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여기가 메인 극장이에요. 생각보다 그리 넓지는 않죠?”
“그러네요.”
제시카는 생각보다 아담한 극장 내부의 모습에 놀란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무대와 객석을 돌아보았다.
분명,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것은 글로브 극장의 전통을 재현하려는 노력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 그건 글로브 극장을 재건할 당시 내세웠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도 있어요.”
“무슨 신념이죠?”
“화재로 소실된 글로브 극장을 재건할 때, 본래 극장을 재현하기 위해 현대 건축물에 당연히 쓰이는 철제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객석도 다 나무죠. 거기다 마이크와 스피커 같은 사운드 시스템도 없어요.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는 건 5월에서 10월 사이에 올리는 공연에 한합니다. 다음주 즈음에는 시스템이 도로 설치될 거예요.”
“와우, 셰익스피어를 기리는 또 다른 방법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면서 당시의 전통이 살아있는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내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시대를 잊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조이수의 손을 잡고 작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말았다.
“이런, 시우야. 그렇게 감동적이야?”
“맞아요. 아직도 400년 전처럼 공연을 하고 있다니. 뭔가 멋져서요.”
아프다며 엄살을 부린 조이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제시카가 살짝 몸을 낮추며 물었다.
“시우, 여기가 그렇게 와보고 싶었어?”
“네, 꼭 와보고 싶었어요.”
다시,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도 그럴 게 무려 400년을 지나 돌아온 글로브 극장이었다.
셰익스피어, 그리고 리처드 버비지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농담을, 때로는 거친 토론을 주고받던 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했다.
그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장소에 온 것만으로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어머니와 이곳에 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시우로 다시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이곳에 대한 미련은 이제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그리웠나 보다.
어쩌면… 그곳도 남아 있을까?
“매니저님. 원래 이 극장이 있던 위치는 어디예요?”
“꼬마 배우님의 호기심은 제대로 풀어드려야겠죠. 잠시만요.”
내 질문에 매니저는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가져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여기가 원래 글로브 극장이 있던 장소였어요. 그런데 화재로 극장이 통째로 사라지고 난 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거죠. 그다음 이 주변 전체가 웨스트엔드로 불리게 된 거고요.”
“호오, 호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눈짐작으로 내가 간절히 찾던 그곳은 어디일까 지도를 훑었다.
아, 다행이다.
바뀐 위치의 글로브 극장하고 멀지 않았다.
마음이 붕 뜨니 저절로 생각나는 단 하나의 장소.
내가 직접 몸담았던,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오스카’ 극단.
지금까지는 마음이 어지러울까 일부러 생각을 멀리했던 그곳.
“구경시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 가봐야겠네요.”
“저야말로, 제시카의 친필 사인이라니……. 가보로 간직할 거예요. 저, 혹시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극장을 벗어나려 했다.
글로브 극장은 이 시기에는 저녁 공연을 올리지 않기에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다.
오스카 극단의 위치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들뜬 매니저를 필두로, 멀리서 지켜보던 직원들도 다들 몰려들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이 제시카와 사진을 찍게 되고 조이수가 카메라를 든 사이, 나는 슬쩍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 후딱 오스카 극장의 현재 모습을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극장은 멀지 않았다.
바로 저 골목 끄트머리에 위치할 것이다.
원래는 이 골목을 나가서 있는 거리가 메인 거리였는데 말이다.
확 바뀌어버린 런던의 모습에 괜스레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런던의 날씨에 익숙한 나는 우산도 없이 그냥 비를 맞으며 잰걸음을 옮겼다.
점차 골목 끝에 다다르고,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타닥.
얼른 골목 끝에서 코너를 돌았다.
이제 여기에 오스카 극장의 출입구가……!
이런.
간판을 확인한 나는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기분에 약간 몸을 비틀거려야 했다.
분명, 여기가 맞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웬 촌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는 낡은 간판이 있을 뿐이었다.
건물의 형태를 보아하니 분명 여기가 맞았다.
뒤를 둘러보아도 이 거리의 이 건물이 분명했고.
그런데 오스카 극장이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딜 갔는지 프리덤이라고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말도 안 돼…….”
나는 좌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하고 말았다.
오스카 극단은 다른 극단이나 극장들처럼 역사가 깊은 곳은 아니었다.
400년이나 지났으니 없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 생의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던, 평생이나 다름없던 3년.
그 세월을 함께한 극단.
이제 나는 더 이상 노아 바텐베르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후손도 아니었다.
머나먼 동양의 한시우라는 아이일 뿐이었지만, 내 과거의 흔적마저 더듬어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씁쓸함, 아니 그 이상을 넘어 먹먹함이 밀려들었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확인하지 말았어야 했나.
나의 평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속절없이 치미는 후회에 자책하고 있을 때, 극장의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리덤 극장 안에서 관객들은 극장을 나오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아, 너무 좋았어. 훌쩍, 나 휴지 좀.”
“다시 봐도 좋더라. 네가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야.”
“이렇게 슬프고 감동적이라고 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야?”
“포스터만 봐도 느껴지지 않았어?”
프리덤 극장의 공연이 방금 끝이 난 모양이었다.
