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63
163. 빨간약 II
남수정은 이튿날 아침에 학교에 갔다.
ES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동철은 남수정의 출연료나 음원 수익을 미리미리 챙겨주었다. 이선화가 최대 오십억 원까지 투자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정도 미리 챙겨주는 건 부담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남수정은 이제 월세도 안 낸다. 집주인인 이선화가 그냥 지내게 했다.
결정적으로 서정우가 그녀에게 수업 그만 빼먹고 학교 가라는 잔소리를 여러 번 했다.
그녀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정리했다. 얼마 전부터는 학교에 꼬박꼬박 갔다.
남수정이 교실에 들어갔다. 먼저 등교한 반 친구들이 그녀를 반겼다.
“수정아!”
남수정도 손을 흔들었다.
“하이!”
그녀를 반가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정현수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큼지막한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효진이를 지키다 다친 상처가 아직 안 나았지.’
남수정은 진심으로 정현수의 인생을 걱정했다.
‘저 얼굴에 흉터까지 있으면 진짜 큰일이지.’
그녀가 정현수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현수야.”
정현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어!”
그녀가 그의 책상 위에 저레벨 상처 회복 물약을 한 병 올려놓았다.
서정우는 그녀에게 이 물약을 혼자 마시든 다시 남을 주든 그런 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이거 진짜 귀한 건데, 특별히 주는 거야. 마셔.”
정현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이건!”
“파는 거 아니야. 동양 무술의 신비한 비전으로 만든 아주 귀한 거야. 웅담 비슷한 것도 들어갔….”
정현수의 책상 위에 다른 게 하나 더 올라왔다.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고 광고하는 상처보호용 밴드였다.
밴드를 올려놓은 민효진이 말했다.
“집에 이런 거 많이 굴러다녀서 하나 가져왔어. 이거 붙여.”
남수정이 밴드를 보고 감탄했다.
“와! 이거 막 만 원도 넘는 그 밴드 아냐?”
“으, 응?”
“나도 배에 흉터 안 남게 하려면 이거 붙여야 하나 하고 알아봤거든. 비싸서 못 샀지만.”
민효진은 당황했다. 남수정이 정현수에게 물약을 주는 걸 보고 얼른 끼어들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죽을 뻔한 사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마, 말하지. 그럼 그때도 갖다 줬을 텐데.”
“나 그땐 학교 잘 안 나왔잖아. 와! 현수 좋겠다. 이거 붙이면 흉터 싹 없어지나?”
“이, 이거 광고처럼 그렇게 흉터 없애주는 건 아니야. 흉터 덜 남게 하는 거지. 아. 수정이 너도 이거 갖다 줄까?”
남수정이 옷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난 이미 흉터 다 없어졌어. 보여줄….”
민효진이 깜짝 놀라 남수정의 손을 잡았다.
“배를 왜 보여줘!”
“아. 맞다. 여기선 그러면 안 되지.”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던 놈들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정현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그는 가방에서 남수정이 준 것과 똑같은 저레벨 회복 물약을 꺼냈다.
“나도 서 형사 형이 이 물약 한 병 줬어.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고 흉터도 덜 남을 거라면서.”
남수정이 얼른 물었다.
“그치? 역시 이거 마시면 흉터가 없어지지?”
그녀도 그렇게 짐작은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정현수가 한 말 덕분에 확신하게 됐다.
“난 아직 안 마셔서 몰라.”
“마셔봐. 효과 죽여.”
그녀가 배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역시 이건 우리 아저씨 덕분이었어.”
민효진이 약에 관심을 보였다.
“그 물약 어디서 살 수 있어?”
남수정이 손가락을 하나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말했잖아. 동양 무술의 신비한 비전으로 만든 아주 귀한 거라고. 이거 파는 거 아냐. 나처럼 우리 아저씨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만 얻을 수 있는….”
남수정이 정현수를 휙 돌아보았다.
“그런 귀한 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어? 서 형사 형이 그냥 줬는데?”
“쳇! 아무나 다 주는 거구나.”
“야. 내가 그래도 아무나는 아니….”
남수정이 정현수를 째려보았다. 정현수가 즉시 말을 바꾸었다.
“미안. 난 아무나야. 앞으로 날 아무라고 불러줘. 붕대도 있고 딱이네.”
남수정이 물약을 가리켰다.
