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91
66화 우군도독부 (1) >
부교주.
명칭만 들어도 교주 다음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다.
회귀 전의 그녀는 원래 교주가 될 인물이었고, 지금도 충분히 그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만나게 되면서 조금 변한 것 같다.
여전히 잔혹함과 오만, 포악함이 존재했지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교주가 될 수 없다면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이인자의 위치였다.
놀란 것도 잠시였고 백혜향의 의아해하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그녀 역시도 설마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름 교주 자리를 놓고 다퉜는데 실각이 아니라, 이런 커다란 권력을 줄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겠지.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감사한다.
어떤 마음에서 그랬든지 백혜향은 무쌍성에서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때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악의 손에 생을 마감했을 거다.
그런 나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평소와 달라보였다.
자신을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에 남다른 기분이 들어서인 것 같다.
피식하고 웃은 그녀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와 엎드리며 소리쳤다.
“합당하지 않사옵니다!”
그는 삼혈성 혈살귀 양전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좌호법 하종일이 다그쳤다.
“삼혈성. 아직 직위 책봉식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 무슨….”
“좌호법.”
그런 그를 내가 불렀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에게 손짓으로 잠시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좌호법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나는 삼혈성 양전을 석좌에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엇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지?”
“부(副)라는 것은 그에 버금가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인즉 백혜향 아가씨가 받게 될 부교주의 직책은 교주에 버금가는 자리란 말입니다. 이것은 본교가 생겨난 이래 없었던 직위입니다.”
“그래서?”
“본교에서 교주의 자리는 태양과도 같습니다. 하늘의 태양은 하나이온데, 그런 태양과 버금가는 위치를 만들게 되면 장차 교주께도 누가 될까 사료되옵니다.”
그런 그의 말에 교인들이 웅성거렸다.
역시 삼혈성쯤 되는 인물이니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백련하 산하의 인물이다.
백혜향이 이인자의 자리를 가지는 것을 누구보다 반대할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반대하게 되면 내게 정면으로 항명하게 되는 것이니, 부교주의 직위가 내게 누가 된다는 식으로 돌린 것이다.
나름 머리를 굴렸다.
한데 그가 하나 간과한 게 있다.
이에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둘러서 이야기할 필요 없다. 백련하보다 더 높은 직위를 내린 것이 불안한 것이냐?”
‘!?’
그 말에 삼혈성 양전의 표정이 굳어졌다.
백련하 산하의 혈성들 모두가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자리에서 내가 대놓고 이를 거론할 줄은 몰랐겠지.
그는 이를 직접 이야기할 수 없어도 나는 일인자이기에 가능했다.
“그게 아니오라….”
“아니지. 부교주라고 한들 혈마가 아닐지 언데 어찌 내게 누가된다는 것인가?”
“혈마이시여. 신은 그런 의도로…..”
“모두 들어라!”
목소리에 공력을 싣자, 나의 목소리가 광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뭐 하려고 그래?
이 참에 확실히 하려고.
하나하나 저들의 눈치를 보는 짓은 피곤한 일이다.
이런 기회가 왔으니 확실히 나의 의사를 밝히고 쓸데없는 울타리 안에서의 힘의 줄다리기를 없애야겠다.
“너희들은 본좌의 교인들이냐? 아니면 백혜향과 백련하의 교인들이냐?”
본질적인 물음에 광장이 고요해졌다.
모두가 내가 어떤 의미로 이 질문을 한지 알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그쳤다.
“본좌의 말이 우습게 들리는가?”
쩌렁쩌렁한 외침에 이내 교인들이 소리쳤다.
“혈마의 교인들입니다!!!”
나는 삼혈성 양전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교인이 아닌가? 어찌하여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거지.”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양전이 머리를 숙이며 외쳤다.
“혈마의 교인입니다.”
“잘 알고 있군. 한데 무엇이 불만인 거지?”
“소신은 그저….”
“백혜향과 백련하에게 능력과 신분에 맞게끔 직위를 준 것이 불안하기라도 한 것이냐?”
“그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그에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석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백혜향과 백련하의 신분은 전대 혈마의 직계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직위는 줄 수 없다.그리하여 본좌는 백련하에게 본교의 가장 명예로운 직인 대제사장의 직위를, 백혜향에게는 부교주의 직위를 부여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라는 거지?”
