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85
아카데미 담당 일진 185화
백일진은 학생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남궁종수와 황보철수, 모용석이 팔짱을 끼고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몸을 집어넣은 백일진이 남궁종수의 팔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무슨 상황이지?”
“몰라, 뭐 기운이 담긴 얼음 덩어리를 발견했다는데?”
남궁종수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하자 백일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뿔피리까지 울려대면서 호들갑을 떨 일인가?”
“나야 모르지. 근데 흔적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뭐라도 발견했으니 난리가 난 거 아니겠어?”
“그렇군. 누가 찾아낸 거지?”
“마탑에서 온 단장이 찾아냈대. 제레미였던가?”
남궁종수의 얘기를 들은 모용석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그 제레미라는 사람 아카데미 출신이라던데, 당자인 교수님이랑 동기라고 들었어.”
“그렇군.”
백일진의 뒤에 서 있던 설하윤은 그들의 말을 듣던 도중 얼음이 발견되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뭐야, 저거 하윤이 아니야?”
“맞다.”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졌나 보네?”
“아직 다리에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 근데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도 안 하고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지?”
남궁종수가 앞쪽을 가리켰다.
“모르겠다, 빙궁 내부에 일이 있나 보지. 저기 보면 빙궁 사람들 다 모이잖아.”
남궁종수의 말대로 수색 작전을 펼치던 빙궁의 인원들은 전부 하던 것을 내려놓은 채 남궁종수가 가리킨 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모용석은 그들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저 얼음이 중요한 물건인가?”
“그렇겠지 기운이 담긴 얼음이라잖아.”
“흠, 포션 제조법도 발달한 지금 기운이 담긴 물이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물건이니까 저렇게 모여들겠지.”
백일진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 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야, 백일진 어디 가.”
남궁종수는 백일진이 뜬금없이 사람들을 뚫고 나가려고 하자 백일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깐 보고 오겠다.”
“에휴, 그래 갔다 와라.”
백일진은 사람들 사이를 계속해서 움직이며 가장 앞으로 나아갔다.
“아 뭐야. 뭔데 이렇게 밀…….”
우격다짐으로 파고든 백일진 때문에 몸이 밀쳐진 초령단원들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쯧.”
하지만 끼어든 사람이 백일진인 것을 보고는 혀를 차며 다시 원래대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군.’
백일진은 전악의 옆에 있는 설하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제레미가 발견했다던 기운이 담긴 얼음을 들고 있었다.
‘표정이……?’
그 얼음을 든 설하윤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일견 시원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섭섭해 보이기도 하는 그러한 얼굴이었으니.
‘저 기운이 담겨 있는 얼음 때문인가……?’
그때였다.
백일진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천마검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설하윤이 들고 있는 얼음을 향해 천마기를 일으켰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잿빛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더니 이내 설하윤의 손을 뒤덮었다.
-오…….
‘왜 저게 뭔지 알고 있나?’
-정체는 모르겠다. 그런데 저것을 녹여서 물로 만들면 그 자체로 영약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기운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알겠군.
‘그래?’
-그렇다. 저것으로 포션을 만든다면 웬만한 포션은 다 상급 이상으로 분류될 거야. 북해가 가난하다는 말도 앞으로는 들을 수 없겠군.
‘그렇군.’
* * *
그날 저녁 베이스캠프.
빙궁의 호법 전악이 단계홍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왔다.
“그래, 오밤중에 내 처소에는 무슨 일인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단계홍은 침상에 걸터앉아 전악의 얼굴을 훑었다.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아하니 하기 쉬운 말을 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흐음, 말해보시게. 일단 들어나 보지.”
전악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입을 떼지 못했다.
“어서 말해보래도?”
“……형님, 저희는 수색을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계홍은 침음성을 삼켰다. 아무래도 아까 제레미가 발견한 얼음 덩어리 때문인 듯했다.
단계홍은 안대에 손가락을 넣고 빈 눈가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아까 낮에 발견한 그 얼음 덩어리 때문인가?”
“……그 얼음 덩어리 단 하나만은 아니고…….”
“그래, 그 얼음 덩어리가 나오는 곳을 파헤쳐 보기 위함이겠지. 그 얼음이 만년설인가 뭔가 하는 그것인가 보군.”
“……맞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파헤쳐 보기 위해서 수색 작전을 중단하겠다는 건가?”
전악은 얼굴에 미안하다는 기색을 띠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단계홍은 심란한 표정을 짓고는 생각에 잠겼다.
‘흐음, 빙궁이 빠지면…….’
북해의 혹독한 날씨에 적응한 빙궁의 인원들이 수색 작업에서 빠지면 수색 작업은 당연히 늦어질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카데미와 무림 연맹, 마법사의 탑 인원들이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피해를 볼 것이 자명한 것은 납치된 이들이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단계홍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의 사정은 알겠지만 그렇게 해줄 수는 없네.”
전악도 단계홍이 쉽게 허락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왔다. 그렇기에 실망하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형님.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안 된다네.”
