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57)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
울상을 짓고 있는 세이라의 모습이 보인다.
안 그래도 겉모습이 어려 보이는 세이라가 저렇게 징징거리고 있으니 영락없는 떼쓰는 아이 같은 모습.
나잇값 못하는 건 여전한 모습.
[······.]평소라면 누님이라고 한마디 했을 흑태자도 침묵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거 좋아하는 흑태자가 가만히 있으니까 오히려 더 무섭다.
“무슨 일입니까? 이사장님.”
갑자기 난입한 이사장의 모습에 아리스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쨩······. 보고 싶었구나.”
세이라가 달려와 아리스의 품에 안긴다.
아리스의 뺨이 붉어진다.
“이사장님. 손님도 있는데 이러시면······.”“손님? 응?”
아리스의 말을 들은 세이라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녀와 내 시선이 마주친다.
화악.
세이라의 뺨이 붉어진다.
“꼬, 꼬마야, 이, 이건······.”
이제 내 존재를 알아챈 모양인지 손을 흔들며 당황하는 세이라.
나는 한숨을 쉬면서 커피를 마저 마셨다.
“꼬마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잔뜩 빨개진 얼굴로 아리스 품에서 떨어지는 세이라.
세이라와 아리스가 서로 자매처럼 친한 관계라는 설정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여름 축제에서 지금과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었고.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단지 내 속이 울렁거릴 뿐이지.
[아이고······.]머릿속에서 흑태자의 짧은 탄식이 터진다.
“크흠. 방금 본 장면은 잊거라. 그래, 잊는 것이니라.”
세이라가 헛기침한다.
촤르륵.
그녀가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애써 원래 모습을 가장한다.
“······이사장님께서 방문하셨으니 저는 커피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리스가 살짝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가 부엌으로 향한다.
아리스가 커피를 태우는 짧은 시간 동안 나와 세이라의 눈이 마주친다.
“흠흠······.”
세이라가 다시 헛기침하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레이스 부채를 살랑인다.
그녀와 나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꼬마야. 너는 왜 여기 온 것이냐?”
침묵을 깬 건 세이라.
“아리스 선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질문에 무덤덤한 말투로 답한다.
“아리스 선배······?”
내 말에 세이라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요비스테를 했다는 사실을 이제 눈치챈 모양.
“예.”
“꼬마야, 설마······.”
세이라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커피 타 왔습니다.”
탁.
아리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세이라 앞에 놓인다.
“드십시오. 이사장님.”“고맙구나. 아-쨩.”
후루룩.
감사 인사를 건넨 세이라가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다.
고급 찻잔에 담긴 커피믹스라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커피를 마시던 세이라가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다.
“이사장님.”“불렀느냐?”
“무슨 일 있으셨던 겁니까? 갑자기 들어오셔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아리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세이라에게 말한다.
세이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녀의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떠오른다.
살랑살랑.
세이라가 부채를 흔들면서 말한다.
“크흠. 그건······.”
힐끔힐끔.
말끝을 흐리던 세이라의 눈빛이 이쪽을 향한다.
“하, 하루의 장난이 너무 심해서······.”
세이라가 어렵게 대답을 마무리한다.
세이라의 대답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하루의 후견인은 현재 세이라가 맡고 있는 상태.
당연히 같이 집에서 살고 있는데, 하루 성격이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제법 골탕을 먹은 모양.
안 봐도 이 정도면 뻔하다.
“크흠흠. 그래서 잠시 피신한 것이니라.”
세이라의 얼굴이 부끄러워진다.
평소 허물없이 언니 소리까지 하면서 친했던 아리스라면 모를까, 나까지 있는 상황에서 하루에게 놀림 받아서 여기로 피신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겠지.
나라도 그럴 거다.
“어떤 장난이었길래······.”
아리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하루의 성격을 모르는 아리스에게는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것이······.”
아리스의 말에 세이라의 말문이 트인다.
“이 몸을 세, 세라땅 언니라고 부르지를 않나······. 하, 할머니라고 하지를 않나······. 할머니인데 애칭이 귀엽다고 하지를 않나······. 홍삼 캔디가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지를 않나······. 으으으으으······. 하루가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 장난기는 조금 심한 편이라······.”
세이라의 손이 떨린다.
나이를 가지고 놀린 모양.
하루라면 그럴 만하다.
“그랬군요······.”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사장님.”
“그래. 흠흠. 그래도 어른인 이 몸이 참을 수밖에는 없지. 하루는 아직 한창때 어린아이니까 말이다.”
“맞습니다. 이사장님.”
“그런데 아-쨩. 아까부터 이 몸한테 이사장이라니. 이 몸은 섭섭하구나. 언니라고 부르거라.”
아리스의 말에 볼을 부풀리는 세이라.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
그녀의 입술이 꼼지락거린다.
힐끔.
아리스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어허, 어서 언니라고 불러보거라.”
“······세이라 언니······.”
세이라의 강요에 마지 못해 언니라는 말을 내뱉는 아리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흠흠 역시 이 몸은 건방진 꼬맹이 하루보다는 아-쨩이 좋구나. 그래서 아-쨩. 꼬마를 여기로 초대한 이유가 무엇이냐?”
세이라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의 말에 아리스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그, 그건······.”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아리스.
그녀의 뺨이 새빨갛게 물든다.
쿡쿡.
세이라가 손가락으로 아리스의 허리를 찌른다.
“설마 청춘 남녀의 밀회를 이 늙은이가 눈치 없게 방해한 건 아니겠지?”
세이라가 부채를 흔든다.
“그런 건 아닙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드는 아리스.
탁.
세이라가 부채를 접는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예로부터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하였거늘······. 정말 아닌 것이더냐?”
쿡쿡.
세이라가 접은 부채로 아리스의 허리를 찌른다.
