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58
유현이 이서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시간은 남아돌았다. 나름대로 다른 던전의 구원을 위한 원정에 참가했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원정에 대한 퀘스트 보상도 제대로 정산이 안 된 지금 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래도 아예 할 게 없는 건 아닌가.’
유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할 게 많았다. 애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아직 애들은 약했다. 바리게이트를 넘어오는 고블린들과 한참동안 대치하던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진다.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오히려 압도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든 도망치지 않고 싸워 이기려고 노력하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해 줄만 하다. 튜토리얼 때와 달리 던전을 공격하던 고블린들은 진짜였다. 딱딱한 인형 따위가 아닌 생각을 가지고 있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요정들의 장난감이 아닌 진짜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실력 좋은 모험가들은 아니었다. 싸워보고서 느낀 것인데 대다수의 고블린들이 초보 모험가, 즉 하급 모험가들이었고 그 중심에 실력 좋은 클랜이 있었을 뿐이다.
그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모두가 실력 좋은 고블린들이었다면 플레이어들 따위로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고블린들에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유현의 생각과 달리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이지만 앞에서 들려온 이서연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오빠 도착했어요.”
이서연 특유의 밝은 목소리에 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풍요의 빵집】
특이할 것 없는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서연이 가자고 한 곳은 아무래도 빵집인 듯했다. 문은 닫혀 있지만 주위로 따스한 냄새가 돌아다닌다.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부지런히 장사를 하는 듯 싶다. 아침 공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빵 냄새.
그렇지만 어째서 여기로 온 거지. 그게 문득 궁금해진 유현이 이서연에게 눈짓했다.
“여기는?”
“···그게. 저번에 원정군이 도움을 요청하러 게이트웨이를 타고 왔을 때 울던 꼬마 아이 기억하시나요?”
“꼬마 아이?”
유현은 잠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피투성이로 게이트웨이를 타고 소수의 원정군이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 중에서 모두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몇몇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쯤에서 유현은 이서연이 말하고자 하는 꼬마 아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아버지를 걱정하던 꼬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아이를 이서연은 꼭 껴안아주며 달래주었다.
유현의 표정을 눈여겨보던 이서연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 꼬마 아이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다행히 꼬마의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왔고요. 물론, 그렇다고 멀쩡하시던 건 아니었지만. 당분간 신전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게이트웨이는 상당히 관중으로 인해 붐빈 상태였다. 모두들 원정군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상처 입은 병사를 위해 사제들마저도 게이트웨이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어쩌다보니 꼬마 아이한테 자기 어머니가 운영하는 빵집으로 놀러 오라고 제안을 받아가지고요. 이번에 애들이 밥맛이 없는 거 같으니 빵이라도 먹는 게 어떨까 싶어서···.”
“흠.”
대충 여기에 온 이유는 알았다.
그렇지만 귀환 했을 때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그 때 유현은 공간이동에 대한 멀미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을 챙기고 있느라 바빴다. 특히 송가연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는 사제를 급히 찾을 정도였다. 그 틈에 있었던 일인 듯 싶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이서연이 살며시 문의 손잡이를 잡아 힘을 준다. 천천히 열리고 있는 문틈 너머로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풍요의 빵집에.”
반겨준 건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지구라면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외모의 여인이다. 빵 모양의 자수가 새겨져 있는 앞치마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에서 후반. 이 세계에서는 저 나이에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게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딱 적당한 시기. 지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착한 누나다!”
이서연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작은 꼬마가 이서연에게 달려들었다. 작은 꼬마라 하지만 나이는 9살 정도 되었기에 그 기세에 이서연이 놀라 뒷걸음쳤다.
“에릭, 그러면 누나가 놀라잖니.”
그 모습에 여인이 꼬마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이의 이름은 에릭인가. 꼬마는 자기 어머니의 말에 몸을 움찔거리며 조심스레 이서연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나이의 꼬마인지라 작은 체격을 가진 이서연이라도, 꼬마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턱을 당기며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저는 괜찮아요.”
이서연은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볼을 긁적이며 웃고 있었다. 놀랐지만 딱히 싫은 건 아닌 듯했다. 오히려 반겨준 아이의 행동에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서연의 태도에 여인은 안심한 듯 상냥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에릭이 착한 누나라고 하는 걸 보면, 저번에 그 분인가 보군요.”
“음···. 착한 누나라고 하면 역시 조금 부끄러운데요.”
“그러면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이서연이라고 합니다. 이 쪽에 있는 분은 이유현이라고 하고.”