“형님…….”
“어허.”
“제발 부탁드립니다. 형님.”
전악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단계홍은 그런 전악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빙궁에서도 양심이란 것은 있을 것 아닌가.”
양심 얘기가 나오자 전악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우리 아이들이 억류된 것도, 지금 이 험지에서 수색하는 것도 전부 빙궁을 도우려다가 생긴 일 아닌가.”
“맞습니다…….”
“심지어 그 만년설인지 뭔지를 발견한 것도 이번 수색을 통해 발견한 거고.”
“…….”
“그런데 인제 와서 빙궁은 발을 쏙 빼겠다고? 그게 양심이 있는 집단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린가?”
단계홍은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단계홍의 말대로 아카데미 학생들과 마탑의 인원들이 억류된 것은 의문의 단체에게 공격받은 북해를 돕기 위해서 북해로 향하다가 억류된 것이다.
물론 그 범인이 라트라제라고 하는 아카데미의 교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빙궁이 연관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금지를 찾아 그곳에 있던 만년설을 찾아낸 것도 자신들이 아닌 마탑의 마법사 제레미였다.
전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악의 표정을 본 단계홍은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더 할 말 있는가?”
“없습니다…….”
“자네들이 얼마나 만년설을 찾아다녔는지 알고 있네. 빙궁의 설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고.”
“형님…….”
“그래, 그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자네들이 이번 기회를 어떻게 여기는지도 알고 있을 수밖에 없네.”
“……네, 형님.”
“하지만 손익을 따지기 이전에 서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의(道義)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네와 빙궁은 우리에게 파렴치한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네.”
“…….”
“그리고 이런 말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솔직히 무림 연맹에서 빙궁에 보내는 지원금이 가장 큰 건 알고 있지 않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나.”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거기다가 오대세가와 육대문파는 그것 이외에도 있지도 않은 빙정 구매를 명목으로 빙궁에 수많은 지원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형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생각을…….”
단계홍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이 정도 말했으면 들을 법도 하건만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것을 보니 자네의 의견이 아닌 것 같군.”
“…….”
“궁주의 생각인가?”
“아, 아닙니다.”
“그럼?”
전악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빙궁의 장로 회의 결과에서 나온 내용인가?”
“……그렇습니다.”
“빙궁주의 의견도 장로 회의의 결과와 같은가?”
“궁주께서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빙궁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빙궁주의 얼굴을 본 적이 없군? 많이 바쁜가? 인사 정도는 해도 될 텐데…….”
“그게 사실…….”
“……?”
“궁주께서 몸이 좀 편찮으십니다.”
“그렇군. 그럼 장로들만의 생각이라는 말이군.”
아무래도 장로라는 녀석들이 돈에 욕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단계홍은 전악에게 더 뭐라고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 아우, 자네와는 더 얘기를 해봤자 의미가 없겠군. 내가 궁주실로 찾아가겠네.”
그 순간. 단계홍의 처소 문이 열리며 설하윤과 외관이 닮은 중년의 미부인이 들어왔다.
설중란(雪中蘭), 설하윤의 모친이자 당대 북해빙궁의 궁주였다.
“설 궁주……?”
“찾아오실 것 없습니다, 단 교수님. 제가 먼저 찾아왔으니까요. 얘기할 것이 있으면 지금 얘기하시죠.”
“일단 오랜만인데 인사부터 하지, 설 궁주. 오랜만이오.”
“네, 오랜만이네요. 단계홍 교수님.”
단계홍은 설중란이 빙궁주가 되기 전부터 안면이 있었기에 단계홍은 격식 없이 그녀를 대했다.
“몸은 괜찮소? 불편한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설중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네, 몸은 괜찮아요.”
괜찮다고는 말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피골이 상접해 있는 데다가 눈 밑에 검은 기색이 내려와 있는 것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찮다니 다행이긴 한데, 혹여나 모르니 몸 관리 잘하시오.”
“감사합니다, 그보다 저를 보자고 하신 연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알고 있지 않소?”
“아, 이번 장로 회의의 결과 때문인가요?”
“그렇소, 솔직히 그대라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고 있지 않소?”
설중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는 소리가 맞죠. 빙궁을 위해서 달려오신 분들인데 빙궁이 수색에서 빠진다니.”
“그런데 말리지 않고 뭐 했단 말이요…….”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요?”
단계홍은 눈을 부라리자 전악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자신에게 윽박지르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궁주를 건드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
설중란은 전악의 팔을 슬쩍 밀어 뒤로 돌려보낸 다음 단계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빙궁 내부는 지금 곪아가고 있습니다.”
단계홍은 고개를 까닥였다.
“그게 무슨…….”
“제가 하윤이를 아카데미에 보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무공을…….”
설중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는 그간 빙궁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장로들이 돈에 눈이 멀어가고 있다는 얘기.
설하윤에게 압박을 주면서 세뇌를 시키려고 한다는 얘기.
어느 순간 궁주인 자신의 음식에 미량의 독을 탄다는 얘기 등.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