냐고.”
며칠 전 그가 내게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분명······.
“네. 더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하셨으니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말끝을 늘리자, 그가 끄덕였다.
“오늘도 다녀갔습니다. 아실리 양이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꼭 만나 뵙고 싶다 합니다.”
“······.”
전하지 못한 말이야 나에게도 있다.
어쩌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전해지지 못할 말로 정해져 있었을 말.
아름다운 연주자와 저주에 걸린 귀족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나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던 추한 내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걸지도.
나는 그녀를 또다시 거절했다.
거절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시간은 흘러갔고, 하이든의 오케스트라가 바덴바덴을 떠날 날은 바로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그리고 결국 찾아온 마지막 날 밤.
누군가가 묵인한 걸까.
문밖에, 그녀가 와있었다.
“백작님······.”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일페르소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몇 번이고 문을 열어달라 말하고 싶었을 테니까.
“감사했어요. 그리고 즐거웠어요. 정말로. 이 얘길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 간단한 말들을 문 앞에 두고서,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가는 발소리.
나는 한참 동안 숨을 죽이고서,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녀 방과 연결되어있는 옆문이 열렸다.
“갔습니다.”
그곳엔 일페르소가 있었고.
“일페르소······.”
나는 그를 보며 무너졌다.
“통증은 음악으로 견뎠는데, 이건 뭘로 견뎌야 할지 모르겠어······.”
#
“그녀는 어땠나요?”
질문을 던진 후, 잠깐의 침묵은 내 기억들을 쏟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뒤이어 침음성을 삼킨 백한길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백작님이 돌아가시고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었죠. 그토록 많은 음악가가 모인 것은 아마 역사상 없었을 겁니다.
그의 일기에도 나와 있었던, 모두가 연회장에 모인 날.
-그곳에 아실리 로라렌스. 그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억을 더듬듯 뜸을 들이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몹시 슬퍼했고······몹시 아파했죠.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꽤나 수척해져 있었고, 솔직히 저는 그게 반가웠습니다. 누가 봐도 그녀는 백작님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
-저는 백작님의 뜻에 따라 그녀를 계속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피스트로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어느 날, 더는 후원이 필요 없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저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좀 지나 궁금해서 소식을 알아봤는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내가 알 수 없었던 그녀의 결말이 백한길 회장의 입에서 드러났다.
-행복하게 살고 있더군요.
입이 살짝 벌어진다. 입술 사이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결국, 그녀도 시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백작님이 그러셨던 것처럼요.
“······다행이다.”
내 대답에 백한길 회장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죠. 그때의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행이라고. 뭐, 그 후에는 굳이 소식을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일기 쓰기 바빴거든요.
“그리고 작곡도 했죠.”
-끙······.”
헌정곡 얘기만 나오면 그답지 않게 민망해하는 백한길 회장의 반응을 보며 내가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도움이 되셨습니까?
“네. 이제부터······.”
시선을 돌려 피아노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그녀 인생의 뒷부분을 완성해보려고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서 울먹이던 기억에서 끝나버린 오선지 속 음표들.
나는 영국에서 잠시 멈췄던 작곡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직접 보고 기억하는 장면들은 아니었지만, 상상할 순 있었다.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 등이 아직 뇌리에 선명히 박혀 있으니까.
그러니, 그녀의 행복했을 미래를 그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
전화를 끊은 백한길 회장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버튼을 눌렀다.
삑 소리가 바깥에 울리며 곧장 박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른 곁으로 와 주변 온도부터 확인하는 그.
백한길 회장이 그런 그를 훑으며 물었다.
“아직 퇴근 안 했나?”
“곧 가려고 했습니다.”
박 실장의 대답에 그가 픽 하고 웃으며 작게 말했다.
“자넨 가끔 보면 참 날 닮았어.”
“네?”
“아냐, 아냐. 나 차 한잔 마시고 싶은데.”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곧바로 박 실장이 나가고, 백한길 회장은 손가락을 움직여 휠체어의 방향을 틀었다.
어두운 서재 안으로 드리우는 월광(月光).
그가 형형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오늘은 내가 백한길에 더 가까운 날인가 보다.”
작게 중얼거린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백작님께 거짓말을 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