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51
일행은 과연 무사히 가고 있을까. 유현은 그런 것을 걱정하면서도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에리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유현은 그녀가 깨어날 때 움직일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절벽을 등반하는 중간에 의식이 깬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녀뿐만이 아니라 유현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절벽 위에 올라갔을 때 수인족들이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그녀가 의식이 있을 때 움직이는 게 옳았다. 그녀를 등에 업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니까. 싸울 때만큼은 그녀도 어떻게든 움직여 줘야 했다.
***
3시간 정도 지나자 에리스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흙으로 더러워진 입술을 열며 얕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서서히 그녀의 속눈썹이 움직이더니 맑은 벽안이 주위를 둘러본다.
“···에반 씨?”
에리스는 유현을 발견하고서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했다.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쫙쫙 갈라지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가래 낀 소리였다.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유현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는 솔직하게 말했다.
“구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저를요?”
에리스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건 의심의 눈초리였다. 순진했던 여인은 지금 경계를 가지고 유현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행동이다.
“으윽···.”
“위험합니다. 그 뒤는 절벽이니까요.”
자신의 위치도 모른 채 뒤로 물러나던 그녀는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유현은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팔을 붙잡았다. 아슬아슬하지만 떨어지기 직전 붙잡을 수 있었다.
“여, 여기는···.”
엉덩이 밑에서 느껴지는 부유감에 에리스는 새파랗게 지린 얼굴을 했다. 그제야 주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그녀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스산한 바람. 그녀의 머릿결이 흩날린다.
유현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품속에 끌어안았다. 둘이 있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에리스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품속에서 꼭 유현의 옷자락을 쥐어 잡았다.
“에반 씨···. 저는···.”
어딘가 분한 듯 몸을 떨고, 입술을 비틀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경계심이 더 이상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유현은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등 뒤를 두들겨주었다.
그것이 증폭제가 되었는지 에리스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오로지 둘만이 존재하는 협곡 사이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현은 안다. 그렇기에 유현은 그녀의 슬픔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기를 30분 정도 이어졌을까.
에리스는 울음을 멈추고 유현의 품속에서 떨어져나갔다. 부끄러운 건지 목덜미를 살짝 붉힌 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처음에 의심해서 죄송해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동료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흔적을 쫓았죠. 절벽 근처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기에 찾아보니 에리스 씨가 있더군요.”
“···아.”
유현은 생각해놨던 말을 꺼냈다. 그녀가 의심하는 건 당연했기에 미리 생각해두고 있었다.
에리스는 의심하지 않는 건지 작게 입을 벌리며 더욱 미안한 얼굴을 했다.
“정말 죄송해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요. 괜찮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이니까요. 그런데 몸은 괜찮습니까?”
“몸···. 말입니까? 그게···. 솔직히 온몸이 쑤셔요.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럴 수밖에. 포션을 몇 병이나 썼지만 쉽게 회복될 상처는 아니었다. 유현이 올 때까지 살아있던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 유현은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심각한 부상이었으니까요.”
“·········.”
에리스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걸까.
그녀는 상처가 있던 어깨 부위를 손으로 천천히 매만져보고는 주위에 널려 있는 포션 병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더욱 크게 변했다.
“···감사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비싼 포션을 여러 병 쓰셨군요.”
“하하, 엘프 목숨 하나 구하는 일인데 아까울 리가 있겠습니까. 너무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저는 에리스 씨가 무사한 거 같아 다행일 뿐입니다.”
“···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유현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에리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기억을 되새기는 것도 괴로운 듯 손을 꽈득 쥐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기를 내듯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당기며 그녀는 이야기했다.
유현은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용기를 내며 설명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수인족들이 그녀를 공격했다. 랑샤셴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파티원들은 전부 살해당한 듯했다. 오크를 돕자 그런 짓을 하다니 녀석들도 대단한 놈들이다.
말을 오래해서 그런지 에리스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게다가 배도 고팠는지 위가 울리는 소리도 났다. 급히 자신의 배를 손으로 가리며 아닌 척했지만 의미 없는 짓이다.
