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00)
300 별똥별
“춥지 않아?”
“추우면 양순이 껴안고 있으면 돼. 양순이 이리 와. 오구오구 내 새끼.”
해가 떨어져 어둠이 찾아오자마자 살짝 쌀쌀해지는 것이 가을은 가을이다.
내 옆에 걸어 다니는 핫팩이 있으니 쌀쌀함은 거뜬히 이겨 낼 수 있다. 순하디순한 양순이. 털이 복실복실한 것이 껴안고 있으면 아주 좋다.
옆에서 뚱이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우리 뚱이, 얼마 전 영입한 새로운 내 식구다.
양순이가 송아지만 하게 커 버려서 매일 데리고 출근하기가 힘들어졌다. 양순이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연하의 남친 하나 만들어 줬다. 너네도 아름다운 사랑해라.
나도 누나와 외로움을 좀 달래야겠다. 아무 날도 아니지만, 굳이 의미를 만들었다.
사귄지 400일 됐다며 누나를 집으로 초대해 호사스런 저녁을 함께했다. 둘 다 날짜를 따지지 않았기에, 진짜 400일인지도 모르지만…….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씩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북유럽 감성이 절로 느껴지는 스윙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양순이와 뚱이가 달려들 때마다 의자가 앞뒤좌우로 흔들거렸다.
브리티시를 침공하는 바이킹의 기분이 이런 건가 싶으면서도 요람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기도 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이와 함께 있으니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 테다.
“아, 좋다. 이렇게 앉아 있으면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
누나의 감탄사가 진심으로 느껴진다. 나 역시 밤하늘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정원에 켜진 등이 밤하늘 감상을 방해했지만, 그래도 쏟아질 듯한 별들이 충분히 보였다. 밤하늘 별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삶에 여유가 생겼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러다 아침 되면 세상이 어떻게 느껴져?”
“하하. 우리도 월급쟁이나 마찬가지지 뭐. 다 때려치고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될까? 돈도 벌 만큼 벌었는데, 뭐 때문에 욕심을 내는가 싶기도 하고…… 참! 그분은 요새 뭐 하셔?”
“그분?”
“정수 씨 사업할 때 자금 대 줬다는 분 말이야. 잘은 모르지만, 그분이 욕심도 없이 편안하게 사시는 것 같아서. 소개시켜 준다더니, 언제 인사하게 해 줄 거야?”
우리 문자님. 나도 궁금하다. 요즘 뭐 하고 지내시는지.
억지로 사업을 위태롭게 만들어 볼까도 생각해 봤다. 그래야만 연락을 주시는 분이니 말이다.
어디선가 잘 지켜보고 계시겠지. 문자님! 제가 우리 회사 아주 잘 키워 가고 있습니다!
“뭐 은둔 생활을 즐기는 분이셔서…… 요즘은 소소하게 텃밭 가꾸면서 조용히 지내신다고 하더라고.”
그럴싸한 구라를 풀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럴수록 내 능력으로 회사를 이끌어야지. 이렇게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이야. 진정한 독립을 하더라도, 제사는 잊지 않고 지내리라.
“그분도 참 독특하신 거 같어. 맘에 여유가 많으신 분인가 봐?”
“우리도 그렇게 여유롭게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아 볼까?”
“목가적인 전원생활 좋지. 근데 내 손에 흙 묻게 할라고?”
“아이고, 그러면 안 되지. 목장갑 끼게 해 줘야지. 하하.”
실없는 소리를 던지고는 의자로 올라온 양순이를 몰아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껴안을 존재는 양순이가 아니야.
따뜻하고 좋다. 내가 꿈꾸던 평온한 삶이 이런 것이다.
삶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을 꺼내 들 시간이군.
포옹을 풀고 일어나려는데, 누나가 소리쳤다.
“정수 씨! 저기 봐 봐. 별똥별이야. 빨리 소원 빌어!”
별똥별? 소원? 이거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아! 생각났다! 그래,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
설마 그것 때문인가?
방학이라 딱히 할 일이 없다.
늘 그렇듯 해 뜨기 직전까지 총질 좀 하다가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야 일어난다. 대충 씻고 뭉그적거리다 알바시간에 맞춰 DVD방으로 간다.
오늘따라 괜히 발걸음이 무겁다. 딱히 챙기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귀 빠진 날에 아무 일도 없으면 맘이 싱숭생숭하다.
알바를 끝내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데 참 쓸쓸하더라.
손님 나간 방 청소하면서 코 푼 것이 맞다고 굳게 믿고 싶은 휴지를 치우는데 더욱 쓸쓸하더라. 어지간히들 해라, 이 나쁜 놈들아!
그나마 사방에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 줘 외롭지 않았다. 사이버머니 준다기에 회원가입을 한 쇼핑몰들이 참 고맙더라. 젠장.
