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97
97화-점심 먹고 슬슬
건너편 강가에 악어 십여 마리가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순주가 나를 보고 물었다.
“내리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어떡할까요?”
“가까이만 대주세요! 제가 건너가겠습니다!”
일행 중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고 공격하면서 유인해 볼 텐데 다들 접근전에 특화된 사람들뿐이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크아아아앙-!”
가까워지는 바지선을 보고 악어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소리 냈다.
위협을 하는 모습이 우습게 보였다.
바지선이 조금씩 다가가서 적당한 거리가 됐다 싶을 때 악어들이 기다리는 강변으로 확 뛰었다.
나를 공격하려고 입을 벌린 악어의 주둥이에 오른발을 콱 찔러넣었다.
콰드드득-!
그대로 커다란 악어의 턱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다가오는 악어들에게 손톱을 확 휘둘러 자르고 발로 몸통을 걷어찼다.
슈카칵-! 뻐억-!
다른 사람이라면 악어들이 강변을 장악하고 있으면 건너오기 힘들었을 테지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악어의 이빨이 아무리 날카롭고 단단해도 내 인형 옷을 뚫지 못한다.
뚫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악어들 사이에서 피하지 않고 버티면서 손톱을 휘둘러 악어들을 조각냈다.
슈카카카칵-!
손톱이 무기인 건 칼을 쓰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휘두르고 찌르는 것뿐만 아니라 상처를 헤집고 찢었고 뜯어버렸다.
콰악 꽈드드드득-!
깨끗하게 적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싸울수록 속이 시원해지는 장점은 있었다.
쉬카카카칵-!
정신없이 자르고 찢다 보니 살아서 움직이는 악어는 더 이상 없었다.
인형 옷의 소재가 금속성으로 바뀌는 덕분에 내 갑옷에 튀었던 피와 체액은 흘러내려서 갑옷은 여전히 깔끔한 분홍색 곰돌이의 모습이다.
그 와중에 바지선은 강변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바지선에서 내렸다.
곡괭이를 든 깐냐는 각삽을 든 이명구 뒤에 숨어서 이야기했다.
“형님, 너 형님이 강해서 든든하기는 한데 조금 무섭다.”
“형님이라니? 깐냐 너 보다 어릴 것 같던데?”
“형님, 바보냐? 나보다 돈 많거나 강하면 다 형님이다.”
“그렇지. 그건 맞지.”
엑소슈트를 입은 정수찬은 바지선을 끌어서 강변 위로 올렸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흘러가지는 않을 거다.
정수찬은 바지선 위에 노까지 올려놓고 오함마를 든 도순주에게 물었다.
“형님, 이 바지선 누가 또 쓸까요? 우리처럼 일행에 엑소슈트를 입은 사람이 없으면 쓰기 힘들 텐데요?”
“모르지. 그렇다고 강물에 흘러가도록 놔둘 수는 없잖아. 나중에 우리가 또 쓰게 될 수도 있고.”
정수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린 얼굴을 했다.
“아이고, 다시는 지나기 싫습니다. 강 위에서는 너무 무력하네요.”
“맞아. 거의 한 일 없이 도움만 받았어.”
“진웅이, 저 친구 말로는 레벨이 높아서 움직임이 다르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 정도가 아니면?”
정수찬은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아이템의 등급 자체가 나하고는 다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싸우기도 많이 싸운 것 같고요.”
“그건 내 생각도 그래. 팀으로 손발을 맞춰서 싸우는 것보다 혼자 싸우는데 더 익숙한 것 같고.”
“예. 저 정도면 혼자서 수십 명 역할을 할 테니 그럴만하죠.”
나는 악어를 다 처리한 후 다른 적이 없는지 조금 더 살펴보다가 안전해 보여서 갑옷을 벗고 도순주에게 물었다.
“저는 북한산으로 가는 데 여러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갈지 서로 목적지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워커힐 쪽으로 갑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헤어져야겠네요.”
“도움만 받고 헤어지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혼자서는 강을 건너기 힘들었을 겁니다.”
도순주는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활약하시는 걸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게 되니 소문이 오히려 부족한 것 같습니다. 멀리서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안전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도순주의 말에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기대받고 응원받나 싶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안전하게 가라고 당부했다.
“음···. 예, 여러분들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시고 앞으로도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도순주 일행들과 인사하고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어쩌다 보니 게이트를 파괴했고, 어쩌다 보니 일광교와 싸우게 됐다.
