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얼굴 까먹겠다. 으응?”
“좀 봐주세요. 저 이제 초등학생이잖아요.”
나는 투덜거리는 노백찬의 말에 엄살을 부렸다.
시무룩해 보이는 내 얼굴에 노백찬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노백찬이 하는 말만 들으면 내가 무슨 몇 개월 만에 찾아온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저번에 노백찬의 저택에 온 지 고작 열흘밖에 안 지난 것이다.
그 사이, 달이 바뀌어서 어느새 4월이 되긴 했다.
노백찬 저택의 정원에도 조금씩 노랗고 붉은빛의 꽃봉오리가 맺히고 있었다.
“으하하, 학교는 다닐 만하고?”
“청염 초등학교 들어가길 잘한 거 같아요.”
“그러냐?”
자신이 추천해준 학교가 좋다는 말에 노백찬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연수 형이 말한 학교 분위기랑 조금 다른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좋다면 다행이지.”
안 그래도 남연수한테 전화를 해서 왜 이렇게 형한테 들은 것과 다르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청염 초등학교라서 연예인 같은 유명인한테 조금 더 관대한 것 같다나?
관대한 거랑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에 만나면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는 방법을 전수 받아야겠다.
“그래도 자주자주 들르거라. 심심해서 원…….”
“할아버지, 그동안은 저 없이 어떻게 사셨어요?”
만난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노백찬은 정말 손주 재롱이라도 보고 싶은 건지.
나를 자주 부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아이고, 너 없어도 나 아주 바쁜 몸이야!”
“아닌 거 같은데…….”
놀랍게도 노백찬의 저택은 청염 초등학교에서 차 타고 10분 거리였다.
솔직히 입학 후에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일부러 이 학교를 추천해준 것인가 잠깐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하나 있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게 된 뒤로 노백찬의 저택에 간다고 하는 날은 기사를 붙여주셔서, 쉽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기 초에는 이틀에 한 번, 못해도 삼 일에 한 번은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 너무 자주 와서 그런지, 이번에 열흘 만에 찾았더니 거장 감독이 내게 살짝 삐지셨나 보다.
“이제 학교에도 들어갔겠다, 역시 늙은이보다는 친구가 좋은 거냐. 또 그 친구 집에 가서 놀고 그러느라 못 온 거 아니야?”
“할아버지도 제 친구예요.”
노백찬은 농담조로 내게 물었다.
내가 한솔 집에 놀러 갔던 것은 당연히 노백찬도 알고 있었다.
3월에는 툭하면 이 집에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는 했으니 말이다.
“지난 열흘은 연습 때문에 바빴어요. 그래도 솔이네 집에는 재밌는 게 많긴 해요.”
“음악가 집안이라고 했나?”
저번에 왔을 때 내가 그 집에서 본 드럼 세트 이야기를 열심히 했더니, 그렇게 기억하시나 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집 모친께서 예전에 음악을 전공하셨고, 부친도 음악에 관심이 많으시대요. 악기 모으는 건 두 분 모두의 취미시라나.”
“그렇구만. 그럼 이것저것 구경할 게 많을 만하지.”
“네. 재밌어요. 솔이가 설명도 잘해줘요.”
그 집에 가면 박물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쓰는 악기는 극히 한정적이어도, 부모님이 수집벽이 있으신 덕에 안 쓰지만 오래된 악기들도 즐비했던 것이다.
스피커나 턴테이블 같은 건 다양한 종류가 아예 각 잡고 집안 한 켠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건 어머니가 독일에 가셨을 때 구해오신 건데, 다른 거랑 다르게 소리가…….’
말많은 한솔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음악에 대해 배울 것도 많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영화나 연기를 제외하고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을 만나서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것도 다 들어두면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나도 한솔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고 말이다.
한솔은 이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드물었다며 신나 했다.
지금까지는 가족들끼리나 말이 통했지, 또래 아이들과는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단다.
그럴 만도 했다.
주제가 휙휙 바뀌고 자기 할 말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한솔의 길고 장황한 설명을 인내심 있게 들어줬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그 정도 취미를 가질 정도라면, 꽤나 잘 사는 집 자제인가 보구나.”
노백찬의 말에 나는 한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 할아버지. 솔이 아버님이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이라는데, 혹시 아세요? 지금은 은퇴하셨다는데…… 한찬희라고.”
“허허, 한찬희? 그 말 많은 놈 말하는 거냐?”
“오, 잘 아세요?”
“장타를 시원하게 날리던 놈이라 기억한다. 선수로 뛸 시절에도 끼가 많던 놈이었어. 그래, 은퇴하고 그런 취미를 가꾸고 있구먼.”
“그래서 그런가. 솔이도 한번 입을 열면 멈출 줄을 모르거든요.”
“부전자전인 게로구만.”
“네. 은퇴를 하셔서 솔이네 아버지도 만나 뵀는데, 둘이서 말을 시작하면 정말……. 귀가 다 아프더라고요.”
듣다보면 한솔이 왜 락을 좋아하는지 납득이 가는 집안이었다.
그 집 사람들 캐릭터 자체가 락이라는 장르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에는 그 부자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서, 써본 걸 가져왔어요.”
“그래그래, 어디 보자.”
노백찬은 내 말에 얼른 손을 뻗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돋보기를 주섬주섬 찾아다 썼다.
우리 두 사람은 영화나 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극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노백찬과의 대화에 자극을 받아 가볍게 쓰기 시작한 시놉시스를 그에게 종종 보여주고 있었다.
“이래서 항상 새로운 경험이 중요한 법이지.”
