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58
56화 정체 (1) >
다행히 풍영팔류종의 성탑을 벗어나자 무천정종의 무사들은 없었다.
아마도 무천정종의 거의 대부분의 전력이 풍영팔류종의 성탑 근처에 모인 듯 했다.
일이 틀어질 경우 전쟁을 치러야 하니 당연할 지도 몰랐다.
서둘러서 경공을 펼치고 있지만 마음이 조급하다.
그때 소담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런데 운휘야. 어차피 그 불여우 같은 계집애가 죽는 게 너한텐 편한 거 아냐?
‘뭐?’
-걔도 혈마를 노리고 있는데, 사실 경쟁 관계 아냐?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백혜향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줬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적으로 부딪칠지언정 지금은 살릴 거다.
-나도 이건 운휘의 말에 동의한다. 목숨을 구해준 자를 죽게 내버려두는 건 도의적으로 어긋난다.
도의라.
그런 깊은 의미까지는 아니다.
옳고 그름, 이익을 떠나 내 목숨을 구해준 백혜향이 이런 식으로 개죽음을 당하게 내버려둔다면 나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을 뿐이다.
-쳇. 아까운 기회인데.
소담검이 툴툴거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굳어져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무천정종의 성탑이 보였다.
-어라? 아무도 없네.
성탑의 근처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보통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무사들이 있을 텐데 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성탑의 입구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유인책인 것 같다. 운휘.
남천철검의 말에 동의했다.
마치 문을 열어놓은 것이 정면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 했다.
사실 저 안에서 수많은 검들의 이명이 들리고 있었다.
-……..
아마도 매복해있는 자들일 거다.
기척을 죽일 수는 있어도 검을 지니고 있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다.
나는 성탑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어보았다.
-어디에 있을까?
그걸 모르겠다.
제일 의심 가는 곳은 꼭대기 층이다.
성탑의 꼭대기에 있다면 단번에 은연사를 이용해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곳에 없다면 허탕을 치는 셈이 된다.
‘심문을 해야 하나.’
누군가를 붙잡아 위치를 불게 하는 게 더 빠를 듯 했다.
쉽게 입을 열지는 모르겠지만 저 많은 자들 중에 누군가는 가벼운 입을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결국 함정 속으로 제 발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네.
‘……’
원한다면 들어가 줘야지.
어차피 부딪쳐야 하니 말이다.
여유가 없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무천정종의 성탑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쾅!
열려 있던 문이 굳게 닫혔다.
커다란 빗장이 잠귀는 소리와 함께 성탑 내부 곳곳에 매복해 있던 사십 여명 정도 되는 무천정종의 무사들이 몰려나왔다.
서른 명이 일류, 열 명이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역시 전력을 남겨놨군.’
나를 제압하기 위해 남겨놓은 전력인 듯 했다.
-너무 많아. 괜찮겠어?
괜찮을 리가 있나.
매복해있던 그들이 빠르게 주위를 포위했다.
그들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턱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뒀는데, 정말로 올 줄 몰랐군.”
기감으로 느껴지는 기운이 맞다면 초절정 초입의 고수인 것 같다.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구색을 맞췄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떠보았다.
“당신들의 종주가 진짜 무천검제 선배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턱수염의 중년인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군.”
이 자의 말투를 들어보면 그 반백의 노인처럼 가짜 무천검제의 사람인 듯 했다.
하긴 함정을 팠는데, 정체를 모르는 이들을 남겨둘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렇군요. 한데 그 고작 계집 한 명을 붙잡고서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파는 쪽도 그리 현명해보이진 않는군요. 치졸하다고 할까나.”
비아냥거리는 나의 말투에 중년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디 있습니까?”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군.”
그가 손을 들어올려 수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당장 저놈을 죽….”
“그 전에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아무래도 이곳에 제 조력자들이 있는 것 같군요.”
뜬금없는 나의 말에 중년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별 수를 다 쓰는구나. 그런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 눈을 보면 누가 자신이 조력자인지 알 겁니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
바로 그때였다.
“죽엇!”
-푹!
‘!?’
무사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자신의 옆에 있던 자의 목을 찔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무사들이 당황해했다.
“양평. 네가?”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죽어랏!”
“뭐, 뭐얏?”
그를 기점으로 나를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서로를 무차별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지 못한 상황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대체?”
환의안의 효능이었다.
선천진기의 삼할 가까이가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졌지만 전과 달리 선천진기가 더욱 늘어나 버틸 만 했다.