“그래서 이미 그 물약이 있으니까 내가 준 물약은 필요 없다 그거야?”
정현수가 저레벨 회복 물약의 뚜껑을 얼른 땄다.
“물론 아니지. 고마워. 잘 마실게.”
그가 물약을 바로 마셨다.
“윽!”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꾹 참고 물약을 다 삼킨 후에 하소연했다.
“이거 진짜 너무 맛이 없다. 물파스 마시는 것 같아.”
남수정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 물약이 얼마나 맛없는지는 많이 마셔본 남수정이 잘 안다.
“아. 그거구나. 마시는 물파스. 그 맛을 표현할 말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그거였네.”
“일부러 먹인 거냐!”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서는 물파스 맛이 나는 거야. 마셔둬. 그거 강서준 오빠 같은 인기 연예인들도 없어서 못 마시는 거니까.”
“그, 그래?”
남수정이 두 손으로 책상을 쳤다.
“그리고 남은 한 병! 절대로 다른 사람 주지 마. 네가 마셔. 특히 팔다 걸리면 죽는다!”
“지금 당장 마실게.”
“하루에 두 병 연달아 마시면 효과 없어. 내일 마셔.”
* * *
남수정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퇴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공부를 잘했지만, 아르바이트만 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못 들어서 성적이 내리막길을 걸은 지 오래다.
반면에 가수로는 비록 단 한 곡이긴 해도 현재 인기 순위에 든 노래가 있다. 학교에서도 차라리 그쪽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수업일수만 채우면 졸업장은 받을 수 있게 편의를 봐주었다.
그녀는 ES 엔터테인먼트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그냥 타면 혹시 누가 알아볼까 봐, 이선화에게 배운 방법대로 선글라스를 쓰고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다.
노래는 많이 알려졌지만 얼굴은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 정도만 가려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전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있었다. 남수정의 눈에 서정우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녀가 가자미눈을 뜨고 옆 사람의 스마트폰을 힐끗거렸다.
그 글은 서정우가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었다.
‘당연히 아저씨가 우승이지! 아. 거기는 우승으로 따지는 데가 아닌가? 그럼 챔피언!’
옆 사람이 남수정을 슬쩍 보았다. 그녀는 얼른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앞에 앉은 두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며 말했다.
“남수정 노래 죽이지 않냐?”
남수정이 귀를 쫑긋거렸다.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남수정 예쁘지. 그런데 그 노래는 어차피 기계로 그럴듯하게 만든 거잖아. 진짜 노래 실력은 형편없어.”
“대단한 대중음악 전문가 나셨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남수정이 뉴스에 딱 뜨자마자 노래 나온 거 보면 모르겠냐? 전에는 그냥 학생이었다니까 뻔하지. 분명히 노래는 하나도 할 줄 모르….”
남수정의 흉을 보던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수정이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린 채 째려보고 있었다.
“허억! 남수정?”
남수정이 항의했다.
“목소리에 기계 안 썼거든요?”
처음부터 그녀의 목소리에 딱 맞춰 만들어진 노래라서 굳이 기계로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 아니, 그게….”
당황한 남자가 다른 칸으로 도망쳤다. 그 옆에 있던 남자는 사인이라도 받고 싶어 했지만, 친구에게 끌려갔다.
남수정이 툴툴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네?”
남자가 두 손으로 공손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가, 같이 보셔도 되는데요.”
“앗! 고마워요. 친절한 분이시구나!”
* * *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 저 오늘 전철에서 남수정 옆에 앉았습니다. 같이 스마트폰으로 서정우 형사에 대한 글을 보면서 즐겁게 왔습니다. 같이 본 그 글이 여기 올라온 것이라 저도 글을 남깁니다.
곧바로 댓글이 붙었다.
– 좋은 꿈 꾸셨네.
– 님. 이제 꿈에서 깰 때입니다.
– 아, 젠장. 꿈! 을 외치세요!
– 현실은 시궁창이지요. 시궁창으로 돌아오세요.
* * *
남수정은 전철에서 내려 ES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나도 스마트폰 갖고 싶다.”
그녀의 휴대폰은 오래된 폴더폰이다. 그 휴대폰으로는 인터넷을 할 수 없다.
그녀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돈 열심히 모아야 해.”
동생 약값만 일 년에 이천만 원이 든다. 생활비도 필요하다. 여유가 더 생기면 남들처럼 동생을 학원에도 보내고 싶다.
