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17
화
우리는 생각을 못했다.
설마 얼마 전에 들어온 입구로 갈 수 없을 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 입구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지나왔던 통로는 막혀 있고, 그 통로에는 이전부터 길은 없었다는 듯이 이어붙인 흔적도 없는 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광분한 세바스찬이 필살기까지 동원해서 두드려 봤지만 깊은 흔적만 남을 뿐, 뒤쪽에 있으리라 예상한 길은 없었다.
“길을 찾아야 하겠군.”
세바스찬은 씩씩거리며 한참을 화를 내더니 순식간에 진정이 된 얼굴로 그리 말하곤 일행 모두에게 긴장한 상태로 이동을 지시했다.
아직 던전 안이고 리더는 세바스찬이다. 나와 포포니, 텀덤도 세바스찬의 말에 따라서 이동을 시작했다.
던전의 벽은 벽돌로 되어 있고 얼마간 이동하면 두 갈래나 세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그 갈림길은 언제나 직각을 이루는 것을 기본으로 했는데, 우리가 걸어온 곳과 두 개의 통로가 더 있는 경우가 있고, 세 개의 통로가 있어서 십자로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갈림길이라 할 수 없는 방향만 바뀌는 곳도 있었다. 그곳은 다른 곳과 달리 갈림길이어야 하지만 한 곳으로만 통로가 나 있는 곳인 것이다.
그런 갈림길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한 마리에서 두 마리의 해골들이 있었다. 세 마리가 나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처리를 하면서 이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이거 봐. 남폄.”
포포니가 툴틱을 눈앞으로 들이대며 말한다.
뭔가 봤더니 그 동안 우리가 지나온 길을 표시하는 지도다. 이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면서 확인을 해 오던 건데 방금 우리가 이전에 지났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
“세바스찬.”
나는 세바스찬을 불러서 그 지도를 보여주고 물었다.
“선택은 둘이야. 이 안쪽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쪽 외곽을 계속해서 확인을 해 나갈 것인가?”
지도는 지나온 길만 보여주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온 안쪽은 검은 색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 안쪽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제법 먼 거리를 걸어서 한 바퀴를 돈 때문에 전체적으로 우리가 지난 길은 원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외곽이란 말이 나온 것은 우리가 왼쪽 벽을 짚으면 지금까지 오면서 단 한 곳은 그냥 지나친 곳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거기가 던전의 새로운 구역으로 가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곳에서부터 안쪽으로 바닥이나 벽의 재질이 약간씩 다르고 색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던전들의 형태를 생각하면 외곽에 출구나 코어가 있다는 판단이 옳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지금까지의 던전은 입구 홀과 중간 홀, 그리고 마지만 코어 홀로 구별이 되었었다. 이것이 일렬로 늘어선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중간 홀의 경우에는 여럿이 어지럽게 난립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입구 홀을 지나가 전진하다보면 중간 홀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전진하면 코어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던전의 공통적인 구조였다.
지금 던전이 특이하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일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길 좋아한다.
그러니 이 던전의 출구도 원형을 이루고 있는 길의 안쪽의 어두운 부분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비록 거기가 중간 홀로 가는 길일지도 모르지만 고정관념은 던전의 중앙에 입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이런 결정은 리더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그러라고 리더의 자격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리더에게 그 결정권이 있다는 것은 분란의 소지를 없애는 좋은 방법이다. 괜히 자기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그 때는 정말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생길 수가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할 일이다.
헌터들은 미적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선택을 두고 다투는 것 보다는 잘못되더라도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 쪽을 선호한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결정은 세바스찬의 의무이자 권리다.
“차근차근 모든 지도를 밝혀나간다. 비어 있는 곳이 없도록. 어쩌면 이 안쪽에 출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가 의도적으로 피한 그 통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곳일 것 같아. 느낌이지만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거든.”
세바스찬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자, 우리는 곧바로 검게 되어 있는 지도의 안쪽을 밝게 밝히기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
한 번의 착오는 계속되는 착오를 부르는 것인가?
우리는 이곳의 몬스터들이 보라색 등급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젠이 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지금 전멸의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우리가 걸어서 한 바퀴 돌았던 그 영역, 그러니까 검은 색으로 표현된 내부까지 묶어서 제1구역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제1구역의 중앙으로 가기 위해서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이동했다. 마치 짠 것처럼 두 마리 이상의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고, 그 덕분에 희생자 없이 전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 특히 정신 능력자들은 육체 능력자에 비해서 수면이나 피로에 대한 저항력이 낮다.
때문에 우리는 처음 입구를 내려온 이후로 벌써 네 번이나 잠을 잤다. 4일이 지났다는 소리다. 하루 평균 다섯 번 정도의 전투를 벌였고 여덟마리 정도의 해골을 잡았다. 더는 텀덤의 배낭에 공간이 없다고 그것들을 버리고 이동했다.
잠을 잘 시간이 되어서 십자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잤는데 잠에서 깨어 다시 전진을 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 앞쪽에 해골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싸움을 준비하는데 뒤에서 다시 세 마리의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순찰을 하는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일정 구역을 정해서 왔다갔다 이동하는 몬스터를 우리는 로밍 몬스터, 로밍 몹이라 부르는데 그 녀석들인 셈이다. 그것도 세 마리고, 한 마리는 전사가 아니라 천으로 된 옷을 걸친 놈이다. 그게 뭐가 되었건 우리는 다섯 마리의 몬스터들에게 쫓기는 입장이 되게 생겼다. 이미 앞쪽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두 마리도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해결 불가능. 퇴각!”
세바스찬이 소리를 지르며 일행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지나온 갈림길도 되돌아가서 하나 남은 갈림길로 빠져서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포위는 되지 않았지만 뒤에 다섯 마리의 해골이 달려오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약간 마음의 여유가 있엇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어제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고 몬스터는 모두 처리한 길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달리면 뒤에 따라오는 놈들을 따돌릴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놈들의 달리기 속도는 우리가 따돌릴 정도는 되어 보였으니 어느 정도 안심도 되었다.
앞쪽에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허억! 벌써 젠이 되어 있어!”
알프레가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우리는 해골 몬스터 일곱 마리의 포위 속에 서 있게 되었다.
네팔자이언트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러야 다시 나타났는데 여기 해골은 하루가 되기 전에 다시 젠이 된 것이다.
“설마 뼈들을 그대로 둬서 더 빨리 젠이 된 걸까?”
나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할 정도로 당황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텀덤의 가방에 들어 있는 뼈들도 모두 되살아 나야 하지 않나?
아, 아니다. 저건 공간이 격리되는 가방이지? 그래서 괜찮은 걸까? 혹시 저 가방에서 꺼내면 해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와 포포니, 텀덤, 세바스찬, 알프레, 굴리야, 정신 능력자 셋에 기사단 일곱.
총 열 여섯 명이 양쪽에서 다가오는 보라색 등급의 해골 일곱 마리에 포위된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이건 도망이고 뭐고 없다. 그냥 전멸이다.
아, 씨. 이럼 안 되는데. 나하고 포포니, 텀덤만 살까? 아니면 나머지 열 세 명도 구해야 하나?
정말 미치겠네.
급한 중에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데 포포니가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나는 포포니의 표정에서 다른 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읽었다. 그래 그게 사람의 도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