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52
52화-저 혼자가 아닙니다
안성희였다.
사무실 문 앞에는 나나 스타그룹 경비와 같은 복장의 안성희가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대전에서 두 달 전에 헤어진 안성희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모습에 황당해서 입이 벌어졌다.
“네가 여기에 무슨 일이야?”
안성희가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쉿! 일단 들어와. 사람 지나간다.”
안성희의 말에 일단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럿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성희는 손을 들어 멈추라고 하다가 잠시 후 손을 내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성희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진웅이 넌, 여기에 왜 있어?”
“음···엄마 찾으러 왔어.”
안성희는 내 대답에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어지는 내 대답에 표정이 더 이상해졌다.
“엄마가 고주용을 죽이려고 여기 온 것 같은데. 내가 먼저 고주용을 죽이거나 엄마 데리고 도망치려고 들어 온 거야.”
“자, 잠깐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안성희가 머리를 짚으며 혼란스러워했지만, 자세히 말할 시간이 없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길어. 요점만 들어. 고주용을 죽이고 엄마를 구하러 온 거야. 그러는 넌 여기 왜 왔어?”
안성희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어? 나도 고주용 죽이러 왔는데?”
왜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건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목적이 같다면 같이 움직이면 된다.
왜 그러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면 된다.
그리고 안성희가 같은 목적인 것은 다행이었다.
안성희가 상대편이었다면 상대하기 골치 아팠을 것이다.
“알았어. 목적이 같으니까 같이 움직이자. 네 지도에 고주용이 표시됐어?”
“아, 아니. 아직 실제로 본 적 없어서 표시가 안 된 상태야.”
“그럼 3층까지는 수색을 다 한 거지?”
“그래. 다했어.”
“그럼, 나하고 복장도 같으니까 순찰을 하는 사람처럼 움직여 보자고. 다른 사람들이 의외로 신경 안 써서 모른 척하고 올라왔어.”
안성희는 아직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 잡았다.
“갑작스러워서 정신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야.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일단 움직이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많으니까 말이야.”
안성희는 나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음···. 그래, 일단 움직여 보자.”
우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F층, 5층, 6층의 사람들 사이를 거침없이 지나갔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멈춰서서 물었다.
“중간에 걸리는 거 하나 없이 올라 온 것 보면 네 능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맞아?”
안성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헤어진 게 두 달 전이야. 너도 그동안 전투력이 많이 강해졌을 거잖아. 나도 그런 거지.”
“그거야 그렇지.”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나는 각성자와 비 각성자를 구분할 수 있어. 그래서 각성자가 없는 사무실은 빠르게 지나간 거야.”
안성희의 말에 감탄했다.
쉽게 말하지만 굉장한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기도 전에 전혀 각성자인지, 비 각성자인지 정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렇게 각성자와 비 각성자가 섞여 있는 상황에 훨씬 더 유용한 능력이기도 했다.
“엄청나게 유용한 능력이네. 계속 빠르게 가자.”
“그런데 7층부터는 각성자들이 있어. 조심히 가야 해.”
“알았어. 그건 너한테 맡길게.”
우린 다시 일어나 7층으로 향했다.
순찰하는 것처럼, 같이 걷다가 안성희가 멈추라면 멈췄고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라면 들어갔다.
7층 복도를 지나는 동안 다른 각성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7층을 지나 8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안성희가 멈춰 섰다.
“왜? 무슨 일인데?”
안성희는 8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8층은 층 전체를 비운 것처럼 다른 사람은 없는데 복도에 각성자 한 명이 서 있어. 마치···우릴 기다리는 것처럼.”
“네 생각엔 어때? 적대적인 것 같아?”
“지도에 나오는 걸로 그런 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적대적이라면 더 인원이 많았을 것 같아. 아니면 혼자라도 자신이 있을 수도 있지.”
“만나기 전엔 모르겠다는 말이네. 가보자.”
나는 앞장서서 8층에 올라가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 가운데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40대가 서 있었다.
건장해 보이는 몸이나 체형이 일반 회사원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서 40대 남자 앞에 섰다.
그러자 남자의 입이 열렸다.