그런데 그녀가 부른 노래는 딱 한 곡밖에 없다. 그 곡이 뜨긴 했지만, 잘 불러서가 아니라 노래가 좋아서 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돈 더 열심히 모아야 해. 난 한 곡만 반짝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ES 엔터테인먼트의 새 사무실은 아직 내부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공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예전 사무실을 써야 한다.
그녀가 사무실 문을 잡으며 말했다.
“근데 누가 안 쓰는 거라도 하나 안 버리나?”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배우 강서준과 사장 오동철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강서준이 남수정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수정이 왔냐?”
“안녕하세요.”
“여기 와도 다른 애들은 안 마주치는데 넌 묘하게 자주 본다.”
“오늘도 계약 이야기하러 오신 거예요?”
“응. 협상만 잘 되면 더 자주 볼 거야. 그런데 뭘 버려? 쓰레기?”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서준이 소파에 올려둔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자. 이거 선물. 맛있는 거야.”
그녀가 얼른 종이가방을 받아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그림이 그려진 금속상자에 들어있는 과자였다.
“와. 맛있겠다! 고맙습니다!”
강서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고마우면 그 동양 무술의 신비가 깃든 물약 한 병만.”
강서준에게 그 표현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남수정이다.
“남는 거 없다니까요.”
“네가 제일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거의 다 마셨어요. 남은 건 진짜 목 아플 때 마셔야 해요.”
강서준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과자 도로 내놔.”
“무슨 말씀을! 우리 아저씨가 그랬어요. 일단 받은 건 다 내 거라고.”
강서준도 진짜로 과자를 돌려달라고 한 건 아니다.
“다른 여자들은 내가 웃으면서 달라고 하면 과자나 물약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자기를 다 가지라고 하던데.”
“신고해야겠다. 미성년자한테 수작 부린다고.”
“야! 농담이야! 농담!”
“안 해요. 신고.”
“ES 엔터 사람들은 진짜 신고할 것 같아서 무서워.”
사장 오동철이 남수정에게 물었다.
“넌 이 시간에 왜 여긴 왔어? 앞으로 학교 잘 다닌다더니?”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방금 받은 과자는 옆에 잘 모셔놓고, 탁자 위에 있던 다른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우리 점심 언제 먹어요?”
“밥 먹으러 왔냐!”
“어제 있잖아요. 제가 기분이 좋아져서 거울을 보면서 막 흥얼거렸거든요. 그런데 부르다 보니 그게 진짜 좋은 노래처럼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사장님께 들려드리려고 녹음해왔어요.”
오동철은 목을 다치기 전만 해도 인기 가수였다. 그가 코웃음을 쳤다.
“너 같은 초보자가 그런 식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듣기 좋았다면, 둘 중 하나야. 네가 옛날에 들어본 노래가 잠재의식에는 남아 있는데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너만 듣기 좋은 거.”
“그런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들어는 보자.”
남수정이 휴대폰을 꺼냈다. 낡은 폴더형 피처폰에서 어제 녹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구형 휴대폰에서 나오는 소리라 음질이 나빴다. 심지어 노래도 짧았다.
그녀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사장님. 어때요?”
오동철이 등을 의자에 기댔다. 다리도 꼬고 팔짱까지 낀 후에 말했다.
“수정아.”
“네.”
“방금 한 말 취소다.”
“무슨 말이요?”
“둘 중 하나라는 말.”
“둘 다 아니면, 좋은 거죠?”
“적어도 너한테만 좋은 노래는 아니다. 같은 노래가 있는지 찾아봐야겠지만,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멜로디가 참 좋네. 이거 진짜 좋다. 그리고 네 목소리에 잘 맞아.”
그녀가 활짝 웃었다.
“히히. 칭찬받았다.”
“제법인데?”
“그냥 갑자기 팍하고 떠오른 거예요. 히히히.”
강서준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수정아! 너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 너 천재냐!”
“에이. 설마요. 아, 재능이 쪼끔 있을지도 모르죠. 히히.”
“이런 대단한 재능이면,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만들 수 있겠는데?”
남수정이 정색하고 손가락을 하나 세워 흔들었다.
“저 이런 경험 처음이거든요? 재능이 아니라 우연일 거예요. 당연히 중증 음치가 부를 노래는 못 만들어요.”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디멘션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