그런 나의 말에 눈치를 보던 삼혈성 양전이 조심스레 말했다.
“말씀대로 하시면 어느 한 사람에게 편향된 직위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백혜향을 무위로 꺾을 수 있나?”
그 말에 삼혈성 양전의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녀의 무위는 일존 단위강이나 나나 스승님인 기기괴괴를 제외한다면 존성들 중에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하다.
물론 겨룸이라는 것은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본교는 무를 숭상하는 집단이다. 백련하가 언제라도 그 정도 역량을 갖춘다면 백혜향에게서 부교주의 직위를 가져갈 수 있다.”
굳이 토를 달고 싶으면 능력껏 백혜향의 자리를 빼앗을 기회를 준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백련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큼 자신의 무위를 성장시켜야 가능하겠지만.
백혜향이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가 있었다.
마치 ‘바라는 바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부교주의 자리를 두고서 경쟁을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지.
‘아!’
이 모습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자리에서 공표하도록 하지. 본좌는 존성들이든 교인들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오직 실력으로만 중용을 할 것이다.”
-웅성웅성!
고요했던 좌중에 조금씩 소란스러워졌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가 입을 뗐다.
“실력으로 중용 하신다는 말씀은…..”
“누구라도 그에 합당한 능력을 지닌다면 존자의 자리이든 혈성의 자리이든 빼앗을 수 있다는 말이다.”
‘!!!’
교인들이 술렁였다.
내 말대로라고 하면 충분히 능력만 갖춰진다면 언제든지 기존의 존성들의 자리를 밀어내고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찌 그런…..”
오혈성 권퇴혈우 황강이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기존의 체제는 실력을 갖추게 되면 승직하여 직위를 늘리는 구조였다.
하지만 내가 이끌어갈 혈교는 한정된 자리를 두고서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겨뤄야 하기에 존자와 혈성들도 긴장해야 하는 체제이다.
-밥그릇이 흔들리네.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좋은 방법이다. 운휘.
-나쁘지 않군. 그렇게 되면 저 녀석들도 필사적으로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능력을 키워야 겠군.
남천철검은 그렇다치고 웬일로 혈마검 녀석도 내 말에 찬동했다.
백혜향과 백련하 산하의 파벌 경쟁 때문에 즉흥적으로 고안했지만 향후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이 편이 나았다.
귓가로 일존 단위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 정도 수준이면 된다로 그치는 게 아니니 그럴 것이다.
상향평준화가 될 지도 모른다.
스승님인 해악천의 전의가 잔뜩 올라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천상 무인이다.
반면 오혈성 황강이나 칠혈성 혈음마소 섬매향 등은 이렇게 된 것에 원흉 격인 삼혈성 양전을 원망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덕분에 이런 좋은 방안을 떠올리게 해줬으니 말이다.
“다시 책봉식을 마저 거행토록 하겠다.”
-탁!
그런 나의 외침에 백혜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 쪽 무릎을 꿇고서 내게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외쳤다.
“삼가 교주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로써 백혜향은 본교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부교주가 되었다.
더 이상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파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신경이 쏠릴 테니 말이다.
좌호법 하종일이 나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이 다음에 중요한 공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킥 반응들이 기대되네.
그렇겠지.
사대 악인의 일인인 월악검 사마착의 여식인 사마영과 약혼을 알리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좌호법 하종일이 이를 공표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한 교인이 다급히 단상 쪽으로 달려왔다.
매우 심각한 얼굴로 보였다.
“크, 큰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이혈성 수라도 유백이 나서서 단상 앞에 멈춰선 그에게 물었다.
이에 교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보고했다.
“지, 지금 삼만여 명에 달하는 관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
어마어마한 관군의 숫자에 광장이 술렁였다.
“삼만이라니?”
“그 많은 관군이 어찌?”
나 역시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관군의 행보에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지휘첨사에게 집단의 개최 승인도 받았고 통판 이석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어서 더 이상 큰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던 차였다.
한데 삼만여 명이나 되는 관군이라면 거의 토벌 급이나 전시 수준이었다.
‘부(府)급에서 움직인 게 아니야.’
이 정도 병력이면 그 위가 움직였다는 말이다.
* * *
-두두두두두!
수천에 이르는 기마대(騎馬隊)에 대지가 떨릴 정도였다.
