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5
아카데미 담당 일진 5화
“포티아! 왜 그래! 플레임 블래스트 쏘라니까!”
답답한 엘리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티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덜덜 떨면서 그녀의 다리 뒤편으로 숨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엘리아는 얼굴이 시뻘게져 계속 포티아를 추궁했다. 하지만 포티아는 요지부동이었다.
백일진은 허둥지둥 요란을 떨고 있는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포티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저것도 정령인가? 하이린의 실프와는 다르게 생긴 것 같은데.’
정령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이린의 실프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다.
그는 신기한 마음에 포티아를 가리키고 물었다.
“그게 정령이야?”
“……뭐? 뭐라고?”
엘리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재차 물었다.
“그게 정령이냐고.”
갑자기 엘리아의 에메랄드빛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뚝뚝 흐르는 눈물은 그녀의 눈 색깔과 합쳐지니, 마치 보석 같아 보였다.
“너……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어?!”
중급 정령 포티아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듬직한 늑대의 형상을 한 중급 정령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우리 포티아한테 그딴 것도 정령이냐니…….’
부끄러웠다.
안쓰럽게 떨고 있는 포티아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마력이 부족해 포티아를 작게 소환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이 커지니,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너…… 너. 두고 봐!”
“……?”
갑자기 와서 정령을 소환하고는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뜬금없이 울면서 뛰어가는 그녀를 본 백일진은 확실히 세상은 넓고 이상한 녀석들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진짜 희한한 녀석이군.”
울면서 사라진 걸 보니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긴 했지만, 굳이 풀어줘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 후로도 마을을 둘러보던 그는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마을 입구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촌장과 하이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시간에 맞춰 왔군. 미리 준비는 다 해뒀다네.”
그렇게 말하며 안내 마법이 걸려 있는 지도와 여분의 옷이 들어 있는 가방을 백일진에게 건네줬다.
“자네 옷은 너무 특이해서 사람들 눈에 띄니 이걸로 갈아입고 가시게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머리도 짧게 자르는 게 다니기 편할걸세.”
그의 말처럼 백일진의 무복과 장포, 그리고 질끈 묶은 긴 머리는 역사책에나 나오는 옛날 무림인의 복장이었다.
‘이 복장이 이상한가?’
옆에 있던 하이린도 인사를 전하며 무언가를 건네줬다. 유리병에 들어 있는 빨간색 물약이었다.
“별건 아니고, 저희 아버지께서 만드신 포션이에요. 피곤할 때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들과 인사를 마치고 떠나가던 중,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아까 울면서 사라졌던 엘리아가 보였다. 그녀는 멀찍이 서서 씩씩대며 백일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 왜.”
“……안.”
“뭐?”
“미, 미안하다고!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엘리아의 얼굴은 그녀가 불러낸 불의 정령만큼이나 붉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던 백일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뭐?!”
“다음에 보자고.”
“흥!”
엘리아는 그 콧소리를 끝으로 몸을 휙 돌려 가버렸다. 그녀의 뾰족한 귀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식.
백일진은 레어를 떠나온 후, 처음으로 미소 짓는 연습을 했다.
‘이럴 때가 미소를 지어야 하는 타이밍인가.’
하지만 애써 올린 입가는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 * *
푸른 숲에서 황보세가(皇甫世家)의 ‘하르바니 영지’까지는 거리가 꽤 가까웠다. 촌장이 챙겨준 마법 지도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
‘이게 다 사람이라고?’
성문을 지나고 번화가에 도착하니, 한적했던 엘프 마을과는 달리 시끌벅적한 인파들이 보였다.
둘러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이 저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 붉은 머리, 키가 유난히 작은 인종, 귀가 뾰족한 엘프, 푸른 눈을 가진 사람, 그 둘이 묘하게 섞인 사람 등.
