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42)
어둑원숭이를 이용하는 것은 이곳에 온 뒤 즉석에서 짠 계획이었다. 오기 전까지는 여기에 어둑원숭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아르센의 본래 계획은, 지금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식이었다.
우선 굴착 유물 등 몇 가지 유물을 이용, 미리 땅을 무너트릴 수 있도록 함정을 만든 뒤 적이 공격하려는 순간 있는 힘껏 발을 굴러 구멍 함정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미리 수십 개의 날붙이, 평상시에 가지고 다니는 예비용 무기를 꽂아 놓는다.
이 정도만 해도, 튼튼한 갑옷을 입은 아르센이나 전투 인형들이나 멀쩡하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치명상을 입거나 죽을 것이다.
혹시 몇 명이 독창적인 방법으로 살아남더라도 난관은 끝나지 않는다.
위쪽에서 엘로이즈가 화염 주문을 들이부을 테니.
여기에서까지 살아남는 이는 정말 운이 좋아야 한두 명 정도일 것이고,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 작전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는 간단한 작전만으로도 큰 피해 없이 적들을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이 작전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상대를 생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하지만 운 좋게 어둑원숭이를 손에 넣은 덕분에, 이보다 조금 덜 강경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센으로서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상대를 생포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마룬의 별동대나 다른 마법사들에게 있어 저들은 수십 년을 함께한 동료였다.
어디까지나 외부인인 아르센이 전투도 아니고, 함정에 빠트린 뒤 일방적으로 몰살시키는 것은 큰 거부감을 줄 터.
별부르미와 아예 결별할 것이라면 모를까, 그들이 쌓아온 지식과 힘은 포기하기 아까운 것이었다.
“으아악!”
“이게 뭐야!?”
새카만 어둠이 공동 안쪽을 가득 채우자, 전투 인형을 조종하던 별부르미 쪽 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마력광 덕에 대낮처럼 밝던 광장이건만, 순식간에 주위가 그믐달이 뜬 밤처럼 새카맣게 물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혼란에 빠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침착하게 대책을 강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리더인 우만 장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모두 불을 켜라! 마법으로!”
과연, 마법사들이 모인 집단답게 그들은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여기저기서 빛이 떠올랐으나, 유감스럽게도 그 빛은 그들의 주변 몇 미터를 밝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럿이 합쳐 조금 더 밝아지기는 했으나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방향을 찾는 정도가 고작일 뿐, 적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적들과는 수십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 당황한 적들과 달리, 아르센의 부하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 어둠을 한 번 겪어보았으며, 또한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몇 가지 함정을 더 설치하며 포위망을 철저히 굳혔다. 누군가 도망가는 이가 없도록.
“제기랄! 이놈이 무슨 개수작을······.”
투덜대는 한편, 우만 장로는 지금 상황이 몹시 불리하니 일단 물러나야겠다고 판단했다.
이 어둠이 그들에게 있어 그리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에.
어둠 속에서 쇠 긁히는 듯한 고함이 울렸다.
“전이문! 전이문으로 다시 나가라!”
장로의 지시에 마법사들은 그대로 뒤를 돌아 어둠 속을, 탈출구를 향해 달렸다.
전이문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금 전 달려 나갔던 것은 그들의 전투 인형이었으며, 마법사들은 전이문에서 고작 십여 미터 앞으로 걸어 나왔을 뿐이기에.
하지만 그들을 반긴 것은, 소용돌이치지 않는 평범한 거울의 모습이었다.
그 감촉 역시 차갑고 미끈한 것이, 누가 봐도 그냥 거대한 거울에 불과했다.
즉, 그들을 저 북쪽,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줄 전이문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마법사 한 명이 절망에 차 외쳤다.
“장로님! 전이문이 꺼졌습니다!”
“뭐라고?”
전이문을 끈 것은 엘로이즈였다.
그녀에게는 공간 마법의 적성이 없어 이를 조작할 수가 없었으나, 압도적인 마력으로 연결 자체를 비틀어 버리는 것은 가능했다.
마치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완력으로 기계를 망가트려 가동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듯이.
