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32
332. 호두까기 (1)
과거에도 휴도에 접근해온 사람이 있었다.
직접 막은 것 외에도 수차례 사람들이 접근한 적이 있다.
대개 싹이 선에서 해결이 된다.
투명장막을 뚫어도 몇 중이나 되는 방어막들이 있다.
공격적인 방어막은 아니다.
자연스레 다른 길로 유도할 뿐이다.
“이쪽으로 쭉 오고 있어?”
나의 물음에 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다른 길로 유도할 방법도 없어?”
“그렇다.”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나서면 될 일이다.
어떻게 방향을 틀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휴도라는 존재는 가려야 한다.
내가 시간을 벌면 싹이 혹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싹이, 곰곰이, 삐삐, 핫도그도 왠지 모르게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냐아아아아아앙.”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무룩이만 빼고.
“아무튼 그럼…….”
내가 몸을 틀어 날아오르려는 찰나였다.
“언니는 오늘도 예쁘네.”
지율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
“언니 예뻐!”
“무슨 언니?”
“있잖아! 예쁜 언니!”
“누구? 이름이?”
“소희 언니!”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채소희?”
“맞아!”
채소희가 갑자기 왜 이쪽으로?
예전에도 채소희를 다른 길로 돌린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채소희도 나의 힘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는 상태.
처음에는 나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것 같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바뀐 걸까?
아니면 우연히 이쪽으로?
“차라리 잘됐어.”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상황을 둘러댈지 난감하지만, 채소희라면 그냥 믿어줄 가능성도 있다.
서둘러서 요트를 타고 나가서 마주친다면, 그게 완벽한 시나리오다.
“싹아,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나의 물음에 싹이가 되물었다.
“오고 있는 인간이 여기까지 오는 시간 말이냐?”
“어.”
“8…….”
“8?”
“7…….”
이런.
“지율아! 아빠 다녀올게!”
나는 곧장 바닥을 박차고 날았다.
“응! 다녀와아아아아!”
지율이가 뒤에서 손을 흔들었고, 싹이는 조용히 “6”하고 중얼거렸다.
날아올라 휴도를 벗어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채소희가 보였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나를 향해 날아드는 채소희의 아래로는 푸른빛의 전격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앗.”
나를 본 채소희가 급격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에 맞춰 속도를 줄였다.
“하, 하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채소희도 피식 웃었다.
흐르는 바다처럼 잠시 웃음이 흘렀다.
차이점이라면 바다는 계속 흘렀고, 우리의 웃음은 멎었다.
“그래서…….”
채소희는 나 그리고 뒤쪽의 휴도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싹나무를 시야에 담으며 말했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예요?”
“그게 말이죠…….”
“그냥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이거 참…….”
어차피 적당히 둘러댈 수는 없을 듯했다.
“일단 저기가 제 집입니다.”
나의 말에 채소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저희 집이에요.”
“저 섬이요?”
“네.”
채소희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그때 요트를 타고, 빙판 위를 걸으셨던 거였군요.”
“그렇죠. 집 근처였으니까요.”
“상상도 못 했네요.”
“하하, 그렇죠? 저도 제가 섬에서 살 줄은 몰랐단 말이죠.”
“그럼…….”
채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싹나무를 올려다봤다.
“저건 뭔가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네? 댁이시라면서요?”
“저희 집에서 자라는 거긴 한데, 정체를 정확히는 몰라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채소희가 헛웃음을 쳤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뭐죠?”
“하하, 아시다시피… 그냥 조용히 사는 아저씹니다.”
“딱히 조용히 사시는 것 같지도 않고, 아저씨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애 아빠니까 아저씨죠 뭐.”
“그렇게 따지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냥 다시 돌려보내야 하나?
무조건 다 덮어놓고 그냥 가라고 해야 되나?
비밀을 지킨다는 보장은 있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엇.”
채소희가 조금 놀라면서 내 뒤쪽에 시선을 뒀다.
“왜 그러시… 아.”
지율이가 곰곰이, 삐삐, 핫도그, 무룩이 그리고 펑퍼짐한 후드를 뒤집어쓴 싹이와 함께 나뭇잎배를 타고 있었다.
“빠아아아아! 언니이이이!”
지율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 아, 안녕.”
채소희가 당황하며 인사를 건넸고, 지율이는 해맑게 웃었다.
일단 곰곰이와 삐삐, 핫도그는 나의 눈치를 보는지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말렸었다.”
싹이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뭐냥? 눈높이를 맞춰라냥!”
무룩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은 무룩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룩이는 자신의 의지로 의사전달 조절이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의 말로,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들린다.
아마 이번에도 조절했겠지.
아마도.
“지금 고양이가 말을 한 거예요?”
채소희가 놀란 고양이 눈을 하고 물었다.
“하하, 그게 말이죠…….”
그때 무룩이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예의를 갖추라냥! 내려와서 눈높이를 맞추고 이름을 밝혀라냥!”
무룩이가 조절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네.
* * *
나도 나뭇잎배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 빈 공간을 가리키며 채소희를 향해 웃어 보였다.
“타시죠.”
“네에.”
채소희는 천천히 나뭇잎배에 올랐다.
“언니이이이이!”
지율이가 채소희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어, 지율아 안녕. 반가워.”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웠는지.
하긴, 지율이는 워낙 붙임성이 좋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다.
지금까지 지율이가 좋아한 사람 중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이름이 뭐냥?”
무룩이의 물음에 채소희는 눈알을 이리저리 바삐 굴리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채, 채소희.”
“이제부터 넌 내 부하인 거냥.”
“어, 어? 왜 그렇게 되는 거야?”