“고주용은 여기 없습니다.”
무얼 알고 고주용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우리가 고주용을 찾으러 온건 어떻게 안 겁니까?”
남자는 나와 안성희를 쓱 보았다.
“두 분은 모르겠지만 스타그룹의 리스크 관리팀은 예전부터 두 분을 관리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오신 목적도 알 수 있었죠. 오늘 두 분이 나타난 걸 보고 우리도 놀랐습니다.”
스타그룹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적일 수 있다.
“우리를 알고 있다면, 혼자서 우리를 막으려는 겁니까?”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로 양손을 들어 보였다.
“두 분과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습니다.”
“무슨 의도인 건지 그쪽에서 제대로 설명해야 대화가 시작될 겁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힘듭니다. 저희 안전 가옥이 있는데 그곳에 가 계시면 밤에 찾아가겠습니다. 그때 자세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고주용이나 그룹 수뇌부의 인물은 여기에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난 안성희와 눈을 마주치며 눈으로 의견을 물었다.
일단은 적대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믿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남자의 입이 열렸다.
“진웅 씨 어머님인 강은실 씨도 안전 가옥에 가 계실 겁니다.”
“···!”
“강은실 씨가 이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에 만났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안전 가옥으로 보냈습니다. 강은실 씨가 자이언트를 유인해 왔습니다. 뒤에 계신 안성희 씨는 워리어와 좀비들을 유인해 왔고요.”
나와 안성희 둘 다 조금 당황했다.
엄마와 안성희가 좀비를 유인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 계속 관찰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통신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말은 여전히 빨리 돕니다. 과거보다 더 적은 대가를 주고 정보를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죠. 즉석밥 하나면 여러분들이 거쳐온 동선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은 느리지만요.”
남자의 말에 안성희가 발끈했다.
“그건 말이 안 돼요! 난 사람들의 시선을 철저히 피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정보력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지금 자신들의 정보력을 너무 과장하는 거예요.”
남자는 안성희를 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청소부들을 알고 계시요? 안성희 씨는 그들의 눈까지 피했다고 확신하시나요? 우린 그들과도 접촉합니다.”
“···!”
안성희는 살짝 놀랐고 나 역시 그렇다.
사실 접촉해서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청소부들만큼 유용한 자원도 없을 것이다.
나부터도 그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데 안성희라고 그러지 않을 리가 없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안전 가옥으로 가시면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주용이 스타그룹의 주인이 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여러분을 도와드릴 겁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믿어주십시오.”
다시 안성희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
상대가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다면 벌써 둘러싸여 있었을 것이다.
밖의 자이언트와 좀비의 정리도 끝나가는 데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좋습니다. 일단 이동하죠. 안전 가옥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남자는 품에서 약도와 배지를 두 개 꺼냈다.
“이건 안전 가옥 위치고 이건 직원 배지입니다. 달고 가시면 출입구까지 아무도 잡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도 쓸데가 있을 테니 잘 가지고 계세요.”
남자는 고개를 꾸벅하고 몸을 돌렸고, 나는 남자를 잡았다.
“잠시만요. 그쪽 이름은 어떻게 되죠?”
“아, 미안합니다. 제 소개를 잊었네요. 저는 지성천이라고 합니다. 이제 곧 좀비들이 모두 정리됩니다. 그전에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지성천은 몸을 돌려 걸어갔다.
잠시 후에 9층에서 일반인들이 8층으로 내려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쁘게 업무를 보았다.
난 옷에 배지를 달았다.
“일단 밖에 나가자.”
안성희도 옷에 배지를 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계단을 내려와 정문으로 나왔다.
경비들이 좀비들과 워리어, 자이언트를 다 잡고 주변을 정리 중이었다.
많은 각성자가 주변을 지나갔지만 나와 안성희를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다.
우린 자연스럽게 걸어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안성희가 앞장서서 걸었고 조금 걸으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건물 뒤에 도착했다.
“배지가 통하긴 했어.”
“따로 신분증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정말 재벌가 권력다툼 같은 걸 지금도 하는 걸까?”
안성희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네 말대로 재벌가의 다툼이야. 이런 세상에도 그런 다툼을 하는 게 참 대단하네.”