그 뒤로 평야를 가득 메운 수많은 보병들이 오열을 갖춰서 진군해오고 있었다.
보병들의 사이로 말들이 수백여 대의 수레에 끌고 있었는데, 그 위로 커다란 활 형태의 무언가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노라 불리는 대형 합성궁(쇠뇌)이었다.
세 사람이 달라붙어서 쏘는 커다란 궁이었는데, 동시에 수십 발을 날릴 수 있고 그 위력은 성벽마저 뚫을 정도이기에 일반 화살과는 견줄 수 없다.
-척!
일정 거리에 도달하자, 선두에 있던 기마대가 푸른 깃발을 들었다.
그러자 관군이 진군을 멈췄다.
진군을 멈춘 관군의 병사들이 수레에 있는 대형 합성궁에 화살뭉치를 장착했고, 만여 명에 이르는 궁병들이 바닥에 누워 중형 노에 화살을 장전했다.
‘…….’
이를 바라보는 존성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대형 합성궁은 공성전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림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 병기이기도 했다.
-쟤들 왜 저러는 거야?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관군이 저런 전략 무기까지 끌고 왔다는 것은 여차하면 전쟁이 될 수도 있다.
개개별의 전력은 떨어져도 이게 관(官)의 무서움이었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저런 병기로 압도적인 물량전이 가능하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일존 단위강이 굳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아무리 무공을 익혔어도 저 수많은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오면 상당한 희생이 날 거다.
저들의 사정권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때 관군에서 기마병이 깃발을 들고서 달려왔다.
“사자인 것 같습니다.”
‘아!’
깃발에 우군도독부라 적혀 있었다.
역시 부 이상이 움직였다는 예상이 맞았다.
본단의 외벽 가까이까지 온 기마병이 멈춰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혈교의 교주는 비무장으로 홀로 우군도독부로의 소환에 응하라!”
나를 소환하는 외침에 교인들이 술렁였다.
우군도독부에서 나를 찾을 만한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도지휘첨사에게 개최 승인을 받기 위해 뇌물을 수수한 것이 아무래도 문제가 된 것 같다.
무림 연맹에서 손을 쓴 것일까?
그때 스승님인 해악천이 외벽 위에 서서 소리쳤다.
“어찌하여 본교의 교주님을 우군도독부에서 찾는 것이오?”
그 물음에 기마병이 소리쳤다.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화살비로 벌집이 될 것이다!”
“뭐야! 이놈이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감히!”
“해 형!”
대놓고 겁박하는 말에 화가 나서 뛰어나가려는 스승님을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가 다급히 옷자락을 붙들고 만류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전령으로 온 기마병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전쟁이었다.
“후우.”
한숨이 나온다.
즉위식을 치르는 경사로운 날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다니, 참 쉽게 풀리는 일이 없다.
나 하나를 소환하려고 저만큼의 병력을 동원한 걸로 봐서는 여기서 불응하게 된다면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겠지.
“다녀오겠다.”
“혈마이시여!”
“홀로 소환에 응하는 것은 안 됩니다!”
“차라리 저희들이 보필하겠습니다.”
존성들이 이구동성으로 만류하려 했다.
지금 당장에야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면 어찌어찌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현이나 부 단위도 아니고 여러 성을 통괄하고 있는 우군도독부였다.
괜한 마찰은 관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나는 존성들에게 고개를 젓고서 부교주가 된 백혜향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임을 맡을 때가 되었군.”
* * *
관군이 있는 곳까지 도달해가자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전에 봤던 군사들은 상대도 안 되겠는데.
그렇겠지.
우군도독부의 관군은 말 그대로 정규군이었다.
방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이었기에 부에서 운용하는 군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이런 공성전이나 무림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 병기마저 대동해서 나타난 게 아니겠는가.
선열에 휘황찬란한 갑주를 입은 턱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인과 휘하 제장들이 있었다.
‘…….의왼데.’
-왜?
저들 전부 무공을 익혔다.
애초에 무공이라는 게 무림인들만 익힐 수 있는 특권은 아니었지만 꽤 수준이 높다.
저 장군으로 보이는 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고, 휘하 장수들 역시도 일류 고수 정도는 된다.
-운휘. 조심해라. 전주인께서 관이 무서운 것은 수백만의 대군도 그렇지만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숨겨진 고수들도 상당해서라고 했다.
하기야 그렇겠지.
