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6
036. 다음 걸음 (3)
“하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식탁에 앉았다.
머리에 까치집이 지어졌는지 대롱거리는 게 느껴졌다.
끔뻑, 끔뻑 눈을 느리게 감고 다시 뜨다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무료 음악 공유 사이트, 사운드 클라우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지각색의 곡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에 그 행렬에 나도 포함되었지.
밤새 편곡하고, 녹음해서 올린 음원.
전문 엔지니어들이 만진 것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들어줄 만한 퀄리티의 음원 다섯 개가 사이트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 아래,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무료가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들려지지 못했을 곡들이었다.
동기가 가볍거나, 혹은 너무 난해한.
편곡 과정을 거치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가 보이는 곡들.
그래서 내 기준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버리긴 아쉬웠던 곡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들어주고 있다. 잘 들었다고 하트까지 눌러주면서 말이지.
“오, 7명.”
방금 하나 더 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승천한다. 이거 진짜 기분 좋네.
“흐하아아암─.”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나왔다. 비척거리며 냉장고로 직행한 아버진 물 한잔을 울대가 뛰쳐나올 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 살 것 같네. 엄마는?”
“아무래도 아빠 몸보신시켜야겠다면서 마트 가셨어요. 오늘 메뉴는 삼계탕이래요.”
“오, 삼계탕 조치~.”
끄덕거리며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던 아버지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날 본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묻는다.
“어제 무슨 작업 했는지 궁금해서 보려 그랬더니 노트북에 비밀번호를 걸어놨더라?”
“헤, 이제 조심해야죠.”
너스레를 떨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창작자가 창작물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도 직무유기야. 아, 한 가지 더. 저장 꼬박꼬박 잘하고.”
“당연하죠.”
다시 허기진 배를 슥슥 문지르며 걸음을 옮기려던 아버지가 다시 멈춰섰다.
“근데, 궁금하긴 하네. 무슨 작업 했어?”
#
한기준은 안방 침대 대신 서재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쳐서 곧바로 사운드 클라우디에 들어가 서호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그리고 올라와 있는 음원들을 차례대로 들었다.
일전에 엔지니어가 했던 말처럼, 건드릴 게 없는 깔끔한 음색.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한다.
헤드셋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사운드에 허, 하고 입을 벌렸다가.
이어지는 선율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서로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협주에 괜스레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습작이라고?”
그가 보기엔 결코 습작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 자신이 습작이라고 만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헛웃음 지었다.
그런 것들이 습작인데, 이게 어떻게 습작인가.
이것만으로 당장 연주곡 앨범 하날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섯 곡 중 한 곡만 이랬어도 지금처럼 어이가 없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다섯 곡 모두 똑같은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서호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본인이 습작이라 했고, 만족스러워하는데 뭐라 하겠냐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라, 입맛을 다시던 그가 문득 좀 전에 들었던 얘길 떠올리며 흠칫 떨었다.
녀석이 아이디를 알려주며 말했다.
여기엔 습작만 올릴 생각이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들. 즉, 녀석의 기준을 통과한 곡들은 따로 빼놨다고.
한기준이 어느새 피곤이 싹 달아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곡들은 대체 어느 정도란 소리야······?
#
사운드 클라우디에 습작들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로 내 하루는 더욱 바빠졌다.
여전히 영감이 떠오르면 오선지에 악보를 그리고, 바이올린 연습도 그대로 하면서, 틈틈이 편곡과 녹음까지 해나갔다.
그리고 꾸준히 곡 하나 이상을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뒤늦은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어느덧 완연한 겨울.
음악은 여전히 즐거웠고, 한 뼘 만큼 자란 내 키처럼 실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머릿속에 들어앉은 고민도 나날이 몸집을 불렸다.
바로, 콩쿠르.
나갈까 말까.
만약, 나가면 어떤 악기로 나가야 할까.
그런 고민들이 계속 이어졌다.
누군가에겐 간단했을 결정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아마도 또 다른 나 때문인 것 같지.
브리너의 기억과 마음은 여전히 콩쿠르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내 속과는 달리 벌써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때였다.
“자,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그도 그럴 게, 오늘은······.
“다들 건강하게 지내. 2학년 됐다고 모른 척하지 말고, 복도에서 보면 인사하자.”
방학식이니까.
종례가 끝나자마자, 마치 계주의 총성이 울린 듯 아이들이 벌떡 일어난다.
그 사이에서 나도 짐을 챙겼다.
오늘치 오선지를 가방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애들과 교실을 나선다.
“야, 우리 이번 방학 땐 자주 좀 만나자. 이제 고2야. 나 학원 하나 더 다닐지도 몰라. 희망이 없다구···.”
양한길의 푸념에 이호익이 이때다 싶어 얘길 꺼내본다.
“그럼 스피타 콘서트 갈래?”
한결같은 질문에 양한길이 웬일로 고갤 주억거렸다.
“가자, 가. 뭐든 좀 하자. 시간 될 때 서호네 회사도 놀러 가고.”
응?
“회사를?”
내가 갸웃거리자, 양한길이 으쓱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교문 앞에서 아버지 뵀었잖아. 너 데리러 오셨을 때. 그때 우리보고 놀러 오라고 하셨어.”
“어, 나도 들었어!”