“모르겠어. 일단 난 고주용만 처리하는 데 집중할 거야.”
“그래, 일단 안전 가옥에 가보자.”
약도에는 청계천의 한 헌책방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린 약도를 따라 이동했다.
***
몇 시간 뒤 청계천의 헌책방거리의 한 헌책방에 도착했다.
셔터가 내려져 있는 책방인데 옆쪽에 작은 쪽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좁은 공간 안에 철문이 있었다.
안성희가 조용히 경고했다.
“안에 사람이 한 명 있어. 너희 어머니일까?”
“내가 말해 볼게.”
나는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에 엄마 있어요? 난 진웅이에요.”
잠시 뒤 문이 덜컹 열렸고, 엄마가 나왔다.
“들어와라.”
엄마는 내 뒤의 안성희를 봤다.
“누구···시니?”
엄마의 질문에 나는 두 사람을 소개했다.
“아, 베어랜드에서 같이 알바하던 친구인데 스타그룹 본사에서 어떻게 만났어요. 안성희하고 해요. 우리 엄마셔.”
“안녕하세요. 안성희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일단 들어와요.”
“예. 감사합니다.”
엄마의 말투가 뭔가 어색하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입구와는 다르게 안은 쾌적하고 넓었다.
침실 3개 화장실 2개의 평범한 30평 아파트 구조였다.
밖에 있는 헌책방 두, 세 개가 합쳐진 것 같았다.
안전 가옥에 먼저 온 엄마가 안내했다.
“주방 옆 다용도실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더 있어. 싱크대엔 즉석밥과 물이 있고 며칠은 쉴 수 있는 공간이야.”
“그러네요.”
“난 일단 여기 작은 방에서 쉬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알아서 방을 정해서 쉬면 돼.”
“예.”
난 엄마의 말을 듣고 안성희한테 물었다.
“넌 어느 방 쓸래?”
“난 작은 방 쓸게. 큰방은 부담스럽다.”
“그래? 내가 큰방 쓸게.”
방을 정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고 뭔가 어색했다.
“성희야. 넌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거야? 그 이야기 좀 해봐.”
안성희도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안성희의 아버지 안진성은 스타 물류 대전지점의 부장이었다.
어쩌다가 회사의 돈이 새는 걸 발견했고 감사실에 제보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안진성을 회유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개인 비리가 아니고 오너일가의 뜻이니 제보를 취하해라, 그러면 아무 일도 없고 오히려 승진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안진성은 거절했고 제보를 이어갔다.
그 결과로 본사의 이사 한 명이 횡령으로 구속되고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이런저런 사유로 업무에서 배제되기 시작하더니 회사의 사정이 안 좋다면서 명예퇴직을 권고하고 나중엔 강요했다.
부하직원이나 친한 동료들까지 불이익을 당했다.
안진성은 더 버티지 못하고 명예퇴직했다.
재취업도 안 되고 차라리 귀농할까 고민하던 시점에 안진성의 부인과 막내아들이 타고 가던 차가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트럭 운전사는 음주운전을 했고 구속됐다.
안성희는 누군가 사주한 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수사 했지만,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계속 누군가의 사주라는 안성희와 단순 사고라는 안진성의 갈등 때문에 부녀 사이가 안 좋아진 안성희는 아는 사람 소개로 베어랜드까지 내려와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각성했고, 나와 대전까지 동행했다가 헤어진 이후 안성희는 살아남은 스타 물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심문하며 정보를 모았다.
그 정보를 따라가다 보니 회사자금을 횡령하던 건 고주용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고주용은 안진성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명예퇴직을 시키고 더 괴롭히려고 했다는 것이다.
트럭 운전사를 사주했다는 증거는 얻지 못했지만, 증언은 얻었다.
대신 감옥에 간 본사 이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재소자, 간수들이 모인 생존자 그룹에 있던 이사를 구해주고 증언을 얻어냈다.
그를 통해 고주용이 누군가를 시켜 사고를 냈다는 증언을 얻은 안성희는 안진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주용을 죽이러 왔다.