특히 일광교는 스타그룹의 고주용을 잡기 위해서 싸우게 된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원수처럼 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이유이거나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된 것인데 사람들에게 기대받게 됐다.
그런 생각에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했다.
‘그래도 괜히 부담가지고 신경 쓰다 보면 아무 일도 못 해. 그냥 내 할 일만 하면 돼.’
머리를 한번 털고 걸었다.
이런 건 답이 없다.
몸을 움직이는 데 신경 쓰면서 잡생각을 떨쳐버리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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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서 송파구를 지나올 때도 그랬지만 북한산으로 가는 길에서도 싸움의 흔적을 봤다.
피의 땅을 만드는 피의 정수를 얼마나 만들고 동시에 피의 땅을 만들어 공격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장소에서 격돌한 것으로 보였다.
불타고 폭발해서 뼈대만 남은 빌딩들을 보니 정말 세상이 망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좀비가 나타나서 돌아다니는 이 세상이 망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뼈대만 남은 건물들을 지나다 보니 그런 기대도 사라졌다.
좀비들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문명을 재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재건한 문명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익숙한 과거의 일상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겨울이라 더 을씨년스러운 것도 있지만, 빌딩 숲이었던 중심가의 빌딩들이 무너져 있거나 뼈대만 남아서 숲이 앙상해졌다.
빌딩의 유리창이 깨진 것하고는 또 달랐다.
그렇게 우중충한 서울을 가로질러 어둑해질 무렵 북한산 인근에 도착했다.
***
마지막으로 나올 때만 하더라도 입구 쪽에 집이 세워졌고 그걸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입구로 가기도 전에 주택가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래도 통로는 만들어 두었는지 수동으로 만든 차단기가 길 가운데 세워져 있고 경비를 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점프슈트에 방탄조끼 헬멧을 쓴 각성자가 정글도와 쇠파이프를 들고 손을 들어 나를 막았다.
복장이 익숙했다.
예산에서 본 대화그룹 사람들 복장이다.
대화그룹의 영역은 일광교에 점령됐다.
생존자들과 남은 병력이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됐다.
정글도를 든 남자가 소리쳤다.
“정지! 거기서 더 다가오지 마세요!”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멈췄다.
내 집 앞이긴 해도 여기는 내 영역이 아니다.
내 영역이 아니더라도 길을 막는 게 불쾌했다.
이일은 경비 서는 사람들 말고 대화그룹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좀 따져봐야겠다.
“무슨 목적으로 온 겁니까?”
나는 이어진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안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어디서 온 분입니까?”
“지방에서 오긴 했는데, 원래 저기 살았던 사람입니다.”
“신분을 밝힌 배지가 있습니까?”
“몇 개월 만에 온 거라 없네요.”
남자는 다시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럼, 들어 오실 수 없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불쾌했지만 경비 서는 사람에게 화를 내봐야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안에 사람을 불러 주실 수 있나요?”
“그건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와서 요청하세요. 오늘은 돌아가십시오!”
내 집 앞에서 돌아가다니 안될 일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건 안 되겠네요. 나는 내 집으로 들어가야겠어요.”
내 말에 정글도와 쇠파이프가 무기를 내게 겨눴고 뒤에 있던 다른 경비들도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경고합니다! 돌아가십시오!”
나는 한숨을 쉬고 갑옷을 소환했다.
“갑옷소환-!”
슈우웅-!
무기를 들고 나를 경계하던 남자들이 내 갑옷을 보고 놀랐다.
“어? 맞지?”
“헉! 그 사람이야!”
“어? 어? 보, 보고해야 하잖아?”
“그래, 보고해야지!”
“내, 내가 다녀올게!”
“잠깐만 저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러면?”
“아니! 먼저 보내줘야지! 저 안이 집이잖아!”
“아! 맞다!”
자기들끼리 수군대던 남자 중 정글도를 들었던 남자가 무기를 집어넣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저, 선생님?”
“이제 지나가도 될까요?”
“예, 잠시만요!”
남자가 뒤를 보고 손짓하자 서 있던 남자들이 그제야 부랴부랴 차단기를 올렸다.
“예, 이제 가셔도 됩니다.”
나는 갑옷을 벗었다.
“소환 해제-!”
갑옷을 벗고 경비들에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수고하세요.”
남자들은 어정쩡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보고하려고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
카페 건물을 향해 걸었다.
