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하루가 너무 길었다
긴 머리와 빡빡머리의 얼굴은 험악해졌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다섯 명을 어떻게 찾을까 고민이었는데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거다.
긴 머리는 인상을 쓰고 다시 한번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살려준다고? 무슨 협박이냐!”
“아니, 화내지 마시고. 여기에 사람들도 많은데 괜찮습니까?”
내 이야기에 긴 머리와 빡빡머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대법원 로비에 좌판을 펼쳐놓고 장사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봤다.
긴 머리는 손짓하며 나를 이끌었다.
“그쪽도 시끄러운 거 싫어하는 것 같으니 따라오슈.”
“예, 가시죠.”
긴 머리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주변이 온통 천막들이라 대법원 건물 뒤쪽으로 왔다.
중간에 한두 명씩 합류해서 나를 둘러싼 사람이 10명이 되었다.
긴 머리는 몸을 돌려서 나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 누가 누굴 살려 준다는 거지?”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메모에 사채업자는 40대라고 적혀 있었는데 여기엔 대부분 20대에 긴 머리가 그나마 30대로 보였다.
“안효중 사장님은 안 계시네요?”
“무슨 일인지 말해라!”
긴 머리는 외침과 동시에 회칼을 꺼냈고 다른 남자들도 쇠파이프나 야구 배트, 각목 등의 무기를 꺼냈다.
나는 긴 머리와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여러분들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니까 놀라지 마세요.”
“뭐라는 거야!”
남자들이 발끈함과 동시에 갑옷을 소환했다.
“갑옷소환-!”
슈우웅-!
“···!!”
나는 양손을 내보이며 다시 한번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대화하려고 온 것이니 안효중 사장님을 포함한 다섯 명의 대표를 불러 주세요.”
나는 보며 남자들이 수군거렸다.
“그 사람 맞지?”
“맞아. 게이트를 파괴하고 사도들을 죽이고 다녔던 사람!”
“지난번에 일광교와 싸울 때도 저 사람이 시간을 벌어줘서 후퇴하고 잡혀있던 사람들 수만 명을 구했다면서?”
“맞아! 그 사람이야!”
“그런데 원래 저렇게 어렸어?”
“그러게? 우리하고 비슷해 보이지 않았어?”
“우리보다 조금 더 어리지 않을까? 20대 중반 같던데?”
“그런가? 그래 그 정도 되는 것 같네. 와! 대단하다 저 나이에!”
“그런데 그게 나이 따라 되는 건 아니지.”
자기들 딴에는 안 들리게 조용히 말한다고 하는 건데, 감각이 좋아진 나는 모두 다 잘 들렸다.
나는 잠잠해지도록 잠시 기다린 뒤 긴 머리에 다시 물었다.
“안효중 사장님을 포함한 다섯 명의 대표를 불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긴 머리는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불러오겠습니다!”
긴 머리는 그리고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부하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전부 다 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혼자 남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빡빡머리가 달려와서 뒤쪽 다른 건물인 대검찰청 건물로 안내하고 고개를 꾸벅 인사 하더니 사라졌다.
갑옷을 벗고 화단 앞에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3월13일 오후 6시 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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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 장 부장이 준 메모에 적힌 다섯 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주변에 은밀하게 사람들이 둘러싼 것을 느꼈다.
그냥 혹시나 하고 사람을 배치해 둔 것이길 바랐다.
‘설마 나를 제압할 생각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도민철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도착한 다섯 명은 약간 어색하게 있다가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나섰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예.”
나는 남자와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대기실 같은 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먼지를 털어내고 앉았다.
그리고 간단히 서로 통성명했다.
앞으로 나섰던 덩치 큰 남자는 남우태로 정육점 주인이다.
그 옆의 노인은 철물점 주인 김수철, 뚱뚱한 남자는 주식당 주인 류윤석, 보통 체형의 날렵해 보이는 남자는 조폭 출신의 소진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찾았었던 사채업자 안효중이 앉았다.
안효중은 긴 머리나 빡빡머리와 비슷한 큰 덩치에 문신이 가득했다.
남우태가 먼저 물었다.
