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62
162. 빨간약
서정우는 이 마약 조직이 그냥 얻어걸렸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구민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연일 리가 없어. 서정우의 그 대단한 실적들이 다 얻어걸렸을 리는 없으니까. 도대체 비결이 뭐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범죄자 놈들을 족집게처럼 짚어낼 수 있지?’
구민호가 갈증이 나는 표정을 지으며 서정우를 쳐다보았다.
평행차원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서정우가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말했다.
“구 형사님이 쫓고 계신 조직에 대한 정보가 생기면 바로 연락 주겠습니다.”
“아. 그건 정말 꼭 좀 부탁합니다.”
이번 일에는 세 개의 팀이 참여했다. 사건이 세 개이기 때문이다. 공조 수사의 공식적인 지휘관은 2팀장 권병철이다.
그런데 사건을 찾아내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서정우다.
권병철이 서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설명해.”
서정우가 회의실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가서 글을 쓰고 선을 그리며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골동품상 이연석. 현재 장물아비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저쪽 팀에서 연쇄 살인 혐의를 들이밀고 압박 중입니다. 윤 경장님?”
윤송아가 얼른 설명했다.
“이연석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어요. 연쇄 살인을 자기가 다 뒤집어쓰면 무기징역이나 사형이니까요. 마약 밀수를 감추기 위한 연쇄 살인이니까 거의 틀림없이 사형이 떨어지겠죠.”
“이연석은 직원이 마약 밀수를 눈치챘다고 의심하고 가게를 그만두게 했을 겁니다. 권세창 씨나 그 이전 피해자는 퇴직금을 기준의 두 배를 받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 년쯤 후에 두 사람 모두 사망했습니다.”
백성민이 물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근무 중에 사망했잖아.”
“저번에 말했다시피 그땐 골동품을 이용한 마약 밀수 노하우가 부족해서 실수가 있었을 거야. 그래서 첫 번째 직원이 그걸 눈치챘거나, 챘다고 의심하고 바로 제거한 거겠지.”
“이연석 그놈 독하네.”
“그러니까 첫 번째는 사고사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흘렸을 수 있어. 어쩌면 첫 번째 살인은 이연석이 했을 수도 있고. 저쪽 팀이 그걸 이용해 압박하면 성과가 나올지도 모르지.”
윤송아가 얼른 말했다.
“열심히 압박 중입니다!”
서정우가 다시 사람들을 보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살인은 이연석이 직접 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 번이나 사고사로 처리됐고 알리바이까지 있는데, 이연석 혼자서는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가 골동품 마약 조직이라고 쓴 곳 옆에 글을 추가했다.
“이 조직에서 킬러를 보냈겠지요. 우리는 이 킬러를 잡아야 합니다.”
구민호가 말했다.
“오늘 잡은 놈들을 이용하면 그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면 킬러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구민호가 말한 건 이연석과 손을 잡은 마약 조직이다. 구민호가 원래 쫓던 조직은 이제 겨우 꼬리만 조금 구경했을 뿐이이다.
그들은 그 계획에 대해 의논했다.
회의가 마무리될 때쯤에 백성민이 농담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순경이 팀 세 개를 지휘해서 사건 세 개를 수사하네?”
서정우가 말했다.
“다 연결돼서 크게 보면 하나의 사건이지. 그리고 난 현장에서 뛰는 거고, 지휘는 과장님이 하시잖아.”
권병철이 피식 웃었다.
“야. 이거 다 네가 물어온 거 모르는 사람이 여기 누가 있냐? 넌 자랑 좀 해도 된다.”
윤송아가 권병철의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서정우! 다시 봐도 서정우!”
구민호가 권병철에게 물었다.
“권 팀장님. 그런데 서 형사는 왜 아직도 순경인 겁니까? 저는 저런 순경은 본 적이 없는데.”
“이미 승진은 결정돼 있습니다만, 위에서 그러는데 큰 행사에서 기자들 잔뜩 불러놓고 표창하면서 승진시키겠답니다.”
백성민이 옆에서 설명을 추가했다.
“차라리 정우가 덜 유명하거나 범인을 좀 덜 잡았으면 벌써 승진시켰을 걸요? 너무 일을 잘해서 아직도 순경이네. 에이. 이놈의 공무원 조직.”
