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슉 하고 탁 (2)
김호와 송천혜가 던전에 입장하자,
여신상 곁에 걸터앉아 있던 당규영이 그들을 맞이했다.
“연습? 실전?”
“실전 해 볼게요.”
“좋아.”
당규영은 상당히 기꺼웠다.
이번 주 디펜스에서 그녀의 역할은 지휘관으로, 한구석에 앉아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게 다였다.
스티커 대인전에 비하면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한 주 내내 그러고 있으니 슬슬 지루함이 올라오던 참이었다.
“준비되면 신호 보내. 바로 시작한다.”
“네, 선배님.”
당규영이 땅을 가볍게 박차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송천혜가 당규영이 사라진 자리를 일별하고, 여신상을 잠시 올려다보곤 김호에게 말했다.
“우리도 자리 잡죠.”
“그러죠.”
두 사람은 여태까지 해 왔던 대로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
정문 앞에 선 송천혜는 노을로 붉게 물든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장갑을 꺼내 양 손에 착용했다.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자 장갑에 깨알같이 박힌 토파즈가 파직하고 미약한 전류를 흘렸다.
“케르륵.”
“케륵!”
오와 열을 맞춰 척척 진군해 오는 고블린들.
송천혜는 놈들을 담담히 응시하면서 바닥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커다란 마법진이 빠르게 완성되어 간다.
[라이트닝 필드]– 치지직, 치직!
장판에 발을 들이자마자 고블린들의 몸에서 마구 스파크가 튀겼다.
그러나 고블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규영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여 꾸역꾸역 전진해 나갔다.
“…….”
반면 송천혜는 장판을 설치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지나쳐 가는 고블린들을 무심히 지켜볼 뿐.
이따금씩 돌멩이나 나무창 따위가 날아올 때만 마력 장벽을 세워 막는다.
“케르륵,”
“키익!”
고블린들이 그대로 장판의 범위까지 벗어나려는 찰나.
송천혜가 미리 준비해 둔 술식을 해방했다.
[라이트닝 노바]– 파지지지직!
송천혜를 중심으로 전류의 파도가 퍼져 나간다.
파도에 휩쓸린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탄 재가 되어 흩날렸다.
다음 순간 그녀의 반경 수 미터 이내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되었다.
“케에엑!”
“케륵.”
고블린들이 계속해서 진군해 오며 그 자리를 메웠으나,
– 파지지지직!
또다시 송천혜를 중심으로 라이트닝 노바가 퍼져 나가며 놈들을 휩쓸어 버린다.
디펜스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깨달은 점 하나.
‘방어는 효율적으로.’
복잡하게 이 마법 저 마법 연계할 필요가 없다.
가장 효율적인 두어 개만 골라서 연발하면 된다.
익힌 마법이 거의 백여 개에 달하는 그녀였기에 다소 시행착오가 필요했지만, 결국에는 이 [필드]와 [노바]의 연계로 좁혀진 것이다.
라이트닝 노바의 범위에 최대한 많은 몬스터들이 몰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쓸어버린다.
두 마법은 범위가 거의 엇비슷해서 궁합도 잘 맞았다.
그렇게 송천혜가 완벽하게 정문을 방어하는 도중, 어깨너머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 쿠르르릉,
보나 마나 측면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라 송천혜는 굳이 뒤쪽으로 시선을 줄 필요를 못 느꼈다.
어차피 저렇게 놔둬도 김호가 알아서 잘 틀어막을 테니까.
앞만 바라보면서 연신 라이트닝 노바만 시전하다 보니 남은 시간이 절반가량 소모되었다.
[여신상 100%] [남은 시간 4:51]“그르륵…….”
참수자 고블린이 등장한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
놈이 움켜쥔 식칼에 선명한 마나가 맺혔다.
참수자가 점점 속도를 붙이며 달려오고, 뒤따라 고블린들도 우르르 몰려든다.
“…….”
반면 송천혜는 정문에 그대로 선 채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 강렬한 전류가 파직거리며 모여들어 굵은 벼락을 만들었다.
반대쪽 손으로는 다음 마법 술식을 조립한다.
곧 식칼과 벼락이 마주 휘둘러지고,
– 쩌엉—!
“그르륵.”
참수자가 몇 걸음 물러났다.
송천혜의 실력이 한두 수 위라 당연한 결과.
이내 더욱 적개심을 불태우며 짓쳐들어온다.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며, 침착하게 맞대응하는 송천혜.
그러다가 고블린들이 정문을 넘기 전에, 미리 시전해 둔 라이트닝 노바를 해방한다.
– 파지지지직!
‘더 시간을 끌어야 돼.’
깨달은 점 두 번째.
참수자의 맷집은 보통 튼튼한 게 아니라 단기간에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쓰러뜨리기보다 길게 보면서 방어에 비중을 두는 편이 낫다.
– 쩌엉!
