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30
100화 (선계여의 完)
“누가 왔다고?”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 옥황의 거처인 자미원을 수호하는 칠성신군의 보고에 옥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
칠성신군의 머뭇거림에 옥황이 인상을 구기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내 직접 가 볼 것이다!”
“……천황거를 대령하겠습니다.”
“이런 젠장! 천황거는 무슨 놈의 천황거!”
마음 급해 죽겠는데 마차가 다 무슨 소용인가?
매몰차게 외치고 곧장 걸음을 뗀 옥황의 몸이 단숨에 사계산에 닿았다.
무당산과의 통로가 있는 선계의 중심 사계산.
그곳엔 이미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광정토의 수장 아미타를 비롯해 선계의 수장 태상노군, 천시원주, 그리고 그 휘하 불선들과 신선들.
뿐만 아니라 천계의 사방을 지켜야 할 이십팔수들이 전부 몰려와 각자의 법구를 꺼내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막아서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언짢음이 역력한 힐책에 한꺼번에 고개를 돌린 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옥황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옥황상제를 뵙습니다.”
“인사는 무슨…….”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휘 저은 옥황이 사계산에 마련된 인계와의 통로 쪽을 바라봤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극의 기운, 소름 끼치는 마기가 진득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옥황이시여, 이를 어찌합니까? 성지에…….”
“채신머리없이 웬 호들갑인가! 비키게.”
“……예? 아, 예.”
합장한 아미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싸늘한 핀잔을 듣고 머쓱하게 물러났다.
“다들 물러나거라!”
“…….”
옥황의 일갈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자, 통로 앞을 메우고 있던 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어물쩍거렸다.
“이자들이…… 내 말 못 들었는가!”
이어지는 호통에 모두가 좌우로 비켜나 길을 열었다. 옥황의 시선이 똑바로 뚫린 길 너머로 향했다.
“쯧, 진작에 그러지. 하마터면 전부 눕히고 지나갈 뻔했네.”
“…….”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늘 그랬던 것처럼 신목의 가지를 어깨에 걸치고 삐딱하게 선 진무였다.
하나 흑암갑 차림이 아니었다.
그가 걸친 것은 새하얀 바탕에 용 자수가 새겨진 도포, 바로 무당지검에게 내려지는 백룡의였다.
천계의 복장을 버리고 인계의 것을 취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천계 소속임을 부정한다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그 의지를 똑똑히 확인한 옥황이 눈가를 씰룩이며 진무를 노려봤다.
물론 옥황이 화난 것은, 또한 천계의 모든 이가 나와서 이리도 긴장하는 것은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인계를 침공한 지계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이가 아닌가. 뭘 걸쳤건 간에 일단은 기뻐하며 그 공을 치하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진무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금안의 소동(小童)과 단단한 체구의 청년.
그들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다.
대우의 법구에 봉인되었다가 진무로 인해 광명을 찾았다는 용의 후손과 한때 신령의 산군이었다가 진무를 따르며 신수화되어 가고 있다는 범.
그리고 곁에 있기만 해도 화기가 물씬 느껴지는 인물, 북리도천. 한때 마왕이었으나 진무로 인해 갱생당해 신도 마도 아닌 존재로 거듭난 이.
……적어도 그들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큰 문제는 바로 그 뒤였다.
“귀모…….”
진무의 뒤에 선 오만한 표정의 여인을 보는 순간 옥황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게다가 그 뒤로 지계의 여섯 세상을 다스리는 마왕들까지.
진무 놈이 그들을 전부 끌고 온 것이다. 신들의 대지에, 이 성스러운 땅에!
불가한 일이다.
당장에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지키는 이들이 그들이 가진 음악한 기운을 감지했다면, 아무리 진무와 동행했다고 해도 문을 닫았을 것인데.
혹, 진무가 얻었다는 태고의 힘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천계를 다스린다는 자신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상에게 이미 그 뜻을 전해 듣긴 했다.
인계의 중립 유지.
천계도 지계도 현세의 인계에 관여하지 말라.
말이 중립이지, 불가침 조약을 맺겠다는 뜻임을 깨닫고 일단 고민해 보겠다며 사계산에서 대기하라 일러둔 터였다.
아직 그 문제에 대해 상제들과 논의도 하지 않았는데…… 귀모는 물론이고 마왕들까지 전부 끌고 오다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도대체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하지만 체면 때문에라도 다른 이들처럼 귀모가 왔다는 이유로 호들갑을 떨 수는 없었다.
일단은 진무의 진의부터 확인해야 했다.
애써 호흡을 고르며 평정심을 유지한 옥황이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떼려는데, 진무가 먼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옥황!”
“…….”