“우리를 찾으셨다고 하는데 무슨 일입니까?”
“명신그룹에 부탁받았습니다. 태산과 여러분 사이에 분쟁이 생겼으니 중재가 필요하다고요.”
남우태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
나는 그래도 계속 이야기했다.
“중재는 무슨 중재? 우리끼리 일이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여러분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든 적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쪽은 물러서시라고!”
“어떻게 알아서 하실 겁니까?”
“뭐요?”
알아서 한다기에 물었다.
정말 알아서 할 수 있다면 분쟁이 생기지도 않는다.
“내용은 들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말씀드린 대로 시간이 많지 않아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실지만 이야기해 주시면 저도 수긍하고 가겠습니다.”
무얼 알아서 할 거냐는 질문에 남우태는 말문이 막힌 듯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음···저, 태산 그룹이 안정적인 물자를 보급해 주고 우릴 총알받이로 앞세우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 우린 노획한 무기들을 다시 돌려줄 의향이 있소!”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건 해결을 위한 협상이 아니라 그냥 요구 조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살짝 힘이 빠졌지만, 말을 이었다.
“창고를 습격한 일을 사과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내가 사과를 말하자 남우태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때리며 흥분했다.
“흥! 그건 저쪽이 우리에게 먼저 폭력을 사용했으니 자업자득이오!”
“사과를 요구하는 대신 창고를 습격한 게 자업자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우태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흥분했다.
“당신은 태산 그룹의 사주를 받고 온 것이오! 어째 그들이 하는 말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그곳을 먼저 들리고 온 건 맞습니다.”
내 말에 남우태를 비롯한 나머지 네 명 모두 동조하면 시끌시끌해졌다.
“흥! 그것 봐! 그놈들한테 사주받고 온 거잖아!”
“맞아요! 더 들어 볼 것도 없습니다!”
“이런 괘씸한 놈들!”
나는 잠시 기다린 뒤에 사람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태산 그룹 후계자 도민철에게 다음에도 태도 변화가 없다면 일광교와 싸울 때 그들을 배제하고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길 바라십니까?”
남우태는 움찔했다.
“뭐, 뭐요? 협박이오?”
“하면 안 됩니까?”
“뭐? 말조심하시오!”
발끈해서 소리치는 남우태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자기들 말 안 들어 주면 전쟁 때 중립을 취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지? 내가 여기 앉아서 이야기 들어 주겠다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사람들은 거친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
나는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단순히 위협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화가 났고 짜증이 났다.
“전쟁 때 등 돌릴 사람이라면 미리 지워버리거나 손발을 잘라 아무 짓도 못 하게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너, 너 혼자 그런 일 가능할 것 같나?”
주변에 다른 각성자들을 배치해 놓은 것도 그렇고 이들은 내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원하면 보여줄 수 있다.
“가능할지 한번 해 보시던가.”
철없는 도민철이나 이들이나 별로 다를 건 없다.
도민철은 장 부장 덕에 살았는데 이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궁금하기는 했다.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못 하며 긴장감만 올라갔다.
계속 조용히 듣고만 있던 노인인 김수철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자, 자. 다들 흥분하지 말자고. 싸우자고 나온 자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진웅 씨도 좀 진정하시고.”
김수철이 나를 달래듯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내 대답에 김수철은 다시 놀랐다.
“그럼, 우리와 싸우자는 게 진심이란 말이오?”
“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혼자서 우리를 다 이길 수 있다고?”
김수철의 심각해진 목소리에 나는 계속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탁자에 앉은 사람들과 눈을 하나하나 마주쳐가며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면서 난 내 감각을 넓혔다.
그러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다 느껴지면서 이런 게 살기나 기세가 아닐까 싶었다.
내 감각이 이 영역을 장악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부르르 떨며 위축되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탁자에 앉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주변에 숨어 있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덤벼도 가능한 일입니다. 나중에 골치 아파질 것 같으면 지금 정리하는 게 전 더 편합니다.”
내 대답에 김수철은 조금 허탈해진 것 같았다.
“진심이로군.”
