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4)
뮈슈의 돌진은 무모했다.
현재 살아남은 올무는 기껏해야 삽십여 마리, 그들 대부분이 영웅 개체라고는 하나 지금 이곳에 모인 인간 기사의 수는 그 배에 가까웠다.
거기다 싸울 수 있는 전사의 수는 그야말로 수백이라, 이들이 일제히 쇠뇌를 쏘는 것만으로도 무시 못 할 위력을 발휘했다.
마법사들이 초기에 엄청난 공격을 가하느라 마력을 소진하지 않았다면 아예 싸움조차 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상황이기에, 그 돌격이 한 가지 이점을 발휘하기는 했다.
당연히 도망치리라 여겼던 상대가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반격할 때 느끼는 당혹감.
그 당혹감 탓에 인간들의 반응이 한발 늦었다.
“놈들이 공격해온다!”
“맞서라!”
뮈슈의 돌진에 반응하여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져 공격해오는 올무 영웅들.
인간 기사들은 직접 무기를 들고 나가 그들을 막고, 뒤에서 일반 전사들은 쇠뇌를 쏘아 이를 보조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조금 떨어진, 묘하게 정적이 느껴지는 공간.
아르센과 뮈슈가 마주했다.
“왕의 명령을 받는 자, 사령관 뮈슈다!”
“벨루안의 아르센.”
그간 아르센이 보아온 이 올무란 족속들은 비록 인간의 말을 할지언정 사악한 괴물에 가까워, 마치 약탈자를 연상케 했다.
그런 그들과 달리, 뮈슈에게서는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인간, 그중에서도 잘 교육받은 기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왕께서 명하시니, 너를 산 채로······.”
아르센은 혼자 떠드는 뮈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미 전투가 격화되는 와중이라, 이 전투가 길어질수록 죽는 이가 한 명 더 늘어날 터였다.
그저 허리춤에서 주걱 같은 막대기를 꺼내, 흑사자의 옆구리에 매여 있던 투창을 매겼다.
‘저건?’
뮈슈는 그 도구를 처음 보았으나 그것의 용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저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쏘는 도구이리라.
그렇다면 당할 염려는 없는바, 뮈슈는 비교적 여유롭게 상대의 행동을 관찰했다.
“저렇게도 창을 던질 수 있었나.”
뮈슈의 감탄사와 함께 아르센의 투창기에서 매서운 일격이 쏘아졌다. 통짜 흑성철로 만든, 단단하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투창이었다.
공기를 찢는 굉음마저 들려오는 이 일격은 저격 총과 맞먹는 파괴력을 가져, 급소에 맞추기만 하면 대형 마수라도 일격에 처치할 정도였다.
정면으로 얻어맞는다면 올무 영웅조차 버티지 못하고 일격에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이미 그동안의 습격으로 몇 번 증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쏘아진 투창은 뮈슈의 몸에 닿기 전 스르륵 힘이 빠져 바닥을 굴렀다.
무언가로 튕겨낸 것이 아닌, 투창이 스스로 힘을 다해 떨어진 것 같은 기괴한 광경이었다.
‘유물인가?’
조금 전 발사기를 이용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투사체를 막는 능력이 있으리라 짐작하기는 했다.
이번 공격은 그것이 일시적인지, 지속해서 유지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뿐.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요하지 않고, 아르센은 드릴을 앞세워 그대로 돌진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중세 기사의 기창 돌격과도 같았다.
당연히 뮈슈는 이에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체격은 그가 조금 더 컸지만, 아르센은 커다란 흑사자를 타고 있었기에 체급의 차이는 저쪽이 우위였다.
심지어 그 무게를 저 회전하는 드릴에, 날카로운 한 점에 실어 찌르는 것이 얼마나 강력할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도 두려울 지경이었으니.
“흡!”
뮈슈는 그대로 몸을 굴려 아르센의 돌격을 피하며 나래칼을 날렸다.
목표는 흑사자의 발.
저 생물이 덩치가 크고 빠르기는 하지만, 비교적 반사 신경이 둔하리라 짐작한 공격이었다.
타고 있는 기사가 반응하더라도 생물이 반응하지 못한다면 발목이 잘릴 것이고, 그렇다면 일단 상대의 기동성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뮈슈의 기대와 달리, 흑사자는 능숙하게 발을 들며 공격을 피해냈다.
만약 그가 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이런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흑사자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르센임을, 사실상 흑사자의 반사신경은 아르센 본인의 것과 같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온 발상이었다.
“크윽!”
그대로 몸을 돌려 다가오는 흑사자. 그 속도는 질풍과도 같아 뮈슈는 다시 몸을 날리며 칼을 들어 아르센의 드릴 공격을 막아냈다.
