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2
사람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남녀 따질 것 없이 거대한 중량을 가진 괴물의 착지에 놀란 듯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모두들 혈색이 새하얗다.
겁에 질린 얼굴들. 그들의 용기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인 듯하다. 모두들 아연한 얼굴로 괴물을 쳐다봤다.
“뭐 이렇게 단단한 건데!”
“꺄아아악! 움직인다! 피해!”
녀석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두어진 한 학생이 용기를 내 녀석의 몸에 무기를 휘둘렀지만 흠집만 조금 날뿐, 피 한 방울 나지 않자 당황한 듯 뒷걸음쳤다.
녀석은 괴물이었으니까. 한 번 찔러 보기만 하지 제대로 상처를 내는 이들은 없었다.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협적인지라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는 것이다. 다가선다 하더라도 공포에 의해 제대로 된 공격을 하는 이들이 없었다.
아쉽게도 저들의 싸움은 여기서 끝인 듯했다. 꽤나 허무한 결말에 나는 혀를 차며 배낭과 무기를 찾기로 했다. 내가 거미줄에 꽁꽁 매여 묶여 있는 사이 가지고 있던 배낭의 행방은 알 수 없어졌다. 무기 또한 당연스럽게 회수 된 상태였다.
배낭에는 포션이 있다. 무너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포션이 필요했다.
지금 몸으로는 싸우고 싶어도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거미 인간들도 벅차겠지.
‘저거면 되겠네.’
쓸만한 무기를 찾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닥에 목이 잘려나가 있는 학생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 옆에 죽은 학생의 것으로 생각되는 검을 빠르게 줍고는 거미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빠졌다.
모든 시선이 여선생의 파티 쪽에 몰려 있었기에 발소리만 죽여 움직이면 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명소리를 뒤로하며 내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시작의 도시로 들어서는 통로였다.
만약 그곳이 열려 있다면 곧 바로 튜토리얼을 끝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동안의 시간 동안 거미들이 공사를 끝낸 듯했다. 나는 앞에 보이기 시작한 거미줄을 보며 중간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불이 필요한데.”
눈앞을 가로 막고 있는 두꺼운 거미줄을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번에 아이들이 기껏 전부 불태웠던 것들이 이제는 원상복귀 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두껍게 벽이 만들어져 검으로 베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핏자국들이 있다. 아마, 내 피가 아닐까 싶었다. 검게 굳은 핏자국들을 바라보던 중 문득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구석에는 배낭 하나가 떨어져 있었는데 꽤나 눈에 익어 나도 모르게 물건에 손을 뻗고 있었다. 설마 했지만 운이 좋게도 내 것이었다.
가방 안을 확인 해보자 내용물들은 그대로 있었다. 조금의 식량과 물, 그리고 죽은 이들에게서 회수했던 단검 4자루와 포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도 배낭 자체에는 관심이 없던 듯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제일 중요한 것이 배낭 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다. 만약 녀석들이 배낭을 어딘가에 숨겨 놨다면 곤란할 뻔했다. 권총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고는 안의 총알까지 점검했다.
2발이 그대로 남아있다. 장전까지 완벽히 되는 걸 확인하고서 품속에 집어넣었다. 단 두발이지만 귀중한 무기이다.
‘나쁘지 않아.’
가방을 회수한 나는 기분 좋은 얼굴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앞을 막고 있는 거미줄들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니 지금 여기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생각에 안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라이터가 떠올라 황급히 품안을 뒤졌다. 손끝에 라이터로 생각되는 게 잡혀 곧 바로 꺼내보지만 곧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쯧. 부서졌네.”
기름을 채우는 유리가 깨져있다. 그래서인지 안에 있던 기름들이 전부 밖으로 흘러나간 상태.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엉망진창으로 싸웠으니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했다면 그것 나름대로 이상했다.
왔던 길을 돌아가 공동 쪽으로 돌아오자 여전히 싸움은 진행 중이었다.
“천천히 물러섭니다. 4조는 계속 석궁으로 거대한 거미를 견제 해주세요. 통로 확보가 우선이에요. 3조는 부상자들을 데리고 먼저 가주세요!”
목이라도 쉰 건지 어딘가 가늘게 변한 여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도망치려는 듯했다. 생각보다 거미 둥지의 주인이 강했기 때문이겠지.
‘도망치는 건가.’
통로에서 고개만 조금 내민채 나는 상황을 살폈다. 여선생의 말에 학생들은 이를 악물며 따르고 있었다. 다가오는 거미들을 견제하며 통로를 확보한다.
기세 좋게 쳐들어왔지만 결과는 꽝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음 공격은 성공할지도 모른다. 밖에는 얼마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남아 있는 걸까.
