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낙양에 저무는 달
별채로 돌아가니 과연 이곳도 난입한 자객들로 인해 난장판이었다. 삼 척의 단단한 문이 산산조각이나 마당 꽃밭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니 당장 검광이 번뜩이며 남궁유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호오.”
두 사람은 문간에 멈춰 서서는 남궁유가 용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검광과 함께 푸른 뇌전이 번뜩였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검은 그림자가 하나씩 고꾸라졌다.
“저게 안휘남궁의 초절검광(超絶劍光)인가? 무시무시하구먼.”
위지백이 무광도를 끌어안은 채 느긋하게 말했다. 말로는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마치 귀엽다는 듯한 눈길이었다.
반면에 당민은 고요했다. 그녀는 처음에 앉았던 자리에 조용히 앉은 채였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자객들도 감히 다가가지를 못했다. 그녀를 향해 고개만 돌려도 빛이 번쩍하고는 죽어 나가니. 차라리 남궁유에게 달려드는 것을 그나마 살 길이라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남궁유는 거기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그야말로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백전대소사를 겪으며 관중검이라는 이름을 바르게 세웠지만 지금과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악의와 독기로만 가득한 공격이었다. 차라리 어디의 상승절기라면 이렇듯 심란하지도 않았다. 보고 있자면 기가 찰 만큼 하류의 수법 투성이었다. 치졸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독기로 가득 차 죽이려 달려들었다.
경시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방심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자객들도 그것을 알고 남궁유에게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남궁유가 자초한 상황이었다. 급기야는 초절검광과 같은 비전까지 펼치지 않는가.
검광이 흩어지고 자객들은 기세가 죽었는지 더 달려들지 못했다. 찰나의 소강상태, 자객들은 다섯 걸음 거리를 둔 채 원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반 각 동안 서른에 가까운 목숨이 스러지고 남은 것은 고작 열 두엇. 반백의 일급 자객들이 줄기차게 덤벼들었지만 고작해야 혈흔 몇 남긴 것이 전부였으니. 전열을 다시 정비해야 했다. 그들 사이로 빠르게 눈빛이 오갔다. 서로 다른 소속이며 다른 내력을 지닌 자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뼛속까지 자객이라는 점이었다.
그 사이, 남궁유는 빠르게 숨을 돌렸다. 음양이기가 교차하며 뇌정공이 빠르게 활력을 되찾았다. 뇌정공의 묘용은 단순히 뇌기뿐만이 아니었다. 파파팍! 하며 번뜩임이 남궁유의 주변에서 일었다. 그리고 짧은 숨을 돌렸다.
“후우.”
고작해야 한두 호흡 정도였지만 정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정작 눈앞의 자객들에게는 신경 쓰지 못했다. 자객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휙휙 넘어갔다. 남궁유는 검극을 전면에 세웠다. 그의 눈은 극히 차분했다. 더 이상 자객들의 잔재주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뇌정공의 뇌기가 보검의 검신을 타고 번쩍번쩍거렸다. 밝힌 불빛보다 더욱 환했다. 차분한 남궁유를 가운데에 두고 자객들의 원진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눈앞을 어지럽게 하던 자객들이 일순 땅을 박찼다. 몸을 띄우는 것과 동시에 남궁유의 눈가에 전광이 일었다. 몰아치다 못해 급기야 동귀어진이라도 노리는 것인가. 기세를 몰아 일거에 덮치겠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그만큼 허점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흐압!”
초절검광의 뇌전이 번쩍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몰아쳐 오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갈라졌다. 대천절광(對天切光)의 일초가 완벽했다. 십여 명의 몸뚱이가 횡으로 갈라지며 피를 좌륵 쏟아냈다. 순간 떨어지는 그들의 뒤로 작은 인영이 남궁유를 노리고 떨어졌다. 작은 손에 틀어쥔 독비가 검은빛을 발했다.
큰 기술을 펼친 직후였다. 남궁유의 호흡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젠……장!’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맞아 주고 치는 수밖에. 독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궁유는 냅다 들이받았다.
“거기까지.”
순간 들려온 여유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갑작스레 낯선 기척이 앞을 막아섰다. 묵직한 손이 남궁유를 살짝 밀쳐냈다. 달려들던 독비의 자객도 마찬가지였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남궁유도, 난쟁이 자객도, 코앞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눈을 깜빡였을 때, 둘은 교차점을 지나친 채 휘청거리고 있었다. 남궁유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소명이 서 있었다. 그는 예의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자객들을 상대할 때에는 결코 눈을 떼어서는 안 됩니다.”