* * *
서정우는 장비를 챙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서정우가 소파에 앉자마자 서소라가 물을 한 잔 가져와 탁자에 올려놓았다.
“피곤하지? 시원한 물 마셔.”
서정우는 일단 의심했다.
“여기 뭐 탔냐?”
“그냥 순수한 물이거든?”
“네가 이걸 이렇게 손수 떠다 바칠 리가 없는데? 돈 필요하냐? 아니지. 이제 너도 돈 버는데? 그걸로 부족할 정도면, 보증 섰냐?”
“뭐래? 그게 아니고, 오빠 강서준하고 그렇게 친해?”
“안 친한데?”
“잉?”
“왜?”
서소라가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강서준이 오빠하고 되게 친하다고 SNS에 글 올렸잖아.”
그가 영화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AKX 픽처스와 강서준, 권경철은 수습을 위한 글을 SNS에 올렸다. 그때 강서준이 서정우와 친한 척을 했다.
“아아. 그거 그럴 사정이 좀 있어서.”
“역시 잘 아나 보네?”
서정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진짜 원하는 게 뭐냐?”
“소개 좀 해줘.”
“강서준이랑?”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응!”
“너도 인사는 한 사이잖아.”
“그냥 인사하는 거 말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단둘이 만나는 코스로.”
“그건 진짜 서준 씨에게 못할 짓이지.”
“이렇게 나올 거야? 동생이 연애 좀 하겠다는데!”
“연애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결해라.”
서소라가 방금 떠온 물을 벌컥 마신 후에 말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선화 언니한테 부탁해야겠다.”
“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하라매!”
* * *
서정우가 저쪽 차원으로 넘어갔다.
그는 일단 박철우를 찾아갔다.
박철우가 잘 차려입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손을 들었다.
“어. 정우 왔냐?”
“갑자기 왜 보자고 한 거야? 곡 계약에 문제 생겼어?”
“그거야 잘 진행되고 있지.”
“얼굴에 선글라스는 왜 쓴 거야?”
“그게 말이다.”
박철우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눈가에 멍이 들어있었다. 좀 흐릿하긴 하지만 멍 자국이 틀림없었다.
서정우는 그걸 보자마자 쌍둥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꿈에서 엄마가 아빠 때렸어요. 엄청 때렸어요. 아빠 죽는 줄 알았네.
– 맞으면서도 좋다고 웃었어요. 아빠 변태인 줄.
서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굴에 그거….”
“자고 일어났더니 생겼더라. 그런데 더 신기한 게 뭔지 아냐? 내가 또 우리 쌍둥이를 만나는 현실감 가득한 꿈을 꿨는데, 이번에는 우리 와이프까지 만났다. 그런데 우리 와이프가 날 보자마자 패더라. 내가 죽은 줄 알았다면서. 살아있으면서 왜 안 돌아왔냐면서. 희선이는 그게 현실인 줄 알았나 봐. 그랬겠지. 나도 처음 꿨을 때는 그랬으니까.”
“어…. 그래?”
“그런데 그때 맞은 자리가 일어나보니까 멍들어 있어. 꿈에서는 엄청 세게 맞았는데, 깨고 보니 이렇게 약한 자국만 남은 게 아쉽다. 그래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어디냐.”
이런 현상은 서정우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기하네.”
“신기하지?”
박철우가 활짝 웃었다.
“그래서 확신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희선이하고 우리 쌍둥이가 다른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 같다.”
서정우는 혹시 박철우가 평행차원에 대해 눈치챘나 싶어 물었다.
“어떤 다른 세상?”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래도 말이야.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서정우가 박철우를 가만히 보며 생각했다.
‘그 단검, 성물의 성스러운 힘이 저쪽 차원의 쌍둥이들과 연결된 꿈에 내 예상보다 강하게 영향을 끼쳤네.’
비슷한 경우는 이미 알고 있다. 이선화의 목걸이는 몸에 해로운 과잉 칼로리를 저쪽 이선화에게 떠넘긴다. 저쪽 이선화는 요즘 훈련을 열심히 받기 때문에 그런다고 체중이 늘지는 않았다.
그가 저쪽 세계 쌍둥이와 나희선, 그리고 박철우의 관계를 떠올렸다.
