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bi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8
뉴비가 너무 강함 198화
AND-제국에서
홀 안은 밖에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습기가 가득했다.
카올리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꾹 다문 입으로 주변을 훑었다.
“샹들리에 줄을 더 올리게! 대관식 때 전부 다 거기만 보게 할 셈인가!”
친애하는 포드릭의 호통 소리만이 홀을 쩡쩡 울렸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분명 바쁘다고 들었는데 인부들이 들어서자마자 유령처럼 등장해서는 세심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테이블 보는 주름이 너무 많군. 길이를 안 맞췄나? 재단사를 다시 데려오게!”
조금 과하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다른 사람이 지시를 내렸다면 네네하는 시늉만 하며 자기 일을 했을 인부들은, 기사이자 귀족이자, 이제는 황제의 직속 수호기사가 된 포드릭에게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원래 지시를 내려야 했던 크로멘 자작까지도 말이다.
대관식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광을 맡았다며 좋아하던 크로멘 자작은, 갑자기 나타난 포드릭 덕에 뒤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데룩 굴리고 있었다.
“크로멘.”
“예, 예? 말씀하시죠. 포드릭 경.”
“자네는 대관식에 연주할 음악대 중에 푸치, 란데스, 케이트가 끼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무, 물론입죠. 제가 추천한 이들이니.”
“그렇다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도 알겠군.”
포드릭의 표정은 차가웠다.
좋은 말을 하려고 꺼낸 얘기가 아님을 직감한 크로멘이었지만,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글쎄요.”
“셋 모두 술을 좋아하지. 그 특유의 예술가적 기벽으로 흥을 돋운다는 명목으로 말일세.”
“아…… 예. 분명 그랬던 것 같습니다.”
멍청히 입만 벌리는 크로멘 자작의 태도에 포드릭이 한숨을 쉬고는.
“이런 멍청한 자가! 그들이 연주 전에 술을 진창 퍼마신다는 걸 아는 이가, 용케도 대관식에 그들을 넣을 생각을 했어! 자네가 진정 무슨 의도로 그러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야!”
이어지는 호통에 크로멘 자작이 어깨를 움츠리고는 뒷발을 세워 한 발짝 물러났다.
“설마, 대관식에서까지 그러겠-”
“긴장된다고 한 잔, 두 잔, 넘기다 병째로 마시는 걸 내 한두 번 겪은 줄 아는가!”
“죄, 죄송합니다!”
“당장 다른 이를 알아보게! 대관식에서도 그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과 흐느적거리는 춤사위를 보고 싶지는 않으니!”
크로멘은 또 호통이 이어질까 두려워 서둘러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문 바로 옆, 벽에 기대 있는 카올리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통에, 앞으로 넘어질 듯 말 듯 한 기행을 선보였다.
“……허 참.”
이내 사라진 크로멘 자작을 보며 혀를 찬 포드릭은, 옆에 있던 카올리와 눈을 마주쳤다.
싸늘하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는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피곤하실 텐데, 여기는 저한테 맡기고 들어가 쉬시지요.”
포드릭이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대관식 준비 때부터 부쩍 말수가 줄어든 카올리였다.
그랬기에 속으로 앓으며 눈치만 볼 뿐,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괜찮네. 어차피 밀린 서류업무는 모두 끝났으니.”
경직된 표정의 카올리를 보고는, 포드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그걸 거기에 두면 어떡하나!”
그리고는 다시 인부들에게 돌아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기사가 아니라 숙련된 집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
카올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어쩌다가.’
그럼에도, 카올리는 무엇 하나 와닿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황제가 ‘되어’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수한 기억의 파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박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 기억들이 진짜인지도 모르겠군.’
자신은 유령처럼 정신만이 존재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조종해, 형을 밀어내고 황제가 되었다.
그 안에 얽힌 기억들은, 나쁘다고만 할 순 없었지만.
이미 틀어진 물길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지금 준비하는 대관식도 자신을 위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한 일인가.
자신은 이제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유령이었다.
“급보입니다!”
카올리는 문밖에서 들리는 급박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기사 하나가 포드릭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포드릭은 당황한 표정으로 카올리의 눈치를 살폈다.
카올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을 뿐, 나서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정령의 숲으로 떠난 수행단들이 돌아왔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좋은 결과는 아닌가 보군.”
“그것이…….”
잠시 망설이던 기사는 포드릭의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표정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예. 숲에 진입하기도 전에 길을 잃어 흩어졌다고 합니다. 운이 나빠 쏟아진 폭우가 원인인 것 같다고…….”
포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무사한가?”
기사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수행장 렌드와, 그의 제자인 라프칼, 기사 호든까지 모두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찾아보려 했으나 파수꾼들이 숲에서 나오는 바람에 급히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포드릭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파수꾼들이?”
“네.”
“이상하군. 그들이 숲 밖에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혹시 수행원들이 도발적인 태도를 취했나?”
“……정확한 사정은 모릅니다. 모두 탈진한 상태라 지금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일단 알겠네.”
기사가 물러나고, 포드릭이 재빨리 카올리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먼저 예를 취하라고 해야할진데.”