그렇게 멍하게 구경하고 있는 백일진에게 웬 호객꾼이 다가왔다. 그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서 옵쇼! 저희 객잔은 만두도 맛있고 오향장육도 기가 막힙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호객꾼이 한 명 더 달라붙었다. 이 사람은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희 레스토랑은 피자가 일품이고 파스타도 끝내줍니다!”
“뭐야? 방해하지 말고 꺼져.”
“너야말로 꺼져. 여긴 우리 레스토랑 앞이라고.”
그들은 이내 시끄럽게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각자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음, 객잔으로.”
“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손님!”
“쳇.”
호객꾼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건물에 산동객잔(山東客棧)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는 유독 ‘산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여기도 산동, 저기도 산동 온통 산동이었다.
‘왜 죄다 산동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거지? 사람 이름인가?’
아까부터 계속해서 구경하듯 주위를 둘러보는 그를 본 호객꾼이 물었다.
“이 지역에는 처음 오시나 봐요?”
“네, 그런데 이 주변에 있는 가게들은 산동이라는 상호를 많이 쓰네요?”
호객꾼은 별 희한한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의 이름이 산동이니까요.”
“음……. ‘하르바니’가 아니라?”
그러자 호객꾼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300년 전 지명을 왜 찾는다는 말인가. 심지어 저 굳어 있는 표정을 보니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았다.
‘하르바니가 아니냐고? 로체트 사람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복장이 낯설었다. 옛날 그것도 아주 먼 옛날 역사 속의 무림인들처럼 길게 늘어뜨려 묶은 머리 맵시도 특이했고.
‘엄청나게 멀리서 왔나 보군…….’
호객꾼은 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르바니에서 산동으로 지명이 변경된 지는 300년이 넘었어요.”
“네? 분명히…….”
레어에서 읽었던 ‘로체트 왕국의 사회과 부도’라는 책에선 푸른 숲 옆에 붙어 있는 도시는 ‘하르바니’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럼 황보 후작령은 맞습니까?”
“음, 후작령이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
로체트 제국의 변경은 오대세가가 속해 있는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의 자치령이나 다름없었다.
영지에서 나오는 세금 중 일부를 중앙에 보내고 그 대가로 자치를 보장받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같은 로체트 국민이지만, 변방의 영지들은 국가에는 소속감이 별로 없죠.”
그렇게 짧은 국사 수업을 마친 그들은 어느새 객잔에 도착했다.
“그럼 맛있게 드십쇼!”
산동객잔은 주위에 다른 객잔들보다 규모가 크고 장식이 화려한 것이, 호객꾼이 자랑스럽게 떠들어댈 만했다.
객잔 안에 들어서니 달콤한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고, 마정석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걸맞았다.
노래라고는 맥스가 불러주는 동요만 들어봤지 클래식이라는 걸 처음 들어본 백일진은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좋은 소리가 있었다니……!’
남색 정장에 붉은 나비넥타이를 맨 점소이가 다가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저 혼자입니다.”
“어떤 좌석이 편하시겠습니까? 룸과 홀, 그리고 창가 자리가 있습니다.”
“창가 자리로 주세요.”
자리로 안내받은 그는 할아버지에게 듣고 상상했던 객잔들과 180도 다른 모습에 약간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객잔들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건물에, 메뉴는 만두랑 국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붉은색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메뉴판을 들어 펼쳐 보니 처음 보는 음식이 수십 가지나 되었다.
전가복, 오향장육, 소룡포, 궁보계정 등.
‘이 숫자는 뭐지?’
음식의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전가복 155,000G, 궁보계정 125,000G 오향장육 125,000G …… 국수 15,000G A 코스 1人 385,000G, B 코스 1人 425,000G]‘가격인가?’
어차피 돈은 많이 들고 나왔으니 가격은 상관없었다. 일단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게 먼저다.
“저기요.”
“네,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B 코스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채요리부터 시작해서 코스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나오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예쁘게 담겨 있어 보기도 좋았고 맛도 있었다.
‘근데 내 취향은 아니야. 너무 느리게 나와.’