순간, 옥황은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방금 손을 흔들면서 뭐라고? 아, 옥화앙?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나 인사하는 듯한 태도에 애써 다잡았던 평정심이 깡그리 깨져 버렸다.
저 새끼가 미쳤나?
“뭐야? 왜 안 반가운 표정이야? 내가 살아 돌아온 게 싫어?”
“…….”
예의 따위는 개나 줘 버린 듯 반말을 찍찍 해 대는 진무로 인해 좌중의 분위기가 단번에 싸늘히 식었다.
신선이고 불선이고 전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돌리며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오직 이미 당해 본 귀모뿐이었다.
“뭘 그리 놀라? 그럼, 진무 님께서 네놈에게 공대라도 할 줄 알았던 거냐?”
“…….”
태연자약한 것도 모자라 핀잔까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참견에 옥황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아예 구겨져 버렸다.
그런데 잠깐…… 지금 뭐라고?
“진무 님?”
“그래. 과거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진무 님이시다.”
“……뭐?”
옥황은 연이은 황당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 꼿꼿한 귀모가,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귀모가, 세상에서 지가 최고인 줄 아는 귀모가!
진무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공대한다고?
“진무 님, 가시죠. 떨거지들이 많으니 자미원에서 만나면 될 일입니다.”
“어, 그래.”
“…….”
귀모의 재촉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온다.
아니, 공대도 공댄데…… 왜 니가 안내를 하고 지랄이야!?
“뭐야, 타고 가실 마차도 준비하지 않은 게냐?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 니놈 때문에 진무 님께서 자미원까지 걸어가셔야겠어?”
“어허! 귀모.”
“예, 진무 님.”
“너무 나무라지 말게. 아직 영문도 모를 것인데.”
“아닙니다. 저 위치에 있는 놈이 모르는 것은 죄지요. 응당 꾸지람을 내리셔야 합니다.”
“허허, 됐네, 됐어. 그만하고 서둘러 가지.”
“예, 진무 님.”
“…….”
어깨를 툭툭 치는 진무. 가벼운 손짓이긴 하지만 맞고도 더욱 공손해지는 귀모.
옥황은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도무지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단 말인가? 잠깐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기라도 한 것인가?
“뭘 쳐다봐? 진무 님 기다리시는 거 안 보여?!”
“…….”
“떼잉! 하여간 천계 놈들은 수장이나 부하들이나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내 진작에 때려 부쉈어야 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서는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옥황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 * *
자미원, 즉 천상궁에 모인 이는 단 셋뿐이었다.
천계의 주인 옥황.
지계의 주인 귀모.
그리고 인계 대표를 자처하는 진무.
하지만 자리에 앉은 것은 옥황과 진무뿐이었다. 귀모는 어찌 자신이 동석할 수 있냐며 진무의 뒤에 서서 대기했다.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귀모의 반응으로 보아 진무에게 패배한 것은 분명한데…….
그저 충성하는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저 공손함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권속이다.”
“뭐?”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 아냐?”
“…….”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툭 내뱉은 짧은 설명에 옥황이 눈을 끔벅였다. 진무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 옥황을 응시했다.
귀모와의 싸움이 끝났을 때, 그녀의 명을 보존시키고 지계에서의 권리를 유지하게 하는 대가로 진무가 요구한 것은 충성이었다.
그저 따르는 것이 아닌, 보다 확실한 관계.
언령의 맹약.
만일 귀모가 진무의 뜻에 반하거나 인계에 대해 또다시 야욕을 드러내면 그 즉시 영원한 소멸을 맞는다.
귀모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둘은 주종의 관계가 된 것이다.
암, 그 정돈 돼야 그 난리를 친 것에 수지타산이 맞지.
하지만 그 내막을 알 리 없는 옥황은 여전히 헤매는 표정이었다.
“귀모가 너의 권속이라고?”
“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판단할 문제니까 신경 꺼라.”
“뭐야? 이 자식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답하는 모습에 옥황이 발끈하며 성을 냈지만, 돌아온 것은 귀모의 차디찬 살기였다.
“옥황!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어라. 진무 님에 대한 무례는 내가 용서하지 않아!”
“…….”
매서운 일갈과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에 옥황의 눈이 분노로 씰룩거렸다.
지가 언제부터 권속이었다고…….
“고작 사념체 주제에 감히 내 땅에서 나를 위협해 보기라도 할 작정이냐!”
“흥! 너 따윈 사념체로도 충분하거든?”
“귀모!”
옥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귀모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에 진무가 혀를 차며 둘을 나무랐다.
“아이 참, 왜들 소리를 지르고 그래? 시끄러워서 귀가 다 먹먹하네.”
“……네놈.”
