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Commander RAW novel - Chapter 361
사령관이 돌아왔다 361화
361 삶과 죽음(2)
임태수가 죽은 지 50년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비비안과 나는 악의 세력들을 쳐부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악의 세력이란 아무리 청소를 해도 독버섯처럼 자라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관리를 하며 살아가는 수밖에는 대안이 없었다.
첨벙!
한가로운 전경을 감상하며 낚싯대를 드리운다.
오늘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철 님.”
“응?”
“좋지 않은 소식이 도착했어요.”
“좋지 않은 소식이라.”
임태수가 죽고 나서 50년이나 지났고 그 당시의 기억은 내게 꽤 강렬하게 박혀 있었다.
비비안이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다면 아마도 여동생에 대한 것이리라.
“수란이에 대한 일이야?”
“네.”
“시간이 그렇게 흘렀군.”
나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길어야 100년이다.
그 시간 동안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나이를 먹어 있었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의 준비.
나도 한때는 그렇게 살아가던 적이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지금 지구인들의 삶은 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10년 안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면 모를까, 천수를 누리다가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연합은 해체되고 각국은 독립을 했다.
전쟁이 일어난 지 50년이나 흘렀으니 사람들은 마신이 쳐들어와 누비던 시절을 전설처럼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일어나야겠네.”
“함께 가도록 해요.”
“그러지.”
어쨌든 나와 피가 이어진 가족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육체가 의미가 없어졌지만, 인간이던 시절에는 수란을 끔찍이 여기기도 했다.
신위를 받고 전쟁이 끝난 이후 수란과는 1년이나 2년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과 5년 전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양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그 당시 수란이 했던 말이 있다.
[늙어 가는 모습을 보며 내 죽음을 생각하겠지. 그냥 내가 죽기 전에 이야기를 한번 나누었으면 해.]그렇게 수란은 요양원에 들어갔다.
비비안과 함께 차원을 넘어간다.
지구에 도착하자 새삼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내가 어릴 적에 상상하던 모든 것이 구현되어 있었다. 이미 지구의 기술은 그만큼이나 발전했다.
전쟁을 할 당시에 신기술을 들여왔고 그것을 발전시켜 지금의 문명을 꽃피운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드물었다.
여동생이 머물고 있는 요양원에 이르렀다.
수란의 병실에는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이다.
“왔어?”
수란이 고개를 돌렸다.
아흔 살이 넘어서며 혼자 거동하기가 힘들어졌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많이 늙었네.”
“오빠는 아직도 20대 그대로네.”
“늙지 않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오빠가 제안했을 때 신위를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수명을 연장하고 수련하면 언젠가는 신위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수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라면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비비안은 수란의 손을 한 번 잡아 주고는 병실을 나섰다.
“내 남은 수명을 다 당겨서 한번 걸어 보고 싶네.”
“네 남은 수명이라……. 앞으로 일주일 정도 되려나.”
“오빠라면 오늘 하루 정도는 걷게 해 줄 수 있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생명력을 채워 줄 수도 있었지만, 수란은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신력을 사용하여 모든 생명력을 오늘로 당긴다.
“오늘 자정이 되면 숨을 거둘 거야.”
“밖으로 나가자.”
간만에 쌩쌩한 모습이다.
우리들은 요양원의 정원을 거닐었다.
간호사나 의사들은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수란은 가볍게 무시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늘이 세상을 눈에 담는 마지막 날이네.”
“후회 없는 삶이었냐?”
“어차피 마왕이 쳐들어온 순간부터는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어. 덤으로 50년 이상을 살았으면 된 거지.”
“그러냐.”
“오빠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삶이라.”
“무한한 삶을 살아가니 사실 별생각이 없지?”
“들켰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수란의 말대로 내 삶에 대해 자세하게 고찰을 해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무한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악마의 세력을 짓밟고 다녔으며 휴식을 취하며 비비안과 노닥거렸다.
“아마 오빠의 삶에서 비비안 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거라고 생각해.”
“그렇겠지.”
“그 가치를 저버린다면 미치지 않을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부터 비비안은 내 삶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여동생의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소멸하지.”