간을 보듯이 조금씩 담겨 나오는 -그것도 매우 느리게- 음식들을 다 먹어 치운 백일진은 다시는 코스요리를 시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후식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월병(月餠)과 빙탕후루(氷糖葫芦)가 있습니다.”
“빙탕후루로 주세요.”
나무 꼬치에 딸기와 산사자(山査子)가 번갈아 끼워져 있는 빙탕후루는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다.
색감, 윤기, 맛, 편의성.
‘완벽하군.’
후식까지 마친 그는 식사를 계산하기 위해 전표를 들고 계산대에 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네.”
“가격은 행하(行下 봉사료, 팁) 포함 45만 5천 골입니다.”
‘45만 5천 골, 그게 얼마라는 거지……?’
순간, 백일진은 할아버지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이 금화 하나의 가치는 평민 일가족이 한 달은 족히 지낼 수 있는 돈이란다.’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은 아공간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당당하게 금화를 내미는 그의 모습에 계산대에 있는 직원은 황당해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손님, 저희 객잔은 현금이나, 카드를 이용한 결제만 가능하십니다.”
“이것도 현금입니다. 여기 발행일도 쓰여 있습니다.”
금화에는 로체트 1076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그 말에 발행일을 확인한 직원은 황당함이 두 배가 되었다.
‘1076년 발행? 지금이 1605년이니까…… 500년도 더 지났잖아!’
그리고 발행일 자체의 신뢰성에도 의심이 드는 게 1076년에 만들어진 것치고는 금화의 상태가 너무 좋아 보였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물물교환으로는 결제가 어렵습니다. 손님.”
서로가 미묘한 적막을 이루는 대치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긴장을 깨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진짜 재밌는 녀석이네.”
웃음소리의 주인은 백일진보다 키가 반 뼘 정도 커 보이는 기골이 장대한 소년이었는데, 짙은 눈매와 높은 콧대를 보니 중원인과 색목인의 혼혈로 보였다.
“그 금화, 내가 살 테니까 나한테 파는 건 어때?”
백일진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끄덕.
어렵게 계산을 끝마치고 나온 백일진은 도움을 준 소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별말씀을.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하자고!”
“백일진.”
“내 이름은 찰스야.”
찰스는 손을 내밀며 빙그레 웃었는데, 장대한 기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박하고 앳된 미소였다.
“그런데 신기하네! 이 금화. 분명히 진품인데 보존 마법이 걸려 있던 것처럼 깨끗해!”
“맞다. 보존 마법.”
“뭐? 정말 보존 마법이야?! 대박이잖아. 이 정도의 보존 마법이라니!”
둘은 산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보존 마법부터 시작해 마법 예찬을 해대는 찰스의 마법 사랑은 그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마법을 정말 좋아하는군.’
그리고 은행에 가서 계좌도 만들었다. 금화 100개와 보석 몇 개를 환전해서 넣었더니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잔액이 남아 있었다.
“그 카드에 기운을 주입해 봐.”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에 내공을 주입하니, 카드 위에 입체적인 창이 뜨면서 잔액이 표시되었다.
[예금 잔액 – 769,864,057G]“뭐야, 너! 엄청나게 부자였잖아?”
“그런가.”
“아깝다. 그래도 그 금화들 경매장에 올렸으면 못해도 세 배는 더 받았을 텐데.”
하지만, 돈의 가치를 잘 모르는 백일진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었다. 이걸 빼고도 가져온 금화가 많이 남기도 했고.
은행에서 나온 후, 근처 카페에 들른 그들은 커피 하나를 시켜놓고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일진. 너는 산동에 무슨 일로 온 거야?”
“황보세가에 볼일이 있어서.”
“응?! 화…… 황보세가?”
황보세가라는 말을 들은 찰스의 동공이 커지며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불안한 듯 몸을 배배 꼬기도 했다.
“무슨 일 있나?”
“아, 아니…….”
그때,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그들을 보며, 아니, 정확하게는 찰스 쪽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야! 황보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