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41
140. 동지 (3)
다음날 당양 정현석 지역구 사무실 앞, 한 남자가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빌딩을 올려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비싸게 굴더니 결국 만나주는군.”
남자는 건물 외벽에 걸린 정현석 지역구 사무실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비싼 술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남자는 시종일관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린 비싼 양주를 내려다보곤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정현석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젊은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영규 차관님 되시죠?”
“아아, 그래. 아르바이트생인가? 정 대표님 계시고?”
이영규는 자신을 맞이해오는 남자를 보고는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는 안에 계십니다만, 아직 다른 분들이 오지 않으셨으니 밖에서 잠깐 기다리시지요.”
남자의 말에 이영규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야? 오늘 나를 뵙자고 하셨는데 다른 사람이 오니 기다리라고? 아르바이트생이라 잘 모르나 본데 대표님께 다시 확인해 봐.”
“저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
“아아, 됐고. 대표님께 다시 여쭈어보래도?”
“대표님께 들은 그대로를 전해드렸습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죠.”
“어허, 누가 온다고 그러나? 아니 그보다 유 보좌관은 어디 가고 자네가 날 맞이하는 거야? 이건 예의가 아니지.”
“유 보좌관님은 잠시 화장실 가셨습니다. 여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를 지정해주자 이영규는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자리에 안내한 젊은 남자를 보며 혼자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갔다던 유종명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이영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종명을 불렀다.
“유 보좌관님.”
“아이고, 이 차관님 어서 오십시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자신을 향해 대뜸 말해오는 이영규를 바라보며 유종명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 대표님께서 안에 계신다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누가 더 온다며 대표님을 못 만나게 해요.”
“아르바이트생이요······? 오늘 아르바이트생은 출근을······.”
유종명과 이영규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저분들은······.”
들어 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이영규 또한 표정이 굳어갔다.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과 당양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경쟁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서들 오십시오. 다들 오셨으니 들어가실까요?”
이영규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입을 열려고 했으나 자신을 대기하라고 말하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자신을 포함한 인원들을 정현석에게로 이끌었다.
사무실의 문이 열리자 자리에 앉아 서류를 살피던 정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반갑습니다. 갑작스레 연락을 드려 만나자 말씀드렸는데 한 분도 빠짐없이 와주셨군요. 자, 다들 앉으실까요?”
정현석의 말에 모두가 불편했던 표정은 지우고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한 분, 한 분 따로 만나 얘기를 듣고 당부를 드리는 게 예의지만, 아시다시피 여기 계신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라 시간이 촉박해 이렇게 모두를 모셨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지훈은 구석에 서서 후보들을 바라보았는데 불만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영규도 정현석의 앞이라 그런지 웃으며 정현석의 말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을 뵙자고 한 이유는 최근 이곳 당양 정치권 사정이 어지럽다는 소문이 중앙에 있는 제 귀에까지 들려와 더 내버려 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모두는 긴장하며 정현석의 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빙빙 돌려 말할 것 없이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현석은 모두를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시간 이후로는 여러분들과 저는 단둘이 따로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자리를 만들지도 않을 거고요. 그러니 애쓰지들 마십시오.”
“대, 대표님······.”
정현석의 말에 이영규가 당황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찌해서 그렇게 정하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 이유는 이 차관님께서 제일 잘 아실 텐데요.”
정현석의 말에 이영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이영규 차관님께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그러셨을까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제 주변 인물들에게 더는 뇌물을 가져와 바친다거나 저를 따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뇌물이 아니라······.”
“보수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시려는 분이 대표인 저와 자리를 만들어 달라며 주는 물건이 어떻게 뇌물이 아닙니까? 대가성이 뚜렷한데요.”
정현석의 차가운 말투에 이영규는 놀라 어떤 대꾸도 못 했다.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은 지역구 사무실에 전화해 저와 연결 해달라 부탁을 하신 분들이 계시겠죠.”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면면을 보며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이 자리를 빌려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받을 것도 없고, 드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쉽게 가려 하지 마십시오.”
정현석은 후보들이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둔 쇼핑백들을 바라보여 표정을 찌푸렸다.
“어떻게 하면 저와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에 또 이런 것들 준비하실 시간이 있으시거들랑 지역을 좀 더 누비면서 지역에 필요한 것이 뭘까 고민하는 후보들이 되십시오.”
정현석의 말에 후보들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굽신거리며 자리를 요구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지역 시민들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행동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어떤 후보를 지지하거나 경력을 가지고 대우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모두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더 당부하겠습니다. 후보끼리 싸우는 일 없이 페어플레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한 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동지라는 점을 잊지 마시고요.”
정현석은 모든 얘기가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현석은 행동으로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참석자들은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왔다.
유종명이 사무실 입구에 서서 후보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고, 이영규의 차례가 다가오자 이영규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유종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저런 성격이면 미리 얘기 해주셨으면 좀 좋아요?”
이영규의 말에 유종명은 어이가 없어져 왔다.
