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코끼리
코끼리의 화신이었다.
화면에 비치는 얼굴도 납작한 코가 길게 늘어진 것이 생김새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은 내가 보아 온 어떤 포워드보다 탐욕으로 일렁거렸고,
퍼어엉 –
티브이로 보고 있지만, 녀석이 차는 공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나무를 뽑아내는 코끼리처럼 말이다!
카메룬의 수비수들은 녀석과 부딪치면 튕겨 나가는 게 전부였다.
‘무엇보다 저 속도!’
엄청나게 빨랐다.
전에 모나코에서 봤던 티에리와 버금가는 속도였다.
화면으로 보아도 거의 2m에 가까운 신장은 온몸이 근육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 몸은 흑인 특유의 탄력까지 무기 삼아 그라운드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두근 – 두근 – 두근 – 두근 –
“누구야?”
“어, 어?”
“저 새끼, 누구냐고?”
“자, 잠깐만!”
타닥! 타다닥 –
존이 내 얼굴을 살피더니 긴장이 전염된 얼굴로 빠르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이름. 시아카 조코라. 현재 열, 열아홉 살이야! 소속팀은 코트디부아르의 ASEC 미모사(이하 미모사). JMG 아카데미(미모사의 유스 클럽) 출신으로 지, 지금 이 경기가 A매치 데뷔전이다. 말도 안 돼!”
존이 녀석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JMG에 아는 사람이 있어?”
“아, 아니……. 하지만 토마스라면 알지도 모르지.”
“전화해. 당장.”
“왜? 우리 회사로 데려오려고?”
“그래. 티에리는 이미 에이전시 회사와 계약되어 있어서 접촉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 녀석은 아직 에이전트가 없을지도 몰라. 보통 JMG에서 유럽에 진출하는 경로를 알선해 주니까. 빨리! 서둘러! 지금 저 녀석의 모습을 본 스카우터가 있다면, 벌써 접촉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 알았어! 그리고 진정할 필요가 있겠어. 아직 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민석이 형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는 방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내려올 수도 있었다.
“그래. 세수 좀 하고 올게.”
나는 존의 말을 듣기로 했다.
경기는 시작한 지 십 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십 분 만에 A매치 데뷔 골에 성공했고 말이다.
‘아쉬. 오늘 질 수도 있겠다.’
나는 1층의 욕실로 들어가며 아슈르를 걱정했다.
물론, 오늘 경기를 패배했다고, 카메룬이 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아프리카의 코끼리 군단이 부활했다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을 만한 사건이었다.
‘강한 미드필더들, 그리고 더 강력한 포워드의 등장.’
한동안 카메룬과 가나, 그리고 세네갈이 주도했던 아프리카의 대륙에 거대한 바람이 불 것 같았다.
코끼리 무리가 질주하며 일으키는 거센 바람이.
* * *
‘코끼리…….’
“한!”
아차차!
맥스의 외침에 눈앞에 굴러오는 공을 재빠르게 발로 잡았다.
‘휴 – .’
며칠 동안 시아카가 보여 주었던 움직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
촤악 –
공을 잡은 채로 몸을 돌리자, 믹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녀석도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는구나.’
사우샘프턴의 주장인 믹 페인은 아직도 우리에게 좋은 감정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자존심이라면 국가대표급이니까.
그리고 전광판의 점수 역시 그의 자존심을 뭉개고 있을 것이다.
퉁 –
나는 일부러 녀석과 부딪히기 싫어 바짝 달라붙기 전에 공을 다시 맥스에게 돌려주었다.
퍼어엉 –
맥스가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망설임 없이 공을 길게 골대 쪽으로 때려 넣었다.
“젠장!”
나와의 일대일 승부를 원했는지 믹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내 귀로 들렸지만, 무시했다.
겁이 나서?
아니다.
얼마든지, 몇 번이고, 녀석을 뚫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조나단과 훈련하면서 무리했어. 아니지. 더 솔직한 마음은 시아카 녀석을 가상의 상대로 두고 이미지 트레이닝에 집중하느라 능력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지.’
그랬다.
다음 날부터 훈련장에서 아파트로 돌아오면 나는 내 방에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다.
