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80)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김덕성님! 평생 당신을 위해 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척.
한서진이 경례를 올려붙인다.
그녀의 경례를 받아준다.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쏴아아아.
파도가 하얗게 몰려든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하얀 달이 뜬다.
검푸른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밤바다가 펼쳐진다.
이 정도면 됐겠지?
휴대폰을 켜서 구독해둔 한서진의 너튜브 채널을 확인한다.
[프랑스에 이어 또다시 굴욕당한 소련! 침묵에 빠진 모스크바와 크렘린궁! 초강대국의 심장을 저격한 월드 클래스 K-영웅의 활약상에 자유세계 전체가 반했다! “김덕성, 그야말로 자유세계 전체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한국, 이제 강대국을 넘어 초강대국?! K-영웅 김덕성, 그의 행보를 전 세계가 주목한다! 소련이 벌벌 떨고 미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질투하고 프랑스가 사랑하는 K-영웅 김덕성 활약 하이라이트 모음!]익숙한 고퀄리티 국뽕 영상 썸네일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서진이 기운을 차렸다는 명백한 증거.
이렇게 빨리 영상을 올린 걸 보면, 업로드 준비는 진작에 다 끝내놓은 것 같다.
내 격려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
쓸데없이 뿌듯한 기분이다.
국뽕 영상은 어지럽지만.
너튜브 어플을 끈 그 순간.
우우우우우우웅.
진동과 함께 전화가 걸려온다.
‘아리스?’
전화한 상대는 아리스.
지체 없이 전화를 받는다.
“사이온지 선배?”
[아, 김덕성군. 빠르게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스피커에서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때.
[아-쨩 언니! 세-라땅 덕성 오빠 보고 싶어어어!!]아리스의 말허리를 자르고 세이라의 혀짧은 소리가 들려온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보시다시피 이사장님께서 김덕성 군을 급히 찾고 있어서······. 이렇게 부득이하게 연락드렸습니다.]뒤이어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와.
진짜 돌겠네.
눈물이 다 나네
[덕성 오빠 보고 싶어어······!]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세이라의 혀짧은 소리.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 같다.
그녀가 치매 증상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서 더 죄책감이 든다.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시간 여유가 괜찮다면 이사장님과 함께해주셨으면 합니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덕성 군.]아리스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한다.
[파트너. 날 봐서라도 누님한테 그냥 가 주면 안 되겠냐?]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한숨이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아리스가 간곡하게 부탁해서 마음이 좀 약해지기도 한 데다가 세이라가 노망이 난 데는 내 책임도 있으니, 이번만이다.
“가겠습니다. 거기 어디입니까?”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덕성 군.]뚝.
전화가 끊어진다.
곧이어 문자가 도착한다.
“······또 해변가구만.”
세이라와 아리스가 있다는 곳 역시 해변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내가 있는 곳, 그리고 바비큐 파티 현장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해변을 걷는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모래성. 모래성. 세-라땅 시로쨩이랑 예쁜 모래성 만들래!”
저 멀리서 세이라의 혀 짧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옆에 서서 같이 모종삽으로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아리스의 모습도 보인다.
달밤 백사장에서 모래성 만들기라니.
누가 보면 진짜 치매 환자인 줄 알겠다.
[그래도 우리 누님, 몸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서 다행이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대로, 아까와는 달리 지금의 세이라는 다시 원래 모습인 15세 남짓한 미소녀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아직 정신이 안 돌아와서 문제긴 하지만.
각오는 했지만, 막상 세이라의 모습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힌다.
“어라? 덕성 오빠?”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그녀가 웃으면서 내게 달려온다.
“덕성 오빠! 세-라땅 덕성 오빠 보고 싶었어!”
갑자기 달려와 품에 기습적으로 파고드는 세이라.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돌겠네.
[······누님.]흑태자가 낮게 탄식한다.
오늘만큼은 흑태자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설정상 두 사람은 한때 전장을 함께 누비며 같이 사선을 넘나들었던 동료.
그런 세이라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내가 흑태자라도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오빠. 세-라땅 아-쨩 언니 말 잘 듣고 시로쨩이랑 잘 놀고 있었어. 칭찬해줘.”
스윽.
세이라가 곰인형을 안은 채 내게 다가와 머리를 내민다.
그 뒤로 아리스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인다.
“······칭찬 부탁합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 부탁이면 어쩔 수 없지.
손을 뻗어 세이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잘했다.”
“덕성 오빠 칭찬 고마워! 시로쨩도 덕성 오빠 칭찬 고맙대!”
세이라가 곰인형의 오른팔을 잡고 흔든다.
그녀가 내 손목을 잡는다.
“있지. 덕성 오빠. 세-라땅이랑 아-쨩 언니랑 같이 모래성 만들자? 응?”
세이라의 뒤로 미완성 모래성이 보인다.
그 앞에 놓인 모종삽과 장난감 트럭도 보인다.
이런 어린애 장난감은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재주도 좋다.
“······염치없지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리스가 붉어진 얼굴로 작게 말한다.
[파트너, 그냥 해 줘라.]흑태자도 내게 요청한다.
여기 온 이상, 어차피 뭐든 감당할 생각이었다.
혼자서 세이라를 돌봐주는 아리스가 살짝 불쌍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같이 만들자.”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는다.
“우와아아. 세-라땅 덕성 오빠가 놀아줘서 엄청 기뻐!”
세이라가 해맑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 쪼그려 앉아 모종삽을 들고 세이라를 도와 모래성을 만든다.
이렇게 흙 놀이를 하고 있으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흙장난하던 추억.
그렇게 놀고 있으면, 항상 엄마가 밥 먹을 시간이라고 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괜히 착잡해진다.
모래성이나 만들자.
