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53
‘요정의 가호.’
요정의 가호. 유현은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욕심이 난다고 해야 할까,
요정의 가호는 일종에 마킹과도 같았다. 자신이 이 요정에게 선택받았다는 걸 알려주는,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안 보여도 다른 요정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요정에게 선택받았다는, 그런 명예 같은 게 아니다.
요정의 가호를 받음으로서 따라오는 힘의 상승이었다.
유현은 요정의 가호가 가지고 있는 힘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본래 종족으로서 가지고 있는 육체 재능의 한계를 한 번에 일깨워 주는 게 요정의 가호였다. 사제들의 축복을 통해 일시적으로 육체 능력이 상승하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요정의 가호는 요정이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특별한 힘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현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리스는 친절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아이리스는 유현에게 힘의 대단함을 알려야 했다.
그가 제안을 수락하도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올려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각각의 요정들마다 요정의 가호에는 서로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현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나한테 가호를 내리는 요정은 누구지?”
“아이리스 이리아스, 바로 제가 되겠죠.”
“호오.”
유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수많은 요정들 중에서 아이리스의 가호는 최상급으로 통해진다. 아마, 미궁 통틀어서 탑클래스에 드는 가호라고 유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의 확신이었다.
재미있게도, 유현은 아이리스의 가호를 경험해 보았다.
그러니 더욱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 요정이 부여할 수 있는 가호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정들은 자신의 가호를 사용할 때 반드시 자신과 긴밀한 인간에게만 사용합니다.”
“그건 즉,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아이리스는 싱긋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 사실에 유현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생각 이상으로 그녀는 강하게 나오려고 하는 듯하다.
은은하게 웃는 얼굴에서 유현은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제가 유현님에게 거래할 건 현재 이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자면 유현님이 반드시 만족할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요정의 가호는 인간의 육체 재능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힘이었다.
현재 유현이 가지고 있는 힘, 민첩, 체력 세 개의 능력치 모두 D 등급이었다.
인간이라면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등급.
하지만 여기서 요정의 가호가 부여된다면 이 등급들을 올릴 수가 있었다.
마력과 달리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등급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리스는 요정의 가호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힘이었다.
잘 하면 세 개의 능력치 전부 등급을 올릴 수 있을 테고, 또는 이미 B등급이라는 상당한 등급에 올라가 있는 마력의 등급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요정들의 가호 같은 경우는 하나의 능력치만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능력치의 등급을 올리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 어쩌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현재 유현님의 마력 랭크는 B 등급입니다. 하지만 저의 가호를 받으면 A등급 까지 올릴 수 있겠죠. 유현님은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능력치의 등급을 올리는 건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유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이리스는 그대로 따라 말한다.
유현으로서는 머릿속이 더욱 복잡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의 등급이 A 랭크로 올라간다면, 전력을 다한 기술을 쓰고서 찾아오는 마력 탈진에서 탈출 할 수가 있다. 기술을 한 번 쓰고 나면 찾아오던 지독한 피로감이 덜해진다는 것이다.
그 차이 하나만으로도 전투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여러가지면으로도 마력의 등급 상승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A 랭크는 유현에게 큰 의미가 있는 등급이었다. 회귀 전 유현이 이루었던 마력 랭크가 A 랭크였다. 지금 B 랭크로도 엄청나다고 생각은 하지만.
깊게 고민 할 것 없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로서는 오버드웨폰이 더 쓸모 있다는 거겠지.
오버드웨폰이 제공하는 그 압도적인 힘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웠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오버드웨폰은 드워프들의 기술이 집약된 무기였다. 평범한 냉병기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망치를 휘둘러 만들어내는 명검 같은 게 아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무기.
어떻게 보면 고도의 기술이 들어간 기계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쓰다보면, 언젠가는 결국 내구도에 한계가 온다.
망가지면 고칠 수도 없다. 검은 강철의 기술을 누가 따라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고민을 반복하던 유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거래는 실패도, 성공도 아니었다.
아이리스는 영웅들의 안식처로 들어가는 유현의 등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윽고 안식처의 문이 닫히고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지자 아이리스는 몸이 피곤해지는 걸 느꼈다.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지.’
그는 요정의 가호가 가진 가치를 분명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고심스러운 표정은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거래에 응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미루었다는 게 옳겠지.
-시간을 좀 주면 좋겠는데.
고민해볼 가치가 있는 걸까. 처음에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가 던전 하트를 쓰고 있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도대체 그걸 어디다 쓰고 있는 걸까요.”
방금 전 그의 말을 떠올리며 무심코 의문으로 뒤얽힌 심정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인간이 던전 하트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유현은 쓸 곳이 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길게 이어지는 무의미한 대화에 아이리스는 답답함 마저 느꼈다.
정말로 그는 던전 하트를 사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디다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애초에 그 남자는 아이리스님과 협상할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며 네리니가 말하자 아이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는 분명 흔들렸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무엇이 되었든 거슬리는 남자인건 분명하군요. 아이리스님의 가호를 거부하다니. 나중에 분명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네리니는 유현이 제안을 곧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게 화가 나는 건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의 충성심을 알기에 아이리스는 계속해서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는 거부한 게 아닙니다. 단지 시간을 달라고 했을 뿐이죠.”
“애초에 고민해 본다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것부터 이해를 할 수 없으니까요.”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꽈악 쥐던 네리니가 고개를 치켜든다.
차갑게 식어 있는 그녀의 눈에서 아이리스는 살심을 엿볼 수 있었다.
“말씀만 하신다면 처리하겠습니다.”
“아니요.”
과도한 충성심에서 나오는 그녀의 결연한 말에 아이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의 행보에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아이리스의 침착한 목소리에 네리니는 표정을 흐렸다. 순간이지만 아이리스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네리니는 그 사실이 신경 쓰여 힘을 내서 물었다.
“아이리스님이 겨우 인간 하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겁니까?”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네리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겨우 인간 하나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인간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보다 뛰어난 인간은 더욱 생겨나겠지요. 그다지 신경 쓸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저 남자에게 아이리스님의 가호를 사용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현재 아이리스의 가호를 받은 인간은 4명으로, 이제 남은 자리를 생각하면-.
“네리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차가운 목소리를 흘리며 돌아보는 아이리스의 시선에 네리니는 얼어붙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 하냐고 쳐다보고 있는 아이리스의 시선은 무척이나 차갑다.
몸이 달달 떨리고 있다. 가슴 깊이 올라오는 공포에 네리니는 숨이 막혀왔다.
아이리스 이리아스.
그녀는 이리아스의 여왕이었다.
요정들 사이에서 여왕이란 직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를 정확히 표현하면 여왕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이리아스의 요정들은 실제로 그녀를 여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 많은 요정들이 아이리스를 말렸다.
어째서, 직접 나서려고 하는 거냐고.
실제로 다른 그룹의 여왕들은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이리스는 다른 여왕들과는 다르다. 직접 앞에서 나서고 있다.
….무섭다. 아이리스의 차가운 시선이 네리니는 무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포 너머로 질투심마저도 났다.
겨우 인간 남자 하나 따위에게 저렇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게 그녀는 질투가 난다.
네리니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내보이며.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리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냉혹할 정도로 차가워 보이던, 그 눈빛은 어느새 사라져 상냥하게 변해 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말에 네리니는 조금 안심이 된 듯 얼굴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