얼핏 열세네 명 정도가 환의안에 걸려들었다.
전부 걸린다면 좋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이놈 정말 간자로구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닥쳐. 그럼 네놈들이 한 짓은 뭐야!”
아군이라 생각했던 자들이 기습적으로 서로를 찔러대자, 환의안에 걸리지 않은 자들도 의심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환의안의 술법이 풀리고 정신을 차렸다고는 하나, 이미 동료를 찔러 죽인 시점에서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팟!
환의안에 걸리지 않은 자들을 먼저 노렸다.
시간이 지나면 저들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뜻대로 되어가나 싶었는데, 턱수염의 사내가 공력이 실린 일갈을 내질렀다.
“갈!”
그의 외침에 서로를 공격하던 무사들이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일시적으로 멈췄다.
턱수염의 사내가 노기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간자는 없다! 저놈이 사술을 부린 거다. 넘어가지 마라!”
“사술?”
생각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환의안으로 몇 번 재미를 보았기에 이번에도 통할 줄 알았는데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아쉽다. 더 많이 숫자를 줄일 수 있었는데.
턱수염의 사내가 내게 검을 겨냥하며 말했다.
“네놈. 정체가 대체 무엇이냐? 어떻게 이런 사술을 부릴 수 있는 거지?”
이에 똑같이 그 말을 돌려줬다.
“곧 죽으실 건데 굳이 알려드릴 이유는 없죠.”
“이노오오옴!”
턱수염의 사내가 허공으로 박차 올라 나를 향해 패도적인 일검을 내려쳤다.
이에 남천철검을 위로 들어 올리며 이 자의 검을 막아냈다.
-챙!
놈이 십성 공력을 일으켜 검 채로 나를 양단 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자신보다 공력이 얕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노림수가 있다는 거겠지.
-운휘 왼쪽이야!
그러면 그렇지.
눈을 감고 있는 왼쪽 사각을 노렸다.
나는 턱수염의 사내의 검을 막은 상태로 왼손을 뻗었다.
그 순간 소담검이 묶여있던 은연사가 비검처럼 날아가 기습을 노렸던 자의 복부로 쇄도했다.
“칫!”
놈이 검의 궤적을 틀어 소담검을 쳐내려했다.
그러나 내가 은연사에 실을 검지로 살짝 누르자,
-촥!
소담검이 방향을 틀며 놈의 목을 꿰뚫었다.
“컥”
-촤르르르!
놈의 목을 꿰뚫은 소담검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광경에 무사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 단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궤적을 틀었어!”
“어떻게 한 거지?”
비도살왕의 섬영비도술의 기본 중 하나가 공중에서 은연사에 묶인 비도의 궤적을 자유자재로 꺾는 것이었다.
늘 틈나는 대로 섬영비도술을 연마한 나였다.
이제는 제법 그럴 듯하게 비도, 아니 비검술을 다룰 수 있었다.
“이놈. 검만 익힌 게 아니구나.”
검을 맞대고 있던 턱수염의 사내가 그 말과 함께 기습적인 발차기로 내 갈비뼈를 걷어차려고 했다.
이에 나는 단검을 회전시키며 놈의 발목을 노렸다.
비도술과 팔뢰단검술을 익혔기에 근접하든 멀리서 공격하든 내게 문제될 건 없다.
“큭!”
-탓!
놈이 화들짝 놀라서 다리를 접고서 내게서 검을 뗐다.
신형을 날리는 그에게로 섬영비도술의 비기 중 하나인 비영검원(飛影劍原)을 펼쳤다.
은연사의 줄을 손가락으로 연주를 하듯이 누르자, 줄이 떨리며 단검에 잔영이 생겨나 여러 개로 보였다.
“흥!”
뒤로 신형을 날린 놈이 검초를 펼치며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말 그대로다.
빠르게 움직여서 잔상이 된 게 아니라 눈을 현혹시키는 기술이라 진짜 단검은 하나다.
-촤르륵!
단검이 놈의 검에 걸리면서 은연사가 묶였다.
이에 나는 그것을 잡아당겼다.
“이런!”
턱수염의 사내가 공력을 끌어올리며 버티려 들었지만 내가 은연사에 주입하는 선천진기는 그의 공력보다 더욱 강했다.
-촤르르르!
바닥에 발을 끌면서 놈이 끌려왔다.
“오냐! 그럼 내가 가마!”
끌려오던 놈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대로 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소담검이 묶여 있는 상태로 내게 검초를 펼치려 들었다.
“생각이 짧군요.”