아무 말 없이 모래성 만들기에 열중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완성했어!”
세이라의 탄성과 함께 완성된 모래성이 보인다.
탁탁.
손을 맞대고 모래를 털어낸다.
[수고했다. 파트너.]흑태자가 머릿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수고는 무슨.
“고생하셨습니다. 김덕성 군.”
“덕성 오빠, 세-라땅이랑 놀아줘서 고마워!”
세이라가 손을 흔들다가 히히 웃으며 달려와 내게 안긴다.
“그렇지만 세-라땅 덕성 오빠랑 헤어지기 싫은걸. 계속 있어 주면 안 돼?”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평소라면 뭐라 했을 상황이지만, 지금의 세이라는 환자.
아픈 사람, 나 때문에 다친 사람을 매정하게 내칠 정도로 내가 냉혈한은 아니다.
입맛이 쓰다.
“이사장님. 안 됩니다. 이제 병실로 가서 안정을 취하셔야······.”
살짝 당황한 아리스가 난색을 표하던 그때.
움찔.
세이라의 몸이 떨린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 그렇지만 세, 세-라땅······. 오, 오빠의 품이 좋은걸······.”
그녀가 방금과는 다른 어색한 말투로 내게 말한다.
[누님?]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세이라를 부른다.
[설마 이제 다시 제정신으로······?]흑태자의 추측이 맞다.
지금 세이라는 이제 막 제정신으로 돌아온 거다.
그러니 유아 퇴행 모드와는 다르게, 부끄러워하는 거고.
한숨을 쉰다.
“이사장님.”
“세, 세-라땅은 이사장 아니야.”
세이라가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붉힌다.
그녀가 시선을 돌린다.
내 품에 안긴 세이라를 떼어놓으면서 말한다.
“이제 다시 제정신 돌아온 거 알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속으로 한숨을 쉰다.
주책도 정도껏 해야지.
“아, 아니라니까. 세-라땅은 아직······.”
내 지적에 식은땀을 흘리는 세이라.
그녀의 핏빛 눈동자가 떨린다.
세이라가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다.
제정신 돌아온 거 확실하네.
[아이고, 누님······.]흑태자가 탄식을 터뜨리던 그때.
“이사장님.”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부, 불렀어? 아-쨩 언······.”
“······원래대로 돌아오셨군요.”
아리스가 세이라의 말허리를 자른다.
그녀가 세이라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다행입니다······. 이사장님. 정말 진심으로 다행입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와락.
아리스가 세이라를 끌어안는다.
졸지에 아리스의 품에 안기게 된 세이라가 뺨을 살짝 긁는다.
“······이거 아리스 앞에서는 장난도 함부로 못하겠구나.”
세이라가 옅게 웃는다.
그녀가 아리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면서 품에서 떨어진다.
“고맙다. 꼬마야, 아리스. 이 몸을 돌봐줘서.”
세이라가 나와 아리스에게 고개를 숙인다.
저 모습을 보니 괜히 또 마음이 약해진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녀는 나를 구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이반과 맞선 것이다.
유아 퇴행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파트너. 누님한테 할 말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후회하지 말고.]머릿속에서 흑태자의 진지한 목소리가 울린다.
평소에는 경박하다가 세이라나 올리비아 관련 일에는 유난히 진지해지기는.
하지만 지금은 나도 세이라에게 진 빚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이사장님. 구해주셔서.”
때마침 세이라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좋다.
어쨌건 그녀가 내 목숨을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색한 말투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세이라의 핏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 그건······.”
여유 있는 척, 요염한 척하는 평소와는 달리 당황한 표정을 짓는 세이라.
그녀가 하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더듬더듬 말한다.
“이, 이사장으로서 사랑스러운 제자를 지키는 건 다,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감사할 필요까지는 없다. 꼬마야. 이 몸은······.”
세이라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그녀의 붉은 시선이 나를 향한다.
“이 몸은······. 지켜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느니라. 그러니 감사할 필요 없다.”
세이라의 입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매번 주책맞은 행동을 해대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어른다운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협회장 이치로의 냉철하고 메마른 분위기와는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묘하게 어른스러운 그녀의 기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촤르륵.
세이라가 부채를 펼치면서 말한다.
“후후. 그래도 꼬마의 감사 인사를 듣는 기분······. 꼬마와 함께 놀았던 기억······.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이렇게 노는 것도 즐겁구나.”
세이라가 장난스럽게 요염한 척 눈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에휴.
그럼 그렇지.
잠깐이나마 저 주책맞은 이사장을 어른스럽다고 착각한 내가 멍청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 몸은 바깥바람을 조금만 더······.”
“아직 마음대로 외출하면 안 됩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다시 병실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사장님.”
이사장의 말허리를 아리스가 자른다.
놀랄 정도로 단호한 아리스의 목소리를 들은 이사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쐬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구나. 이만 아리스와 함께 병실로 돌아가야겠구나.”
아리스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말을 바꾸는 이사장.
이사장의 대답을 들은 아리스가 작게 웃는다.
“그럼 꼬마야. 이 몸은 이만 들어가 볼 테니,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일찍 자도록 하거라.”
“오늘 하루 수고했습니다. 김덕성 군. 다음에 뵙도록 하죠.”
세이라가 손을 흔들고, 아리스가 꾸벅 인사한다.
아리스의 손을 잡은 세이라가 병원 쪽으로 사라진다.
쏴아아아.
홀로 남겨진 밤바다.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린다.
‘다시 혼자 남았군.’
[파트너. 혼자라니. 섭섭한데. 나도 있다고.]흑태자가 바로 반박한다.
그래, 생각해보니 혼자는 아니네.
[다시 바비큐 파티장으로 복귀하는 건 어때? 레이디들이 파트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