“그렇군요. 그럼 그 옆에 있는 분도 로렐라이 쪽으로 지원을 가신···?”
이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현을 향한 여인의 시선에 호의가 어렸다.
“내가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말했어! 우리 집 빵이 맛있다고 말이야!”
이서연에게 달라붙어 있던 에릭이 활기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여인은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말에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얼굴이었다.
“때 마침 빵을 굽고 있었는데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아, 돈을 주고 파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저번에 에릭에 관한 일로 답례라고 생각해주세요.”
여인의 말에 이서연은 예상치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제로 그녀는 돈 주머니를 챙겨온 상태였다. 얼마나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수가 있으니 제법 큰돈일 것이다.
“혹시 제 친구들 것도 부탁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이서연의 반응에 여인의 입가에 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웃음이 많은 여인이다. 어쩌면 그게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동안 유현은 빵이 구워지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은 많았다.
*
한 동안 꼬마의 어머니가 빵을 굽고 있는 걸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빵 집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모르는 얼굴이 아닌지라 흘낏 쳐다보던 유현은 눈을 좁혔다.
‘이 녀석은?’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류트가 왠지 모르지만 빵집에 왔다. 처음에는 왜 왔나, 생각하던 유현이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여인의 남편은 원정군 병사 중 한 명이며,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빵을 사먹으려고 왔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쩐지 이질적이라고 느껴졌다.
유현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류트도 그걸 눈치 채며 시선을 돌렸다.
“어라? 당신은···?”
류트도 유현을 알아보는 건 쉬운 일이었다. 싸움이 있던 건 이 틀 밖에 안 되었을 뿐더러 많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유현은 제일 기억에 남는 사내였다.
강하다. 그것 말고도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것이 유현에게 있었다. 싸운다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그래도 확신은 안 든다. 적어도 지금은 이겨도 나중에는 모른다.
원정군의 병사로서 훈련을 받은 지 그렇게 오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 받던 류트에게는 유현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딘가 허우적거리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그는 혼자서 빛나고 있었다.
저번 싸움에서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적었던 건 모두 이 남자 때문이라는 걸 류트는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어느새 고블린들은 모두 그에게 죽어 있었다.
그 때 자신도 싸움에 집중하느라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 제대로 못 본게 한이다.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군요. 하하. 잠시 옆자리에 앉겠습니다.”
웃음과 함께 유현의 옆자리 앉는 류트의 행동은 자연스럽다. 누가 보면 친한 사이라고 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 유현은 류트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리는 다른 곳도 많아. 굳이 내 옆에 앉아야 하나?”
그다지 넓은 빵집은 아니지만 테이블은 여러 개 있다. 적어도 불편하게 바로 옆에 누군가 앉을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류트는 개의치 않고 유현의 옆에 앉았다.
“서로 등을 맡기고 싸우던 전우였는데 너무 불편하게 여길 거 없지 않습니까?”
“등을 맡긴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
“저번에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유현은 더 이상 류트와 말씨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빠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사람이 눈짓해도 능구렁이처럼 가볍게 무시하는 류트의 성격은 익숙하지가 않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뭔가 유현의 얼굴이 차갑다.
그 둘의 모습을 이서연은 옆에서 조심스레 지켜보기만 했다. 뭔가 말을 걸기에는 류트란 남자가 이서연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류트는 이쪽을 흘낏 몰래 쳐다보는 이서연의 눈길을 눈치 채고는,
“저번에 유현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대뜸 경박한 듯한 밝은 목소리를 낮게 가라앉히며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유현은 류트를 쳐다봤다. 이건 뭔가 말을 꺼내기 위한 서두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로 인해 원정군들이 많이 죽은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플레이어 분들의 도움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죠. 병력을 분산할 것 없이 한 쪽을 맡아주셨으니까요. 그 결과는 저희가 생각 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맡은 길목이 뚫렸으면 곤란했겠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부분은 아니다.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그 때 원정군들은 그런 판단을 하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플레이어들에게 크게 기대 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좋았다. 그리고 그 때 싸움에서 류트는 유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유현은 슬슬 길게 이야기를 늘어뜨리는 류트의 말이 지겨워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유현의 물음에 류트는 씨익 웃었다.
“이번에 저희가 새로운 원정군 부대를 만들려고 하는데, 참가하실 생각 있습니까?”
========== 작품 후기 ==========
송가연 설정 좀 변경했습니다. 정령 계약 아이템을 반지에서 -〉 펜던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