저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왔을 때 보였던 수는 40명 안팎일 것이다. 그 정도의 인원을 잘도 합해 이끌고 온 건 대단했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은 저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결국 그들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둥지의 주인은 통로 안까지 따라가기에는 몸집이 너무 컸으니까. 이 거대한 공동은 녀석에게 있어 둥지이자 감옥이었다.
[녀석들을 쫓아!]그들을 추적하는 건 녀석의 하수인들. 커다란 거미와 거미 인간들이 한데 섞여 그들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공동 안은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둥지의 주인인 녀석뿐이다. 그래도 싸움이 한쪽으로 완전히 쏠린 건 아닌 듯했다. 녀석도 꽤나 상처투성이였다.
녀석의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탓인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사나운 목소리로 명령하는 모습이란 우습다고 여겨졌다.
[내 둥지를 이렇게 건드리고도 감히 도망치다니!]도망치는걸 허용한 게 그렇게 분한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녀석을 조용히 주시하다가 나는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그 동안 아끼고 있던 거였는데, 그렇지만 그다지 아쉽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금 녀석은 빈틈투성이. 주위에 하수인으로 부리던 거미들도 전부 사라진 지금이 기회였다. 혼자 있을 때 녀석은 제일 약해진다.
목구멍 너머로 천천히 포션을 흘려 넣는다. 그 동안 먹이가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몸이 빈약해진 건 사실이다. 실제로 지금 왼쪽 어깨 부근 쪽이 감각이 없다. 근육이 뭉친 것마냥 뻐근하기까지 하다.
‘어디서 당한 거지.’
상처라도 입었던 걸까. 그런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단순히 먹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보기에는 묘한 일이었지만 떠오르는 원인은 없었다.
포션으로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힘이 나는 듯했다.
이제는 내용물이 사라져 빈 유리병이 된 포션 병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자 바닥에 유리병이 깨져나가며 그 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바닥에 튕겨져 허공을 아련하게 떠돌던 유리조각들 중 몇 개가 녀석의 몸뚱이에 튀었다.
[무슨···!]그러자 놀란 듯 녀석이 뒤로 돌아보는 게 보였다. 거대한 거미가 움찔거리는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표현하기 어려운 진광경이었다.
역시 녀석은 겁이 많은 녀석이다. 그건 다르게 보면 녀석의 실제 전투력은 약하다는 게 아닐까. 거대한 몸집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게 전부인 녀석.
그 동안 당한 꼴이 있기에 나는 검을 강하게 쥐어 잡으며 땅을 박찼다. 그러자 녀석이 놀란 듯 뒷걸음쳤다.
[어떻게 속박을 풀고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그 년이 지른 불 때문인가!]“운이 좋았지.”
그렇게 밖에 표현할 것이 없기에 나는 빙긋 웃으며 녀석에게 달라붙었다. 그 순간의 내 모든 의식은 녀석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한 눈에 녀석의 움직임을 담기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 정도로 거대한 몸이었고, 가느다란 여러 쌍의 다리는 시선을 분산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녀석은 거대했기에 어떻게 움직일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제 때 반응할 순발력만 있으면 여러 명의 거미 인간들과 싸우는 것보다 쉬울 정도였다.
검은 점이 찔러 들어온다. 위에서 아래로. 녀석은 나보다 높은 곳에서 창을 내지르듯 날카로운 거미 다리를 찔러 들어왔다.
맞으면 필살.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그대로 녀석의 다리에 몸이 꿰뚫려 싸움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나는 앞으로 뻗어 나아가 녀석의 공격을 피해냈다.
볼 옆으로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지며, 통증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감각을 곤두세워지는 촉발제가 되어주었다.
내찔러진 거미 다리는 그대로 목표를 잃고 바닥에 내려찍어졌다. 등 뒤로 쿵, 하는 충격이 전해져오는 걸 느끼는 동시에 나는 검을 휘둘렀다.
공격을 피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공격할 차례였다.
휘둘러진 검격은 그대로 거미의 다리를 베어냈다. 가느다란 다리는 상당히 단단하기 짝이 없었지만 온힘을 다한 일격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완전히 베어내지는 못했다. 생긴 것과 다르게 다리는 단단했고, 그 덕분에 반 쯤 잘려나간 상태가 전부였다.
[캬아아악!]고통에 괴로워하는 소리를 귀에 담으며 녀석의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녀석의 움직임은 단순했다. 앞과 뒤로만 빠르게 움직이지 내 움직임을 따라 몸을 회전 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한정적인 녀석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약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녀석의 등 뒤를 노렸다. 내 움직임에 따라오지 못하고 등을 보였으니 공격해주어야겠지.
