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엄연한 전문적인 직업.
당연히 일반 배우와는 다르다.
직접 극작을 했다고 해도 이미 이 작업은 성우들의 영역인 것을 나도 잘 안다.
김철수의 말이 뱉어진 뒤 녹음실의 분위기는 단박에 가라앉았다.
삼촌이 조금 굳은 얼굴로 나서려 했지만, 내가 제지해서 그 자리에 멈췄다.
의아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삼촌에 나는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매니저인 삼촌이 나서봤자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하, 하하……. 야야, 철수 너도 참. 왜 그러냐. 아이역이라 아이가 하는 게 잘 어울리지 않겠냐.”
“뭐, 그래요 아직 천지 분간 못 하는 어린애니까 하겠다고 나설 수 있죠. 저희 성우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어린애 역할인데요. 그렇죠?”
김철수는 나서서 만류하는 다른 성우의 말에도 ‘그래, 애니까 넘어가는지’, 라는 식이었다.
웃으며 속 좋은 척을 애써 하는데, 분명 좋은 눈치는 아니었다.
“으음…….”
“자자, 분위기 왜 이래. 철수야. 시우 군 재능 얕봐서는 안 된다. 강기동 캐릭터를 탄생시킨 사람인데, 두고 봐야지. 왜 해보지도 않고 겁을 주고 그러냐.”
결국 박재준까지 나서서 김철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자 김철수는 알았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 올리고서 나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겁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미안해, 시우 군. 우리 잘해보자.”
하지만 그의 웃는 얼굴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보다 어린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 것이다.
거기에 굴할 내가 아니지.
“네. 끝내주는 강기동을 보여드릴게요.”
씨익 웃으면서 받아치는 내 말에 녹음실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삼촌은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나를 향한 수식어에 ‘아이’?
내가 지금까지 애늙은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애 같다, 는 말은 못 들어봤단 말이지.
다시는 그 입에서 애들이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줄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이 녹음실을 나가기 전까지.
그 인식을 바꿔줄 수밖에.
***
“자아, 그럼. 입도 좀 풀 겸 사람 많이 나오는 장면 먼저 녹음해보고, 강기동과 나카모토의 첫 만남 씬으로 가보겠습니다.”
엔지니어의 지시대로 나를 비롯한 모든 성우들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전체적인 흐름을 알기 위해 모두가 다 함께 녹음하기로 한 것이다.
이다음에 내가 맡은 강기동이나 나카모토 같이 긴 대사가 많은 역할은 혼자서 녹음을 하게 될 것이다.
“좋아요.”
“마이크 오케이.”
성우들은 능숙하게 자신들의 일터로 들어와 장비를 하나하나 점검해나갔다.
다섯 명이 모두 오케이 사인을 엔지니어에게 보냈다.
엔지니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계를 몇 번 매만지더니 말했다.
“씬 34번 총독부 앞 군중씬 장면 가겠습니다.”
“네-”
34번 장면에는 강기동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엔지니어가 말한 대로 강기동과 나카모토의 첫 만남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벌써 몇 달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의 모든 장면, 모든 대사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물론 나우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화를 하면서 각색이 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첫 만남 장면은 내가 쓴 대사가 너무 좋다며 거의 건들지 않은 부분이었다.
이 극은 내가 직접 쓴 극본이기도 하거니와, 직접 주연 배우를 맡은 작품이기에 당연히 모든 대사가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당연했다.
나는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며 그 장면을 복기했다.
“레디- 고!”
엔지니어의 신호에 맞춰, 군중씬의 녹음이 시작되었다.
“아니, 세상에- 저것 좀 봐. 피투성이가 되었어.”
“저거 다 조선인 맞지? 간밤에 순사들에게 단단히 쥐어 터진 모양이야.”
큐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각자의 마이크 앞에 선 성우들이 능숙하게 대사를 뱉어나갔다.
완벽한 호흡이었다.
오디오가 하나도 물리지 않으면서 군중씬의 어수선함이 제대로 느껴졌다.
성우들은 자신이 들어가야 하는 최적의 타이밍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화해냈다.
“이, 이건 독립운동하는 장씨 아니야?”
“세상에-!”
“거기! 너무 큰 소리로 수런거리지 말라고. 언제 일본 순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단 말일세!”
“이, 일단 이 사람들을 부축해서 곡식 창고에라도 데리고 가죠.”
“그래. 거기 꼬맹이들! 가서 의원님을 모셔오거라. 어서!”
첫 만남 장면 복기를 마친 나 역시 애니메이션에 맞춰 새로 받은 대본의 34번 군중씬을 펼쳐 들고 성우들의 연기에 맞춰 대사를 따라내려 갔다.
대본에는 정말 대사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들 타이밍이 완벽하다.
나는 대본 한번, 성우들이 대본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대사를 하는 것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들은 침착하게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대사를 소화해나갔다.
아마 몇 번이고 함께 합을 맞추고 연습을 했기에 가능한 모습이겠지.
저 모습을 보면 우리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대본 어디에도 어떤 식으로 언제 대사를 뱉고 연기를 하라고 쓰여있지 않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수없이 많은 노력 끝에 자신이 언제 대사를 뱉고 움직여야 하는지 안다.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겠지.
나는 성우들이 일하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도록 그들의 연기에 집중했다.
“오케이! 역시 너무 좋은데요? 연습이라 쓰지는 못하겠지만. 흐.”
실실 웃으며 장난스레 말하는 엔지니어의 사인에, 성우들이 마이크 앞에서 물러서며 궁시렁거렸다.
“와… 진짜 너무하네. 힘 빠지게.”