“크, 크윽!”
마지막 수단이 무위로 돌아가자 자객은 원독 어린 눈으로 소명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악문 잇새를 비집고 검은 피가 울컥 솟았다. 그리고 눈에서 빛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독단을 깨문 것이었다. 자객은 사지를 벌벌 떨었다. 소명은 들고 있던 독비를 가볍게 분질러 뒤로 던져 버렸다.
“끄, 끝난 것입니까?”
남궁유가 멍하니 물었다. 소명은 어깨를 들썩였다.
“글쎄요, 저들이 손 털기 전에는 끝났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허!”
남궁유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결단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참혹한 경험이었다. 넌지시 말한 소명은 남궁유의 질려버린 눈을 피해서 웃음을 삼켰다. 그 눈초리에 위지백도 동참했다. 잇새로 새어나오려는 실소를 꾹 눌렀다. 당민은 그 기색을 짐작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준비했던 비침을 거두었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라고 남궁유를 배려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낙양 백운장은 그야말로 시산혈해나 다름없었다. 기백에 달하는 자객들이 죄 몰살당했으니. 족히 몇 년 동안 하남 땅에서 자객이라고 하는 자들은 보기 힘들 듯했다. 낙수부주, 궁 서생이 머리를 써서 동업자들까지 모두 끌어들인 덕분이었다. 그리고 백운장의 고용인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들의 터전이 하룻밤 새에 이리 변해 버렸으니.
“아삼, 이놈아! 잘 좀 들어!”
“잘 들고 있잖수, 견 노대는 꼭 나한테만 뭐라 그러우.”
“아니, 뭐야!”
아삼이라는 청년의 불퉁한 목소리에 견 노대는 불끈 성을 냈다. 고개 돌린 견 노대의 덩치는 한참 젊은 아삼보다 훨씬 컸다. 딱 벌어진 등짝하며 시체 서넛이 올라 있는 들 것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떨림 하나 없었다. 그런 견 노대가 험상궂은 모습으로 노려보니 아삼은 냉큼 꼬리를 말았다.
“아뇨, 가요, 가. 언능 가자고요. 이러다가 일 한참 밀려요.”
“킁!”
견 노대는 아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이 밀리는 것은 맞는 말이라 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들 두 사람 말고도 좌우로 시체를 옮기는 이들이 십수 명이나 되었다. 죽은 자객들의 시신이야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연고자를 찾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도와주는 길이리라. 이목구비도 달리 확인하지 않은 채 화장하는 것으로 정리를 마친 참이었다. 자객이란 그런 것이었다.
소명과 위지백은 물끄러미 백운장을 정리하는 고용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위지백이 문득 입을 열었다.
“부주라는 녀석이 안 보이던데.”
“흠, 호심경에 다른 수작을 부렸던 건가?”
“나중에 귀찮지 않겠어?”
“그렇다고 해도 우리한테 달라질 것은 없잖아.”
“그야 그렇지.”
소명의 말에 위지백은 피시식 웃었다. 그 말대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서장에서 일 년여 세월을 꼬박 자객들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바였다. 자객이라는 것들은 경계하되 신경을 써서는 아니 된다. 그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순간 시야는 좁아지고 결국 기다리는 것은 입을 크게 벌린 죽음이었다.
낙수부주가 살아남았다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경계하여 연연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둘은 잘 알았다. 그자의 행방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소명은 그의 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소명은 가만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공전무융.
그 지독한 힘은 쉽게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단이 나직이 울었다.
주변 가득한 피 냄새는 새삼 비릿하다.
* * *
궁 서생은 흙바닥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는 감히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짓누르는 위세는 자객의 천박한 살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엎드린 채 마른침만 삼켰다.
지금 이 자리는 ‘그’를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는 직접 명을 내린 사람이며, 실질적으로 궁 서생 아니 낙수부의 명줄을 움켜쥔 사람이기도 했다.
한참만에야 진중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 울렸다.
“전멸이라, 낙수부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것인가? 그야말로 참담한 실패로군.”
“…….”
궁 서생은 순간 긴장하여 바르르 몸을 떨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다지 놀라는 기색도 없었고 성내는 기색도 없었다.
“하, 내가 낙수부를 과대평가한 것인가? 아니 하남의 자객들을 너무 과신한 것인가?”
“…….”
“어쩔 수 없지. 그래 막아선 자들이 누구였다고?”
“자객불원, 권야와 염마도입니다.”