“그러네요. 미국에 다녀온 것보다 더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무래도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분야라서 더욱 그런가 봐요.”
떠오른 영감을 토대로 생각나는 걸 빠르게 써내려간 느낌의 러프한 초안이다.
그런데도 노백찬은 꼼꼼하게 오래도록 내 시놉시스를 살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노백찬은 돋보기 안경을 벗어두고 말했다.
“스토리 구조가 아주 제법이야. 읽는 맛이 있구나.”
“그건 항상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매번 그런 걸 어쩌냐. 이놈은…. 칭찬을 해줘도 뭐라 하는구나.”
“요즘 점점 피드백이 줄어들어서 그렇죠. 다른 얘기는 더 없어요?”
나는 웃으면서 노백찬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라, 이건 어떠냐 하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요즘은 말 없는 읽는 시간이 더 길기만 할 뿐 더 뭐라 말이 없는 것이다.
“뭐라고 말을 해주면 바로바로 늘어서 오는데 그럼 어쩌냐. 일단 지금 단계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게다. 여기서 더 깊은 이야기를 했다간 지금 네 고유의 스타일을 해칠 수 있으니, 그 이야긴 천천히 할 생각이다.”
“와, 정말요?”
“그래. 원체 어린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감성을 모두 살려 스토리를 짜는 건 타고났으니……. 그 강점이 점점 드러나는 것 같구나.”
“하하…….”
제가 요즘 어린아이로 다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안에는 서른 먹은 아저씨가 있거든요.
그게 잘 드러나서 장점이라고 하시니… 좋게 작용해서 다행이었다.
“시우야.”
“네?”
그래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거장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나를 지그시 보던 노백찬이 나를 불렀다.
“극본을 제대로 하나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
“제대로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었다.
“할아버지도 참, 저 지금까지 보여드린 거 다 제대로 쓴 거예요. 장난으로 쓴 건 하나도 없어요.”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넘기려고 했다.
맨 처음에 노백찬을 만났을 때도 말했듯이 아직은, 극본을 각 잡고 쓰고자 하는 마음이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내 속내를 안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노백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안다. 아니까 이 소리를 하는 게야. 내 말은, 이런 시놉시스 말고 살을 붙여서 극본을 완성해보라는 이야기다.”
“할아버지…….”
그럼에도 내가 뭐라 대답을 하지 않자, 노백찬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것도 이 늙은이의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걸 좀 보거라.”
개인적인 욕심이라는 말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노백찬이 ‘공연 예술 창작 공모전’ 포스터를 건네주었다.
“단편, 장편 부문 모두 모집하는 연극 공모전인데. 이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모전이다.”
“헤에.”
포스터를 살펴보니, 대한연극협회와 여러 연극 단체가 함께 주최한다고 쓰여 있었다.
극본 마감일은 올해 12월 15일까지.
극본을 제출하고, 입상한 작품은 그 작품으로 극을 올릴 수 있는 특혜가 있는 공모전이었다.
공연 예술 공모전이라니, 당장 참가할 건 아니어도 관심이 갈만한 이벤트는 맞다.
과연 어떤 작품이 입상했을까?
김상철이나 강용휘도 이 공모전에 관심이 있으려나?
“작년에 대상 받은 작품을 보여주랴?”
내가 흥미를 보이는 것 같자, 노백찬이 미끼를 던졌다.
나는 그게 미끼인 줄은 알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옜다. 작년에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오.”
어라?
대상은 극을 올렸다는데, 별로 들어보지 못한 제목이었다.
이 정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면 대학로에서도 큰 관심을 끌 만하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극본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
“이게, 뭐야…….”
나는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극본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인상까지 찌푸렸다.
관심을 가지고 눈을 빛내던 것도 잠시, 극본의 내용은 점차 내 흥미를 떨어뜨리는 수준이었다.
“원래 수준이 이렇게 낮은가요?”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노백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도 노백찬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다른 극본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건 대상은 못 받고 장려상에 그친 작품이다. 내가 당시에 괜찮다고 생각한 거니 한번 읽어 보거라.”
“네.”
나는 노백찬이 새롭게 넘겨준 극본을 팔랑팔랑 넘겨서 읽어보았다.
재밌다.
이게 훨씬 재밌었다.
“이게 훨씬 좋은데요? 왜 이 작품을 제치고 저 작품이 대상을 받은 거죠?”
“그게 이 공모전의 문제지. 오래되고 규모가 커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속이 썩어들어갔다. 실력으로만 수상자를 가리는 게 아니라 인맥이나 빽을 사용해 수상자를 가리고 있지.”
“말도 안 돼.”
“속상한 일이지.”
경악 어린 내 말에 노백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노백찬은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런 행태가 몇 년이나 이어져 왔노라고.
암암리에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좋은 기회임이 분명한 대형 공모전임에도 좋은 작가들이 참여를 안 하고 있단다.
“이런 식이라면, 무명 배우, 작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이 공모전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음, 정말 큰일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말을 꺼내 보는 게다. 나야 시우 네가 쓰는 완전한 극본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만, 네가 이 공모전에 참가하면 이 판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제야 노백찬이 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그게 정말 가능할까?
“제가 참가한다고 그게 될까요?”
“그럼. 네 영향력으로 가능케 하는 거지. 한시우가 참가하는 것만으로 관심이 커질 거고, 관심이 몰리면 위에서도 바깥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되거든.”
“오호, 오호.”
내가 제법 긍정적으로 호응하자, 노백찬이 빙그레 웃으면서 덧붙였다.
“시우 네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하는, 말 그대로 ‘개인적인’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