“빈말이라도 이거 그냥 써준다고 하지.”
“제대로 녹음하면 지금보다 더 좋게 뽑으실 거면서, 엄살들 그만 떠시죠?”
엔지니어와 배우들, 그리고 박재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강기동과 나카모토의 첫 만남 장면을 찾아 대본을 펼쳤다.
앞에서 유리벽 너머 삼촌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거참,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그럼 이제 본 녹음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 장면은 씬 1 강기동과 나카모토의 첫 만남입니다. 두 분 괜찮나요?”
“네!”
“네.”
엔지니어의 말에 철이 역을 맡은 성우, 이번에 나카모토를 맡게 된 성우와 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내가 마이크에 가깝게 붙어 선 뒤 대본을 내려놓자, 뒤에서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긴장한 거 같은데.”
김철수의 음성이었다.
나는 그의 말은 무시하고 가볍게 눈을 즈려감았다.
내가 성우들의 타이밍에 맞을 수 있도록 고안한 방법이었다.
그걸 보고 뒤에서 무언가 속닥이는 기척이 들렸다.
아마 내가 겁을 먹어 눈을 찔끔 감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냥 이 행동 자체에 대한 비웃음일지도 몰랐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일 뿐이다.
“아, 아씨…….”
뚝방길에 넘어진 나카모토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이제 내가 나설 타이밍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첫 대사를 내뱉었다.
“어디서 자빠져서 그 꼬라지로 거기 앉아 있냐?”
“뭐, 뭐……?”
나카모토 역을 하는 성우도 입으로는 대사를 받아치지만 눈이 조금 커진 상태였다.
뒤에 있던 김철수와 다른 성우들도 약간 놀란 듯 한시우를 바라보았다.
***
강기동 역할 성우를 내가 맡기로 한 후, 나는 아카데미도 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예 다른 직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조금이나마 다른 성우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한 준비였다.
더빙 작업 준비하는 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었다.
내가 쓴 극에, 연극까지 올렸던 거라 해석에 어려움이 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연극 때와는 다른 애니메이션 특유의 발음이나 묘하게 다른 톤과 과장된 텐션 같은 부분이 어려웠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때는 전혀 고려해보지 못한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했고 말이다.
또, 원래 현장과 환경이 너무 달랐다.
무대에는 배경도 있고, 의상과 분장처럼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
그에 비해 성우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 선택한 방법이 눈을 감고 하는 것이었다.
마치 내 머릿속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듯이 대사를 내뱉어 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눈을 감고 먼저 박재준이 미리 보여줬던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것을 상상했다.
어두운 조명 덕에 앞에 앉아 있는 관객이 차단되는 무대와는 다르다.
스튜디오 안에서 하는 더빙 작업에는 내 시야를 현혹시키는 다른 모습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매번 그 광경을 보면서 연기를 하는 성우들에게는 괜찮겠지만, 나는 아니다.
익숙하지 않으니 방해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상상을 하는 것이 시야에 스튜디오가 들어오는 것보다 몰입하는 데 훨씬 낫다.
그래서 오늘도 시작할 때 눈을 감았다.
“내 이름은 강기동이다. 강기동.”
첫 번째 장면 더빙이 끝나갈 무렵, 내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막 대사를 뱉었다.
“쇼타. 쇼타라고 부를게.”
첫 번째 녹음이 끝나고, 후 한숨을 돌리며 헤드셋을 벗었다.
“와, 처음 맞아?!”
“대박인데…! 너무 능숙하잖아!”
가장 먼저 들린 건 같이 녹음실에 들어와 있던 성우들의 칭찬 소리와 박수 소리였다.
다들 정말 대단하다며 나에게 한 마디씩 던져주었다.
나는 씨익 웃어주며 성우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다, 김철수를 보았다.
“허어,”
그러자 헛웃음을 짓고 있던 김철수가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야…… 대단한데?”
아까와는 달리 진심이 담긴 말투였다.
“시우 군. 상상 이상이다. 훌륭해.”
“첫 녹음은 리허설로 여기고 버릴 생각을 했는데, 이거 쓸 수도 있겠는데요? 너무 잘했어요.”
뒤이어 녹음실 바깥에 앉아 있는 박재준과 엔지니어도 마이크를 통해 칭찬을 해주었다.
이 녹음을 그대로 쓴다는 말에 다른 성우들마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이야! 장하다!”
“지금 배우 한시우한테 막 손대고 왜 그러냐!”
성우들은 그새 내게 친밀감을 느낀 건지 편하게 대해주었다.
나도 그들과 어울려 웃고 있는데 김철수가 내게 다가왔다.
“시우 군.”
그가 내 이름을 부르자 다른 성우들이 눈치를 보더니 길을 터주었다.
“솔직히…… 내가 성우계에서는 선배니 툭 까놓고 말할게.”
어쭈, 말도 스리슬쩍 놓았다.
하지만 뭐, 선배는 선배니까.
나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한시우, 라는 이름만 듣고 거부감이 생겼다. 한시우는 날고뛴다는 배우들 사이에서 최고의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있고. 극본상까지 휩쓴 영광을 얻으니 성우를 쉽게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호흡이나 톤,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닌 거 같네.”
“그래요? 연습 열심히 했어요.”
내 말에 성우들이 귀엽다며 웃었다.
“하하, 나이가 드니까 자격지심만 심해지네. 아까는 미안했다.”
그러면서 김철수는 내게 악수를 권했다.
보니까 속이 좁은 사람 같기는 한데,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걸 보니 김철수가 싫지는 않다.
“괜찮아요.”
나는 웃으며 김철수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