이러다 군대 가면 누가 편지라도 써 줄라나?
집 나간 엄마? 엄마는 진짜 내 인생에 걸림돌이다.
재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였지만, 엄마가 있다는 이유로 군 면제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면제와 바꿨다. 얼굴도 기억 안 날 정도인데…… 억울해!
돈이 있었다면 변호사라도 찾아가서 면제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변호사면 못해도 몇십만 원을 줘야 할 것이다. 내 형편에?
현실은 지금 하는 알바 그만두면 그냥 손가락 쪽쪽 빨아야 한다. 먼지 가득한 방바닥에 누워서 손가락으로 배고파라고 쓰고 있었겠지. 어휴, 엄두가 안 난다.
우울하다 우울해! 로또라도 되면 참 좋겠다.
우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서 돈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로또야 말이 안 되는 소리이고 말이다.
남들처럼 토익책 파고 각종 자격증 공부에, 해외에 나가 어학연수도 받고 워킹홀리데이도 해야겠지.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난 하루라도 알바를 놓을 수 없다. 등록금이야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장학금으로 어찌 해결이 되지만, 생활비까지 해결해 주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하루 8시간짜리 DVD방 알바로 버는 수입은 한 달 100만 원 남짓.
DVD방 알바는 편해서 시급이 사해 염분 농도만큼 짜다. 그 돈으로 월세 내고 밥 먹고 공과금 내고 나면 얼마나 남는지 계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없다.
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랬다. 의지가 있으면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정답이기도 하다. 굴지의 재벌 회장이 툭하면 꺼내는 말이 ‘해 봤어?’였다지. 해 보지도 않고 왜 지레짐작해서 포기하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말처럼 된다면 세상이 유지될까?
욕심 가득한 인간들이 의지 하나로 다 이룰 수 있다면 그 결말은 전쟁일 것이다. 안 해 봐도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라고 학문을 배우는 것이겠지.
나처럼 밑바닥에서 구르는 인간들이 있어야 상위에 오른 자들이 부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20명이 80명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회학과에 들어오고 나니 더 시니컬해진 것 같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는 것이 사회학의 역할이지만, 내 암울한 현실과 결부되니 그저 냉소가 돼 버린 듯하다.
냉소가 가득 차니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내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왔는데, 비싼 등록금 내고 취업 공부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너희들이나 해! 난 청운의 꿈을 꾸며 살 테니까!
이런 생각 자체가 패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을 나도 잘 안다. 응당 해야 할 일에는 해서는 안 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실상은 하기 싫어서 핑계 대며 도피처를 찾으려는 것이다.
도피처가 답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숱하게 자성하며 바꿔 보려 하지만, 천성이 그런 것을 어쩌란 말이냐.
군대라도 빨리 갔다 오자. 군대 갔다 오면 정신을 좀 차리겠지.
여차하면 군대에 말뚝 박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없지만, 이래 봬도 오기 하나는 장난 아니잖아?
이번 겨울이 군대 가기 전 마지막 겨울이 되겠군.
그러고 보니까 오늘 혜성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며칠 전부터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엄청난 혜성쇼가 벌어진다며 세상이 떠들썩했다. 12만 년 만에 지구로 찾아온 혜성이란다.
천체망원경 판매가 급증했다는 기사를 보고 코미디 같은 세상이려니 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데 망원경은 왜 사는 걸까?
맥홀츠 혜성이랬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외로 나갔다. 도시보다 시골에 가야 혜성이 더 잘 보일 것이란 그럴싸한 이유를 댔지만, 속내 검은 꿍꿍이를 어찌 모르겠는가.
시나리오 한번 짜 볼까?
아빠 찬스로 차와 텐트를 빌려 적당한 강이나 호수가 있는 교외로 떠난다. 차에서는 소 몰며 밭 가는 노래가 나올 것이다. 이승희의 ‘너는 내 남자니까’도 빠질 수 없지. 도착 전부터 신이 났을 것이다.
운전하는 놈이 갑자기 필 받아서 주행거리 15만km가 넘은 오나타 악셀 죽을힘을 다해 밟아 주며 rpm 5천까지 땡겨 주겠지. 굉음을 내면서 똥침에 칼치기는 필수다.
옆에 앉은 파트너는 여전히 도도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오빠 짱인데’라며 한마디 해 주겠지만,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고 있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생전 해 본 적 없는 텐트 치기에 온 힘을 빼겠지. 그래도 하나도 안 힘들겠지. 알람 맞춰 놓은 것처럼 나오는 ‘오빠 멋지다’ 소리에 산낙지 먹은 소처럼 괴력이 발휘될 테니.
