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ck Driver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69
뜬금없는 선언에 동그랗게 뜬 눈들이 나에게 집중된다. 그야 절망적인 상황에서 놀랄만한 이야기였기에 오버스러운 반응은 아니지만.. 시선이 조금 부담됐다.
“박스터님 그…”
이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해도 절망적인 결말 외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의 발언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허세가 아니라 진짜야. 나라면 아마..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정말입니까..?”
“응, 진짜야.”
거짓은 아니다. 영체라는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부터 머릿속에는 한가지 방법이 자연스레 구축되었다. 100%는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니..!? 하지만.. 그런 방법이..!”
나를 신뢰하는 라인펠트라도 이 말은 곧이곧대로 신용할 수
없는 것인지 망설이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근처에 있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둘 설명하고 있을 만큼의 시간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 구 할 수 없다. 그녀들의 성격이라면 ‘동반자살’에 따라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는 것은 싫고 무섭지만 딱히 누군가 같이 죽어주기를 바라
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들은 쭉 살아주었으면 한다. 뱃속의 아이들과 함께… 그러니까 제대로 된 설명은 할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나라면 진짜 저 녀석을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쳐. 짐은 다 버리고 가볍게 해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 그러면 어떻게든 살수 있을 거야.”
“아니.. 하지만 박스터님..!”
“라인펠트!”
역시 이대로 물러서지 않으려는지 물고 늘어지기에 상당히 강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른다. 자신이 생각해도 상당히 큰 목소리였던지라 바로 앞에 있던 라인펠트는 일갈에 입을 다문 채 몸을 움찔하고 떤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이 없는 건 매한가지야. 그러니까 잘 들어. 너희는 일단 여기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
최대한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듯 입가에 미소를 유지한 채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된 걸까?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해서 인지 라인펠트는 물론이고 아린
도 세리아도 얀도 그리고 멜도 전원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 좀 더 벌벌 떨면서 이야기했어야 했나…? 그렇지만 태도를 지금에 와서 고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 상태로 설득하는 수밖에는…
“딱히 죽으러 갈 생각은 아니야. 나도 목숨은 아깝고.. 내 목표는 늙어 죽는 거니까. 그야 실수하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따로 죽을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박스터님 제가 동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사파이어와 같이 새파란 눈동자가 탁한 나의 눈을 올곧게 바
라본 채 물었다.
“그건 안되지. 너는 저 사람들을 지휘해야 할거 아니야?”
이미 그런 말을 할 거라는 건 예상됐기에 거절의 이유는 확실하게 생각해 두었다.
“……………..”
책임감이 강한 라인펠트인 만큼 효과는 직방인지 분한 듯 입술을 깨문다.
“그럼 내가 갈래.”
“아니 내가 갈게!”
“제가 갈까요?”
라인펠트가 거절당하는 것과 동시에 아린 얀 세리아가 말했다. 이것도 예상의 범주다.
“안돼! 안돼! 너희들 진짜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지만 너희들 데리고 가면 100% 죽어! 거기에 내 생각다 좀 해줘라.”
그 말에 그녀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뱃속에 자기 아이가 있는 여자를 위험한데 데리고 가고 싶겠냐?”
말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지만 어떻게든 그 대사를 내뱉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폭발할 것 같았다. 그 말에 수줍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반응도 있었고 이제 와서 자각했다는듯한 반응도 있었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반응도 있었다. 다만 한 사람..
“나는 없으니까 괜찮지 않아? 내 신체능력이라면 박스터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린 얀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안된다니까. 그것보다 너도 임신했을 거야.”
“어어..?”
두 눈을 끔뻑거리는 얀아무래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모양이지만… 간간이 보이는 증상을 보면 일목요연하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따로 검사를 한 것도 아니지만… 선례(?)를 생각하면 높은 확률로 임신했을거다. 헛구역질이나 입맛의 변화 생리불순 이 세 가지의 증상을 보면 그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딱히 진실이 아니어도 솔직히 상관없다. 따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상당히 악랄한 수법이지만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패가 된다.