우르르 밀려 나오는 관객들은 하나같이 휴지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모두가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말하며 삼삼오오 뒤풀이를 위해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공연을 관람하고 극장을 떠나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 역시 지금 이 관객들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이 장소에서 관객들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과거와 지금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촌스럽다고만 생각한 이라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다른 가게가 아니라 장소 그대로 극장을 하고 있네.
그것으로 되었다.
저 네이밍 센스는 좀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한번 털어내고 다시 글로브 극장이 있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두 사람이 놀랐을 것 같았다.
“시우! 어디 갔었어. 놀랐잖아.”
아니나 다를까, 다급히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는 조이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찾았어? 오, 시우. 네가 없어진 줄 알았어.”
제시카 역시 황급히 달려와 내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과거 기억에 사로잡혀 잠시 일행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헤헤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미안해요. 거리가 너무 넓어서 구경한다는데……. 그만 길을 잃고 말았어요.”
“아냐, 그래도 금방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도리어 내가 더 미안한걸. 다른 데 신경이 뺏겼으니.”
“괜찮아요.”
사실 내가 몰래 빠져나간 것이니 말이다.
나는 속으로 제시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더 했다.
아무리 평소에 그녀가 나를 어린 애 취급을 안 한다지만, 갑자기 내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녀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수명이 십 년은 짧아진 것 같네. 이제 돌아갈까?”
“네!”
조이수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주차해놓은 곳으로 향하며 제시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시우 네가 온 방향은 메인스트릿과 떨어진 곳인데……. 그 짧은 다리로 어떻게 저기까지 다녀온 거야?”
“제가 또래에 비해 다리가 긴 편이잖아요.”
“정말 심장이 쿵 떨어졌다고. 나도 시선을 떼지 않을 테지만, 제발 말없이 사라지지 말아줘 시우.”
“알았어요. 제시카.”
나는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올 때와는 다르게 제시카와 한 우산을 쓰면서 차로 향하고 있으려니 제시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구경도 다 했겠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좋아요.”
연습이 끝난 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제시카의 말이 상당히 반가웠다.
“어디로 갈 거죠, 제시카?”
운전을 도맡을 조이수가 행선지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제시카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외쳤다.
“우리 RUN 공연을 올릴 극장 근처에 멋진 레스토랑이 있어, 거기로 가자고.”
“아아, 알겠어요.”
제시카의 말에 조이수는 바로 생각난 곳이 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궁금한데, 왜 어딘지는 말 안 해주는 거지?
“큼캉산도 시쿠경. 맞나? 시우. 이거 맞아? 한국 속담 말이야.”
어색한 한국어로 말하는 제시카의 모습에 나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또 어디서 들은 속담인지.
“맞아요. 그럼 밥 먹고 우리 극장에도 가보나요?”
“물론이지. 애초에 우리 배우님이 설 무대를 보기 위해 그쪽으로 가는 거였으니까.”
“하하, 서둘러 가야겠는데요.”
우리 세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며 제시카가 말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맛있는 게 있다더니, 레스토랑의 정체는 한식당이었다.
“영국에 맛있는 음식은 외국 음식이지.”
제시카는 당당하게 말하며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간만에 먹는 삼겹살로 배를 아주 든든하게 채웠다.
***
템스강이 졸졸 흐르는 테라스 자리.
영국에 온 지도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새 11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심하게 춥지는 않았지만, 강변에 앉아 있기에는 쌀쌀한 터라 어머니는 오늘 나를 중무장 시키셨다.
너무 옷을 껴입어 뻣뻣한 팔을 뻗어 겨우 차를 홀짝였다.
“하하, 시우야. 불편하지 않니?”
“우웅, 괜찮아요.”
오늘 우리 식구들은 조이수와 함께 런던 관광을 나왔다.
본공연이 벌써 이틀 후로 다가온 시점.
제시카는 쉴 틈 없이 연습하느라 달려온 단원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본공연 모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삼촌과 어머니는 내가 제대로 쉰 적이 없어 오늘을 아주 기대하고 계셨다.
그걸 안 조이수가 가이드를 자처한 것이다.
우리 가족보다 영국에 오래 머무른 조이수가 이곳 지리와 좋은 가게들을 꿰고 있으니 우리는 그를 아주 환영했다.
“이수씨, 저희 시우가… 음, 관객들에게 차별을 받거나 하지는 않겠죠? 아무래도 혼자만 동양인이다 보니 연습에 갈때마다 걱정이 되네요.”
어머니는 곧 있을 공연이 이래저래 걱정되시는 모양이었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이제 곧 많은 영국인들 앞에 주연으로 서게 된다.
나이도 어리고 무대도 큰 건 둘째치고 무엇보다 동양인이라고 비하 받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달 간 이곳에 지내며 어머니도 알게 모르게 동양인 비하를 겪으셨단다.
그걸 어린 아들이 겪을까 두려우신 모양이었다.
“……하하, 하. 괜찮습니다. 어머님. 시우가 워낙 잘해서요.”
나는 조이수가 잠시 멈칫한 이유를 알고 있기에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
맨 처음 연습실에 인사 간 날부터 고든에게 폭언을 들었으니 말이다.
“흐음? 그래요?”
큰일이다.
조이수의 답변 속 찰나의 망설임을 어머니가 알아차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