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230
10권 25화
“소생이 소저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단목세가의 성으로 하겠소.”
단목예설이 세상에 원한을 가지게 된 것은 단목세가가 무림인들의 손에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세가를 일으켜 세울 기회를 준다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단목예설도 귀가 솔깃했다. 이미 천하 무림을 정복한 백이건이기에, 그의 도움이 있다면 예전 단목세가처럼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좋아요, 그럼 예전 단목세가가 있던 곳에 거대한 장원을 지어 줘요.”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북리자령, 그 계집은 절대 안 돼요.”
북리자령만 없으면 자신을 견제할 여인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여인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알겠소.”
백이건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북리자령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쌀이 익어 밥이 되었는데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
일단 북리자령에게 작업을 거는 건 단목예설과 자신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 다음으로 계획했다.
한편, 뒤늦게 마군휘가 음채아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한 일이 있었다. 마군휘는 천마성이 어떻게 되든 말든 여전히 천하를 돌아다니며 여색을 탐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마천룡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갔을 텐데도 그는 천마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음채아는 당연히 그의 말에 뛸 듯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마군휘가 왜 이렇게 추하고 더러워 보이는지 욕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 백이건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백이건이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을 부정하다 말할까 싶어 매몰차게 대했다. 마군휘는 눈치 없이 다시 한 번 말을 했다가 온갖 저주와 욕설을 듣고 말았다.
아미파와 북해빙궁은 서로 성대한 결혼식을 먼저 하겠다며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예부용과 음채아의 사이도 앙숙으로 발전해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녀들은 매일 백이건을 찾아와 누굴 더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강요했다.
백이건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끙!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전략을 쓰는 건데.’
한 번 방법을 잘못 세워서 평생 피곤하게 살게 될 판이었다.
백이건을 찾아와 협박한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제갈융이었다. 그는 백이건에게 제갈사란을 어떻게 할 거냐며 따져 물었다.
“아니, 손 한 번 잡았다고 인생을 책임지라는 겁니까?”
“가슴도 만졌네.”
“스친 것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 여인의 정절을 더럽혀 놓고 책임지지 못하겠다는 건가?”
“어이구, 겨우 그런 일로 정절이 더럽혀질 수도 있는 겁니까?”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사란이와 노부가 죽는 모습을 보게 될 걸세.”
“이야, 세상 한번 무섭네. 이런 것으로도 협박이 될 줄이야.”
백이건은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여인들의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이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편, 모용웅풍은 뒤늦게 제갈융이 백이건을 찾아가 협박했다는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 일가의 가주가 창피한 것도 모르고 딸자식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백이건과 결혼을 시키려는 작태가 한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모용세가만 뒤처질 것 같았다. 그는 당장 모용강설을 찾아갔다.
“너는 혹시 무슨 건수 없느냐?”
“건수라니요?”
“으이구, 너는 사란이처럼 맹주와 손 한 번 잡은 적도 없냔 말이다.”
“지금 그게 아버지가 딸에게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속상하기는 모용강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갈사란에게 배신감조차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억지를 써야겠다. 너도 맹주에게 손을 잡힌 거야. 가슴도 만져지고.”
“말도 안 돼! 그랬다가 망신을 당하면 어쩌려구요?”
그래도 끝까지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흘흘! 맹주에게 여자가 어디 한두 명이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원래부터 제갈세가와 모용세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제갈사란과 모용강설마저 틀어지고 앙숙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러다 내가 돌지.’
그렇게 백이건은 도망치듯 진촌 마을로 내려왔던 것이었다.
四
유안걸은 백안문의 호북성 분타주였다. 그는 원래 탐욕이 많고 간사한 자였다. 그는 천무각을 백안문의 분타로 흡수시키고, 그 공을 인정받아 본단으로 들어서고 싶었다. 그래서 임대방의 사형을 내세워 천무각을 송두리째 가로채려 했다.
통천방에서 방해를 하고 있지만, 지금 백안문의 문주가 누구던가? 무림의 사가들은 백이건을 고금제일고수라 부르고 있었다. 통천방의 뒤에 천마성이 있다면 백안문에는 백이건이 있는 것이다.
“통천방주! 끝까지 백안문과 해보겠다는 것이오?”
“천무각에게 작업을 한 것은 우리가 먼저였소. 천하에 상도의라는 것이 있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탓한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소?”
“그래서 백안문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통천방주도 바보가 아닌 이상 백안문과 전쟁을 하는 건 두려웠다. 아니, 백이건이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 공정하게 무공의 고하로 결정을 하는 게 어떻겠소?”
“흐흐, 비무로 결정을 하자?”