그때, 당황하고 있던 우만의 감각이 묘한 느낌을 포착했다.
그들이 선 땅 밑에서, 무언가 어긋나 있던 것이 맞물리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 직감하고, 우만은 다급히 외쳤다.
“모두! 방어 주문을 써라!”
그 지시에, 마법사들 모두가 방어 주문을 시전했다. 자신의 몸을 여러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그 효과는 미약하나 가장 빠르게 시전할 수 있는 주문을.
다들 어려서부터 마법사로서 온갖 고충을 겪었던 이들답게 그 대처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그리고 방어 주문이 시전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강력한 충격이 그들을 강타했다.
쾅 하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음을, 대지가 폭발했음을 깨달은 마법사는 거의 없었다. 그들 모두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기에.
엘로이즈의 폭발 주문은 그 주인의 지시에 따라, 살상력을 낮추며 폭발 지역에 있던 것을 밀어내듯 튕겨냈다.
“크헉!”
“으아악!”
하필 한 자리에 뭉쳐 있었기에, 이 공격을 받지 않은 마법사는 없었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폭발로 인해 고립되었음을 깨닫자마자 자신의 기사, 전투 인형을 불러들였다.
어둠 속에서도 주인의 존재만은 느낄 수 있는지, 전투 인형은 각각 제 주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전투 인형의 보호를 받아 안심하는 것도 잠시, 마법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 어둠 속에서 한번 흩어진 이상, 다시 뭉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던 탓이다. 고함으로 서로를 부를 경우, 반드시 아군만 다가오리라는 법은 없기에.
그리고 그들이 해결법을 논의할 시간을 줄 이유는 없었기에, 아르센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기사들은 작전대로 진행해라!”
마법사들을 생포하라고 지시하면 그들이 일부러 목숨을 경시하고 활동할 것을 우려해,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명령했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네 명의 기사가 마법사들이 뿔뿔이 흩어진 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물론 이 비자연적인 어둠은 기사들의 시야 역시 차단했기에, 그들은 평소처럼 안광을 뿜으며 자유롭게 어둠 속을 활보할 수 없었다. 이 어둠 속에서는 그들 역시 흐릿하고 어둡게만 보였기에, 고작 십여 미터 앞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몇 미터는, 생각보다 훨씬 큰 차이였다.
“끄악!”
바즈칼은 어둠 속에서 허둥대던 마법사 한 명을 적당한 힘으로 후려친 뒤 낚아챘다.
진을 타고 벼락처럼 달려드는 기사의 습격을, 한낱 마법사가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조종하는 전투 인형은 바보같이 서 있을 뿐이었다.
마법사 본인이 바즈칼을 인식하고 명령을 내렸다면 충실하게 이를 막아내었을 것이나, 그 주인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기절해 버린 탓이다.
그가 받은 명령은 ‘현재 자리에 대기’ 였으며, 조종자가 습격당하고 기절한 것은 그 명령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르센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마법사 한 명을 제압했다.
바즈칼에게 당한 마법사는 순간 무언가가 오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제압당했으나, 아르센에게 당한 마법사는 그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흑사자의 우월한 순발력은 물론, 아르센이 육식동물처럼 능숙하게 상대의 시선을 피해 접근한 덕분이기도 했다.
“꺼윽······.”
얼굴을 얻어맞고 의식을 잃은 마법사의 목을 틀어쥔 채, 아르센은 그 옆에 선 기사를 보았다.
습격자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건만, 기사는 그저 멀거니 서서 상대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멍청하군.’
듣기로, 좀 더 발전된 현대의 조종기는 여러 복잡하고 다양한 명령이 가능하다고 했다.
특정 지역을 순찰하며 특정 생명체만 죽이거나 붙잡거나, 특정 개인을 보호하며 그에게 향하는 공격 행위를 모두 방어하라는 등의.
하지만 소위 아히탈 시대, 즉 ‘고대 유적 시대’의 제어기는 그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
아르센은 바크란에게 이를 전해 들었기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덕분에 이 전략을 짤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헤세인!”
우만이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희생당한 마법사는 그의 시야가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었다.