“배가 고프시군요. 육포라도 드시겠습니까?”
“그, 그게···. 가, 감사합니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기어들어가는 것만 같은 작은 목소리. 유현이 육포를 내밀자 그녀는 정중한 자세로 받고는 하나씩 조물조물 입에 물기 시작했다.
본래 엘프는 육식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괜찮은 듯하다. 햄스터마냥 조금씩 물어뜯고 먹는 그녀의 모습은 귀여웠다. 그래도 아직 부끄러운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유현도 육포를 몇 개 집어 먹고는 말했다.
“이 위에 아직 에리스 씨를 쫓던 수인족들이 있습니다.”
움찔-.
에리스가 새파랗게 지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겁에 질린 작은 동물 마냥 얼어붙었다. 육포를 쥐고 있는 손이 달달 떨리고 있다. 무서운 건가.
유현은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일행이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녀도 알아야 할 일이었다.
“저는 밤이 될 무렵 에리스 씨를 등에 업고 절벽을 오를 생각입니다. 아마 무사히 올라가도 주위에는 녀석들이 한 동안 감시를 하고 있겠죠. 어떻게든 포위를 뚫고 도망쳐야 합니다.”
설명을 듣고서 에리스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괜찮겠습니까? 저는 제대로 싸울 수도 없는 몸인데···.”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충분히 강하니까요.”
“그래도···.”
유현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에리스는 움찔하며 몸을 떨었지만 잠잠해졌다.
유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히 말했다.
“저를 믿으시면 됩니다.”
그녀는 말 없이 꾸벅 고개를 끄덕였다.
***
계획대로 밤이 되자 유현은 절벽을 올랐다. 해가 떠있을 때 오르지 않은 건 혹시라도 녀석들이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절벽을 오르는 중간에 공격을 해오면 유현도 별 수단이 없었다. 유현은 빠른 속도로 등반을 계속했다.
밤이 되었기에 잘 보이지 않아도 유현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등에 엘프 하나가 짐덩어리처럼 매달려 있는 상태임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무, 무서워요!”
에리스가 유현의 목을 팔로 감은 채 소리쳤다. 협곡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등줄기를 싸늘하게 매만지고 있었다. 에리스는 등에 업힌 상태에서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 체온이 선명히 느껴진다. 목덜미로는 그녀의 얼굴이 찰싹 같이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유현은 쓰게 웃었다. 정말이지 곤란한 엘프다.
“괜찮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정말이요?”
“네.”
그럼에도 진정이 안 되는 건지 그녀가 더욱 몸을 밀착시켜왔다. 이쯤 되면 유현도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다. 등 쪽에서 그녀가 가진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계속 신경 쓰이고 있다.
이윽고 유현은 절벽에서 무사히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서 유현은 주저앉았다.
‘힘들군.’
땀이 질질 나고 있다. 아무리 유현이라도 엘프 하나를 등에 업고 절벽을 오르는 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엘프가 가볍다고는 해도 완전 군장 한 것보다는 무거운 법이다.
숨을 헐떡이며 체력을 회복하고 있는데 에리스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무거워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런 사과만 오늘 몇 번째 받는 걸까. 유현은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수인족들은 절벽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주위에서 여러 기척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었다. 내심 그냥 갔으면 했는데. 감지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발견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느새 숫자는 20이 넘는다.
반응이 빠른 걸 보면 절벽 근처에 탐지 마법 같은 걸 설치했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이라고 이 넓은 절벽을 계속 감시할 수는 없었겠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에리스를 일으켜주었다.
“적입니다. 근처에 적당히 숨어 있어 주시겠습니까?”
“에반 씨는···?”
유현은 검을 뽑고서 대답했다.
“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망설이던 에리스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도울 수 없다는 게 분한 건지 에리스는 미안한 얼굴을 하고는 근처에 있는 수풀에 몸을 숨겼다.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늦은 시간이니 저 정도면 충분히 몸을 숨기겠지.
유현은 녀석들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는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