이미 어느 정도 충혈되어 있던 상태라 훈련장에서도 시뻘게진 내 눈을 두고 걱정하는 동료는 없었다.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옆구리에 달라붙는 믹을 데리고 녀석의 골대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이미 맥스의 긴 패스를 데릭이 머리로 떨어트려 주고 있었다.
촤아아아 –
사우샘프턴의 센터백이 잔디 위를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릴 정도로 긴 태클이 찰스의 앞을 향했다.
툭 –
‘그래. 무리할 필요 없어!’
웨일스의 평가전에서 출전하지 않은 찰스였지만, 굳이 깊게 들어오는 태클과 부딪힐 필요는 없다.
어차피 발끝에 맞은 공은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으니까.
파바바바바 –
터억 – 턱!
나와 믹의 어깨가 힘을 잔뜩 주고 서로 밀어냈다.
나는 녀석의 무릎이 내 무릎을 건들지 않도록 주의하며 중심을 유지한 채로 공을 향해 달렸다.
‘파울을 유도할까? 아니야. 그럴 것까지는 없어. 잘못하다가 진짜 다칠 수도 있고. 그렇다면!’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더 빨랐다.
촤악 –
녀석이 오른쪽에서 내 쪽으로 미는 힘을 이용해 공을 오른발로 감으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믹의 중심이 순간, 왼쪽으로 더 쏠리며 등에 느껴지는 무거운 체중에 허리가 접힐 것 같았지만, 엉덩이를 뒤로 빼며 중심을 유지했다.
휘이 –
녀석이 왼팔을 내 어깨 위에서 가슴 쪽으로 집어넣으며 다시 체중을 실어 보려고 했다.
확실히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잘 잡힌 미드필더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지난 시즌 필립을 그렇게 힘들게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상대가 바뀌었다.
처억 –
나는 엉덩이를 뒤로 더 빼내어 녀석의 복부를 밀어내며 팔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견제했다.
“이익!”
촤아아 –
그리고 다시 오른쪽 어깨와 등에 쏟아지는 체중을 조금씩 흘리며 왼쪽으로 공과 함께 몸을 더 돌렸다.
순간,
골대 오른쪽으로 선 하나가 길게 그어졌고,
파앙 –
나는 시선이 그리는 방향에 따라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의 왼쪽을 감으며 밀었다.
촤좌자자자자자 –
회전을 먹은 공이 시원하게 잔디를 밀어젖히며 골대 정면에서 오른쪽을 향해 휘어졌다.
팡!
내가 들어도 아주 깔끔한 소리였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 !!!!!”
오랜만에 골에 성공한 릴이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전부 씻어 내려는지 괴성을 지르며 원정까지 응원을 와 준 아이언들을 향해 미친 속도로 달려갔다.
빠르게 회전하는 공에 발만 살짝 갖다 댄 간결한 슛이었지만, 사우샘프턴의 골키퍼는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릴의 발에 정확히 맞은 공은 회전이 풀리며 쏘아지듯이 더 빠른 속도로 골네트에 박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뭐, 내 패스가 더 훌륭했지만.’
“으아아!”
등 뒤에서 절망하는 믹을 그대로 놔두고 나는 천천히 하프 라인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감격하는 릴에게 엄지를 보여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
“알려 줘.”
“응?”
“어떻게 하면 내가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지 알려 주라고.”
한치우에게 묻는 릴의 얼굴이 심각했다.
아카데미의 어린 녀석들과 미니 게임이 끝나고, 릴은 조용히 한치우를 따로 불렀다.
‘마음고생이 심했어. 하긴, 지난 시즌보다 득점력이 떨어졌으니까.’
한치우는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지는 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 릴이 득점 기록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포워드가 아닌 미드필더가 굳이 골에 욕심을 낼 필요는 없었지만, 지난 시즌과 큰 차이를 보이는 기록은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휴게실로 갈까?”
“고마워.”
한치우는 릴의 진심이 느껴져 일부러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릴을 데리고 조용히 휴게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일단 뭐 좀 마시자.”
냉장고에서 이온 음료를 꺼낸 한치우가 병 하나를 릴에게 던져 주었다.
