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86
화
설마 우리 마눌, 저 껍데기 멋진 놈에게 반한 거야? 응? 아니지? 그건 아니겠지?
내가 슬쩍 포포니의 팔을 잡는데 포포니가 팔을 흔들어서 내 손을 떨쳐낸다.
이게 뭐야? 나 버림 받은 거야 하고 느끼는 순간 포포니가 등에 있던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쇄도하며 칼질을 한다.
내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아까 그 새끼가 검을 들고 날아온 거다. 그걸 포포니가 중간으로 달려 나가 막았다.
“이런 씨발!!”
나도 곧바로 허리에서 칼을 뜯어서 달려가려는데 그 놈이 데리고 온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해 보자는 거지? 쌍노무 새끼들이!!”
내가 칼에 강기를 가득 끌어 올리곤 몸을 날리려는데 앞을 막은 이들 중에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화원주님께선 그냥 저 분의 실력이 궁금해서 저러시는 겁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이제 보니 이것들 전부 화원 놈들이다. 그것도 가슴에 화려한 나비를 그려 넣고 있는 놈들.
오냐. 지금 화원이 몰려 와서 우릴 핍박한단 말이지?
그래 오늘 어디 죽어보자.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하고 그냥 살면 뭐하냐? 지금 우리 마눌이 저 새끼에게 농락을 당하는 마당에.
나는 눈이 뒤집히는 느낌에 죽어라 칼을 휘둘렀다.
“닥치고 덤벼 새끼들아!!”
카강! 카가강! 콰광!
씨팔 내가 디버프 덕분에 몬스터에겐 참 강한데, 이런 개 같은 경우에는 그다지 힘을 쓰질 못한다니까. 여기 놈들 전부 강기 줄줄 뽑는 놈들이고 경지도 나보다 높아.
마눌 우리 오늘 이 자리가 무덤자리가 될 것 같다. 어쩌냐? 미안해서.
나는 정말 억울하고 분해서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힘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억울한 것인가 싶었다. 우리 부부는 정당했고 잘못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화원 놈들이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칼질을 해도 어떻게 대처를 할 방법이 없다.
‘이곳은 데블 플레인이다.’라는 말에 숨겨진 더러운 이면의 모습을 이렇게 경험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참 지랄같은 날이다.
콰과과광!
“우악! 피해!”
“케엑 뭐야?”
“이런 씨발, 뭔 일이래?”
갑작스런 폭음은 포포니와 그 원준가 하는 놈 사이에서 난 충돌음이었고,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서 구경꾼들 몇이 다치기까지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내 앞의 놈들을 무시하고 포포니부터 찾았다.
충돌이 있었던 곳, 거기 포포니가 칼을 땅에 찍은 상태로 위태롭게 서 있다.
“포포니!!”
나는 앞을 막는 놈들을 미친 듯이 밀어내며 포포니에게 달려갔다.
의외로 길은 쉽게 뚫렸다.
“포포니, 마눌 괜찮아? 응? 어디 봐! 응?”
나는 포포니의 상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데 포포니는 뚫어지게 앞을 보고 있다.
거기엔 원주 놈이 약간 흐트러진 모습으로 서 있다. 놈의 검은 이빨이 나간 상태다. 그것 말고는 별 손해를 본 것 같지도 않다. 전에 포포니가 말한 대로 놈이 조금 더 강한 모양이다. 젠장 그래 어차피 죽기로 한 마당에 뭐 어때? 그래도 곁에 우리 마눌이 있으니 외롭진 않겠지. 그런데 나 이번에 죽으면 또 다른 곳에서 깨어나는 걸까? 포포니 기억은 잊고 싶지 않은데? 예전 조앤의 기억처럼 깊은 감정은 없이 단색 그림처럼 남게 되면 안 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포포니 곁에서 칼을 들고 화원주라는 놈에게 겨누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거다. 너 아니면 우리가.
이리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미안해. 남편. 나보다 세다.”
