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41)
“니시자와 에리는 현장 지휘자인 저의 지시에 정당한 이유 없이 사적인 감정만으로 불복종하였습니다. 잠깐의 실수에도 생사가 갈리는 현장에서 명령 불이행은 영웅의 의무를 도외시한 용납할 수 없는 무책임한 행위. 당연히 응당한 대가가 따라야 합니다.”
진지한 척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요. 이런 무책임한 행위를 그냥 동급생이라는 이유로 그냥 봐주고 넘어간다면 니시자와 에리는 제대로 된 영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 요시자키 세이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녀가 눈웃음을 짓는다.
또 치명적인 척 짓는 표정.
긍정적인 신호다.
헛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확실히 타당한 말이군. 좋다. 니시자와 에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도록 하지. 네 말대로 현장에서의 명령 불복종은 심각한 잘못이자 영웅으로서의 결격 사유. 징계 결과는 아마도 퇴학이 되겠지. 그래도 괜찮으냐?”
세이라의 눈동자가 다시 가늘어진다.
또 시험이다.
이번 과목은 ‘상냥함’.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무슨 중간고사 치는 거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시험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문제지를 받았으니, 다시 모법 답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녀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퇴학까지 원하지는 않습니다. 사적인 앙금이야 있지만, 어쨌거나 제 클래스메이트에 짝꿍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그녀가 퇴학당하면 뒷맛이 씁쓸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마 좋다고 냅다 받아서 퇴학시켜달라고 했으면 요시자키 세이라의 안에서 내 평가는 떡락할 게 분명하다.
상냥하지 못하다고 말이다.
그런 의도로 그녀가 함정을 판 거기도 하고.
“호오. 선처를 원하는 것이더냐?”
“예.”
최종 보스 메사이어를 상대하려면 니시자와 에리도 있어야 하기에, 처음부터 퇴학은 불가능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키고 싶은데, 엿 같은 최종 보스 같으니.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 상냥한 척 생색이나 최대한 내서 요시자키 세이라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두는 편이 이득이다.
예상되는 그녀의 처분은 정학과 교내 봉사, 다량의 벌점 정도.
상냥한 세상에서 이 정도면 심각한 수준의 처벌이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징계위원회 현장에서는 퇴학시킬 것처럼 압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니시자와 양도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반성할 테니까요.”
니시자와 에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머니.
그녀를 향한 어머니의 기대 때문이라도 그녀는 퇴학만큼은 극구 피하려 할 터.
그러니 위원회 과정에서 최대한 압박해서 그녀의 멘탈을 박살 내 버려야 한다.
물론 니시자와의 슬픈 가정 사정 따위는 내 알 바 아니고, 반성한다고 해서 내가 알아주고 용서해줘야 할 의무도 없다.
어쨌건 곧 내 노예가 될 상대니까. 노예의 사정까지 일일이 신경 써줄 필요는 없다.
“······반성이라. 흥미로운 발상이구나.”
요시자키 세이라가 치명적인 척 웃는다.
“좋다. 그렇게 하지.”
그녀의 입에서 허가가 떨어진다.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닌 일이니라.”
요시자키 세이라가 옅게 웃으며 말차를 마신다.
저 떫은 걸 잘도 마시네.
린도 그렇고 신기하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는다.
“이 늙은이가 젊은이를 너무 오래 붙잡아놓았구나.”
그 얼굴로 늙은이라니.
괴리감이 장난 아니다.
“이만 가 봐도 좋다. 김덕성.”
촤르륵.
요시자키 세이라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말한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이사장님.”
“이 몸이야말로, 인상적이었느니라.”
그녀의 말을 뒤로 한 채, 이사장실을 나선다.
징계위원회 회부에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건 참교육뿐이다.
*
탁.
김덕성이 나가고 이사장실 문이 닫힌다.
넓은 이사장실에 남은 건 요시자키 세이라 혼자뿐.
후루룩.
그녀가 말차를 한 모금 머금는다.
“김덕성······.”
세이라의 눈이 가늘어진다.
김덕성.
올리비아와 시노자키 린을 이기고, 듀랜달의 정령에게 선택받은 생도.
일본 영웅 협회장인 시노자키 이치로가 관심을 기울이는 생도.
요시자키 세이라가 그를 만난 건, 김덕성의 예상대로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기사공주가 왜 그토록 그에게 홀딱 빠진 건지 알겠구나.”
흑태자의 동료였던 그녀다.
당연히 올리비아와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다.