유안걸의 생각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통천방까지 손에 넣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임대방과 임조영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무각의 주인은 그들인데, 자기들 멋대로 결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더 서글픈 현실은 그들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백이건은 처음에는 가급적 나서지 않으려고 했었다. 헌데, 이건 갈수록 가관이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았다.
“이보시오, 분타주! 그대의 행동이 백안문의 전체 뜻이오?”
유안걸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건 네놈이 알아서 무얼 하느냐?”
“그대의 불의한 행동을 백안문주는 알고 있나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오.”
“미친 놈!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네놈부터 가만두지 않겠다.”
“흐음…… 이거 좋지 않군.”
백이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유안걸은 자신의 협박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비릿하게 웃었지만, 백이건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용하게 처리하려 고민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천무각 안으로 봉황 문양이 아름답게 장식된 사두마차가 들어섰다. 무림에서 봉황 문양의 마차는 봉황거 밖에 없었고, 봉황거의 주인은 천하에서 오직 북리자령 한 명뿐이었다.
봉황거가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서더니 북리자령과 화설란, 그리고 문인혜인이 내려섰다. 그녀들은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백이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상공! 여기에 계신 줄 모르고 한참 찾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따듯했다. 백이건의 주변에 여인들이 많았지만, 이미 북리자령에게 모든 사연을 들은 뒤였다. 잘못이 있다면 그런 악독한 계획을 만든 단목예설이지 백이건이 아니었다.
북리자령도 백이건을 찾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백안문의 군사였다. 하지만, 백이건은 구파일방과 육문칠가의 맹주이기도 했다. 거기에 북해빙궁의 사위도 될 몸이라 상황이 복잡했다.
백이건이 어느 한쪽의 문파에 집중을 하면 세력 판도가 급속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천하의 북리자령도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백이건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녀는 백이건이 백안문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허나, 다른 문파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지금 무림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제국이 커도 문제는 문제였다. 백이건은 여자 문제에다 문파들 문제까지 겹쳐서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백 공자님! 당장 백안문으로 돌아가요. 갑자기 떠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아니, 잠시 고향에 내려오는 것도 안 됩니까?”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죠.”
“차라리 백안문은 북리 소저가 맡아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건 안 돼요. 오히려 저는 다른 문파에 대한 관심을 끊어 달라고 말하고 싶군요.”
“허허, 이것 참!”
백이건은 가볍게 혀를 찼지만, 그는 이걸 빌미로 북리자령과 문인혜인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자신만 다른 사람들에게 협박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단목예설이 아이를 낳으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구파일방과 육문칠가의 장문인들이 화가 난 표정으로 날아 내렸다. 그들은 북리자령이 하는 말을 멀리서 들었던 것이다.
“북리 군사,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맹주님은 정식으로 구파일방과 육문칠가의 맹주가 되었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니 백안문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마시오.”
“누가 우리 손녀사위를 네놈들 것이라 주장한단 말이냐?”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음세희가 나타났다. 그녀는 백이건을 북해빙궁의 궁주로 내세워 천하 무림 위에 군림할 생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백이건을 다른 문파에 빼앗길 수 없었다.
‘어이구, 내 팔자야.’
사람들을 피해서 여기까지 내려왔던 것인데,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편, 통천방주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 작은 천무각에 천하의 모든 고수들이 모두 몰려들 줄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천무각이 천하 무림이 노릴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어?’
유안걸의 표정은 보기에도 불쌍해 보일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방금 전에 자신이 백이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 그럼 저분이 고금제일인이라 칭송받는 백이건 맹주님이었던 거야?’
그는 사람이 너무 쪽팔리다 보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금제일고수에게 미친놈이라 욕도 하고 죽이겠다고 협박도 한 거야?’
그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때, 이십여 명의 관군이 찾아와 백이건을 찾았다. 백이건은 그들이 혹시 자신의 과거를 알고 온 건 아닌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소생이 백이건이란 사람인데, 무슨 일입니까?”
“삼왕야께서 찾으십니다. 황실에도 백 공자의 소문이 알려져서 폐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백이건은 과거 때문이라도 황실은 피하고 싶었는데, 이젠 빼도 박도 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심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황실에서는 칠채군주 주아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했던가?
여자들의 싸움에 지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던 백이건이었지만, 새로운 여자만 생각하면 또 기운이 불끈불끈 솟아나기도 했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사미오봉 모두를 가져?’
사미오봉 중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여인들이 있었다.
백이건의 머릿속은 새로운 작업 구상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하를 얻은 제비 백이건.
하지만, 어쩌면 본격적인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