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bi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9
뉴비가 너무 강함 199화
AND-제국에서(2)
카올리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넓은 대회의장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빛이 습기를 쫓아내는 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단순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탑에도 가봤다고?”
“네. 제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안 가본 곳이 없거든요.”
“신기하군. 마법사들은 낯선 이를 꺼려 하는 보수적 집단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외국인의 말투는 능청맞으면서도, 무례하지 않았다.
몸짓은 귀족처럼 흐트러짐 없으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적당히 치켜든 턱과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제국의 황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카올리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은지 깨달았다.
‘편안하군.’
말 그대로였다.
외국인은 자신을 황제로 보지 않고 있었다.
그냥 한 사람으로서, 황제라는 껍데기 안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어허, 정령의 숲에서 파수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고?”
심지어 경계심 가득하던 포드릭마저도 어느새 김재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카올리는 그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둘의 대화를 경청했다.
“네. 예전과 달리 인간들과 교류하고 싶다면서, 수호목의 잎을 받았습니다.”
“믿기지가 않는군.”
하지만 포드릭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증거라고도 할 수있는 수호목의 잎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그래, 확실히……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사냥꾼 몇몇이 요정들을 봤다고도 했으니.”
“좋은 징조죠. 인간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면 예전처럼 거부하진 않을 겁니다.”
“확신하는군.”
김재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포드릭은 그 당당한 기세가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평소라면 모르는 이가 자신 앞에서 저런다면 싸늘한 눈빛을 보내야 정상이었으나,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썩 묘한 기분이었다.
“근데 요정들이 하는 대화를 훔쳐 들은 사냥꾼들이 이상한 얘길 하던데.”
“네?”
“자신들이 노래를 불러준 인간을 애타게 찾는다고 말일세. 이상한 일이지. 평생 단 한 번밖에 부르지 못할 노래를, 그것도 여러 요정이 동시에 한 인간에게 불러준 것처럼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
김재주는 처음으로 당황한 듯 살짝 입을 벌렸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포드릭은 의문에 빠져 눈치채지 못했지만, 카올리는 김재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눈치챘다.
‘남의 얘기가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군.’
포드릭은 이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냥꾼들이 분명 잘못 들은 걸게야. 인간이 요정의 찬미가(讚美歌)를 받은 역사는 한 번도 없었으니.”
“네, 하하. 그렇죠. 헛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진짜라면 끔찍하군. 하나도 아니고 여러 요정이 당신만을 바라보겠다고 쫓아다니는 거나 다름없으니.”
“…….”
이번에도 카올리만 눈치챘다.
김재주가 미약한 한숨을 흘리는 걸 말이다.
포드릭은 여전히 숲의 변화에 대해 생각하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잠깐의 침묵이 감돌자 카올리가 끼어들었다.
“자네가 잎을 구해온 경위는 잘 알았네. 혼자서 거기까지 가기 쉽지가 않았을 텐데.”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이니까요.”
“혹시 따로 원하는 게 있는가? 여행자라면 돈이 모자라진 않나?”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김재주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황제님과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포드릭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자네가 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 무례를 넘어가고 있네만, 그것까진 봐줄 수 없겠군.”
“아니, 난 괜찮네.”
“황자님!”
포드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는 바로 무릎을 꿇어 카올리를 올려다 봤다.
“가볍게 허락할 일이 아닙니다.”
“나도 내 한 몸 정도는 건사 할 수 있으니,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 없네.”
“하지만…….”
“브란 님께서 주신 것도 있으니, 자네가 그렇게 나서는 건 과보호일세.”
잠시 포드릭과 카올리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혔다.
“……알겠습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포드릭이었다.
카올리의 고집은 마수를 키울 때부터 유명한 일이었으니, 더 이상 무어라 말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벌떡 일어난 포드릭이 김재주에가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그 배낭은 내놓게. 내가 잠시 맡아두지.”
“네.”
김재주는 망설임 없이 배낭을 건네주었다.
“혹여 딴 생각일랑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건 자네에 대한 호의로 하는 경고일세.”
김재주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 숙이는 것도, 그렇다고 무례하게도 보이지 않을 적당한 선에서.
포드릭은 그런 그가 끝까지 얄밉지 않아 자신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평소라면 고집을 부리는 카올리와 한참을 입씨름을 했을 터다.
그런데도 쉽게 허락한 건,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너무 옅었기 때문이다.
“…….”
결국 한숨을 내쉰 포드릭이 대회의장을 벗어났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카올리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고.
김재주는 그런 카올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네요. 이렇게 독대하기 쉬울 거라곤 예상 못 했는데.”
“나도 내가 이렇게 쉽게 허락할 줄은 예상 못 했네.”
포드릭과 마찬가지로, 카올리도 이 낯선 외국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랬기에 잠깐뿐인 이 기분 좋은 여흥을, 바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설령 이 외국인이 암살자라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해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죽기를 바라는 걸지도.’
눈을 뜬 카올리는 김재주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나에게 비밀스럽게 하고 싶은 얘기는 뭔가?”
김재주는 무슨 얘기부터 하면 좋을까 고민하듯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황제가 된 경위를 기억하십니까?”
어쩌면 무례하게도 들릴 수 있는 얘기였지만, 카올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눈앞에 외국인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으니까.
“취조라도 받는 기분이군. 어떤 입 싼 자가 소문을 흘렸나 보지?”
“아뇨, 그게 아니라…… 음. 말 그대로 ‘기억’하시냐는 의미였습니다.”
카올리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에 흔들렸다.