“정말 아닙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학생회장 자리를 걸고 김덕성 군과 그런 파렴치하고 불건전한 불순 이성 교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을 덧붙인다.
세이라 이 양반은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다.
“호오? 그래?”
“예,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스.
“흐음······. 밀회가 아니라면 왜 꼬마를 여기로 부른 것이냐?”
세이라의 시선이 아리스에게 향한다.
“그건······. 같이 이번 주말에 고향 집에 가자는 약속을 잡으려고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밖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아리스가 더듬더듬하면서 말한다.
“고향 집이라는 말이지?”“예······.”
“이거 이 몸이 오해했구나. 미안하다. 아-쨩.”
툭툭.
세이라가 아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한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언니.”
아리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런데 아-쨩의 고향 집 방문 말이야. 이 몸도 함께 가도 되겠느냐?”
그녀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나온다.
뭐 어딜 같이 가?
[하이고. 누님.]머릿속에서 흑태자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말끝을 흐리는 아리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 기회에 이 몸도 아-쨩의 고향에 초대받고 싶었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세이라.
그 모습을 본 아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예. 김덕성 군도 괜찮죠?”
아리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는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건지.
지옥의 이지선다가 따로 없다.
[괜찮다고 해. 파트너. 이 흑태자의 감으로 하는 이야기니까, 괜찮다는 쪽이 정답이야.]머릿속에서 흑태자의 조언이 들린다.
하긴 아리스랑 세이라는 원래 가족 같은 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기서 거절해봤자 세이라가 순순히 네 알겠습니다, 하고 안 따라올 위인이 아니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놔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예, 뭐. 그렇게 하죠.”
내 말을 들은 세이라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리스의 표정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후후. 아리스의 고향 나들이라······. 벌써 기대되는구나.”
눈을 반짝이는 세이라를 보면서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 식어 빠진 커피를 마셨다.
탁.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아리스 선배, 할 말은 여기서 끝인 거죠?”
“예.”
내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용무가 다 끝났으니 여기 더 있을 필요는 없다.
“꼬마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세이라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아리스가 아무 말 없이 은빛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예.”
세이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부활동을 하다 나왔거든요. 다시 하러 가야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오, 파트너. 다른 레이디들의 마음도 신경 써 주는 거야? 우리 파트너 완전 젠틀한데?]신경은 무슨.
‘그냥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 돌아가는 거야.’
[츤데레 같으니.]흑태자가 헛소리를 내뱉는다.
저 빌어먹을 츤데레의 오명은 대체 언제 사라질지 의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말에 다시 뵙겠습니다.”“부활동 잘 다녀오거라! 꼬마야!”
아리스와 세이라의 배웅을 받으면서 나는 학생회장 공관을 나섰다.
이제 김치찌개를 맛보러 갈 시간이었다.
*
공관을 나온 나는 다시 가정실습실로 향했다.
안 그래도 저녁을 제대로 안 먹어서 배가 고픈 상황.
실습실 근처에 도달하자 김치찌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꼬르르륵.
배에서 천둥소리가 난다.
드르륵.
가정실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 당신?!”
가장 먼저 귓가에 들린 목소리는 올리비아.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왜 이제야 온 건가요?! 혹시 회장 선배한테 뭔가 이상한 일 당하고 온 건 아니죠? 전속 시녀로서 파렴치한 일은 요,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내게 다가온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친다.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인데 오랜만에 보는 기분.
조금 반갑다.
“아무 일도 안 했어.”“주인님! 주인님 왔구나! 에리링도 주인님 보고 싶었어!”
올리비아 뒤로 나타나는 에리.
“덕성! 왔구나! 보고 싶었다······.”
얼굴을 붉히는 린의 모습도 보인다.
“후배 군. 이제 왔어?”
“주군, 어서 와!”
카스미 선배와 마코토의 인사가 귓가에 들린다.
“하와와와와······. 김덕성님! 다시 돌아오셨군요!”
“히끅!”
에반젤린과 베아트리체의 모습에다가.
“김덕성님을 뵙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색 단발이 인상적인 정장 미녀, 한서진까지 나를 반긴다.
잠깐, 한서진?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김덕성님을 보좌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말에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답하는 한서진.
보좌라니.
하긴 원래 저런 일 하는 보직이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식탁으로 향했다.
“김치찌개 맛 좀 보자. 남은 거 있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뭐라도 입에 넣어야만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탁.
올리비아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프랑스 황녀가 일본 학원에서 끓인 김치찌개였다.
*
학생회관 공관.
김덕성과 세이라가 떠난 뒤, 혼자 남은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두근.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그와 약속을 잡았다.
비록 단독 약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진다.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뚜루루루, 뚝.
통화 연결음이 끊긴다.
[콜록, 콜록, 아-쨩이니?]아리스의 귓가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응. 우리 엄마 몸은 좀 괜찮나?”
[내야 그럭저럭 괜찮데이. 콜록콜록. 도쿄에서는 잘 지내고 있니?]“응. 맞다. 엄마. 내 이번에 주말에 후배랑 고향 가기로 했다.”
[콜록, 후배? 전에 말하던 그 한국인 머스마가?]엄마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는 아리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으, 응.”
[하이고. 잘됐네. 우리 딸래미 예비 사위가 온다니까 우리 집도 준비해야겠네.]“어, 엄마는 무슨! 그런 거 아니다!”
어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히는 아리스.
그녀가 손사래를 친다.
[아니기는. 후후. 그럼 주말까지 잘 부탁한데이.]뚝.
전화가 끊긴다.
스마트폰을 든 아리스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녀의 머릿속에 예비 사위라는 말이 끊임없이 맴돈다.
아리스의 시야에 달력이 보인다.
이제 곧 주말.
그와 함께 고향에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