여자애들까지 증언하자, 이미 애들은 오늘 놀러 가기로 한 것처럼 들끓었다.
“그땐 이연이도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결국, 방학식도 못 왔네.”
“엄청 바쁜 것 같더라···.”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학교 앞 대로변.
겨울바람에 며칠 전부터 가로등에 붙어있던 배너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곳을 올려다보며 숨을 들이쉬었다.
미뤄뒀던 고민이 가득 채워지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가볼까?
#
로비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참가자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이었다.
수고했다며 건넬 꽃다발과 선물들을 들고서 초조한 눈빛으로 입장을 기다린다.
나는 그 틈에 서 있는 윤 교수를 발견하곤 다가갔다. 마찬가지로 나를 본 윤 교수가 피식 웃으며 묻는다.
“웬일이냐, 네가 콩쿠르를 다 보러 오자고 하고?”
“그냥, 갑자기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요. 콩쿠르에 대해 이젠 결정을 해야 하는데, 5년 전에 한번 본 게 전부잖아요.”
엄청 기대하고 갔었지. 연주도 즐겁게 감상했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에 실망했고, 그 기억이 브리너의 음악적 태도와 상충 되며 콩쿠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만들었었다.
이에 윤 교수가 주억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 콩쿠르도 국내에선 꽤 유명하지. 여기선 네가 그때완 다른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티켓을 끊어 입장했다.
공연이 아니다 보니 분위기는 굉장히 엄숙했다. 참가자의 지인들만이 작은 응원을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콩쿠르.
참가자들의 연주가 이어진다. 본선이었기에 심사위원들이 중간에 연주를 끊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더욱 편안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었지만, 난 좀 더 다른 것들을 보려 노력했다. 참가자들에 집중하여 그들은 왜 콩쿠르에 나왔을지 생각해본다.
그때였다.
한 여자아이가 무대 위로 올라선 건.
나는 별생각 없이 그쪽을 바라봤고.
······어?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고개를 앞으로 빼고 눈살을 찌푸려 시력을 돋구어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았다.
‘분명히 그 전 사람이 더 잘했어요. 아닌가요?’
처음 윤 교수와 함께 갔던 콩쿠르. 그곳에서 실망을 안겨줬던 결과와 수상하지 못해 눈물 흘리던 참가자.
그 사람이었다.
내가 놀란 것과는 상관없이, 인사가 끝나자마자 연주는 못갖춘마디로 덜컥 시작되었다.
쇼팽 에튀드 Op.10 No.4
추격.
16분 음표가 쉴 새 없이 두드려진다.
화려한 만큼, 크레센도, 포르테, 스포르찬도 등의 강렬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곡.
듣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윤 교수가 옆에서 작게 감탄했다.
“잘 치는구나.”
“그러네요.”
여전히.
나는 모든 참가자들의 연주가 끝나고, 수상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는 그녀를 보며 입꼬릴 올렸다.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다. 불편하기만 했던 경쟁 속에서 여전히 꿋꿋이 한 걸음씩 내딛어왔을 그녀를.
힘껏 박수를 보내며 생각했다.
음악엔 브리너가 생각하는 고결함만 존재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지금까지 음악에서만큼은 브리너로서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했었던 난,
이번에는 그의 관점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브리너가 아닌, 32살의 회사원이었던.
그리고 다시 17살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나 치열하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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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느라 얼굴이 팅팅 부은 이지아가 양손에 꽃다발을 안고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아트센터를 벗어나려는데, 이지아 앞에 한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
“우승 축하드려요.”
남자아이의 갑작스러운 축하 인사에 이지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꾸벅 고갤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늘 본 연주 중에 가장 와 닿았어요.”
“아흑, 네 감사함니다.”
와 닿았다는 말 때문일까.
다시 한번 울컥한 이지아가 목소릴 떨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남자아이가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곤 어딘가로 사라졌다.
“누구야?”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가 물었고, 이지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으응? ···잘 모르겠어.”
“그래? 오늘 참가자 중에 한 명이었나?”
아, 그랬나? 하고 중얼거린 이지아가 남자아이가 사라진 쪽을 힐끗 보며 울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근데, 되게 감동이다. 저분 얼굴 기억해 둬야겠어. 같은 참가자였으면 조만간 다른 콩쿠르에서 또 마주칠지도 몰라.”
“그냥 잘생겨서 기억해두려는 거 아니고?”
언니가 픽 하고 웃으며 말하자, 이지아가 발끈했다.
“내가 언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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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
윤 교수가 아트센터를 나오며 묻는다.
찬 공기를 잔뜩 들이켜며 덩달아 홀가분해진 난,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재밌었어요.”
“그래?”
반색하며 되묻는 윤 교수에게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한 번 해보려고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
윤 교수가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음을 정한 거냐?”
“네.”
선명한 대답에 윤 교수가 들뜬 얼굴이 되어선 내게 물었다.
“그러면 어떤 악기로 참여할 생각이냐? 솔직히 네 실력이면 둘 중 어느 부문을 지원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만, 개인적으론 피아노가······.”
은근하게 설득을 시작하는 윤 교수를 보며 내가 피식 웃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단 말이죠?”
“그렇긴 한데··· 또 이왕이면 피아노가 좀 더···.”
“그럼 양쪽 다 지원할 수도 있어요?”
“······응?”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는지,
내가 본 이래 가장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윤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