한겨울에 땀 삐질삐질 흘리며 우여곡절 끝에 텐트 치고 나면 고기판이 벌어져야지. 술이 빠질쏘냐. 유치하지만 모닥불도 피울까? 추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해 주자. 제발 사랑으로의 ‘해바라기’는 부르지 말자.
주지육림이 벌어지면 혜성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이놈들은 이미 세렝게티의 짐승으로 변했을 것이다. 술김에 객기도 부리겠지.
“혜민아 추워? 오빠는 필요 없으니까 이거 입고 있어.”
“오빠 고마워요. 이거 향기 좋다. 오빠 무슨 향수 써?”
“향수 안 뿌렸는데? 오빠 몸에서 나온 냄새 아닐까?”
생각만 해도 오글거림에 욕지거리가 나온다.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 술 먹이기 게임을 이어 가면서 암수 짐승들은 암묵적으로 짝을 정해 놨을 거야.
“바람 좀 쐬고 싶은데…….”
“혜민아. 이렇게 깜깜한데 어딜 혼자 가려고. 오빠가 에스코트해 줄게.”
“혼자 가기 무서웠는데, 잘됐네요. 오빠 응큼한 짓 하면 안 돼요? 꺄르르.”
“안 그래도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좀 아팠는데 잘됐네. 자, 늑대 한 마리 몰고 가세요. 하하하.”
무성영화 시절 변사도 이건 아니라며 때려치웠을 대본으로 연기하며 하나둘 사라질 거야. 나쁜 놈들…….
일행 중에는 반년 넘게 짝사랑해 오던 승혜도 끼어 있었다.
괜한 자격지심에, 혹은 내 팔자에 무슨 연애냐는 자포자기에 그냥 바라만 봐 왔던 애이다. 승혜는 안 된다! 이놈들아! 안 된다고!
왜 1인용 침낭에 굳이 둘이 들어가는데! 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지만, 결론은 친구 놈들이 날 껴 주지 않아서 얌전히 집에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껴 주지 않았다기보다 돈이 없어서 내가 거부한 것이 맞을 것이다. 분위기 띄워 가며 헌신적으로 놀 자신 있는데…… 정말 나쁜 놈들.
혜성이 잘 보이는 시간대가 10시 즈음이라고 했지? 짐승 놈들은 지금쯤 술과 페르몬 발산으로 절정에 달했겠구만. 부럽다. 최고로 나쁜 놈들.
육안으로 볼 수 있다지만, 도심의 빛 공해를 이겨 낼 수 있으려나? 누군가는 서울의 야경이 예술이라고 감탄했지만, 나에게는 별을 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소원도 생각해 놨다. 소원은 큰 욕심 내지 않고 심플한 걸로 준비해 놨다. 아주 심플한 걸로 말이다.
황소자리가 어디 있나…….
어릴 적 밤늦게까지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빠는 내가 잠들었을 때나 들어와서 술 냄새 가득 풍기며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빠의 손길을 모르지 않았다. 술 냄새가 싫어서 계속 잠든 척했을 뿐이니까.
혼자 집에 있다 보니 야밤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취미가 됐다.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 깔고 누워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온갖 상상 속에 빠져들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은 밤하늘 별들 사이에서 현실이 됐었다. 그렇게 별자리를 외웠고, 내 나름의 별자리를 그려 보기도 했었다.
황소자리 찾기란 껌이었다. 혜성은 어디 있는 거야? 더럽게 안 보이네.
아, 보인다! 아주 쥐똥만큼 잘 보인다. 사기꾼 같으니라고, 육안으로 잘 보인다며!
잡생각은 후딱 집어치우고 일단 소원부터 빌었다.
“대기업 회장 되게 해 주세요.”
소원이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순진한 망상과 꿈과 희망으로 잠시나마 부풀어 있었다.
소공녀가 생각났다. 현실은 플랜더스의 개, 네로였지만 말이다.
플랜더스의 개. 지금도 생각하면 슬프다. 그런 비극적인 만화를 어린이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내가 그걸 열심히 봐서 지금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화라면 가난과 모진 풍파를 이겨 내고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하지 않냐고! 왜 따뜻한 수프를 떠올리면서 얼어 죽는데!
생각하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그만큼 플랜더스의 개를 시청했을 때 느꼈던 충격은 장난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았다가 플랜더스의 개 생각에 꿀꿀해져 버렸다. 오늘은 컴퓨터 켜고 총질할 기분이 아니다. 잠이나 자자.
12만 년 만에 지구를 찾아온 맥홀츠 혜성이 빠른 속도로 지구를 벗어나 다시 긴 여행을 떠났다.
맥홀츠 혜성이 빠르게 지구를 벗어나는 찰나에 영험한 기운을 흘려보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정수는 주말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회사로 출근했다. 사람을 갈아 넣는 좆소기업 과장의 새로운 삶이 그렇게 시작됐다.
(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