“내가 하라는 대로 눈높이를 맞추고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냥. 아래가 되겠다는 뜻 아니었냥?”
“아니, 그런 건 아니었는데…….”
나는 무룩이의 뒤쪽에서 채소희를 향해 입 모양으로 “그냥 맞춰줘요”라고 말했다.
채소희는 어색하게 웃다가 입을 뗐다.
“그래, 뭐…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무룩이는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지 꼬리를 한 번 팔랑거리다가 새침하게 “냥”하고 목소리를 냈다.
“언니 근데 갑자기 왜 놀러왔어? 아빠가 초대했어?”
지율이의 물음에 채소희는 또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어어? 아하하, 그렇지. 근데 그냥 놀러온 건 아니구우…….”
“그럼?”
“일 때문에.”
“무슨 일?”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른들 일이지.”
“나는 알면 안 되는 일이야?”
“당연히 지구를 지키는 일이지.”
“아하!”
지율이는 검지를 코와 입 앞에 세우며 “쉬이이이잇” 소리를 냈다.
“악당들이 들으면 안 되니까 항상 비밀을 지켜야 해.”
채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쳤다.
“맞아, 그렇지.”
괜찮게 맞장구를 치는구나 싶은 찰나였다.
“도착했다.”
휴도의 선착장에 다다르자마자 싹이가 먼저 내렸다. 줄곧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싹이는 채소희에게 얼굴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몸은 펑퍼짐한 후드로 가리고 있었고.
채소희는 싹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듯했지만, 그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내리자!”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이었다.
“고옴!”
“삐이!”
“멍!”
줄곧 인형인 것처럼 가만히 있던 곰곰이, 삐삐, 핫도그가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어어? 인형이, 지금 인형이……?”
채소희는 눈을 크게 뜨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 귀엽죠?”
나는 딱히 설명도 하지 않았다. 채소희가 나를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듯이, 휴도 자체도 그냥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애들 다 엄청 귀엽죠?”
지율이가 묻자 채소희는 당황하다가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선착장에 오른 지율이는 양팔을 넓게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아아아!”
* * *
아이들은 네모집 바로 앞에서 놀고 있었다.
나와 채소희는 조금 떨어진 곳에 마주 앉았다.
“재미있는… 곳에 사시네요?”
채소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네요.”
나는 머그컵에 가득 차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
채소희가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밤에 그렇게 드시면 잠 안 오지 않아요?”
“아. 괜찮습니다.”
“카페인 정도에는 영향을 안 받으시는 건가요?”
“그건 그냥 옛날부터 그랬어요.”
“그러셨구나.”
또다시 흐르는 적막.
“궁금한 거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나는 웃으면서 아예 멍석을 깔아줬다.
“궁금한 거요. 아, 그게…….”
채소희는 잠시 뜸을 들였다.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빛에서 물어보고 싶은 게 한 트럭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여기를 아는 사람들이 또 있나요?”
채소희의 물음에 나는 작게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있기는 한데, 많지는 않아요.”
“그렇군요.”
“예.”
“……저 아이들은 마수인 건가요? 마력이 느껴지던데.”
곰곰이, 싹이, 핫도그, 무룩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 굳이 분류하자면 마수이기는 하죠.”
“역시.”
“보시다시피 착해요.”
“네, 그래 보여요.”
그때 무룩이와 채소희의 눈이 마주쳤다.
“냐앙!”
무룩이가 이유 없이 성질을 냈다.
살짝 놀란 채소희가 나의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
“저도 몰라요.”
“아.”
“고양이잖아요.”
“특이하네요.”
“그렇죠.”
나의 눈치를 살피던 채소희가 물었다.
“저한테 물어보실 건 없으세요?”
이번에는 채소희가 멍석을 깔아줬고,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알고 온 건 아니에요.”
“그럼요?”
채소희는 하늘혹등고래떼의 마력을 느꼈고, 홀리듯 쫓아오며 움직이다가 휴도까지 다다랐다고.
목적지를 아예 다른 곳에 두고 직선으로 움직였기에 싹이의 방해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그러셨구나.”
나는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을 잠시 미뤄두고 있었다.
“더 물어보실 거 있지 않으세요?”
채소희는 내 마음속을 읽듯이 물었다.
“티가 나죠?”
“조금요.”
“비밀… 지켜주실 건가요?”
“아직까지도 본인이 조용히 지내고 계시는 걸로 알 수 있지 않으세요?”
“그렇긴 해요.”
“걱정하지 안 하셔도 돼요.”
채소희는 싹나무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정말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기는 한데, 뭐… 세상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말씀드린 것 중에 거짓말은 없습니다. 진짜예요.”
“믿어요.”
그럭저럭 상황이 정리됐다.
채소희와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안 됐지만,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빠아아아아아!”
갑자기 아이들과 함께 달려온 지율이.
“어어, 왜 그래?”
“이거! 이거 뭐야?”
지율이가 손을 내밀었다. 자그마한 손바닥 위에는 푸릇푸릇한 초록빛 호두가 있었다.
“호두네? 색은 좀 특이하지만.”
“호두?”
“응. 먹는 거야. 견과류. 땅콩 같은 거.”
“아하! 근데 되게 이상하게 생겼다.”
“아빠도 초록색은 처음 보네.”
채소희도 신기했는지 고개를 쭉 빼고 초록색 호두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였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채소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앗.”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채소희.
“가봐야겠네요.”
“비상인가요?”
“네. 보라색 차원문이 발생했어요.”
“어디서요?”
채소희가 손을 옆으로 뻗으며 대답했다.
“저기… 바다 위에 생긴 모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