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86)
안 어울리게 커다란 가슴.
아무리 봐도 남자 같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마코토는 미소녀였지만, 그녀의 자격지심은 본인의 외모를 객관화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군은 어, 어울린다고 해주셨어.”
상냥하신 분.
마코토는 뒷말을 삼키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놓치기 싫다.
평생 모시고 싶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제 로비에서 목격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린, 에리, 올리비아.
세 여자가 서로 진지하게 사랑의 라이벌을 선언하던 모습을.
“나도······.”
그때 나섰어야 했는데.
당당하게 주군의 마음을 쟁취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마코토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뚜르르르, 뚝.
곧바로 끊기는 통화 연결음과 함께 스피커에서 칸사이 사투리가 울린다.
[문주님 아입니꺼? 어떻게, 그분이랑은 잘 돼셨슴니꺼? 저희가 조언해준 옷으로 마 뻑 가게 만들었지예?]“······으, 응 주, 주군께서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
마코토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문주님이 얼마나 고우신데. 우리 문주님 보고도 심장이 안 움직이면 그건 머스마가 아닌깁니더. 후후. 그래, 그 이야기 때문에 전화했슴니꺼?]“아, 아니······.”
마코토가 고개를 젓는다.
그녀의 머릿속에 방금 들었던 김덕성의 목소리가 울린다.
‘주군께서는 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
두근.
마코토의 심장이 뛴다.
“교토로 일문의 최정예 전력을 소집해.”
[알겠심미더. 아그들아. 준비 단디 해라. 교토로 출장 좀 가야 쓰겄다.]예, 형님! 하는 복명복창과 함께 덜그럭대는 소음을 들으면서 마코토는 눈을 감았다 떴다.
주군께 도움이 되었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
“으윽······.”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 로비로 돌아온다.
관광도 하루 이틀 해야 재밌지, 여러 여자에게 번갈아 가면서 시달리려니 온몸이 지치고 삭신이 쑤신다.
“염병······.”
로비 쇼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니시자와, 린, 마코토, 카스미까지 했으니 다음 차례는 올리비아인가?
이번에는 또 어딜 끌려가려나 싶은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진다.
유지 놈은 이시하라랑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살 판이 났다.
나만 죽어가지, 또. 나만.
“날로 먹었어야 했는데······.”
한국어로 탄식을 내뱉는다.
어째 주인공 놈만 더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열받는다.
“으으······.”
육체적 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로하다.
안 그래도 원작이랑 같은 듯 미묘하게 엇나가는 메이진 학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다.
쉬고 싶다.
“······당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누구더라?
“이봐요, 당신!”
올리비아의 목소리?
고개를 든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백금발을 찰랑거리는 푸른 눈의 미소녀, 올리비아가 의기양양한 아가씨 표정을 한 채로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그래, 올리비아 이번엔 너냐?”
“드디어, 마침내. 당신의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시간이 왔어요!”
입을 가리며 아가씨 웃음을 흘리는 올리비아.
어쩌면 저렇게 만난 첫날부터 지금까지 리액션이 똑같을 수 있는지, 이쯤 되면 경이롭다.
“너는 어디 가고 싶냐?”
내 팔자야.
내 질문에 올리비아가 답한다.
“당신이 원하는 곳이요.”
이게 어디서 수작을.
점심 메뉴 정할 때 항상 아무거나 라고 말하던 내 대학 동기 놈이 떠오른다.
그래놓고 진짜 아무거나 시키면 길길이 날뛰었었지.
김창수. 이 엿 같은 놈.
“나한테 책임 전가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말해. 어디 가고 싶냐?”
내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뺨이 떨린다.
“다, 당신이 원하는 곳이라고요! 모, 모처럼 전속 시녀인 이 제가 당신을 배려해주겠다는데!! 왜 의심부터 하시는 건가요! 이 세상에서 제일 매너 꽝인 둔탱이!!”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친다.
왜 의심하기는.
츤데레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오랜만에 츤데레 급발진을 들으니 머리가 아프다.
에라 모르겠다.
급발진 한번 더 들어도 좋으니 솔직하게 말이라도 하자.