하지만 릴은 병을 받기만 하고, 뚜껑을 열지는 않았다.
“릴. 성급하게 굴 거 없어. 솔직히 아까 주차장에서 네 차를 보고 깜짝 놀랐거든.”
“왜? 내가 훈련장에 나온 게 신기해?”
“음. 조금은? 그런데 아까 네가 몸을 풀던 모습, 훈련하던 모습, 게임을 뛰던 모습을 돌이켜 보면 네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처음 내게 했던 말. 해머스의 오른쪽 날개. 이 자리를 얼마나 간절히 지키고 싶어 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
“맞아. 아까도 말했지만, 국가대표 선수로 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 하지만 나는 내가 은퇴하는 날까지 여기 해머스의 오른쪽 날개로 남고 싶어. 진심이야. 그리고 더 많은 공격 포인트도 남기고 싶어. 언제부터인가, 그냥 나는 아이언 실드의 오른쪽 날개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 마이크는 프리킥이라도 잘 차는데, 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아.”
“릴. 지금의 너도.”
“아니! 충분하지 않아! 미, 미안. 소리 지르려던 것은 아닌데, 후 – 우 – . 한. 난 말이야 데릭과 데이브, 로빈, 마이크, 레이와 함께 축구 하는 것이 좋아. 폴과 리치도 물론이고. 나이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고, 때로는 치고받고, 공을 주고받으면서 자랐지. 그런데 지금은 나 혼자 멈춰 있는 기분이야. 지난 시즌에도 네가 하는 말을 듣고 발전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 형제처럼 지내던 필립은 원래 겁이 많았지. 그래서 마드리드로 도망가 버렸지만, 나는 아니야. 난 여기 남고 싶어.”
“릴…….”
“찰스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 녀석은 내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어. 그리고 언젠가 나보다 더 뛰어난 녀석이 들어오게 될지도 몰라. 이제 해머스는 예전의 리그 중위권 클럽이 아니니까. 부탁이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는 게 있다면, 말해 줘. 프로 선수로서 이런 말 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너라면 괜찮아. 넌 묠니르니까.”
릴의 진심이 한치우의 가슴을 꽉 막아 버렸다.
‘천천히는 취소다.’
“좋아! 릴. 내가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줘.”
“물론이야.”
“릴. 넌 해머스에서 발이 가장 빠르지.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지난 시즌부터 하체의 근력을 강화하면서 몸의 균형도 잘 잡혔어. 해머스에서 나와 맥스의 빠른 패스를 따라잡을 수 있는 선수 중의 한 명이지. 네가 지난 시즌에 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많이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나조차도 바꿀 수 없는 게 있어.”
“그, 그게 뭔데?”
“네 성격.”
“윽!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 아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거야. 너는 침착하지 못하지. 뒤에서 리치나 레온이 계속 위치를 계속 이야기해 줄 정도로 불안할 때가 있어. 그리고 너무 달리는 것에 집중할 때가 많아. 뭐, 그래서 네 쪽으로 마음 놓고 깊숙이 공을 때려 넣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야.”
“타이밍?”
“그래. 내가 아쉬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
“우리는 육상 선수가 아니다!”
“그래. 우리는 육상 선수가 아니야. 축구 선수이지. 라인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발로 차서 골대 안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마, 맞아!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야! 어떻게 하면 될까?”
“네가 이제까지 골에 실패했던 슈팅이 어떻게 골대를 벗어났는지 잘 생각해 봐.”
“…….”
“골대에서 한참 벗어났지. 달리는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정확하게 공을 맞히지 못했으니까.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아쉬를 봐. 그 녀석은 필요한 만큼만 달리고, 자신에게 연결되는 공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먹이를 노리는 흑표범처럼. 그 움직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달리는 게 아니야. 정확하게 공을 발로 맞추는 것이지.”
“아!”
“아카데미 훈련장에 테니스볼 머신이 있는 것을 전에 봤던 기억이 있어.”
“그래! 우리도 어렸을 때, 공을 받는 연습을 그 기계로 했었어!”
“아마, 그때는 발을 다치지 말라고 적당한 속도로 조절했을 거야.”