도움을 주고자 자신이 가진 전투 인형을 그곳으로 보내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행위였기에 그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었다.
“크으······.”
우만은 이를 갈았다. 도대체 어째서? 어떻게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반격을 가해온단 말인가?
어둠 속, 우만은 당황하여 파도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어째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조금 전의 폭발이었다.
그 폭발의 정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우만 역시 마룬이 전해 주는 정보를 접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아르센에게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엘로이즈의 마력이 특출나, 별부르미에서도 그에 필적하는 이가 거의 없을 수준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 ‘거의 없는 마법사’ 중 한 명이 우만이었지만, 그조차도 이런 어둠 속에서 가해지는 일방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모름지기, 마법이란 방어보다 공격이 훨씬 쉬운 탓이다.
갑작스러운, 거기다 미리 준비된 기습 공격이라면 더더욱.
‘그 공격은 원거리에서 날아온 게 아냐. 땅에 묻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 모일 것을 예상하고!’
마치 물 흐르는 듯 시작된 반격, 거기다 미리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함정까지.
상대가 그들의 기습을 예상했으며, 역으로 함정을 파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았다.
“설마, 라티스 이놈······.”
우만은 그제야 라티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아님을, 미리 쿠데타를 예상하고 대응책을 준비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 사실에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도대체 왜, 그렇다고 기사의 손에 목숨을 맡기고 동포를 쳐야 했나?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나? 가만히 있기만 했으면 모든 게 잘 해결됐을 텐데!’
안타깝게도, 슬퍼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비명이, 부하들의 운명을 알려주고 있었으니.
입술을 깨물고 주위를 둘러보던 와중, 하얀 무언가가 갑자기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유물 갑주를 차려입고 진을 탄 기사 한 명.
‘적이다!’
우만을 노리고 달려든 것은 리노였다.
아르센에게 받은, 벨루안 양식의 진을 탄 그의 속도는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지구에서라면 고속도로에서 과속딱지를 끊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만은 별부르미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사였으며, 그가 만든 불빛 역시 밝았다. 기사와 비슷한 수준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덕분에, 우만은 리노가 딱 달리기 시작한 순간 적의 존재를 포착하고 방어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막아라!’
직접 입으로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막으라고 속으로 명령한 순간, 이미 그의 전투 인형은 돌진해 오던 리노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무기가 충돌하며 이 전투에서 처음으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두 기사의 충돌은 리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리노는 몰랐지만, 그가 상대하고 있는 전투 인형은 저 북쪽 로비엠 영지에서도 명성 높은 기사였다.
비록 마법사들을 토벌하려다가 실패하여 그들의 종이 되었으나, 그 와중에도 그들의 전투 인형을 두 기나 무력화시켰을 정도의 실력자.
초보 기사에 불과한 리노가 그에 맞설 수는 없었다.
“허억······.”
고작 몇 수의 교환만으로, 상대는 리노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성벽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방패를 내세운 채, 뒤에 숨겨져 있던 길쭉한 장검이 훅 찔러와 옆구리를 찔렀다. 그 기예는 마치 물처럼 매끄러워, 상대가 이 기술을 수십 년 수련한 달인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못 이긴다!’
리노는 아찔한 통증에 이를 악물며, 진을 조종해 뒤쪽으로 있는 힘껏 도약했다.
순식간에 몇 미터를 물러서고, 다시 몸을 돌려 달리자 금방 우만의 시야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바닥에 흐르는 핏자국을 보며 우만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아쉽다고 해서 시야 밖으로 물러난 것을 쫓아가서 죽이도록 명령했다가는 우만 본인이 무력해질 터였다.
이 어둠, 빌어먹을 어둠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한탄하던 와중, 저 멀리서 명령이 들려왔다.
“다시 물통을 막아라!”
이 와중에 정말로 물통을 막으라고 할 리 없으니, 아마 무언가 암구호 비슷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만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했다. 누가 덤벼들든 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그렇게 몇 분.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누구의 것인지 짐작할 수 없는 고통에 찬 신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참지 못한 우만이 전투 인형과 함께 앞으로 돌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