그녀가 아는 올리비아는 영웅으로서의 책임감을 그 누구보다 중히 여기는, 요즘 생도답지 않은 태도를 지닌 영웅 후보생.
그렇기에 아무리 내기의 결과라고 해도, 올리비아가 김덕성의 전속 시녀로 전락했을 때 세이라는 의문을 표했다.
자존심 높은 프랑스의 황녀가 본인이 인정하지도 않은 사내의 시녀를 자처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세이라는 확인했다.
“······영웅으로서의 책임감.”
솔직히 말해서 니시자와 에리가 그간 김덕성에게 한 짓은 그가 사적인 감정으로 징계위원회를 회부한다 하더라도 세이라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그는 사적인 감정을 인정했으나 선을 긋고, 오직 영웅으로서 그녀를 설득했다.
“그리고 상냥함까지 갖춘 사내라.”
그렇다고 퇴학을 원하지는 않았다.
니시자와 에리의 처분은 명백한 퇴학감이지만, 그는 선처를 탄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호구처럼 물러 터지지도 않았다.
거기서도 반성을 전제 조건으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으니.
요시자키 세이라가 생각하는 영웅의 양대 덕목.
책임감과 상냥함을 더없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다.
“마음에 드는군.”
그녀의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40년만 젊었다면 반했을지도 모르겠어.”
세이라가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책임감과 상냥함을 모두 갖춘 사내.
그렇기에 그녀가 사랑했던, 하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한 채 짝사랑으로 끝난 그 남자.
검성 쿠로사와 아키라는 10년 전에 죽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도 김덕성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던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이 몸이 복수해주마. 아키라······. 반드시······.”
넓은 이사장실.
홀로 남은 세이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애처롭게 맴돈다.
*
니시자와 에리와의 결투 약속 당일.
메인 아레나.
니시자와 에리와 내가 올리비아와 개목걸이 도게자를 걸고 결투한다는 소문이 벌써 널리 퍼진 모양인지 메인 아레나의 관중석은 이미 만원이었다.
‘노도카와 인터뷰를 한 보람이 있군. 기레기 성능 확실해.’
아마노 노도카.
대체 어디서 정보를 주워들은 건지, 니시자와 에리와의 결투 정보와 인터뷰를 원하는 그녀의 요청을 나는 수락했다.
자극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관중을 모아 모든 생도 앞에서 그녀에게 패배의 굴욕감을 안겨주기 위해서다.
남자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공개 결투에서 남자에게 패배한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일 터.
‘거기에 징계위원회와 명령 불이행 관련 내용도 은근히 귀띔해줬으니, 결투가 끝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본격적으로 니시자와 에리의 평판은 나락으로 가겠지.’
아마노 노도카의 옐로 저널리즘이 징계위원회 같은 먹음직스러운 대형 떡밥을 놓칠 리 없다.
기레기 아마노의 기사가 아카데미 채널에 올라가는 순간.
안 그래도 특유의 성질머리 때문에 팬도 많지만 은근히 안티도 많은 니시자와다.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면 그녀의 평판은 지금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 밑바닥 시궁창으로 처박힐 게 분명하다.
어쩌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겠지.
‘전부 자업자득이지.’
걔는 그래도 싸다.
니시자와 에리의 불행은 내 행복이다.
“저기 검은 머리 보인다.”
“쟤가 김덕성이야?”
“니시자와 양한테 개목걸이 도게자를 제안했대······!”
“니시자와 양을 노예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던데? 완전 귀축······!”
“기사공주님에 더해 앞으로 니시자와 양까지 목줄을 채우고 알몸 산책할 생각인 걸까?”
하지만 염병할 생도들의 엿 같은 만담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놈의 귀축 소문, 목줄 산책은 대체 어디까지 진화한 건지 짐작도 안 된다.
속이 울렁거리네 진짜.
오늘의 심판을 맡은 마유즈미 선생의 방송이 울린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김덕성. 반드시 이겨라.”
시노자키 린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올리비아를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흥, 그날 밤에 이미 얘기 다 끝냈잖아요! 뭘 더 바라는 거예요! 바보! 멍청이!”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리며 팔짱을 낀다.
“그날 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매일 밤마다 둘이 은밀히 밀실에서 만나서 서로······.”
생도들의 헛소문이 다시 퍼진다.
진짜 못 참아 주겠네.
“······이겨요. 무조건. 지면 다, 당신 따위는 절대 다시 안 볼 테니까! 각오하라구요!”
올리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이래야 내가 아는 츤데레지.
“김! 응원할게!”