송천혜와 참수자가 몇 번이나 맞붙었다 떨어졌다.
그리고 이따금씩 라이트닝 노바로 지나가려는 고블린들을 쓸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여신상 100%] [남은 시간 2:41]아직까지는 완벽하다.
측면 구멍도 김호가 잘 막아 주고 있을 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고 시간을 끌자.
그럴수록 방어가 뚫렸을 때 고블린들이 여신상을 때릴 시간도 줄어든다.
“그르륵?”
그 때, 참수자가 멈칫하더니 눈빛이 조금 변했다.
당규영에게 새로운 지시를 하달받은 듯했다.
곧 이전보다 한 층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온다.
식칼과 벼락이 또다시 충돌하고,
– 쩌엉!
“그아아아—!”
참수자가 밀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놈의 다음 행동이 달랐다.
뒷걸음질 치는 대신 엉망으로 무너진 자세 그대로 온몸을 던져 온다.
“이건……!”
– 파츠츠츠!
송천혜가 전격 마법을 쏟아붓는데도 요지부동.
어떻게든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집념이 엿보인다.
“케르륵.”
“케엑!”
그 틈을 타서 정문을 통과하려 드는 고블린들.
송천혜가 또다시 라이트닝 노바를 시전했으나,
– 파지지—직,
원형으로 넓게 퍼져 나갔어야 할 전류의 파도가 참수자의 몸에 걸려 반쯤 퍼져 나가다 말았다.
위력 역시 대폭 줄어들었다.
당규영이 내린 지시는 아마 몸으로 비벼서 막는 것.
빈틈을 더 드러내고 피해를 많이 입더라도 라이트닝 노바를 견제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상당히 유효했다.
“케르륵.”
“케륵!”
고블린들이 한두 마리씩 방어선을 뚫고 신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김호의 활약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참수자 처치에 집중해야 한다.
– 펑!!
어깨너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평소보다 볼륨이 컸지만 많이 들어 본 소리였다.
김호가 바람을 압축해서 폭발시킨 모양이다.
한창 참수자와 치고받느라 바빠서 뒤쪽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그가 무엇을 했을지도 대강 짐작이 갔다.
바람을 폭발시켜 측면 벽 너머 고블린들을 와해시키고, 놈들이 자세를 수습하는 동안 여신상 근처로 이동한다.
그리고 송천혜가 놓친 고블린들에게서 여신상을 보호하는 것.
—이었어야 했는데…….
– 펑! 펑!
“끼익!”
“깩!”
바람 터지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바로 등 뒤에서 들리더니 방금 자신을 지나쳐간 고블린들이 휙 날아와서 자기 앞에 떨어졌다.
송천혜가 의아함에 뒤쪽을 바라보자,
“……?”
“서프라이즈~”
곁에 다가온 김호가 인사를 건넸다.
“아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에요? 구멍은 어쩌고, 여신상은—”
송천혜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원래 김호의 역할은 측면 구멍을 틀어막다가, 정문 방어가 뚫린 시점부터 여신상 근처로 자리를 옮겨 방어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서프라이즈’따위를 한답시고 망쳐 버렸다면 화가 많이 날 것 같았다.
김호는 송천혜의 물음 반 질책 반에 대답하는 대신, 빙긋 웃으며 두 손을 펴 보였다.
이건 또 뭐 하자는 거지?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왜 빈손이지?’
무기는 어디 두고 왔지?
그제야 측면 벽 쪽을 살펴보니,
– 휘이이잉—!
덩그러니 꽂혀 있는 김호의 단창.
그것을 중심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고블린들은 꾸역꾸역 구멍에서 기어 나오려고 하다가도 몰아치는 바람을 못 이기고 도로 밀려들어 가곤 했다.
김호의 바람 마법을 저 단창이 대신 시전하는 듯했다.
‘근접전은?’
이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근접전] 규칙에 걸려서 위력이 대폭 감소해야 하는데, 저 바람 마법은 본래 위력이 그대로 발휘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 역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마법을 시전하는 주체가 저 단창이기 때문에.
‘근데 그게 되는 거였어?’
머리로는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여전히 조금 아리송했다.
확실히 서프라이즈기는 했다.
– 펑!
“그르륵…….”
그때, 바로 앞에서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고, 막 식칼을 휘두르려던 참수자가 뒤로 밀려났다.
퍼뜩 정신을 차린 송천혜에게 김호가 말했다.
“그만 한눈팔고.”
“앗, 네!”
“큰 거 한번 써 봐. 큰 거.”
“큰…… 거요?”
“어. 커버쳐 줄 테니까.”
송천혜가 금세 김호의 의도를 캐치했다.
이전 도전들에서는 좀처럼 캐스팅할 틈이 안 나서 못 쓰던 강력한 마법으로 참수자의 체력을 대폭 깎아 놓자는 말이다.
