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여기야.”
“……여기?”
남연수는 내가 가리킨 가게를 보고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대로변에 있던 크고 깔끔한 가게를 보다가 허름하고 작은 가게를 들어가자고 하니 그런가 보다.
이거, 뭘 모르네.
사실 맛집은 이런 곳에 있는 게 맛집인 건데.
물론, 이 이야기는 나를 여기 데려온 영국의 동료 배우가 해준 소리다.
“들어가 보면 알아. 여기는 다른 데랑 다르게 생선 살 두께가 이따만 하거든.”
“으응.”
이것도 물론 그 동료 배우가 해준 말이다.
들어가서 먹어보고 맞다는 듯이 쌍엄지를 치켜들게 만든 생선 살에 놀라 단번에 가게 위치를 외우고 말았을 정도였다.
나는 남연수에게도 그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그를 데리고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둘이 자리를 잡고 앉자, 따라 들어온 김산호가 카메라와 우리를 가리키며 식당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식당 주인은 쿨하게 상관없다고 해주었고, 우리는 메뉴판을 받을 수 있었다.
전생에는 고기, 그저 고기만 먹었다.
내륙에 영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신선한 생선은 쉽게 접하기 힘든 식재료였다.
그럼에도 공작가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는 자주 생선이 식탁에 오른 것이리라.
과거에 귀하다고 생각하며 생선을 먹은 덕분인가.
한시우로 살아가는 요즘에도 나는 해산물이나 생선을 먹으면 고기를 먹을 때보다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랑한다, 고기.
“사람이 없어서 우리끼리 조용히 얘기하기에도 좋은 곳이야.”
“응, 그건 맞는 거 같아. 히히, 시우가 골라준 데는 사실 다 좋아.”
외관만 보고 시무룩해 하던 남연수도 제법 기분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막상 이 작은 가게가 들어와 보면 아늑하니, 이 가게만의 매력이 있거든.
“하하, 연수는 가만 보면 그냥 시우의 열성팬 같을 때가 있어. 그림이 딱… 보니까 그래.”
“그렇죠.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둘이 너무 귀여워요.”
스태프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메뉴판을 펼치고 남연수에게 먼저 고르라고 했다.
“음, 음! 나는 역시 이걸로 할래.”
“그래. 이거 양이 상당하니까 먹어보고 더 시키자.”
“응!”
환하게 웃는 남연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영국에 온 뒤로 남연수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 것 같았다.
가짜 웃음을 짓는 걸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형이 한번 주문해볼래?”
“좋아! 나 많이 늘었다고.”
어라, 자신감도 꽤 채워진 거 같고 말이지.
내 말에 남연수는 손을 번쩍 들고 다가온 식당 주인에게 더듬거리며 주문을 했다.
중간중간에 이게 맞냐고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 시우야. 음료는 뭘로 할래.”
메뉴 주문의 마지막 난관.
손님도 우리밖에 없어서 조급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남연수가 내게 다급히 물었다.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맥주 기계로 향했다.
“……콜라로 하자.”
오늘따라 Coke를 발음하는 혀끝이 유독 썼다.
***
“초코바 튀김 두 개요.”
우리는 식당에서 배부르게 피쉬앤칩스를 먹고 나와 거리로 향했다.
다음에는 뭘 할 거냐는 남연수의 질문에 우선 디저트를 먹자고 했다.
나도 이번에 영국에 와서 처음 들은 음식이지만, 이게 영국인들 사이에서 아주 핫하다고 들었다.
처음에 남연수는 그게 뭐냐고 인상을 썼지만, 내가 정말 맛있다고 여러 번 추천하자 마지못해 먹어보자고 했다.
길거리에 띄엄띄엄 있는 노점상 중 한 곳에 다가가 초코바 튀김을 주문했다.
“네네, 어……? 혹시 RUN 주연 배우 아니에요?”
“하하, 네. 맞아요.”
튀김을 하려던 주인이 내 얼굴을 보더니 펄쩍 뛰었다.
촬영 중이라 얼굴을 가릴 수가 없는데… 오늘따라 알아보는 이가 많았다.
사실 방금 전 식당 주인도 음식을 서빙하면서 내게 조심스럽게 RUN의 조니 배우냐고 물었던 것이다.
결국 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내 사진이 실린 모든 신문과 포스터에 사인을 해줘야 했다.
아, 대신 주인이 팁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이 사인을 가진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며.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오, 세상에. 맙소사. 초코바 튀김 그냥 드릴 테니 사인해주고 가요.”
“아뇨, 살게요. 그러지 마세요.”
값을 안 받는다는 주인의 말에 내가 놀라서 손을 저었다.
그러자 주인이 내 손을 잡더니 사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건 제 선물입니다. RUN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날 제 와이프가 제게 울면서 예매해줘서 고맙다고 했거든요. 제발 받아주세요. 대신 사인.”
“으음, 그럼. 네. 그럴게요.”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을 줄이야.
나는 그의 간절한 음성에 결국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확답을 들은 주인은 신이 나서 튀김을 튀기기 시작했다.
“뒤에는 스태프들인가요? 저분들 것도 제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 카메라 같은데 맞나요?”
초코바 튀김 주인은 내게 정말 흥미가 많은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 한국 방송 촬영 중이거든요.”
“맙소사.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가 보군요?”
주인이 정신없이 영어를 뱉어내는 탓에 멍하게 있던 남연수가 마지막 질문을 알아듣고 끼어들었다.
“네! 시우는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아요!”
“역시. 그럴 만도 하죠.”