“그러한 이유니까! 너희들은 얼른 도망쳐! 이쪽도 준비할게 있으니까.”
가벼운 태도로 손을 휙휙 저으며 반대편을 눈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두 다리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킨 채 서 있을 뿐이었다.
“하아… 진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남은 시간 희망을 품게 하려고 적당하게 내뱉은 말도 아니라니까? 저 망할 새
끼를 처리하고 확실하게 돌아올 거라니까? 왜 이렇게 안 믿는 거야? 진짜래도? 거짓말이면 내가 너희들 아들 한다! 엄마로 모신다! 뱃속에 있는 내 애는 형으로 모신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막말을 적당하게 뱉어낸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설득 문구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 말이나 뱉은 것들이 효과를 발휘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빵 터지는 부분이었는지 누구랄 것도 없이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내뱉고서도 이건 좀 아닌가? 싶었지만 제법 통한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부터 이 장소에서 있는 힘껏 도망가도록 하겠습니다.”
굳어진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돌아온 라인펠트가 말했다.
“잘 생각했어. 솔직히 나도 빨리 준비를 하고 싶거든.”
마음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게 표정관리를 한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도 그것은 최대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을 잡아먹은 지금 한시라도 빨리 착수하고 싶었다.
“박스터님.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말 안 해도 돌아갈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희들을 엄마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잖아?”
우스꽝스러운 말을 일부로 토해낸다.
“아저씨한테 엄마… 좋을지도…?”
“후후후! 한 명이나 두 명이나 마찬가지니까 저도 상관은 없어요?”
“어..? 지, 진짜 내 뱃속에 애가 있는 거야..? 어? 진짜? 정말로?”
한 명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양이지만 나머지의 경우에는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진짜 싫으니까! 꼭 살아서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빨리 도망가!”
그렇게 말하고는 관심을 끊는 의미로 휙 하고 등을 돌렸다. 잠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곧이어..
“짐을 버려라! 무기도 갑옷도 버려라! 이대로 우리는 수도까지 전속력으로 후퇴한다! 서둘러라! 바람처럼 도망가라!”
라인펠트의 우렁찬 명령과 함께 분주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박스터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어느 정도 분주하던 소리가 점차 줄어들며 5분 뒤에는 완전하게 사라졌다.
“이쪽의 정리는 끝…. 났지 않나.”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것을 꾹 참아내며 고개를 돌린다. 아무도 없어야 할 그 장소에는 아직까지 두 명이 남아 있었다. 소매가 널찍한 동양풍의 백의와 기다란 흑발을 차분하게 내린 여자와눈동자 색과 맞춘듯한 에메랄드 빛깔의 외출용 드레스를 걸친 백발의 여자
“너희들은 왜 안 간 거야?”
이것도 예상을 했다면 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그 모습에 두통을 느낀다.
“하아? 뭔 개 소리야?”
“……………?”
소유와 멜은 각각 이 녀석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야말로 그 같은 반응을 보여주고 싶다만…
“너희들도 얼른 도망가.”
“뭐? 이상한 거라도 주워 먹어서 머리가 어떻게 됐어? 너 혼자 뭘 어쩌려고?”
“나는 삼촌이랑 어디까지라도 같이 갈 거야. 지옥의 끝이라도”
소유의 말은 그렇다 쳐도 멜의 발언은 상당히 부담된다.
“필요 없어! 너 어차피 영력도 별로 없어서 트럭을 써도 얼마 못 가잖아? 오히려 짐 덩어리야. 내 몸으로 직접 하는 편이 더 낫지.”
“……………….”
적중인지 복잡한 얼굴을 하는 소유.. 그럼에도 지적당한 것에 화가 났는지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매섭게 만든 채
노려본다. 흔한 기회는 아니기에 여유가 있다면 좀 더 공격하고 싶지만.. 그전에 멜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됐다.