검날은 그대로 거미의 엉덩이 부근에 박혀들었다. 그러자 역한 피가 뿜어졌다. 살덩어리가 많은 부분이라 그런 걸까. 고통이 컸는지 녀석의 비명소리가 한 층 더 커졌다.
[캬아악, 이 녀석!]내려찍으려는 것처럼 사납게 쏘아지는 검은 창. 단단한 거미의 다리는 그 자체로도 흉악한 흉기였고, 녀석은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미 녀석의 다리는 몇몇 플레이어의 목숨을 앗아간 무기였다. 흥건하게 묻어 있는 핏물이 사방으로 뻗어지며, 검은색 점이 나에게 날아왔다.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녀석의 공격을 내가 쉽게 맞아 줄 리가 없다. 검을 짧게 쥐어 잡은채 녀석의 공격을 빗겨낸다.
녀석의 공격을 빗겨내며 검날에 다리가 부딪치자 콰드득, 불똥이가 튕기는 게 눈에 들어왔다.
피하기에는 상당히 근접해 있었기에 막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비록 어떻게든 코앞에서 쏘아진 공격을 빗겨냈지만 녀석의 힘에 떠밀려 몸의 균형을 잃었다. 뒤로 뒷걸음치며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녀석은 그 틈을 노려 또다시 공격해 왔다.
다리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쌍이었다. 한 번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었다. 비록 여러 쌍의 다리들 중 하나가 내 공격에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지만 공격할 수단은 많다.
타닥. 타닥
하지만 내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하고 녀석은 애꿎은 땅만 때리고 있었다. 화살처럼 쏘아지는 공격을 차례대로 간신히 피해내며 자세를 추스르는데 성공하자 녀석의 분한 듯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런다고 네놈이 살 수 있을 줄 아느냐! 어차피 죽은 목숨이거늘!]“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아직 싸움의 결과를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솔직히 말해 질 것 같지도 않았다.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면 죽게 될 하드코어한 싸움이지만 방금 전의 공방을 통해 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만해도 녀석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 일격에 반쯤 잘려나간 다리였다. 그 상처를 눈에 담으며 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이 비웃듯 소리 질렀다.
[네 놈의 몸에는 이미 나의 알이 숨어 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진 않겠지? 이미 오래 전에 부화가 진행되었을 터!]“과연···. 이미 기생 거미가 내 몸을 파고 먹고 있는 건가.”
녀석의 말에 나는 숲속에서 봤던 인형들을 떠올렸다. 그런 건 사양이다.
[흐흐흐···. 그러니 이대로 포기하는 게···.]푸슉···.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단검을 꺼내 왼쪽 어깻죽지에 쑤셔 넣었다. 갑작스러운 자해에 녀석이 놀란 듯 말이 멈추었다.
어쩐지 깊이가 부족하다고 여겨져 나는 좀 더 깊숙이 단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단검 끝에 닿았다. 뼈도 아닌 물컹물컹한 무언가였다. 나는 씨익 웃었다.
다행히 여기가 정답이었나.
어쩐지 어깨 쪽이 감각이 없다고 느끼던 중이었다. 포션으로도 회복이 되지 않아 이상했던 것인데 녀석 덕분에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무슨···!]“때 마침 뻐근하던 참이었는데.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어.”
쑤셔 넣었던 단검을 빼내자 안쪽에서 뭔가 딸려오는 게 느껴졌다. 핏물이 꾸역꾸역 튀어 나왔지만 어쩐지 통증은 없었다. 기생 거미 때문일까.
녀석이 내 안을 파고 먹고 있는 중이었을 텐데도 고통이 없었으니 기생 거미가 무언가 마취제 역할이라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끼에에엑!
단검에 뽑혀 나온 기생 거미를 바닥에 내던져 잘근 짓밟고는 옷을 벗어 팔 부분을 찢어냈다. 그대로 찢어낸 천을 이용해 왼팔을 지혈한다.
난폭하게 칭칭 동여매는 무성의한 지혈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출혈이 심해지지 않게 쌔게 묶는다.
왼팔에 감각이 없다. 적어도 이번 싸움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겠지. 불리한 요점이 하나 생겨 등줄기가 가늘게 떨렸지만 난 되려 입술을 비틀고는 녀석을 바라봤다.
“내 몸에 기생 거미가 아직 더 있나?”
[네, 네녀석···!]거미 주제에 감정이 풍부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더 징그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로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혐오에 가까웠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있는 건가. 괴물 주제에 도대체 누구를 혐오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