크게 외치며 고개를 주억이는 남연수.
적어도 이 골목에서 나를 가장 좋아하는 팬은 남연수인 것 같았다.
스태프들은 남연수의 찐팬 모먼트가 또 나왔다며 재밌어했다.
그 사이, 초콜릿바 튀김이 모두에게 하나씩 쥐어졌다.
“맛있게 드세요.”
주인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남연수는 한 입 먹으려다가 너무 뜨거워서 아 뜨거! 하고 혀를 내밀었고, 나는 초코바 튀김을 받은 대신 주인장이 가지고 있는 티켓과 기타 모든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초코바를 열 개 넘게 줬는데, 이 정도는 서비스해줄 수 있었다.
“바이- 좋은 여행 되세요!”
유쾌한 주인장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초코바 튀김은…… 나름 맛있었다. 새로웠고.
하지만 그냥 초코바를 먹는 게 더 맛있었다.
***
우리는 사우스워크 스트리트를 따라 영국 시내를 구경했다.
거대한 워털루역을 지나 목적지인 런던 아이에 도착했다.
“우와아- 얼른 타고 싶어!”
남연수는 어둑해진 하늘에 붉게 빛나는 거대한 관람차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스태프까지 열 명이 넘는 우리는 한 관람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헉,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거 아냐?”
그런데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이전 생에는 몰랐는데, 나는 높은 곳에 취약하다.
이번에 비행기를 타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관람차의 출입문이 닫히고 흔들- 하늘로 관람차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나는 그만 겁이 나 손잡이를 꼬옥 잡았다.
내 호들갑에 남연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생각보다 느리지 않아?”
“……그래? 아, 아닌 거 같은데 땅이 너무 빨리 멀어지잖아.”
내가 실눈을 뜨고서 땅을 가리켰다.
오, 맙소사.
그만 밑을 바라보고 말았다.
친절했던 런던 아이의 직원들이 벌써 점점 작게 보였다.
가만히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연수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시우 너. 높은 곳에 약하구나?”
“…아니? 누가 그래. 그거 오해야.”
“으음, 아닌 거 같은데?”
남연수는 얼른 손잡이를 떼고 전망이 잘 보이는 캡슐 모양의 관람차 앞쪽으로 와보라고 했다.
“크흠, 나는 조금 이따 갈게.”
“언제? 우리 내릴 때?”
저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를 약 올리는 남연수의 모습에 심호흡을 깊게 했다.
내가 기필코 가고 만다.
두고 봐라.
겨우겨우 내가 손잡이를 옮겨 잡으며 캡슐 앞부분에 도달한 것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탄 관람차가 런던 아이의 제일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머니, 아들은 이렇게 죽는 건가 봅니다.
내가 희게 질린 얼굴로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자, 남연수가 내 팔을 툭툭 치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시우야, 저기 봐. 밤에 보니까 런던이 훨씬 예쁘다. 그치?”
“……어. 그러네.”
이대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하긴 했지만, 가늘게 뜬 시야로 보이는 런던의 야경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템스강과 강을 둘러싼 건물들이 내뿜고 있는 환한 불빛들.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런 장관이 또 없었다.
내가 알던 런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영국에서 머무르며 어느새 이 모습이 나에게 더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과거 30년 동안 봐왔던 17세기 영국보다 말이다.
고작 한 달 머문 이 도시가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니 기분이 묘하기만 했다.
“시우야, 나한테는 이번 여행의 모든 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아.”
“어?”
“그냥. 이것도 촬영인데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거든.”
“…….”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련하게 말하는 남연수의 옆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얘는 어째 여덟 살밖에 안 된 애가 이런 우수에 찬 눈빛을 다 한다지.
“하하, 시우 너랑 같이 와서 그런가?”
“그럼. 내일도, 내일모레도 선물 줄게!”
“와, 정말?”
“나만 믿으라고 영국은 내 손바닥 안이야.”
“히히, 한 달 살고 영국 마스터했어?”
한 달은 아니고 평생 정도?
나는 환하게 웃는 남연수를 보며 며칠간 산타 노릇을 자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그 뒤로 남연수와 다니는 자유 여행은 정말 꿈만 같았다.
해야 하는 일도 없고, 김산호는 우리가 뭘 한다고 하면 다 오케이였다.
“이거 예능 맞죠?”
내가 이 말을 너무 자주 물어봐서, 만날 때마다 김산호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어디를 이동했을 때마다 선수를 치는 것이다.
“이거 예능 맞습니다- 두 사람 자유여행 3일차 촬영 시작합니다.”
김산호가 슬레이트 대신 촬영 시작을 선포하며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며칠 전 우리가 직접 골라놨던 극장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프리덤 극장의 낮 공연을 예매했다는 말에 우리는 영국의 중식당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웨스트엔드로 향했다.
“딤섬 진짜 맛있었어…….”
남연수는 영국 음식 중에 오늘 먹은 중식당이 제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웨스트엔드에 도착해서 내릴 때까지 딤섬 타령이었다.
이것 봐.
결국 외국 음식 찾게 된다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며 웨스트엔드로 내려섰다.
“우와, 저기 너무 멋있다아.”
프리덤 극장으로 향하는 길에 남연수가 자신이 가고 싶었던 대극장들을 힐끔거렸지만,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남연수의 마음은 알지만, 나는 오스카 극장 자리에 들어선 그 극장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여기야.”
“와……. 여기도 멋진데?”
막상 극장 앞에 도착하니, 남연수는 언제 아쉬워했다는 듯 프리덤 극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극장의 문을 밀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