“멜…”
소유에게서 시선을 떼고 진심으로 지옥 끝까지 따라 올 기세인 멜의 눈높이에 맞춰 허릴 숙인다.
“응?”
“너도 안돼.”
“왜! 나도 갈 거야!”
“아까 한 이야기 들었잖아? 이번 일은 너나 소유도 방해야.”
“아니야. 언니는 쓸모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멜….”
가녀린 어깨 위에 왼팔을 조심스레 올려놓고는 그대로 천천히 팔을 타고 내려와 말랑말랑한 배 위까지 이동시킨다.
“네 뱃속에도 있어.”
“뱃속..? 삼촌의 분신?”
분신? 아.. 아이를 지칭하는 건가?
“그래 이 안에는 삼촌의 분신이 있어.”
그것은 다른 이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나온 착각이었지만 그것을 굳게 믿고 있다면 설득하는 것은 쉽다.
“멜 너의 역할은 이 분신을 잘 지키는 거야.”
“분신을…?”
“그래. 뱃속에 있는 분신이 무사하게 있다면 나는 안 죽어.”
어떤 의미로 자신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멜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
그리고 임신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도 거짓말진실과 마주 보는 순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심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응..! 알았어! 삼촌! 분신은 내가 지킬게!”
나의 말을 의심치 않고 굳게 믿는 멜을 설득하기에는.. 속이기에는 탁월한 거짓말이었다.
“좋아! 역시 멜이야! 잘 지켜야 된다? 안 그러면 삼촌도 위험하니까?”
“응! 괜찮아! 확실하게 지킬게!”
몸은 어른이고 행동거지도 예전보다 성숙해졌지만 나의 앞에서는 본질적으로 아이가 되는 멜은 의심하는 일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뛰어가는 건 조금 힘들려나? 야 찌찌 대왕 의수를 트럭으로 변신시켜. 영력이 적으니까 속도는 못 내더라도 걷는 거보다는 빠를 테니까.”
“……………..”
여전히 나를 노려보는 소유였지만.. 그 와중에도 능력을 발동시켜 트럭으로 변화시켰다.
“멜! 운전은 네가 해. 언니가 하면 몇 미터 가지도 못하고 폭발할 것 같으니까.”
소유 녀석의 저주받은 운전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기에 진심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 정도다. 이 녀석이 운전대를 잡는 순간 몇 미터 가지도 못하고 뒤집히는 미래가 보일 정도다.
“됐으니까 너는 운전대를 잡지 마! 멜! 얼른 가서 시동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멜은 후다닥 운전석으로 뛰어갔고
곧이어 엔진이 울렸다.
“너도 빨리 타.”
“……………………….”
“뭐 해? 시간 없으니까 빨리 타.”
“말하지 않아도 탈 거야.”
틱틱 거리며 휙 하고 등을 돌린 소유는 부유한 몸을 트럭 쪽에 향했다. 그렇게 한쪽 팔이 벽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가기 직전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박스터 너….”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무엇인가를 눈치챈 것일까? 혹시 내가 하려는 일을 알고 있는 걸까? 그 반응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든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기에 굳이 캐낸듯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멜을 잘 부탁한다.”
“………………… 흥..”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저 녀석이라면 내가 없어도 멜을 잘 보살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개차반 같은 성격이지만 본질적으로 자기 품 안에 있는 인간들은 잘 챙겨주는 성격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트럭은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삼촌! 있다가 봐!”
“그래!”
떠나기 전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멜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똑같이 돌려주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소유와 멜도 그 장소에서 떠났고 이 장소에 남겨진 것은 나와…
“엿 같은 새끼야 기다렸냐?”
어두운 하늘 위에 떠있는 구체.. 관리자 뿐이었다.
============================ 작품 후기 ============================흐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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