“예, 진심입니다. 그러니 태산과 협상을 하기 위해 내놓을 것과 요구할 것을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내 감각에 장악당한 탁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기운이 빠진 것 같았다.
“음···. 남 사장? 자네가 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남우태는 마지못해 나섰다.
남우태는 사람들과 나를 흘낏 보았다.
‘이거, 자제하지 못하고 공격할 것 같은데?’
남우태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강한 걸 알겠는데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모양이다.
남우태의 결심한 듯한 눈이 보이고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소환하는 게 보였다.
“그래! 붙어보자! 소환!”
남우태의 오른손에는 고기의 뼈를 발라내는 뾰족한 발골도와 왼손에는 방검 장갑이 끼워진 상태로 칼을 휘둘렀다.
슈아악-!
나는 일어서며 몸을 뒤로 뺐다.
남우태가 무기를 꺼내자 다른 사람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면서 밖의 사람들을 소리쳐서 불렀다.
“지금이다!”
“모두 나와!”
나는 다섯 명이 휘두르는 무기를 피하며 눈빛이 서늘해졌다.
‘결국 맞아야 정신들 차리겠네!’
나는 갑옷을 소환했다.
“갑옷소환-!”
슈우웅-!
대검찰청 1층 로비는 층고도 높고 넓어서 움직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각성자들이 무기를 들고 안으로 들이닥쳤다가 갑옷 입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랐다.
“···!!”
남우태는 발골도를 찌르고 류윤석은 중식도를 소진호는 회칼을 동시에 휘둘렀다.
쉬아악-!
나는 손톱을 뽑지 않고 손바닥을 펼쳐서 세 명의 칼을 막았다.
턱-!
양옆에서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휘두르던 안효중과 자루 끝에 낫을 달아서 만든 창을 휘두르던 김수철은 때려도 아무 반응 없는 나를 보고 놀랐다.
“천이 아니야?”
“다, 단단한 데요?”
나는 한 손으로는 세 명의 칼을 잡고서 김수철을 보았다.
“이게 최선입니까?”
“어, 허허.”
나는 손에 잡혀있던 칼을 놓고 사람들은 슥 훑어봤다.
“이 정도가 최선이면 좀 실망인데요?”
정말 실망을 좀 했다.
다섯 명이 우두머리라고 해서 그래도 좀 강한 전사를 기대했는데 내가 보기엔 다른 각성자들하고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들과 싸우기엔 너무 강해진 것 같다.
내가 실망한 것과는 다르게 남우태를 비롯한 다섯 명과 숨어 있다가 들이닥친 각성자들 모두 전의를 상실했다.
“더 하실 것 아니면 정리하고 이야기를 더 해 볼까요?”
다섯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대기하다가 들어 온 각성자들은 다시 돌아가고 갑옷을 벗은 나와 다섯 명의 대표는 이전보다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태산 그룹이 폭력을 썼던 걸 사과하고 자신들을 총알받이로 쓰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 창고를 습격한 걸 사과하고 강탈했던 물자들을 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도민철이 보여준 반응에 비하면 훨씬 좋은 반응이고 대답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날짜를 정하면 같이 나와서 협상하기로 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
진웅이 떠난 탁자에 다섯 명이 기운이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조폭 출신인 소진호가 김수철에게 물었다.
“그런데, 영감님. 저 친구 뭡니까? 우리랑 같은 사람이 맞아요? 뭐, 어른하고 싸우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후우, 글쎄. 저러니 게이트도 파괴하고 사도들도 사냥하고 다니고 그런 거겠지.”
사채업자인 안효중이 김수철의 말에 동의했다.
“야구 배트로 때리는데 맞은 줄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이 야구 배트로 깨트린 좀비 머리가 몇 갠데 이건 뭐 상대도 안 되니 좀 허탈하네요.”
잠자코 있던 남우태가 말을 거들었다.
“내가 왜 공격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 돼지 도축할 때 고수인 형님 한 명이 있었거든? 그 양반이 눈으로 한 번 슥 노려보면 돼지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오줌을 질질 싸더라고 마치 그 양반 보는 것 같았어. 그 친구 눈을 보니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공격하게 됐나 봐.”