그 이름은 사내도 알았던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염마도는 이미 옛적의 것으로 자객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이름이었다. 강호에서는 이제 그를 두고 서장제일도라 하지 않은가.
절세의 보도 무광도와 함께 펼치는 몽상순천류의 도법은 가히 천하일절이라. 떠드는 사람 중에는 하북팽가의 팽가도에 비견할 만하다고도 했다.
그럼 또 다른 이 권야의 이름은 어떠한가. 적수공권으로 홀연 서장 땅에 들어섰으나, 종국에 두 주먹으로 우뚝 선 이름이었다. 그는 오히려 염마도보다 더욱 위험한 자였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특별한 형이 없는 기이한 권법을 잘 쓴다는 것뿐으로 그 근본을 알 수 없어 더욱 그러했다.
높은 곳에 앉은 사내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골똘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젊은 미남자였다. 그는 금장용잠(金裝龍簪)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백금의 금포를 걸쳤다.
그는 문득 손가락으로 틀어 올린 머리 아래를 긁적거렸다. 그의 침묵이 이어질수록 궁 서생의 가슴은 한층 타들어갔다.
“좋아, 낙수부의 실패는 타당하다. 단둘이서 자객왕의 붉은 하늘을 절단 낸 자이니, 낙수부로는 어려웠겠지.”
사내는 흘깃 눈을 돌렸다. 그의 눈앞 책상에는 낙수부주의 상징 낙신호찬, 아니 낙신호찬이었던 물건이 놓여 있었다.
“흑철, 빈철, 열다섯 겹을 일지에 꿰뚫었다, 이 말이지.”
그는 마지막 호심경에 깊이 박혀 있는 돌멩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아는 어떤 암기 수법도 이렇지 않았고 이러한 지법 또한 금시초문이었다.
그는 흘깃 고개를 들었다. 깊이 고개 조아린 궁 서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운이 좋군.”
“예, 공자.”
그 말에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일 푼의 힘이라도 더 남았었다면 돼지 피가 아닌 제 피를 줄기차게 쏟아내고 차디찬 시신이 되어 있을 터였다. 헌데, 그때였다.
“흑?”
궁 서생은 기이한 느낌에 움찔 어깨를 들썩였다. 뭔가 이상했다. 그의 변화는 당장 장내의 모든 이들이 눈치챘다. 모두가 다 한가락 하는 자들이니.
그들 눈에 궁 서생은 한낱 아랫것에 지나지 않았다. 눈빛 한 번에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그런 아랫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었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구는 모습에 장내의 시선들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더욱 위압적인 기세가 실체화하여 그의 두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궁 서생은 절정 고수들이 노려보는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급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였다. 가슴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뭔가?”
사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러자 궁 서생은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멍하니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사내는 그런 궁 서생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봐, 낙수부주.”
“고, 공자. 사, 살려, 살려억!”
그는 주춤주춤 사내에게 손을 뻗어 가다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 낙수부주는 입을 벌린 채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크게 치뜬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 하얀 자위를 보였다. 헤 벌린 입에서 진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사내는 그제야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 눈길을 받은 한 수하가 뻣뻣하게 굳어 버린 궁 서생에게 다가갔다.
“죽었습니다.”
잠시 확인한 그는 바로 고했다.
사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죽은 궁 서생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낙수부가 없다고 해도 그 주인인 궁 서생은 꽤나 유용한 칼인 까닭이었다.
싸늘한 침묵이 대전에 내려앉았다.
문득 사내가 입을 열었다.
“공노를 불러라.”
공노라는 노인은 촌각 만에 당도했다. 하얀 수염이 헝클어져 있는 작달막한 노인이었다. 오면서 이미 자초지종을 들은 듯 의구심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두 눈에는 짙은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사내가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공노는 딱히 인사도 않고 바로 움직였다. 앞으로 허우적거리다가 죽어버린 궁 서생이었다. 그 시신을 바로 눕혀, 순식간에 옷을 벗겼다. 공노는 사자에 대한 예의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궁 서생의 시신은 삽시간에 난자당했다. 피가 치솟았다. 살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공노의 손길을 무덤덤했고, 그의 눈은 기이한 빛으로 번뜩거렸다.
사인(死因)을 찾고자 함이라, 사내의 일명에 바로 자리에서 부검이 이뤄지는 것이었다.
웅장한 대전 바닥으로 검붉은 피가 끝없이 흐르고 흘렀다. 바닥의 포장석에 새겨진 용문이 핏물을 머금고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