“뭐?”
나는 왼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검초를 휘두르던 놈의 검이 그것을 따라 왼편으로 향해졌다.
“아닛?”
-푹!
이를 놓치지 않고 나는 놈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었다.
머리가 꿰뚫린 턱수염의 사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이 화들짝 커져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이노오오옴!”
그때 절정의 고수 세 명이 내게 동시에 검초를 펼쳤다.
이에 나는 검을 비스듬히 잡고서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몸이 빠르게 회전을 하며 날카로운 검초가 회오리바람처럼 위로 솟구쳤다.
진 성명검법 제 4초식 회룡승검(回龍昇劍)이었다.
-채채채채챙!
“크헉!”
“큭!”
검초에 나를 노렸던 세 사람 모두가 뒤로 튕겨나갔다.
그들의 전신이 검흔들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우두머리에 이어서 절정의 고수 셋이 동시에 합공을 했는데도 패퇴를 당하자,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자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놈을 여기서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 시간을 끌어라!”
“그렇게 둘 것 같습니까?”
저들의 속셈에 나는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눈꺼풀에 가려져 있던 눈을 뜨자 세상이 환해지며 나를 에워싼 자들의 진기의 흐름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누, 눈이?”
-촤악!
“끄악!”
내 왼쪽 눈을 보고서 놀라하는 그 자를 일 검에 반 토막으로 베었다.
피가 온몸을 적셨다.
반 토막이 난 동료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는 그들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자초한 겁니다.”
대문을 굳게 닫아줘서 고맙다.
금안을 비롯해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줬으니 말이다.
* * *
-타타타탁!
날아가다시피 할 정도로 서둘러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놈들 중 한 명이 죽기 전에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면서 백혜향의 위치를 알려줬다.
역시 다수가 있으면 한 명쯤은 심약한 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놈에게 백혜향이 감금되어 있는 위치를 듣고서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냥 위에서부터 뚫고 들어갔으면 됐는데, 괜히 복잡하게 생각한 것 같다.
제발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불안하기 짝이 없다.
-……..
위에서 수많은 검의 이명이 들렸다.
나머지 층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역시 백혜향이 있는 곳은 적들이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6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운휘. 검들이 슬퍼하고 있다.
‘슬퍼하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검들의 이명 소리가 오열에 가깝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의아해하며 윗층으로 올라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거 설마…..
사방에 널려 있는 수십 명의 시신들.
그 사이에 전신이 새빨간 피로 젖어 있는 한 여인이 다 부러진 검을 쥐고서 서있었다.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그녀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심지어 갇혀 있는 줄 알았더니, 감금된 곳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온 모양이다.
“아가씨!”
나의 외침에 백혜향이 가늘어진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더니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너! 살아있었구나.”
그녀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 그녀에게 뛰어갔다.
“큭!”
그때 백혜향이 비틀거리더니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그녀를 부축하려고 하자 손을 내밀고서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 단지 금제를 푸느라 무리해서 역혈로 운기를 했더니, 내상을 입었을 뿐이야.”
역혈(逆穴)?
운기를 거꾸로 했다는 말인가?
그런 식으로 운기를 하면 주화입마를 입고 만다.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너야말로 그 상처를 입어서 죽었나 싶었는데…..쿨럭.”
그녀의 입에서 피 기침이 흘러나왔다.
역시 내상이 심하긴 한가보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다.
그러자 백혜향이 피식하고 웃더니, 갑자기 한 팔로 나를 꽉 잡아당기더니, 내 품안에 안기듯이 기댔다.
-뭐 하는 거야!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도 꼴을 보아하니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피를 많이 봤구나.”
사실 그녀 못지않게 내 몰골도 피로 얼룩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말했다.
“따뜻하네. 네 온기.”
목소리에서 뭔가 안도하는 듯하여 차마 떼어놓기가 힘들었다.
잠시 이렇게 있던 그녀가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놈은 어디에 있지?”
가짜 무천검제를 말하는 건가?
“……지금 무정풍신과 겨루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녀를 무사히 구출했으니, 이제 그에게로 가봐야 할 것 같다.
그때 백혜향이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됐네. 안 그래도 되돌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지극히 그녀다웠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절대 기가 죽지 않았다.
“어떻게 되돌려주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 말에 그녀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았거든.”
* * *
한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풍영팔류종의 성탑 앞으로 또 다른 무장 세력들이 나타나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무쌍성의 다른 사대 무종들이었다.