그가 든 칼 역시 나래칼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법 뛰어난 물건이었기에 일격에 부러지는 사태는 면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허공을 갈랐던 나래칼이 다시 뒤돌아오며 흑사자가 아닌 아르센 본인을 노렸다.
아르센은 그대로 몸을 꺾으며, 반대쪽 손에 든 방패를 이용해 나래칼을 쳐냈다.
‘이거 성가신데······.’
뮈슈는 올무 영웅 중에서도 굉장히 강한 편으로, 그 백병전 능력은 굳이 평가하자면 갓 고위 기사로 각성한 아르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의 무장 수준이 비교적 빈약했음을 생각했을 때, 아마 그때 싸웠다면 아르센이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리라.
하지만 여정을 통해 아르센은 많은 유물을 얻었고, 끊임없는 싸움으로 본인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중에서도 크렌에게서 배운 고위 기사 특유의 싸움법, 그리고 사막에서 고위 기사를 상대하는 데 능숙한 이들의 합격을 겪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의 아르센은 여유만 주면 스무 합, 많아도 서른 합 안에 상대를 무력화할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드릴 창이 아닌 바람 도끼를 이용하더라도.
하지만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상대와 별개로 허공을 날며 계속해서 아르센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병기, 나래칼 때문이었다.
“죽엇!”
아르센의 머리를 쪼갤 듯 휘둘러지는 뮈슈의 칼, 그와 동시에 뒤에서 척추를 노리고 사선으로 휘어들어오는 나래칼.
이전에 올무 영웅 둘과 싸우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뮈슈의 실력은 이전 앞을 막던 영웅보다 훨씬 뛰어났으며, 나래칼 역시 쇠뇌 공격과 달리 자유자재로 휘며 급소를 노렸기에.
그 궤도를 예측하기 힘든 나래칼을 대비하며 뮈슈와 백병전을 치르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라 호흡이 어긋났던 그들과 달리 나래칼은 뮈슈가 직접 통제하는 것이라 손발이 딱딱 맞았다.
결국 훌쩍 도약하여 뒤로 물러선 뒤, 아르센은 다른 방식의 공격을 시도했다.
흑사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받아 봐라!’
흑사자의 입에서 쏟아지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꺼내온 듯한 무시무시한 불꽃이었다. 유적의 함정으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어지간한 기사조차 태울 수 있는 강력한 화염.
이미 올무 영웅들에게도 통용되는 것을 확인했으나, 이 역시 뮈슈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가 몸에 두르고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더니 쏟아지는 불꽃을 막는 방어막이 생겨났다.
아르센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역시, 설마 했지만 저게 전부······.’
보석은 이내 산산이 깨져 나갔으나, 아직도 뮈슈의 몸에는 십수 개가 넘는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르센의 마법 투구는 그것에 마력이 담겨 있음을, 즉 저것이 마법을 담은 유물임을 알려 주었다.
뮈슈가 온몸에 둘둘 감고 있는 보석은 그저 패션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일회용 유물이었다. 그것도 꽤 강력한.
‘일단 불 공격은 봉인인가.’
당연히 저 보석 모두가 화염 공격을 막는 기능은 아닐 것이고, 어쩌면 방금 것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아르센의 마력 역시 상당히 소모하는 공격이기에 남용할 수 없었다.
만약 상대가 불을 세 번 이상 막는다면 그때는 오히려 아르센이 마력 부족으로 패배할 터.
결국 아르센은 다시 창을 들고 돌진했다.
“하압!”
“큭!”
다시 일어난 충돌, 아르센은 뮈슈가 칼을 들어서 막는 틈을 노려 흑사자의 앞발로 상대를 공격했다.
알록달록한 옷이 찢어지며 가슴에 세 줄기 상흔이 남았다.
물러서서 한 손으로 상처를 감싼 뮈슈가 신음을 흘렸다.
“크으.”
의외로 공격이 꽤 깊게 들어갔는지, 상처에서부터 피가 줄줄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방어 능력은 없나? 급해서 발동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일부러 아꼈을 가능성도.’
그렇게 궁리하던 아르센을 향해 뮈슈가 반격에 나섰다. 몸에 두른 보석 중 하나를 떼어내더니 갑자기 던진 것이다.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몸을 훌쩍 날려 피하자, 보석이 떨어진 곳에서 무시무시한 냉기와 함께 얼음꽃이 피어났다. 아르센이 익히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빙결구!’
아마 맞았다면 잠시 이동하지 못하게 되었으리라.
그 상태에서 뮈슈와 나래칼의 공격을 받았다면 분명 부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도하는 한편, 아르센은 상대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진 것을 확인했다.