김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탓이 아니야. 자네가 아니면 내가 공격했을지도 몰라. 내 평생 처음으로 공포심이 느껴지더군.”
“예, 갑옷 입은 것도 그냥 가볍게 보여주려 한 거였습니다. 손톱이 주 무기인데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안 꺼내도 충분히 우리를 이길 수 있으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얕보였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요. 그냥 그 정도만 한 게 다행입니다.”
“그래, 이럴 때는 좋게 좋게 풀어가는 게 최선이야.”
“예, 맞습니다.”
“나가서 태산에서 가져온 물자들이나 정리하세.”
다섯 명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물자를 여기저기 숨겨 놓아서 정리하려면 할 일이 많았다.
하늘은 노을로 빨개졌다.
***
난 대법원의 피난민 그룹을 나왔다.
이제 곧 밤이니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오늘은 하루가 너무 길었다.
강을 건너고 태산 그룹에 갔다가 피난민들을 만났다.
단순히 만나기만 한 게 아니라 심력을 많이 소모해서 이미 많이 지친 상태이다.
감각을 확장해서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이 의외로 체력도 정신력도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
아직도 살기인지, 기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각을 확장해서 그 영역 안의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은 나중에 사람과 싸우게 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개인적인 일 이외의 소득은 도민철은 경고만 하고 왔지만 그래도 피난민들은 압박해서 협상을 할 만한 태도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양측을 같이 만나서 합의만 잘하면 된다.
양쪽을 불러낸 뒤 손목을 비틀어서라도 합의하게 할 것이다.
서로 밀고 당기며 협상할 시간이 없다.
나중에 자기들끼리 또 싸우든 말든 딱 일광교와 싸울 때까지만 봉합해 놓으면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적당한 빈집을 발견해서 자리 잡고 남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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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날부터 양쪽을 오가며 만날 장소를 정했다.
그래서 이틀 뒤에 강남역 사거리에 서서 양쪽 사람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피난민 측 대표 5명과 태산 그룹의 도민철, 장 부장 그리고 경호원 3명까지 해서 양측 다섯 명씩이 나왔다.
나는 나서서 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빨리 합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태산 그룹에 받은 종이의 내용을 읽었다.
피난민 일행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 그룹은 피난민들에게 먼저 폭력을 사용한 점을 사과하고 향후 일광교와의 싸움에 피난민들을 앞세우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다음으로 피난민 그룹의 종이를 읽었다.
도민철은 뚱한 표정이었지만 많이 혼나고 나온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피난민 그룹은 태산 그룹의 창고를 습격한 일을 사과하고 강탈했던 물자들을 모두 돌려줄 것을 약속합니다.”
양측은 종이를 서로 주고받으며 서명하고 다시 한 장씩 나눠 가졌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악수하고 마무리가 되고 있을 때 나는 양쪽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여기에 제가 하나 더 제안하겠습니다.”
도민철과 남우태가 놀랐다.
“뭐?”
“그게 무슨?”
나는 두 사람의 반응을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공동의 지휘부를 구성해서 병력을 배치할 것을 제안합니다. 싸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앞에서 방어를 주력하는 병사, 중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싸울 병사, 후방에서 지원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병사가 고르게 필요합니다.”
나는 태산 그룹 사람들과 피난민 그룹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며 이야기했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이야기지만 사실 첫날 잠깐 두 그룹을 둘러보고 난 뒤에 느낀 점이었다.
“피난민 그룹은 일반 전사들이 많습니다. 태산 그룹은 총사들이나 마법사가 많습니다. 두 그룹이 힘을 합치면 이전에 싸웠을 때 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그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번에는 이들을 압박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저는 양 그룹이 하나의 그룹처럼 화합하기를 제안합니다. 이 제안은 전혀 강제적이지 않은 순수한 제안일 뿐입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어울리지 않게 서윤재의 중재 요청을 받아들이고 중재에 힘을 합치라고 제안한 것까지 모두 나답지 않았다.
슬쩍 보니 힘을 합치면 생존율이 올라갈 것 같아서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것이다.
딱히 저들의 안위가 걱정돼서 그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