“지, 지금은 빠르게 해도 괜찮을까?”
“아니. 잘못 맞으면 다칠 거야. 그러니까 축구화를 신지 말고, 발목까지 덮는 운동화를 신어. 그리고 공을 받는 그물망에 발로 집어넣는 훈련을 해 봐. 설명은 더 필요 없겠지?”
“고마워!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미안해. 내가 더 생각했더라면, 네 시간을 뺏지 않았을 텐데.”
“릴?”
“어!”
“나는 비록 너희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도 네 친구가 맞아?”
“당연하지!”
“친구끼리는 미안한 거 없는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미안하면, 미안한 거지.”
“그, 그래…….”
* * *
〈릴 설리번! 정말 오랜만에 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합니다! 벌써 점수가 많이 벌어졌는데요.〉
〈예. 믹 페인이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우샘프턴은 오늘 경기에서 승점을 획득하기 어려워 보이네요. 후반전도 십오 분이 지나가고 있고, 네 골 차이를 쉽게 좁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 웨스트햄은 선수 교체를 준비하네요. 이제 다음 주 수요일에는 파리로 원정을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위해서라도 주요 선수들을 일찍 불러들일 것 같습니다.〉
〈예. 오늘 데이비드 벨과 페어 포크츠, 아슈르 송은 이미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죠. 준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봐서는 미드필더 쪽에서 교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났군! 신났어!”
“정말 오랜만에 보네. 릴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응. 말은 안 해도 많이 속상했을 거야.”
“자기도 열심히 해. 또 다치지 말고.”
“알았어.”
데이비드는 오늘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김에 일부러 그랜트 감독의 병실을 찾았다.
이제 가족조차 오지 않는 병실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래도 제인이 날마다 찾아와 딸처럼 그랜트 감독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물론, 간호인이 있었지만, 그랜트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데이비드였기에 제인은 병실을 찾는 시간이 전혀 고되지 않았다.
“파리에 얼마 만에 가는 건지 몰라.”
“진짜 오랜만이다. 그때는 관광객이었는데, 이제는 시합하러 간다니 믿기지 않아.”
“기억나? 그때 네가 내게 했던 말.”
“내가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어 유럽 일주를 시켜 주겠다고 했었지.”
“맞아. 노을이 지는 에펠탑을 보면서 말이야. 난 너의 그 말을 청혼으로 받아들였어.”
“지, 진짜!?”
“호호호호! 왜, 파티에서 했던 청혼이 아직도 창피해!?”
“아, 아니. 저기서 신나서 펄쩍펄쩍 뛰는 녀석들이 아직도 놀려서.”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데이비드가 슬쩍 고개를 돌려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랜트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파리에는 함께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다려 보자. 한도 한 달이 넘게 의식이 없었어. 그리고 감독님은 한의 상태보다 더 좋다고 했잖아. 그동안 쉬시지 못한 세월을 보상받으시는 거야.”
“그래. 필립이 내일 몇 시에 들어온다고 했더라…….”
“저녁 다섯 시 도착.”
“아! 맞다. 이 녀석 날마다 울면서 전화했는데, 내일 감독님을 뵈고 울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옆에서 친구들이 잘 타일러야지. 그리고 로빈이 가만 안 있을걸?”
“그건 그래.”
데이비드가 제인의 말에 고개를 티브이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침대를 향해 돌아봤다.
“응?”
“왜?”
“아니, 뭔가…….”
제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는 데이비드의 모습에 궁금함을 느끼며 남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아까 분명히 자기가 감독님의 손을 가슴 위로 올려 두지 아, 않았어?”
“그, 그래.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드리고 모아 드렸는데……?”
“서, 설마!”
타닥 – !
데이비드가 순식간에 소파 위에서 일어나 그랜트 감독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슴 위에 있어야 할 두 손 중의 오른손이 옆구리 옆으로 떨어져 있었고, 두 눈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무엇보다 호흡기에 가려진 입술이 잘게 떨리며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제인! 의사 불러! 감독님! 감독님!”
“……파……리…… 파, 리…….”
그랜트 감독의 호흡기에 바짝 귀를 붙인 데이비드가 집중해서 들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