‘하나의 세계가 둘로 나뉜 건 2000년. 철우 아저씨는 그 이전에 결혼했고, 그 이전에 임신했어. 그러니까 아내도 맞고 딸도 맞지.’
박철우가 아쉬워했다.
“물건도 전해줄 수 있으면 진짜 좋겠는데, 그건 아직 안 되더라. 맞은 건 이렇게 몸에 남는데 말이야.”
“물건이라니?”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물건을 전해야 한다면, 서정우가 대신 전해줄 수 있다.
“총이라도 몇 자루 보내주고 싶어서. 우리 와이프하고 쌍둥이가 비무장이더라고.”
서정우가 정색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저쪽에서 변호사나 아이돌 가수가 총을 가지고 다니면 당장 뉴스에 나고 체포된다.
“응?”
“선물로 총은 아니라고 봐.”
“야. 요즘 세상에 총 없이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도 그건 아니야.”
* * *
서정우가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남수정은 동생과 사는 오피스텔에서 샤워한 후에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배에는 원래 칼자국이 있었다.
도부장파 놈들이 쳐들어와서 칼로 찔렀을 때 생긴 상처는 서정우가 레드 포션으로 치료했다. 그런데 레드 포션이 칼자국까지 완벽하게 지우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서정우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배에 일부러 칼자국을 조금 냈다.
그때 생긴 흉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라졌다. 그녀는 오늘도 그 흉터를 욕실 거울로 확인했다.
“분명히 아저씨가 날 살리겠다고 빨간약을 꺼냈는데.”
그녀는 정신을 잃기 직전에 서정우가 금속 원통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서 빨간 액체가 든 작은 유리병이 나왔다.
“아저씨가 그 빨간약을 발라준다고 했는데.”
빨간약을 바르면 낫는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천국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났다.
그때만 해도 배에는 찔린 상처가 남아 있었다. 도부장파 조폭들은 그녀가 죽을 거라고 확신하고 떠들었지만, 의사는 그 정도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생긴 상처의 흉터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녀가 손으로 흐릿하게 남은 흉터를 만지면서 흥얼거렸다.
“빨간약. 아저씨가 발라준 빨간약.”
몇 번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눈이 동그래졌다.
얼른 옷을 입고 나와 노트와 볼펜을 꺼냈다. 그녀는 볼펜으로 노트에 줄 다섯 개를 그었다. 순식간에 오선지가 생겼다.
그때서야 다른 문제를 깨달았다.
“아참. 난 악보 쓸 줄 모르지.”
쓰는 건 고사하고 읽을 줄도 모른다.
그녀는 노트북을 켰다. 이 노트북은 집주인 이선화가 빌트인 가전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준 것이다.
그녀는 노트북의 녹음 기능을 켜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빨간약. 아저씨가 발라준 빨간약.”
기분이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녹음을 끝내고 자기가 흥얼댄 걸 들어보았다.
“좋은데?”
그녀는 자기 목소리를 따라 부르며 티셔츠를 올려 배를 다시 확인했다.
서정우는 그녀의 배에 다시 상처를 낼 때, 흉터가 조금만 남게 기술적으로 찔렀다.
그녀를 치료한 의사도 구급대원에게 사연을 듣고 나서 흉터가 안 남게 최선을 다해 꿰맸다.
그때만 해도 레드 포션의 잔여 효과가 약간 남아 있었다. 포션의 엄청난 치료 능력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잔여 효과 덕분에 한동안은 회복이 좀 빨랐다.
그녀는 서정우가 여러 병 챙겨준 저레벨 상처 회복 물약도 목이 아플 때마다 마셨다. 저쪽 세계에서는 한 병에 오천 원이면 사는 물약이지만, 거기 소량 포함된 몬스터의 특정 성분에는 상처가 나을 때 흉터가 생기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모든 긍정적인 상황이 더해져서, 그녀의 배에 있는 흉터는 이제 미리 알고 봐야만 구별이 될 정도로 흐릿했다.
책상 위에 서정우가 준 저레벨 상처 회복 물약이 보였다.
그녀가 약병을 들고 전등불빛에 비춰보았다.
“잘 보면 이 약에도 빨간 기운이 살짝 있는 것 같은데. 이건 혹시 그 빨간약을 물에 탄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