“나는 아무데도 안 나가고 싶은데? 그냥 호텔에서 쉬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하죠.”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뭐?”
그렇게 하자고?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올리비아가 옅게 웃는다.
“당신이 바라는 게 그거라면, 휴식하죠.”
쟤 진짜 왜 저래?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야, 올리비아.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징조라던데,”
진심 걱정되는데?
“으으으으으······.”
올리비아가 앓는 소리를 낸다.
“시, 시끄러워요!! 사,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는 다, 당신 따위······. 주, 죽어버려요!!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김덕성! 흥.”
올리비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 이래야 익숙한 우리 츤데레지.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아, 아무튼······. 오늘 오후는 저, 전적으로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다, 당신의 저, 전속 시녀로서 보좌할 테니까······. 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접근 금지예요! 아시겠나요?”
“맘대로 해라.”
얼굴을 잔뜩 붉힌 채 횡설수설하는 올리비아의 말을 들으면서 소파에 등을 파묻는다.
밤에는 메이진 학생회장을 만나 정보를 수집한 카스미 선배에게 보고를 듣고, 아리스와의 삼자대면 작전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그때까지 좀 쉬어야지.
“좋아요. 그, 그러면 제가 트트트, 특별히 다, 다다당신을 위해서······. 마마마마마마, 마사지를 해드리도록 하죠!”
뭐?
제가 첫 번째니까요
“마사지?”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뭘 해준다고?
척.
그녀의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
올리비아가 말을 더듬으며 소리친다.
“그, 그그그래요! 마, 마사지요! 고,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제가 서민에 불과한 당신한테 트, 트트특별히 하사하는 거니까 가, 감사하라구요! 아시겠나요?”
갑자기 뜬금없게 왜 저래?
말문이 막힌다.
“왜, 대대대, 대답이 없나요?! 모, 모모처럼 이 제가 수치를 무릅쓰고 다, 당신에게 저, 전속 시녀로서 보보보봉사하겠다는데!!”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봉사인지 뭔지 하는 소리 좀 하지 마.”
오해할까 두렵다.
“치,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흥.”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린다.
척.
그녀가 허리에 한 손을 얹으며, 다른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조, 좋아요! 그, 그럼······. 다, 당신 방으로 가죠!”
“내 방?”
“여, 여기서 마, 마마사지를 할 수는 없잖아요!!”
엄한 단어를 들은 로비 엑스트라들이 다시 망상을 펼치기 시작한다.
“방금 들었어? 전속 시녀의 봉사래?”
“바, 방이라니! 검은 귀축. 기사공주랑 그렇고 그런 짓 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마사지가 그 마사지가 아닌 거 같은데. 알몸 마사지?”
“검은 귀축, 침대 위에서는 폭군이라던데 진짜인 모양이야.”
“기사공주님, 밤마다 메이드 복장을 입고 울부짖는다던데?”
“완전 하이 레벨이야. 검은 귀축.”
돌겠네.
또 시작이다.
덥석.
올리비아가 다가와서 내 손목을 잡는다.
“따, 따라오세요!”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로비를 벗어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방앞에 도착할 때까지 올리비아는 손목을 놓지 않았다.
“좀 놓아주면 안 되냐?”
“······흥. 바보.”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건 츤데레 특유의 콧소리와 매도뿐.
올리비아에게 손목을 잡힌 채 방에 도착한다.
탁.
호텔 방문이 닫히자, 올리비아가 그제야 내 손목을 놓아주며 말한다.
“어, 어서 침대에 엎드리시죠! 어, 엉큼한 생각 따위는 한 적 없으니 차, 착각하지 마시고요!!”
누가 착각했대?
말을 말지.
안 누우면 또 종일 츤츤거릴 걸 생각하니 벌써 피곤해진다.
그냥 올리비아 마음대로 하게 좀 놔둬야겠다.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말을 따라 호텔 침대에 눕는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몸을 감싼다.
“조, 좋아요. 지, 지금부터 마, 마사지를 할 테니까······. 평생의 영광으로 아시라고요. 아시겠나요?”
뒤에서 올리비아의 목소리와 함께 등 위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꾸욱, 꾸욱.
등 근육을 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로 본격적인 마사지.
시원하다.