좀비들을 유인해 경계를 허술하게 만들고 건물에 잠입했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
안성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비극이었다.
엄마는 안성희에게 깊이 공감한 것 같았다.
어쩌면 나보다 두 사람이 더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성희 씨가···고생이 많았네. 얼마나 힘들었어요?”
“어머니, 말씀 낮추세요. 저 진웅이 친구예요.”
“차차 내릴게요. 지금은 이게 편해요.”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은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가 왜 이렇게 어색해 하나 생각해 봤는데 나는 형과는 달리 여자친구를 한 번도 집에 데려온 적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형은 사귀는 여자친구든 그냥 친구든 상관없이 자주 데려와서 인사를 시켰다.
나는 학생 때 사귀던 여자친구들을 한 번도 부모님이나 형에게 소개해 준 적이 없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조금 더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질 때 소개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성희 씨는 고주용을 어떻게 찾으려고 했어요?”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이 있어서 한번 보면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들어와서 실제로 얼굴을 보려고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자신 있었거든요.”
“너무 뛰어난 능력이네요, 난 주변을 얼려서 그 순간에 공격할 생각만 했었어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살벌했지만 사이좋게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대화에 끼어들기보다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저녁때까지 잠깐만 쉴 생각이었다.
***
저녁이 되어 지성천이 찾아왔다.
“이건, 드시라고 가져온 겁니다.”
지성천은 인벤토리에서 냄비를 하나 꺼냈다.
무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였다.
거의 넉 달 만에 보는 김치찌개였다.
너무 먹고 싶었지만, 함부로 먹을 수는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너무나 멀쩡한 음식이었다.
“독이나 몸에 안 좋은 건 전혀 없습니다. 믿고 드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만든 식품입니다. 시식용으로 제공된 음식을 가져온 겁니다.”
해명에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우리에게 지성천은 먼저 시식해서 이상 없음을 보여줬다.
그제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술 뜨다가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배불리 싹싹 긁어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지성천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우리의 정보를 왜 관리하고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에서 서류를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그 서류는 좀비 사태 이전 기준 자료입니다. 고주용의 그룹 승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간략화한 겁니다.”
지성천의 말대로 서류에 고주용이 스타그룹을 승계하기 위해 차근차근 지분을 물려받는 순서가 적혀져 있고 다른 쪽에는 고주용의 이미지를 어떻게 좋게 만드느냐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진성 씨가 고발한 자금 유용과 횡령은 고주용 지분승계의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고, 진명호 씨의 유통 회사 합병은 고주용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던 게 짧은 몇 장의 서류에 쓰인 불과 몇 줄의 과정에 일어난 부수적인 일이었다.
나와 엄마, 안선희 다시 한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지성천은 손을 들어 말리는 제스처를 취하곤 말을 이어갔다.
“일단, 제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말씀해 주세요.”
화는 났지만,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린 꾹 참았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회장인 고희명은 경영 능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고명철 명예회장은 손자인 고주용에게 빨리 그룹을 승계해 주려고 무리했고, 그 결과로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습니다.”
지성천의 말은 결국 모든 일의 원흉은 고명철 명예 회장이라는 말이었다.
고명철은 그룹의 3세 경영자로 나이가 100살이 넘은 사람이다.
그 말을 들으니 허탈했다.
“고주용의 승계를 반대한 사람들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좀비 사태가 아니었다면 자료가 폭로되고 고주용은 감옥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비 사태가 모든 걸 바꾸어 놨습니다.”
좀비 사태가 고주용을 살려 주었다는 이야기다.
세상 사람들이 다 죽는 이런 세상에도 재벌들은 이득을 얻었다.
“고주용은 이 좀비 사태를 이용해 자신의 승계를 위협하는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주용을 제거한 뒤에 그룹을 이어받을 친인척들까지 모두 죽은 상태입니다.”
나는 여기서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할 사람이 모두 죽었다면 누가 그를 견제한다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럼, 지성천 씨 혼자 고주용과 싸우는 겁니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성천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고주용을 제거하려고 저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한번 말을 끊고 다시 또박또박 이름을 말했다.
“고주용의 친할아버지인 고명철 명예회장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