아마 저것이 비장의 수단이었던 모양이었다.
* * *
‘정말 인간인가?’
아르센은 상대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느꼈지만, 실제로 뮈슈가 느끼고 있는 것은 절망감이었다. 그것도 아득할 정도의.
정체불명의 마수에 탄 저 인간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였다.
뮈슈가 긴 세월 갈고닦은 무술도, 왕에게 받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과 무수한 은총도 상대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르센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듯, 뮈슈 역시 빠르게 아르센을 제압하고 싶어 했다. 현재 전력비로 보건대, 결국 싸움이 길어지면 패배하는 쪽이 그들 올무일 것이기에.
그러나 아르센은 절대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고, 어느새 그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고자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센과 달리, 뮈슈가 가지고 있는 유물 대부분은 일회용이었다. 즉, 시간을 끈다는 것은 그가 패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젠장, 젠장, 젠장!’
부하들을 모두 잃어 체면을 상한 것만으로도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인데 왕의 명령조차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솟구쳤다.
뮈슈는 오갈 데 없는 분노를 담아 손에 든 칼을 휘두르고 나래칼을 조종하며 어떻게든 아르센을 제압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싸울수록 더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기량 차이뿐이었다.
사실상 두 명이 싸우는 것과 다름없음에도 뮈슈는 격돌할 때마다 손해를 보았으며, 나래칼을 너무 오래 띄워놓은 탓에 이제 마력 소모도 상당했다.
싸움은 점점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모든 병력을 잃고 목표마저 포기한 채 혼자 도망치다니, 설령 왕이 용서한다 해도 그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갈등하던 찰나, 갑자기 아르센의 드릴 창이 회전을 멈췄다. 이를 본 뮈슈의 눈이 번뜩였다.
‘마력을 다 썼구나!’
하기야, 저렇게나 강력한 마법 무기가 소모하는 마력의 양이 적을 리 없었다.
다시 승기가 돌아왔다 느낀 뮈슈는 숨을 가다듬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근육을 독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왕의 명령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동포 천 명이 죽은 것쯤 손실도 아니었다.
“이놈!”
회전하지 않는 창은 쓸모가 없다 여긴 것인지, 상대는 검은 몽둥이 비슷한 것을 들었다.
뮈슈는 자신만만하게 검을 들어 마주치며 동시에 나래칼을 조종해 적을 공격했다.
이와 함께, 비장의 한 방으로 아껴 놓았던 보석까지 은밀하게 준비했다.
격돌하여 아르센의 기세가 쇠한 순간 곧바로 이것을 사용한다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아르센이 철퇴를 하늘 높이 들어 내려치자, 뮈슈는 칼을 사선으로 들어 비껴냈다. 정확히는, 비껴내려 들었다.
수 톤, 어쩌면 수십 톤에 달할지도 모를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철퇴가 그대로 칼을 가르고 머리와 몸을 지나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으깨놓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죽는 순간, 뮈슈는 마지막까지 생각했다.
이 보석만 사용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 * *
‘끝났나.’
아르센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마사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 덕에 빠른 결착을 낼 수는 있었으나, 다소 지친 탓인지 적절하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손목이 삔 모양이었다.
만약 이 공격이 빗나갔다면 오히려 손목을 다친 아르센 쪽이 불리해졌으리라.
“아르센 경이 이겼다!”
“사령관이 죽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몇몇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환호하고, 그 환호는 전염되듯 퍼져 나갔다.
비록 고막이 터져 소리를 듣지 못하나 인간들의 얼굴에 담긴 기쁨을, 환희의 몸짓을 볼 수는 있었기에 치열하게 싸우던 올무들 역시 점차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령관이 죽었다!”
“도망쳐라!”
“흩어지지 마! 뭉쳐서 도망쳐야 산다!”
서로가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며 일방적으로 떠들 뿐인 집단적 독백 상황.
이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올무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어, 기사들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전투에서 가장 피해가 많이 나오는 순간이 퇴각하는 순간이라, 도망치는 올무 영웅들의 뒤로 쇠뇌가 퍼부어졌다.
기사들과 엉켜 있느라 조심스럽게 쏘던 것과 달리 그야말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영웅 중 몇 마리가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를 추격하는, 진을 탄 기사들. 그 선두에는 아르센이 있었다.
손목이 삔 탓에 반대쪽 손에 창을 들어야 했지만, 울려 퍼지는 굉음은 손이 바뀐 것과 상관없이 웅장했다.
흑사자를 타고 달리는 그의 뒤에서 환호가 울려 퍼졌다.
구원자, 위대한 아르센을 찬양하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