관에 평범한 사람들만 있다면 옛적에 황실은 전복되었을 것이다.
황실에는 무림조차도 놀라워 할 만한 숨겨진 힘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을 보고나니 궁금하기는 했다.
-처처척!
내가 앞까지 당도하자 앞열에 있던 궁사들이 일제히 나를 겨냥했다.
말 위에 있는 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혈교의 교주인가?”
“그렇습니다. 장군께서는 누구신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이 정도 인물이라면 이름 꽤나 알려진 자일 것이다.
무림 연맹에 첩자 생활을 하면서 관의 높은 직위에 있는 자들도 어느 정도 숙지했으니, 정체를 안다면 대응하기 수월해 질 거다.
“국령을 어긴 혐의로 우군도독부에 소환되는 주제에 감히 누구의 대명을 물어보는 것이더냐.”
나의 물음에 장수들 중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홀로 이곳에 왔다고 어지간히 득의양양해하는 것 같다.
내게 다그쳤던 장수가 창으로 겨냥하며 말했다.
“그리고 비무장으로 오라고 했을 터인데, 이를 어겨! 당장 가지고 있는 병장기들을 내려놓고 쓰고 있는 그 흉측한 악귀 가면을 벗지 못할까!”
이에 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건 힘들 것 같군요. 저도 제 일신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뭐가 어째고저째?”
“그리고 방금 전에 혐의라고 하셨으면 말 그대로 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텐데요.”
그 말에 장수의 표정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나는 그가 떠벌려준 덕분에 작게나마 쓸만한 정보를 얻었다.
아무래도 뇌물을 주었던 도지휘첨사가 전장의 전표를 잘 숨겨두었거나, 파기를 시킨 것 같다.
그렇다면 굳이 약하게 나갈 이유는 없었다.
내게 분노한 장수가 혈교의 본단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놈이 정녕 저들이 화살비에 벌집이 되는 꼴을 보고 싶은 게로구나.”
겁박을 한다.
이에 나는 다소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답했다.
“관의 체면을 봐서 홀로 소환에 응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군요.”
“하! 네까짓 놈이 곤란하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라도 당하고 싶은….”
-털썩!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수의 눈이 스르륵 감기며 말에서 떨어졌다.
내 눈을 아주 뚫어지게 쳐다본 대가다.
“아닛!”
“이게 무슨!”
기절을 해서 정신을 잃은 장수의 모습에 다른 장수들이 일제히 내게 병장기를 겨냥했다.
턱수염의 장군이 다소 언성이 높아져서 내게 말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무공을 펼친 흔적도 없었는데, 휘하 장수가 기절하니 꽤 놀란 모양이다.
이에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답했다.
“무례한 언동에 잠시 재워뒀습니다.”
“재워? 그대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지금 본 장이 손을 들어올리기만 해도 화살의 시위가 떠날 것이다.”
“그러기에는 늦었군요.”
“뭐?”
“손을 들어올리기 전에 제 반경 세 장 안에 있는 자들은 전부 죽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기운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
상단전을 개방할 필요도 없었다.
왼쪽 눈을 감고서 중단전을 개방하고서 기운을 드러내자, 턱수염 장군을 비롯한 휘하 장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공을 익혔으니 수준 차이는 확실하게 알 것이다.
아마 날카로운 예기가 심장을 옥죄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거다.
턱수염의 장군이 인상을 쓰며 내게 말했다.
“…….그대의 주변에도 쇠뇌들이 겨냥되고 있음은 알고 하는 소리더냐?”
“그건 그 정도 수준인 자들에게나 통하는 것이지요.”
‘!!!’
“믿기 힘드시면 얼마든지 시험해보시죠. 단 대가는 여기 계신 제장 분들의 목숨입니다.”
“네놈이 감히!”
화가 난 턱수염 장군이 손을 살짝 들어올리려 했다.
그러자 번개와도 같은 은빛 검광과 함께 그의 길다란 수염의 반으로 잘려나갔다.
“누구의 손이 빠를지 꼭 보셔야 겠다면 이번에는 수염이 아닐 겁니다.”
살기 어린 나의 목소리에 위로 들어 올리려던 턱수염 장군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차마 올라가지 못했다.
장수들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심지어 긴장했는지 식은땀마저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가까이 부르지 말았어야죠.”
겁박은 이렇게 하는 거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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