“됐다. 어차피 나도 다 듣고 있었으니.”
“어찌할까요?”
“날이 개는 대로 인원을 다시 정비해 수색에 나서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러면 수호목의 잎은…….”
“오래된 전통이니, 굳이 기사들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애 쓸 필요는 없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자는 무소식인가?”
카올리의 문득 던진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포드릭은 뒤늦게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이상한 외국인 말입니까?”
“그래. 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이제 곧 황제가 되실 카올리 님을 만나보고자 하는 이는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외국인은 처음일 텐데. 듣자 하니 제국에 대해서 꽤 관심이 깊은 자라고 하지 않았나?”
“신변도 수상한 자를 들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자네가 내기를 했지 않은가.”
“……분명 그랬지요. 수호목의 잎을 구해오면 얼마든지 황자님과 알현할 기회를 주겠다고.”
포드릭은 그게 한 사람이, 그것도 평범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왠지 모를 아쉬움을 삼키고, 카올리는 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드릭은 그런 카올리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인부들에게 호통을 쳤다.
“대관식이 코앞인데, 이렇게 대충해서 추가 수당은 받을 수 있겠나!”
* * *
밤이 돼도 폭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카올리는 자신의 방에서, 하염없이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비를 보다가 밖으로 나섰다.
호위 기사들의 물음에 산책이라 대충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 황제인 레디악의 집무실 문 앞이었다.
지키는 이는 없었다.
눈으로 볼 때는 말이다.
분명 마수병들이 지키고 있으리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로 한 번도 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래 왔듯,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다가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예전에는 무심함으로 느껴졌던 태도가, 지금은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얘기를…….’
이 시간이 되면 서재와도 같은 이곳에서 항상 책을 읽는다는 걸 알고 있다.
카올리는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어 올렸으나, 한참을 그 상태로 멍하니 있었다.
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는, 떨리는 손을 내렸다.
무어라 말한단 말인가.
예전과 달라진 카올리는, 사실 진짜가 아니었다.
누군가 연기한 가짜였다.
그렇게 말할 용기가, 아직은 없었다.
‘나도 나를 모른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카올리는 몸을 훽 돌리고,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조금 빨라진 걸음걸이와, 꽉 쥔 주먹이 떨리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 * *
대관식이 코앞이더라도, 카올리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세율 인상은 기각하겠소.”
대회의장에서 귀족들과 한 차례 입씨름 후, 집무실로 옮길 틈도 없이 모두가 떠나간 뒤 서류 더미에 파묻혔다.
그렇게 약간의 두통이 일 때쯤.
“카올리 님.”
포드릭이 찾아왔다.
“한참 바쁠 텐데, 무슨 일인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포드릭이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가 왔습니다.”
“그?”
“예. 저랑 내기를 했던.”
“아, 외국인.”
“네.”
“빈 손으로 말인가?”
포드릭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랬다면 제가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죠.”
“하하.”
카올리의 웃음 소리에 포드릭은 놀란 심정을 감춰야했다.
그가 웃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래. 결국 그가 수호목의 잎을 들고왔단 말이지?”
“네. 확실한 진짜였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그래. 웬만한 곳은 다 떠돌아다녔던 자네의 안목을 속일 순 없겠지.”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올리는 어쩐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서류 더미를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들라 하게.”
포드릭이 고개를 돌려서는 기사들에게 신호했다.
이어서, 기사들이 문을 열었고.
“반갑습니다.”
한 남자가 등장했다.
이국적인 검은 머리와, 무심한 얼굴.
그와 대비되게도 제국의 양식이 그려진 코트와 왠지 반가워 보이는 표정은 썩 특이했다.
“예를 갖추게.”
포드릭이 심통이 난 표정으로 무례하게 성큼 걸어오는 청년을 흘깃 노려봤으나.
“됐네. 외국인이라 하지 않았나? 굳이 예를 차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래도…….”
“괜찮네.”
어쩐지 여기서 청년의 무릎을 억지로 꿇렸다간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아, 포드릭은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그래. 용케도 수호목의 잎을 찾아왔군.”
“네. 꼭 뵙고 싶었거든요.”
“제국어도 아주 능숙하군 그래?”
“아, 이건 그…… 아닙니다. 네. 그렇다고 하죠.”
카올리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청년은 그저 방긋 웃을 뿐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일단 앉게.”
“네.”
청년이 상석 바로 옆에 앉고 배낭을 바닥에 내려놨다.
“이놈들.”
포드릭이 배낭을 노려보고는 고개를 훽 돌려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을 노려봤다.
“검사는 제대로 했느냐?”
“예, 예!”
조금은 얼빠진 대답에 신뢰는 가지 않았지만, 카올리가 개의치 않아 하니 더 따지기도 뭐했다.
대신 카올리에게 조금 더 바짝 붙어 경계 어린 눈빛을 청년에게 보냈지만.
“이름은?”
카올리의 물음에 청년은 잠깐 고민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재주입니다.”
“특이한 이름이군. 외국인이니 당연한 건가.”
“……네.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