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30
미궁에 진입한지 5일 째 되던 날이었다. 유현은 드디어 계층의 통로에 근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알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주위의 변화였다.
언제부터인가 드넓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궁 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둠침침한 동굴 같은 통로를 걷다가 갑자기 숲이 모습을 드러내자, 처음에는 자신들이 에이리어 안에 들어온 건가 어리둥절하던 일행이지만 류트의 이야기에 모두 환호성을 터뜨렸다.
“아마 이 근처에 6계층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류트의 말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랑샤셴이 류트에게 물었다.
“8계층으로 내려가는 통로일 수도 있지 않은가요?”
“아, 그거 말입니까? 다른 구역이라면 올라가는 통로인지 내려가는 통로인지 확신할 수 없겠지만 저는 이 구역의 미궁을 몇 번이나 경험해 봤습니다. 6계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항상 이런 숲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8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8계층은 사막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괴로운 경험이었지요.”
류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인 듯하다. 랑샤셴도 괜한 걸 물었다는 것처럼 쓴웃음을 짓고는 작게 사과를 했다.
숲은 미궁 안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생기가 넘쳤다. 쾌활한 기운이 주변을 넘실거렸고 심지어 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숲도 미궁의 일부분이었다. 생물체가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만큼이나 이 안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도 다양했고 많았다. 경계심을 낮춰서는 안 되었다.
유현은 멈춰있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질적인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신기한 곳도 아니었다. 단지 에이리어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편한 일이었다. 일행도 어렵지 않게 적응한 듯 걸음이 편해져 있었다.
주위로 넓게 마력을 퍼뜨려 기척을 감지해 보자 작은 기척들이 발견이 되었다.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소형몬스터들이었다. 가끔씩 부스럭 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오늘 안에 찾아낼 수 있을까.’
현재 길을 안내하는 건 류트다. 이곳에 대해 나름대로 익숙해 보이니 기대해 봐도 좋겠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류트의 뒷모습은 상당히 믿음직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숲 안을 움직였을까.
문득 류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돌아본다.
여유롭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무언가를 발견한 걸까.
뒤에 있던 유현은 류트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말입니다. 바닥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유현은 류트의 말에 따라 바닥을 보았다. 그러자 여러 개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몬스터의 것은 아니다. 발자국들은 다양했고, 모두들 형태가 달랐다.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닌 건지 흔적은 뚜렷했다.
···인간?
아니···. 이건 인간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하니 6계층으로 올라간다는 생각에 풀려있던 긴장감이 강하게 조여졌다. 유현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차고는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발자국들은 이 앞으로 이어져 있다. 유현과 일행보다 먼저 여기를 지나간 듯하다.
류트가 말한다.
“아무래도 이 숲 안에 모험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흔적을 보아하니 아직 이 숲 안에 있을 확률이 큽니다. 숫자는 총 7명 정도로 생각이 되는 군요.”
류트의 이야기에 뒤에서 뭔가 싶던 일행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어젯밤 있었던 류트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이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데 류트가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무시하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전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현재 유현의 목표는 모험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바르다]에 도달하는 것.
하지만 유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 흔적을 쫓는게 좋겠어. 류트 할 수 있겠어?”
“흐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추적을 해보겠습니다.”
유현의 말에 따라 류트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추적을 시작했다. 이제는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는 모험가들의 등장 때문일까. 일행은 긴장한 듯 말이 없어졌다.
*
흔적을 쫓는 게 1시간 정도 계속 되었을 때였다.
근처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몬스터의 비명소리도. 지금 들려온 소리가 전투로 인한 소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폭음을 듣고서 페르시가 말했다.
“누군가 주변에서 마법을 쓴 거 같은데?”
“마법이라면···. 역시 모험가일까요?”
“뭐, 그렇겠지. 몬스터가 마법을 쓰지는 않을 거 아니야?”
태평스럽게 말하는 페르시와 달리 이서연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폭음이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자 송가연이 말했다.
“오빠. 어떻게 할까요. 한 번 탐색해 볼까요?”
“그래줄 수 있겠어?”
송가연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령을 소환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류트가 추적을 계속하면 발견할 수 있겠지만 이럴 때는 송가연이 훨씬 빠르다.
송가연이 정령을 통해 탐색을 계속하는 사이 여러 번 폭음이 계속 되었다.
이윽고 다섯 번째 폭음이 들려오자 페르시가 씨익 웃었다.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나보네. 이대로 뒤를 치면 쉽게 이기겠는 걸?”