“소멸하나?”
“가끔 강력한 영혼을 가진 자들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생명력을 잃고 소멸해 버려.”
“영혼이 있기는 한 모양이네.”
“당연히 있지.”
“사후세계는 없고?”
“보통은 그냥 전원을 내리듯 완전히 사고가 정지한다고 봐야겠지.”
“영원한 안식이네.”
“그렇지.”
내가 신이 되면서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강제로라도 인간의 영혼을 모아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개념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역시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으면 오빠가 살고 있는 천계에 뿌려 줘.”
“너를 추모하도록 말이냐?”
“그래. 영원히 잊지 말라는 뜻이지.”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가족의 죽음이 쉽게 잊힐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참이나 여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원을 걸어 다녔고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이 왔다.
여동생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잘 가.”
“장례식은?”
“오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불문율이잖아?”
여동생의 말이 맞다.
나는 수란의 자손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의식적으로 그래 왔다.
만약 의식을 하기 시작하면 대대손손 지켜보아야 할 일이 생길 테니까. 장례식도 나 없이 치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만 뼛가루는 오빠에게 전해 주기로 했어. 유언에 따라서 말이야.”
“그래.”
“그럼 며칠 후에 보자.”
여동생은 손을 흔들었다.
늙고 주름진 얼굴이 보인다.
나와 비비안은 그렇게 돌아섰다.
서울 S호텔 스위트룸.
나와 비비안은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여동생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비비안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그녀를 추모하였다.
“수란은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해 왔지.”
“함께 놀기도 했나요?”
“그럼. 수란이 나를 잘 따랐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던데요?”
“크면 나와 결혼을 한다고 했었다니까.”
“그만큼이나 오빠를 좋아했던 거로군요?”
“아빠와 결혼을 한다는 딸들의 모습이 그럴 거야.”
“항상 딸로 생각을 했었나요?”
“때때로 그랬지.”
여동생이자 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수란을 잃었을 때 다가오는 슬픔에 많은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다. 물론 그렇다고 충격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지배인이 나에게 유골함을 내밀었다.
“귀하의 앞으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팁을 한가득 안겨 주고 유골함을 받아 들었다.
유골은 새하얗지 않았다. 당연히 탄 자국이 있었기에 회색 빛깔이 돌았다.
“그럼 유언을 실행해 볼까?”
“천계로 향할까요?”
“여동생의 마지막 부탁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천계로 향하기로 했다.
차원을 넘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차원의 천계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나 같았다.
완벽한 세계.
하늘은 항상 맑았고 들은 푸르다. 갖가지 꽃들이 항상 피어 있었으며 거대한 호수에는 잉어들이 뛰어놀았다.
이곳에서는 가끔 낚시를 한다.
호화로운 배도 있었고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광경.
수란은 이런 곳에 자신의 유골이 뿌려지기를 원했다.
배를 타고 호수의 한가운데로 갔다.
유골함의 뚜껑을 열었다.
스아아아.
비비안이 바람을 만들었다.
가끔 선선한 바람이 불기는 하였지만, 유골이 바람에 날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바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유골이 바람에 날린다.
“여동생의 유골을 날리게 될 줄이야.”
“울어도 돼요.”
“그건 인간의 감성이지.”
“아직 반쯤은 인간의 감성이 남아 있지 않나요?”
“그럴지도 모르지.”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여동생과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마지막에 본 모습은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유골이 줄어 간다.
이제 여동생과 나의 연결점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아가씨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요?”
“이미 다 했어.”
“그래도요. 후회하지 마시고.”
비비안도 나와 오래 살더니 내 성향을 모두 파악했다.
여기서 여동생에게 말을 남기지 않는다면 영원히 후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있어 행복했다. 이제는 편하게 쉬도록 해.”
그렇게 여동생을 가슴속에 묻는다.
섭섭한 감정이 커져 갈 때 비비안이 말했다.
“아이를 낳을까요?”
“아이를?”
“네. 딱 한 명. 영원히 살아가는 데 있어 아이 한 명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