즉시 마나를 끌어모으며 정신을 집중한다.
온갖 기하학적인 문자들이 빠르게 조립되며 술식의 모양을 갖춰 간다.
술식의 크기가 크고 복잡한 탓에 마나 소모량도 많았는데, 어느새 송천혜의 머리 위에 떠오른 푸른 왕관이 함께 마나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 펑! 퍼펑!
그동안 김호는 바람 마법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밀쳐 내며 완벽하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참수자가 방금 전까지 하던 대로 몸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했지만, 온 몸이 다 밀려 나는데 별수 있으랴.
그리고 송천혜의 마법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 휘잉—
“케르륵?”
“케엑?”
“그르륵?”
정면으로만 불어가던 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참수자와 고블린들을 한곳에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송천혜의 대단위 마법이 떨어졌다.
[뇌우 소환]– 쿠르르릉! 콰콰쾅!
굵은 벼락들이 마구 내리꽂히며 일대를 뒤집어엎었다.
원래는 넓은 범위에 걸쳐 피해를 주는 광역 마법이지만, 송천혜가 술식을 조금 수정해서 회오리의 중심에만 벼락이 집중되게 만들었다.
정확히 참수자의 머리 위로만 떨어지도록.
금세 정문 앞이 자욱한 흙먼지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벼락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되었을 때 김호가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걷어 냈다.
“그르, 륵…….”
회오리에 갇혔던 고블린들은 이미 깔끔하게 삭제된 상태고, 참수자 역시 거의 그로기 상태에 빠져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흘끔 본 김호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마무리해. 나는 다시 저기 막으러 간다.”
송천혜가 측면 벽 상황은 어떤지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바람이 조금씩 사그라들며 고블린들이 구멍에서 하나둘 빠져나오고 있었다.
단창을 통해 시전하는 마법에도 시간제한이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무한정 유지되는 건 말이 안 되지.
“그아아—!”
참수자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식칼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벼락을 마주 휘둘러 부딪힐 때 손에 전해지는 충격이 훨씬 덜한 거로 보아, 방금 전의 대단위 마법에 체력이 많이 빠지기는 한 듯했다.
이윽고 몇 합 교환하지도 않았는데,
“크아아아—!”
참수자가 크게 포효하며 식칼을 쥔 팔을 뒤로 젖혔다.
그것을 보고 송천혜의 눈이 번쩍 빛났다.
식칼을 투척하려는 사전 동작임을 읽어 낸 것이다.
‘슉 하고—’
재빨리 땅을 박차 참수자에게 달려들며, 휘둘러지는 식칼을 향해 있는 힘껏 벼락을 내지른다.
“—탁—!!”
– 쩌엉—!!
막 참수자의 손을 떠난 식칼이 벼락과 충돌하고, 날아가는 방향이 확 꺾였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여신상에서 한참 떨어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더니 힘을 잃고 바닥에 푹 박힌다.
“그륵…….”
그리고 참수자 고블린은 그것으로 모든 힘이 다했는지 저절로 잿가루가 되어 흩날려 버렸다.
송천혜가 불끈 주먹을 그러쥐었다.
슉 하고 탁 성공!
‘체력은?’
황급히 스코어보드를 확인해 보니,
[여신상 94%] [남은 시간 1:03]‘이렇게 많이 남았다고……?’
송천혜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이 정도면 거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는 없다.
아직 잔당들이 제법 남아 있었고, 눈먼 돌멩이 따위가 여신상에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송천혜가 김호를 돕기 위해 여신상으로 달려갔다.
* * *
[여신상 체력 93/100% = 465점]+ [처치한 고블린 수:120 = 60점]
+ [‘강적’ 처치 = 100점]
+ [클리어 보너스 = 300점]
——————
[총 점수:925점]* 지상층 던전 공략 0.8배율 = 740pt
정산되는 점수를 보며 송천혜는 상당히 흡족했다.
이만하면 거의 학년 최고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홍연화의 콧대 역시 가뿐히 눌러 줄 수 있으리라.
때문에 그녀의 어조 역시 한결 부드러웠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넘겼네요. 90%. 제가 잘못 생각했었나 봐요.”
“…….”
“무기를 어떻게 써먹으실지 걱정도 했었는데, 제가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 활용하셔서 조금 놀랐어요.”
“……..”
“저랑 연계해서 참수자한테 버스트딜을 넣는 판단도 좋았어요. 금방 패턴이 나오더군요.”
“…….”
그러나 김호는 빙글빙글 웃으며 송천혜를 바라보기만 했다.
보통은 이쯤에서 한마디쯤 할 법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
송천혜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바라보자, 김호가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검지를 치켜세웠다.
뭐지? 위를 보라는 뜻인가?
시선을 들어 올렸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로 시선을 내려 김호를 보자,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 두 개를 더 피면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소.원.권. 세. 개.
“아.”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