“이 차관님, 제가 분명 말씀드렸잖습니까? 대표님은 이 차관님 행동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내가 가져온 게 부족해서 그런 건 줄 알았지······ 유 보좌관이 좀 더 강력하게 말했으면 대표님께 잘못 보일 일도 없었을 거 아니요.”
이영규의 행동에 유종명은 화가 슬슬 나려 했다. 그때, 지훈이 종이가방을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 차관님, 이거 방에 두고 오셨길래 가지고 왔습니다.”
이영규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지훈을 바라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가 대표님 드시라고 두고 온 건데 들고 오면 어떡하나? 유 보좌관 사무실 아르바이트생 교육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말투도 그렇고 상당히 건방져요.”
이영규의 말에 유종명은 이제야 이영규가 말하던 아르바이트생의 정체를 알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 이 차관님 나이보다 어려 보이신다고 해도 착각을 크게 하셨습니다. 이분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닙니다.”
“이분이라니요.”
“대표님 의원실에서 활동하시는 김지훈 정무 보좌관님이십니다.”
유종명의 소개에 이영규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지훈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아이고, 예··· 너무 젊어 보이셔서 제가······ 보좌관님도 참 악취미가 있으십니다.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이 차관님, 제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려 했을 때 제 말을 끊으신 분은 본인이십니다.”
지훈은 씩 웃으며 이영규를 향해 종이 가방을 건넸다.
“대표님께서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보좌관님 대표님께 별다른 마음이 있어서 드리는 게 아닌 제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거라고 좀 전해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대표님께서는 이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이고, 거참! 보좌관님 젊으셔서 그런가 너무 꽉 막히셨어!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서 대표님 차에 넣어두면······.”
“하하, 이영규 차관님. 이 술은 대표님이 아니라 이 차관님께 필요할 겁니다.”
“그게 무슨······.”
“대표님이 점잖게 말씀하셔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모두의 앞에서 이 차관님의 행동이 아주 많이 잘못되었다고 꼬집으신 겁니다.”
“뭐요?”
“다른 후보분들은 지금쯤 아주 안심하고 계실 겁니다. 상대적으로 가장 좋은 경력을 가진 이 차관님을 콕 집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차관님이 대표님의 눈 밖에 난 것은 아닐까 하고요.”
지훈의 말에 이영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부들거렸다.
“아마 집에 가셔서 곰곰이 생각하시다 보면 그 술이 누구보다 필요하실 겁니다. 좋은 술로 속을 달래셔야 다음 날 숙취가 덜할 테니까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지훈은 이영규를 보며 싱긋 웃어주고는 뒤로 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
“네, 유 보좌관님.”
며칠 후,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훈은 지역구 보좌관인 유종명에게 지역구에 관해 보고를 받고 있었다.
-효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요즘은 지역구 사무실에 찾아오지도 않고 따로 연락도 오지 않네요.
“섭섭하시겠습니다.”
-하하, 김 보좌관님도 참······ 섭섭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귀찮은 일이 사라져 오히려 좋습니다.
“이영규 차관은 어떻습니까?”
-그분만 여전합니다.
“여전하다니요? 아직도 연락이 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대표님께서 지역민들에게 민원을 청취하라고 당부하셨는데도 그분은 지역 유지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지훈은 유종명의 보고에 기가 찬듯한 실소가 삐져나왔다.
“사람이 쉽게 변하겠습니까? 그게 옳은 거라 생각하나 봅니다.”
-어쨌든 다른 후보들은 대표님께서 누굴 밀어주지 않을 거라고 공언하신 것을 내심 기뻐하는 눈치입니다.
“좋습니다. 당분간 유 보좌관님께서 후보들을 만나 그분들이 들은 지역 민원들을 대신해서 청취해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그럼 수고하시고요.
“네. 유 보좌관님도 고생하십시오. 끊겠습니다.”
지훈은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 왔어?”
“네. 유 보좌관님께서 지역구 후보들에 관해 보고하셨습니다.”
“그래? 어때? 요즘도 그런데?”
“아닙니다. 한 분을 제외하고는 대표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지역민들을 만나 민원을 청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 그래? 한 사람만 빼고라는 건 누군지 알 것 같네.”
“네. 이 차관님은 지역 유지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합니다. 대표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신경 쓰지 말자. 알아서 주저앉게 되겠지.”
“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후보들에 비해 나은 경력과 이미지까지 본인의 행실로 인해 까먹게 될 겁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어쩔 수 없이 저런 인간도 챙겨주면서 가야 했겠지. 이제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왔어.”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뒤처지는 사람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죠.”
지훈의 말이 끝나자 정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입고는 결연한 눈빛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우리는 앞으로만 갈 거야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어. 자 그럼 오늘도 한 발짝 더 앞으로 가볼까. 개혁안 준비됐지?”
“네. 여기 있습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손에 들린 개혁안을 받아들고 당차게 걸음을 옮겼고, 지훈은 정현석의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