포포니가 기죽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괜찮아. 포포니. 우리지금도 함께 있어. 그리고 계속 함께 있을 거고.”
“웅. 그래. 그리고 아빠가 복수는 해 줄 거야. 아빠랑 엄마랑 오면 끝장이야.”
“후훗. 욕 많이 하시겠다. 딸도 지키지 못한 못난 사위라고 말이야.”
“우웅, 그러실까? 아마 많이 슬퍼하실 거야. 그래도 난 우리 남편이랑 함께 있어서 좋았고. 지금도 좋아. 쓰담쓰담 해 줄래?”
“그래. 포포니.”
나는 칼을 왼손으로 옮기고 포포니에게 쓰담쓰담을 해 줬다.
포포니는 여전히 화원주 놈을 노려보고 있지만 내 손길 따라서 얼굴에 환한 기운이 돈다.
기뻐? 행복해? 나도 기쁘고 행복해. 그리고 감사해!
나는 다시 칼을 옮겨 쥐고 강기를 불어 넣었다. 오래 이러고 있는 것도 추하다. 이 정도 기다려 준 것도 고마운 일이지. 가자 포포니.
“으아아앗! 덤벼라!”
내가 먼저 소리를 지르며 놈에게 달려들고 뒤따라 포포니가 곁으로 붙는 것을 느꼈다.
“우아아! 뭐야? 왜 이러는 거야? 그만! 그만하자고! 에이씨!!”
그런데 그 순간에 화원주란 놈이 갑자기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저 만큼 뒤로 물러난다. 그리곤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찢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꺄악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의 무신경함에 찬사를 보낸다.
“내가, 이 놈의, 화원인가, 뭔가를, 안 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은, 이런, 더러운, 꼴을, 보게, 만들어!!!”
우아 저 놈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다. 바지까지 반바지를 만들고 나서야 광란을 멈추고 씩씩 숨을 몰아쉬며 조용해진다.
나와 포포니는 멀뚱하게 서서 뭔 일인가 지켜보고 있다.
아까 나를 막아서던 놈들이 그 화원준가 하는 놈에게 몰려들어서 달래고 있다.
참으라느니, 다 끝났다느니, 이젠 마음대로 하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서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말을 시작한다.
“저 양반이 화원의 원준데, 그게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들 몰려와서 원주 해 주세요. 하고 매달리니까 어쩔 수 없이 앉은 자립니다. 원래는 그냥 몬스터 사냥이나 즐기고 더 강해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보는 것처럼 좀 생긴 것이 우월하다 보니까 꽃들이 달려들어서 화원주가 된 겁니다. 오늘 일도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화원 가족들이 열이나 죽었다는 소리만 듣고 제6 임시 거점으로 가던 길을 되돌려서 여기까지 달려 온 겁니다. 그리고 여기 다 와서 청문회장에서 있었던 그 일을 모두 보고는 참 부끄러워 할 말이 없다고 하더니, 그래서 만나면 사과부터 하고, 원주고 뭐고 때려치운다고 이미 한 번 난동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보기보다 단순한 면이 있어서, 그 영상에서 그레이트를 여기 포포니 님께서 콕 찔러서 잡는 장면에 그만 뻑이 간 겁니다. 그거 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지요. 그래서 그걸 한 번 몸으로 받아 봐야 겠다고 아까 다짜고짜 공격을…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저 양반 그런 때에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만 얻으면 금방 정신을 차리니까… 일이 그렇게 된 겁니다.”
참 당신도 힘들게 삽니다. 저런 사람 뒤처리 하려면 고달프겠습니다. 뭐 어쨌거나 우린 그만 가면 안 될까요?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럼 볼 일 끝났으면 우린 가 봐도 될까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화를 내거나 따질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미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나. 힘이 없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이 이곳 데블 플레인이다.
나는 우리가 약자임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냥 이대로 보내줬으면 좋겠다. 더는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나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왼손으로 포포니의 손목을 잡고 걸었다. 무작정 걸었다. 제발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우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