정말로 카페로 가는 길목의 주택가 전체가 대화그룹이나 다른 점령된 지역 사람들이 모인 피난처가 됐다.
늦은 식사하는지 집 앞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물을 데우는 사람들이 보였고,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보였다.
주택가를 지나는 길에는 보조직업들이 만든 집들이 더 늘었다.
날이 밝으면 대장간이나 한번 들러 볼까 생각하며 드디어 내 카페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에는 전에 없던 2층짜리 건물이 하나 생겼다.
나무 기둥에 임시 건물에 주로 쓰는 가벼운 벽으로 된 건물이다.
예전에야 2, 3개월 안에 건물 하나 뚝딱 만들어 올리는 게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가능하지 않네? 그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만든 건가?’
나는 건물을 지나쳐서 본 건물로 들어갔다.
대기실로 만들어 둔 1층이 이제는 큰 회의실 같이 꾸며져 있었다.
바로 내 숙소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 숙소로 만들었던 작은 나무집은 그대로였다.
집안은 비워둔 지 3개월인데도 깨끗했다.
권호창이나 다른 사람들이 청소해 준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얇은 매트지만 푹신했고 이불도 두툼하니 좋았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형님!”
“형님!”
다음 날 아침 권호창이 밖에서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형님!”
“어. 일어났어.”
대답하자마자 권호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권호창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기고 질문을 계속했다.
“형님! 서울은 그동안 난리가 났었는데 그동안 어디 계셨었어요?”
“예산에서 진도 갔다가 부산 갔다가 삼척 들러서 여기 왔지.”
“형님이 일광교 사도 두 명을 처리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있다가 오셨어요.”
“내가 사도 두 명을 처리했다고? 어디, 어디에서 처리했다고 알려졌지?”
권호창은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진도하고 부산이요. 아니에요?”
“진도하고 부산 맞아. 거기에 익산하고 삼척에서 두 명 더 처리했어.”
권호창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그럼, 다섯 명 중에 네 명을 처리하셨다고요?”
“응.”
“와! 형님 참 대단하네요. 지금 서울을 절반 정도 차지한 일이 사도 한 명이 한 일인데 그런 사도는 네 명을 처리했다고요?”
“아마도 지금 서울에 있는 사도 하나가 내가 처리한 네 명보다 더 강할 거야. 정말 쉽게 처리한 사도도 있으니까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대단하죠! 쉽든 어렵든 처리했다는 게 중요한 일 아닙니까!”
나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 치며 질문했다.
“됐고, 그동안 여기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게요.”
권호창은 우선 내 숙소가 있는 본건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1층은 대기실에서 회의실과 휴게실로 만들었고 2층은 손님들이나 여기서 지내는 사람들의 숙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차장 옆에 새로 생긴 건물은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만들 건물로 대장장이인 임효영의 작업실이 옥상, 2층이 임효영과 김규왕, 나연제의 숙소고 1층은 손님들 대기실이다.
입구 밖 보조직업들의 공방은 더 늘었고 연금술사나 약사같이 잘 모르고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다른 그룹에 들어가기 힘든 능력이 부족한 보조직업들도 안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아직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주택가의 피난촌은 사람들이 자리 잡은 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대화그룹과 동작, 관악, 금천의 소규모 그룹의 생존자들과 중립지역인 종로, 중구, 용산의 생존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내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 졌으니 곧 서윤재나 기업의 사람들이 올 거라고 했다.
거기에 안성희도 여기에 와서 지낸다고 한다.
안성희의 그룹도 대화그룹과 긴밀한 협력관계라 본사가 공격받은 상황이라서 도우러 오는 사람들하고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안성희는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오겠지.’
“형님! 다른 분들이랑 인사 안 하셔도 돼요?”
“누구? 임 선생님?”
“예. 그분들하고 성희 누님, 연재 누님도요.”
“아침 먹고 들러 보든가 해야지.”
“형님! 조금 있으면 정오에요.”
“뭐? 내가 오래 잔 모양이네?”
“예. 아까는 불러도 안 일어나서 내려갔다가 다시 온 거예요. 형님 죽은 듯이 잤어요.”
“그래? 알았어. 다른 사람들은 점심 먹고 슬슬 만나 볼게.”
“예 알겠습니다. 식사하세요. 이따 올게요.”
권호창은 밖으로 나갔다.
그럼 밥이나 대충 먹을까 하고 준비하는데 밖에 또 사람이 찾아왔다.
“진웅 씨!”
“진웅 씨!”
서윤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