그 질문은, 현재 자신의 상태에 핵심을 찌르는 얘기였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어쩌면요.”
카올리는 잠깐 고민했다.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을 미친 자로 보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외국인이 황제에 대한 자격에 의심을 품고, 불온한 소문을 흘리는 건 아닐까.
‘억측이다.’
카올리는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자신의 정신은 유령이나 다름없이 방황하고 있었기에, 눈앞에 있는 외국인이 희망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내 또렷한 기억은 몇 달 전, 재판을 받을 때까지만일세.”
처음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던 자신이 우스워질 정도로, 말은 끝없이 쏟아졌다.
마치 그간 쌓여왔던 감정이 터진 것처럼, 중간엔 울컥해서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였다.
“종국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기억들이 얽히고설켜 뭐가 진짜인지 모를 지경까지 왔네. 그 기억들이 단순한 꿈일 수도 있고, 내가 정말 미친 걸 수도 있고.”
김재주는 그 모든 얘기를 묵묵히 들었다.
오히려 말하는 카올리가 민망해질 정도로 말이다.
“……용케도 이런 미친 소리를 들어주는군. 말하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일세.”
“아뇨. 믿습니다.”
“……하하. 말이라도 고맙군.”
카올리는 어쩐지 후련해진 기분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결국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조금은 붕 떠 있는 자신에게 무게가 생긴 기분이었다.
“어, 그게 아니라.”
김재주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혹시 기억 중에, 포드릭 경이 새로운 마수를 포획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걸 자네가 어떻게.”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제 질문에 답해주시죠.”
카올리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확실히. 내가 미쳤다고 확신한 부분이었지. 포드릭이 세계수의 정령을 포획했다고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더군. 혹시나 싶어 서류까지 확인했지만……”
“없었다는 얘기죠?”
“난 그 정령들이 어디론가 도망쳤다고 믿고 있네. 꿈이거나 잘못된 기억이라고 생각한다면 견딜 수가 없었거든.”
“다행입니다.”
카올리는 무엇이 다행이냐 묻지 못했다.
입을 열기도 전에, 김재주가 일어나서는 손가락을 튕겼으니까.
“……아.”
카올리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혼란한 기억 속 마지막, 분명히 저런 커다란 일렁이는 푸른빛이 공간을 가르고 생겨났다.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는 증거가 눈앞에서 나타나자, 카올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내 커다랗게 열린 푸른빛 사이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포포이!”
세계수의 정령들이 말이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말이다.
“……기억이랑 조금 다르게 생겼을 테지만. 분명 같은 녀석들입니다. 성장기라서요.”
포포이들은 카올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김재주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혼란스럽다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얌전히 있다가.
“포포이!”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서는 카올리에게 뽈뽈뽈 다가갔다.
마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숙한 행동이었다.
“…….”
카올리는 입을 열면 목소리가 떨릴까 봐, 그저 손을 천천히 뻗었다.
포포이들은 겁먹지도 않은 채, 얌전히 카올리의 손으로 다가갔고.
“……아아.”
너무나도 확실하게 닿은 부드러운 감촉에, 카올리는 어디론가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꿈이 아니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은, 진짜였다.
“걱정이 돼서 와봤는데, 오길 잘했네요.”
카올리는 그제야 김재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대체…….”
“죄송합니다.”
김재주는 허리를 살짝 숙여 사과했다.
“……뭐가 말인가.”
“눈치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카올리는 허리를 편 김재주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복잡한 표정 속에는 죄책감, 미안함, 걱정이 섞여있었다.
카올리는 말없이 포포이들을 쓰다듬다가.
“자네였군.”
문득 입을 열었다.
“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 온 거니까요.”
김재주는 다시 의자에 앉아, 카올리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신의 장난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설명과, 그 이후의 일들까지.
“믿기 어렵군.”
“이해합니다. 다만 이 얘기는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자네가 한 얘기가 만약 진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목숨이 달린 일이니.”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김재주는 그저 담담히, 조금은 기쁘다는 듯 얘기를 풀어놓았다.
카올리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단순히 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신의 장난에 놀아났음에도.
‘이자는, 말 그대로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구나.’
카올리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가 붉게 회의장을 물들일 때쯤 돼서야, 김재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조금 더 있다 갈 순 없는가?”
“다른 곳도 더 가보고 싶어서요.”
완고한 태도에, 카올리는 아쉬움을 삼키며 마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는 악수를 건넸다.
황제로서가 아닌, 한 사람인 카올리로서 말이다.
김재주는 그 손을 마주 잡고는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제가 있었습니다.”
“……모를 얘기군.”
“하하. 네. 그렇죠.”
카올리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제 자신의 정신은, 완전히 가라앉아 하나의 형태로 변했다.
유령이 아닌 카올리가, 이곳 제국에 있었다.
“가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네. 얼마든지요.”
“타르하에 내 할마마마께서 계시다네. 안부를 전해줄 수 있겠는가?”
“네. 누군지는 말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그래.”
그렇게 외국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한순간의 꿈처럼 말이다.
카올리는 멍한 표정으로 해가 지는 밖을 바라보다, 테이블에 남은 하얀 털 한 가닥을 집어 들었다.
“……하하.”
* * *
카올리는 밤이 되자 다시 복도로 나섰다.
잠이 오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밤바람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여느 때와 같았다.
레디악의 집무실.
“…….”
다시 손을 들어 올리고 멈칫했지만.
이내 굳게 입을 다물고, 확실하고, 또렷하게 문을 두드렸다.
“아버님. 카올리입니다.”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들어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