“형님! 무조건 이기는 검다!”
이시하라랑 주인공 놈의 응원도 들린다.
아니 너희 응원은 필요 없는데.
관중석을 내려간다.
아레나에 입장한다.
반대편에 니시자와 에리가 보인다.
“귀축······. 쓰레기······.”
그녀가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욕 실컷 하라고 해라.
이제 그럴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전투 모드 전환해주세요!]마유즈미 선생의 방송이 들린다.
철컥, 철커덕.
니시자와 에리가 전투 모드로 전환한다.
그녀의 슬랜더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전신 장갑.
사슬낫 형태의 전용무장, 쿠사리가마를 든 니시자와 에리가 나를 무섭게 노려본다.
우웅!
듀랜달이 진동한다.
흑태자 양반이 전투 모드 전환을 보채는 모양.
듀랜달에 마력을 주입한다.
[듀랜달 온라인]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온몸에 전신장갑이 씌워진다.
두근, 두근.
가슴 속의 블랙 스톤과 마력로가 공명하며 두 배의 마력을 뿜어낸다.
블랙 스톤을 집어삼킨 이후 첫 실전.
성능 확인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배틀 스타트!]마유즈미 선생의 말이 끝난 순간.
스으으윽.
니시자와 에리의 몸과 손에 든 사슬낫이 그대로 사라진다.
그녀의 기프트, 투명화가 발현된 거다.
니시자와 에리가 경국지색의 쿠노이치라는 이명을 얻은 이유는 전적으로 투명화의 기프트 때문.
[동기화]어빌리티를 발현한다.
흑태자의 재능과 경험이 뇌리에 새겨진다.
두통이 찌르르 울린다.
블랙 스톤의 영향인지, 익숙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전보다는 대폭 줄어든 고통.
촤르르르륵!
귓가에 쇠사슬 소리가 들린다.
우웅!
듀랜달이 울린다.
흑태자의 재능이 반사적으로 쇠사슬 소리가 들린 방향을 감지한다.
듀랜달을 든다.
깡!
투명한 사슬낫이 불꽃을 튀기며 튕겨 나간다.
‘직접 상대하니 엿 같군.’
원작 3권에서 유지는 무색의 마력색을 통한 초월적인 마력 감지 능력과 기감으로 니시자와 에리의 투명화를 순식간에 간파, 그녀의 기프트를 무력화해버리며 이긴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 놈 같은 사기 스킬이 없다.
촤르르륵.
쇠사슬 끄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우웅.
듀랜달이 울린다. 흑태자의 재능이 곤두선다.
깡!
다시 내게 날아온 투명한 사슬낫을 쳐낸다.
흑태자의 재능에 의지해서 간신히 공격을 방어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이대로 장기전으로 간다면 니시자와 에리가 승리할 터.
초월적인 마력 감지 능력이 없다면, 비슷한 걸 만들면 된다.
‘블랙 스톤을 삼켜 마력이 두 배가 된 지금의 나라면 가능해.’
기프트를 사용한다.
블랙 스톤과 마력로가 공명한다.
듀랜달의 칼날에 암흑이 깃든다.
어둠이 깃든 듀랜달을 그대로 땅에 박아넣으며 마력을 더 많이 주입한다.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칠 듯이 뛴다.
땅에 박힌 듀랜달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어둠이 일어나 경기장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새카만 어둠이 안개처럼 피어나 순식간에 경기장 전역을 메운다.
“뭐야?”
니시자와 에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기프트로 만들어낸 암흑 안개는 마력을 쓰지 않은 맨눈으로 간파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 상관 없다.
유지의 초월적인 마력 감지처럼, 경기장 전체를 뒤덮은 암흑 안개가 곧 내 눈이요, 고성능 레이더나 마찬가지니까.
경기장 전체에 퍼진 암흑 안개와 기감을 동조한다.
“윽.”
수많은 정보가 뇌리에 새겨진다.
의미 있는 정보를 선별한다.
‘찾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탐지가 성공했다.
우웅!
듀랜달이 재촉하듯 진동한다.
[비행 모드 전환]부스터가 등 뒤로 튀어나온다.
[금강불괴]어빌리티를 사용한다.
이번에는 제법 강한 두통이 머리를 엄습한다.
“윽!”
입술을 깨물며 두통을 참는다.
비행 모드를 사용해 니시자와 에리가 탐지된 방향으로 그대로 암흑 안개를 가르며 돌진한다.
암흑 안개와 감각이 연결된 시야에 부자연스럽게 일렁이는 신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