해왕성종의 종주 왕처일이 이끌고 온 무사들과 섬경무종의 종주 구양경이 이끌고 온 무사들이 풍영팔류종의 성탑 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덕분에 한참 격렬했던 싸움이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후우….후우….”
가짜 무천검제 천무성이 호흡을 고르며 무정풍신 진성백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강한 그의 무위에 꽤나 놀랐다.
고작 십여 년 전에 벽을 넘었기에 자신이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여겼던 그였다.
그러나 진성백의 역량이 이 정도까지 향상되었을 줄은 몰랐다.
지금은 누구 한 명이 죽어야 승부가 날 판국이었다.
‘낭패로구나. 원래의 계획대로 무형지독을 극소량으로 천천히 복용시켜서 약하게 만들어 죽였어야 했는데.’
그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모두가 그 가증스러운 하운이란 놈 때문이었다.
놈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꼬일 일이 아니었다.
해왕성종의 종주 왕처일이 소리쳤다.
“천 종주는 이 일에 대해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요!”
“그게 무슨 소리요. 천 종주가 어째서 풍양팔류종의 성탑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진 종주가 해명해야 할 일이 아니오!”
무천정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섬경무종의 종주 구양경이 그를 나무랐다.
그들이 이렇게 나선 이유는 각자의 동맹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싸움이 워낙 커진 형태로 어느 한쪽이 무너지게 되면 무쌍성의 방향이 판가름 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동맹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선수를 쳐야 겠구나.’
진성백을 노려보고 있던 가짜 무천검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 종주들께는 이 사람이 볼 낯이 없소이다. 이 모든 게 노부가 덕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 같소.”
뒤이어 진성백이 소리쳤다.
“그런 식으로 수습하려 들지 마시오. 전쟁을 건 것은 본 종이 아닌 무천정종이오. 아니 엄밀히 이야기하면 저기 있는 가….”
“또 노부더러 가짜 무천검제라고 우길 참이오?”
“가짜?”
뜬금없는 가짜라는 말에 두 종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반면 진성백은 먼저 선수 치는 가짜 무천검제의 외침에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이에 안 되겠다 싶어 사실을 밝혔다.
“저 자는 진짜 무천검제가 아니오. 진짜 무천검제는 저 자의 손에 잡혀 있소.”
-웅성웅성!
‘이게 무슨 소리야?’
‘진짜 무천검제가 잡혀있다고?’
그 말에 주변이 술렁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의 비밀을 밝혀졌는데, 가짜 무천검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하게 소리쳤다.
“거짓말이외다. 노부가 진 종주가 후계자로 받으려 했던 자가 혈마의 후손임을 밝혀내고, 노부의 제자를 죽인 녀석도 혈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채고서 내놓으라고 하니, 진 종주가 그를 보호하려고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오!”
“혈마의 후손?”
혈마의 후손이라는 말에 또 다시 분위기가 술렁였다.
무쌍성 안에 혈마의 후손이 잠입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자가 정녕.’
진성백은 그제야 가짜 무천검제의 속셈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허위 사실로 진실 공방으로 문제를 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끝까지 간교하게 머리를 굴리는 자였다.
“진 종주. 정말로 천 종주의 제자를 죽인 자를 보호하려고 그런 것이오?”
구양경의 물음에 진성백이 강하게 소리쳤다.
“두 분 종주들께서는 현혹되지 마시오. 저 자는 지금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로 진실 공방으로 문제를 끌고 가고 있소.”
“노부가 진실 공방을 해서 무엇 한단 말이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노부에게는 혈마의 후손을 잡았다는 증거가 있소. 진 종주에겐 무엇이 있소이까?”
가짜 무천검제가 속으로 웃었다.
그 증인이라는 하운은 지금쯤 자신의 사제나 무천정종의 성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거다.
정기신 중 기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전력이면 충분히 죽이고도 남는다.
‘흐흐흐.’
이제 무슨 수로 이를 증명할 것인가?
잘하면 이걸 계기로 풍영팔류종을 혈교 후손과 엮어서 축출하는 것도 가능할 듯 했다.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한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고작 계집을 보호하라고 그놈을 보내지 말고 끝까지 지켰어야지. 진성백 이 어리석은 놈아.’
그를 비웃고 있었는데, 진성백이 어딘가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뭐지?’
무정풍신이라 불리는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의아해하며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뭣!?’
익숙한 외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완전히 고개를 돌린 가짜 무천검제의 두 눈에 피골이 앙상한 노인을 업고 있는 하운이 보였다.
‘저, 저놈이 어떻게?’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