피로가 전부 풀리는 기분.
“흐윽.”
신음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몸이 노곤해진다.
올리비아의 마사지를 받으며 눈을 감는다.
*
김덕성의 등에 올라탄 올리비아가 손으로 그의 뭉친 근육을 눌러 풀어낸다.
“흐윽. 헉!”
김덕성의 신음이 들릴 때마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심장이 뛴다.
“으으으으으······.”
올리비아가 앓는 소리를 낸다.
김덕성의 목소리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머리로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는 올리비아의 마사지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
하지만 셔츠 너머로 손에 닿는 그의 탄탄한 근육의 감촉에 신음이 뒤섞이자 생각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폭주한다.
자꾸 가슴이 떨린다.
로비에 있을 때 들은 생도들의 대화가 올리비아의 뇌리를 맴돈다.
‘시, 시녀복을 입고 침대 위에서······. 겨, 격렬한······.’
그녀의 머릿속에 메이드복을 입은 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침대 위에 서로 같이 누운 모습도.
올리비아의 심장이 요동친다.
그녀의 얼굴이 김이라도 날 것처럼 새빨갛게 물든다.
‘아, 아니에요! 겨, 결단코 그, 그런 파렴치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를 좋아한다고는 해도,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게다가 김덕성은 서민이고 자신은 일국의 황녀.
순결을 함부로 내어줄 수 없다.
자신은 매번 처녀와 가슴 얘기만 하는 음란한 시노자키 린과 다르다.
‘저, 저는 헤픈 여자도 쉬운 여자도 아니에요! 하, 하지만 소, 손 정도는······. 아니 포옹이랑 키, 키스······. 아니 명령한다면 전속 시녀로서 어쩔 수 없으니까······. 좀 더한 행위도 모, 못 해줄 것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올리비아의 푸른 눈동자가 뱅글뱅글 돈다.
이건 전부 김덕성 탓이다.
“이이이이이익!! 이 변태! 파렴치한!! 시, 신음 좀 그만 내면 안 되나요?”
찰싹.
올리비아가 등짝을 때리며 소리친다.
“시원해서 그런 건데 왜 그래?”
“으으으으으······. 흥.”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린다.
“다, 당연히 시원하죠!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마사지니까요! 흥. 뻔한 칭찬 따위 저, 전혀 고맙지 않거든요?!”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과는 달리 살짝 올라간 입꼬리.
올리비아는 들뜬 기색으로 마사지를 이어가며 생각했다.
‘벨라한테 마사지를 배워두길 잘했군요. 후후. 역시 우리 벨라는 유능해요.’
남심을 흔드는 비장의 무기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마사지 테크닉을 전수해준 벨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올리비아는 웃었다.
‘도둑고양이들한테 질 수는 없어요!’
시노자키 린, 니시자와 에리.
사랑을 놓고 싸우는 숙명의 라이벌들.
거기에 최근 추가된 카미야 마코토까지.
그녀들에게 그의 마음을 결코 빼앗길 수는 없다.
‘제가, 제가 첫 번째니까요, 제가 그의 전속 시녀니까요!’
그를 처음 만난 것도.
그를 처음 좋아한 것도.
그의 유일한 전속 시녀도.
그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전부 나다.
[이 시노자키 린. 지금부터 진심전력으로 그의 사랑을 쟁취하겠다. 한발 앞서 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라. 보나파르트.]그녀의 머릿속에 라이벌 선언을 한 린의 목소리가 맴돈다.
모두가 연심을 자각한 상황.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올리비아가 입술을 삐죽대며 등 근육을 꾹하고 누른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거예요?! 뭉친 곳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가요? 흥.”
“으아아앗! 이, 이건 좀 아픈데?”
“잔말 말고 계속 마사지나 받으시라고요!”
그렇게 올리비아의 마사지와 김덕성의 비명은 한참이나 계속 이어졌다.
*
올리비아와 보낸 마사지 타임이 끝난 뒤.
나는 그녀와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후우. 시원하네.”
놀랍게도 올리비아는 꽤 마사지를 잘했다.
원작 설정에 올리비아가 마사지가 특기라는 설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마사지가 특기인 캐릭터는 주인공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