호전적인 웃음이었다. 당장이라도 상대를 죽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요염하기까지 한 웃음이었지만, 페르시를 보고 있던 남궁민의 안색이 하얗다.
“형···. 고블린들만 있지는 않겠죠?”
“여기는 로렐라이가 아니야.”
“그, 그러면···. 저희랑 똑같이 생긴 이종족들이 있을까요?”
“아마 그렇겠지.”
어젯밤 유현이 경고했던 걸 떠올리는 걸까. 남궁민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명백히 긴장한 남궁민의 안색을 보며 길유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너 왜 그래. 설마 겁먹은 거야?”
“···멍청아. 그럼 겁 안 먹게 생겼어? 지금 우린 살인을 할지도 모른다고. 지금 우리가 고블린들이랑 싸우는 건 줄 알아? 인간처럼 생긴 이종족을 죽이게 될 지도 몰라!”
“······살인?”
아무생각 없어 보이던 길유미는 흠칫하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남궁민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는지 작게 신음하고는 힐끔 유현을 쳐다봤다.
“···고블린들이랑 싸울 때하고는 다를 까요?”
“다르겠지.”
막말로 하면 고블린은 몬스터로 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튜토리얼 때도 고블린을 죽이는 것에 사람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종족이라 해도 결국 몬스터로 보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엘프나, 드워프, 수인족, 그 외의 종족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그들은 명백히 인간처럼 생겼다. 단지 특이해 보일 뿐이지.
-음? 뭐야. 얘네 왜 이렇게 굳었어?
주위의 분위기에 파레디아가 의아한 듯 말했다.
대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폭력적인 시대에 살아왔던 대정령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겠지. 하지만 정작 계약자인 천설화도 긴장하는 눈치다.
어느정도 지금 같은 분위기를 예상은 했다.
유현은 위로하는 것도, 혼내는 것도 아닌 단지 담담하게 말했다.
“로렐라이 때처럼 앞으로도 몇 번이나 모험가들과 만나게 될 거야. 그 때마다 그들은 우리한테 창과 검을 내밀며 덤벼들겠지.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겁을 먹을 거야?”
“그, 그럴 수는 없겠죠.”
길유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좋지 않다.
어색한 웃음이 반대로 그녀의 심정을 알려주고 있다.
몬스터와 싸울 때 보여주던 용맹스러운 모습은 현재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건가. 하지만 어차피 거쳐 가야 할 단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런 반응이야 말로 애들이 아직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면이고.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게 정상이다.
“위치 파악이 끝났어요. 현재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몬스터와 전투 중이에요.”
지금 일행 사이로 오고간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도 송가연은 언제나 늘 그렇듯 차분한 얼굴이었다. 냉정한 빛이 나지막이 내려앉아 있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유현은 물었다.
“모험가들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
“···모두 엘프인거 같아요.”
엘프라···. 유현은 남궁민과 잡담을 나눌 때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우연인 걸까. 그런 대화를 하고서 바로 다음 날에 엘프들을 만나다니. 웃기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현재 그 위치까지 안내해줄 수 있겠어?”
“네. 따라오세요.”
앞으로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알텐데도 송가연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숲을 가로지르는 그 몸놀림은 평소와 다를 게 없다. 유현은 달리며 일행의 안색을 살폈다.
역시나 여전히 좋지 않다. 이것은 뭐라고 소리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지.
“···오빠. 너무 애들을 다그치지는 말아주세요. 유미나 궁민이 같은 경우에는 자신들의 무기로 직접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게다가 로렐라이 때와 달리 저희한테 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으니 무작정 공격하는 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앞만 바라본 채 달리고 있던 송가연이 유현에게만 닿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유현은 송가연이 일부러 강한척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 또한 무서운 건 변함이 없다. 단지 숨기고 있을 뿐이지.
콰아아앙-.
폭음 소리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소리는 아까 전보다 더 커졌다.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그럴 때마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송가연이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유현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방금 전 송가연의 말을 떠올렸다.
로렐라이 때와는 다르다.
로렐라이 때는 살기 위해 싸웠다. 비록 그 상대가 고블린이었기에 공격하는데 망설임이 적었던 것일지도 있지만, 확실한 건 그 때는 명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그런가. 방법이 잘못 됐어.’
유현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빠?”
유현이 멈추자 앞에서 달리던 송가연도 멈추었고, 따라오던 일행도 모두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유현은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이번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 그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걸 유현은 잠시 잊고 있었다.
사냥이 아닌 사냥감이 되었을 때를 느껴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