“그만하고 앉지. 귀모도 그만해.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 나대는 거야?”
진무의 음성에 약한 짜증이 실리자 귀모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 뜻은…….”
“됐어.”
“예.”
간결한 대화.
둘의 관계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귀모가 저리 공손해지다니…… 정말이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군.”
옥황이 헛웃음을 토하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차례 지적을 받았기 때문인지 귀모도 눈을 흘길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그녀를 얼마 전까지 인계를 침공한 마귀들의 수장이라고 하겠는가?
“…….”
믿을 수 없었지만, 이젠 믿어야 했다. 옥황은 시선을 돌려 진무를 지그시 응시했다.
과거완 달리 마음이 읽히지 않는다. 결국 입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제 말해 보거라.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냐?”
“싸움이 끝나고 인계에 올라왔더니 아직 철수를 안 했더라고. 청상에게 분명히 내 뜻을 전하라고 했는데.”
“그건 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는 아직 논의가…….”
“논의? 무슨 논의?”
“…….”
“논의할 거리가 있나?”
“당연하다. 인계는 오랫동안 천계의 그늘에 있었다. 천계의 두장군이었던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
옥황의 변에 진무가 별안간 서늘해진 눈빛으로 웃었다.
“그늘? 마치 인계가 천계 아래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야 당연히…….”
“뭐가 당연하지?”
“…….”
“지계가 침공했을 땐 헌신짝처럼 버려 놓고, 이제 와서 그따위 소리가 나와?”
“그, 그건 천계를 지키기 위해…….”
“인계는? 싸움에서 죽어 간 수많은 생명은?”
“…….”
옥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끝까지 지키려 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어. 아마 당신에게도 예전처럼 예를 다했겠지.”
“…….”
“하지만 당신들은 결국 제 살길만 찾았어. 인계가 어찌 되든, 자신들만 살아남으려고.”
“으음…….”
“한번 버렸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손 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간단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더 복잡하게 만들어 줘?”
“……?”
어느 순간 진무의 눈빛에 살기가 섞였다.
“내가 왜 귀모와 마왕들을 전부 끌고 올라온 것 같아?”
“…….”
“나 혼자서도 충분하겠지만, 좀 더 위협을 느껴 보라고 데려온 거야. 무력시위라는 거지.”
“네놈, 지금 무슨 말을!”
“귀가 먹었어? 거절하는 순간 이곳 자미원부터 박살 내 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천계 놈들 씨를 전부 말려 버릴 거야. 선인입네, 불선입네 하면서 제 안위만을 챙기는 위선자들의 세상 따위.”
“……네놈이!”
“왜, 불가능할 것 같아?”
“……!”
서슬 퍼런 위협에 발끈하려던 옥황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자미원이 잘게 떨리고 있다. 그리고 등줄기가 축축이…… 젖는다고?
아니, 등뿐만이 아니다. 손에도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각.
설마,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단 말인가? 천계의 주인인 자신이?
“하긴, 궁금했지. 귀모와의 싸움에서 깨달은 음의 힘을 아직 써 보지 못했거든.”
“……!”
“만약 당신이 대대로 계승해 온 양의 힘까지 알게 되면 어찌 될까?”
“…….”
“잘 선택해. 난 이미 준비가 됐으니까. 과거의 연도 있으니, 당신 모가지부터 가장 먼저 따 줄게.”
그 말에 뒤에 있던 귀모의 사념체가 발산한 음기가 천상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옥황은 눈앞에서 웃고 있는 진무가 더 두려웠다.
그는 지금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다.
너무나도 명확한 의지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미증유의 힘 앞에 더는 고민할 수 없었다.
“……인계에서…… 손을 떼겠다.”
옥황의 한마디에 자미원의 떨림이 멈췄다.
그리고 진무가 활짝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잘했어. 그럼 된 거야.”
짧은 칭찬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바라보던 옥황이 떨떠름하게 투덜거렸다.
“젠장……. 숫제 괴물이 되어 버렸군.”
“그러게.”
“이제 어디로 갈 참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있어야 할 곳?”
“그래, 신선은 천계에, 마귀는 지계…… 난 인계가 편하더라고.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당신들이 언제 약속을 어기고 딴마음을 먹을지. 그러니까 나라도 지키고 있어야지.”
“……그렇군.”
대놓고 불신을 말하는 진무였지만, 옥황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버린 전적이 있었으니까.
“쉬었다 가게.”
“그러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오매불망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녀석이 있어서 곤란해.”
“기다리는…… 이가 있다고?”
“어.”
“……?”
“아무래도…… 더는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묘한 말을 끝으로 진무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미원을 나섰다.
그렇게,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무당기협: 선계여의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