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세무 조사는 지겨워 (4)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조윤태는 자신의 명함을 정서훈·정난정의 친부모에게 내밀었다.
[와이케이 그룹 메릴랜드 사장 조윤태]명함이란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는 데 설득력을 대단히 높여 주는 장치.
실제로 사기꾼들이 100에 99는 활용하는 게 바로 명함이었다.
‘주식회사’와 ‘사장’이라는 직함만 넣으면 상대는 대부분 속기 마련이니까.
월세가 싼 상업용 건물의 한 층을 몇 달 정도 빌려 놓고, 같이 사기를 칠 2~3명 정도만 꼬셔 놓으면 사람 하나를 아주 병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조윤태가 명함을 내민 것은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와, 와이케이…?”
현재 와이케이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아니, 이제는 사실상 국제적 기업이라고 봐도 좋을 기업이었기에 대한민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서훈과 정난정의 아버지, 성진구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쇼핑백을 떨어뜨렸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명함을 건네받을 때만 해도 ‘아, 뭐야, 이 노인네는’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상대 명함에 찍힌 글자가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깐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자제분들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상 그룹이 JD에 의해 박살이 날 때보다 나이를 좀 더 먹어서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조윤태의 모습.
그렇기에 신선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팔자주름이 더욱 짙어졌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강직한 신선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성진구는 분위기에 이끌려 자신의 아내인 김정자와 함께 조윤태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대화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윤태는 성진구와 김정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둘의 모습을 훑었다.
‘사진으로도 봤지만, 진짜 친부모라는 게 느껴질 정도네.’
성진구는 깡마른 체구에 이마에 짙은 주름살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난정과 똑같았다.
반면 김정자는 살이 아주 투실투실하고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것이 정서훈과 똑같았다.
같은 60대의 나이지만, 그야말로 극단에 선 둘의 몸 상태.
물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윤태는 바로 자신의 목적을 꺼냈다.
“최근에 자제분들의 요청으로 해신 그룹 내 비상장 회사의 전환사채를 대거 매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게 뭐 어때서요?”
김정자가 옆에 놓았던 쇼핑백들을 끌어안으며 조윤태를 향해 표독스럽게 말했다.
정서훈과 정난정이 정우호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성진구와 김정자의 학력은 국민학교 졸업.
두 남매와 성격은 비슷했지만, 고차원적인 화술을 사용할 능력은 없었다.
물론, 두 남매도 ‘진짜배기’들과 비교하자면 화술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물론, 비상장 회사의 전환사채를 매입한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실제로 비상장 회사 전환사채와 관련한 법적 정비는 1995년 이후에나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정서훈 일가가 벌인 짓은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대단히 힘든 것이 사실.
물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꽉 쥐고 있는 윤기가 마음만 먹으면 처벌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윤기는 그보다 다른 것을 우선 진행하고자 했다.
“뭐…, 인정하시니 다행이네요.”
조윤태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김정자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윤태의 말이 이어지자, 성진구와 김정자는 다시 긴장의 끈을 잡으며 조윤태의 말에 집중했다.
“그 돈을 정말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실 생각이십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조윤태가 녹음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어 본 적 없는 성진구와 김정자였기에 자신들의 판단대로 입을 열었다.
“다, 당연히 물려줘야죠.”
이것은 당연히 본심이 아니다.
단지, ‘겉으로는 이래야 욕을 먹지 않는다’라는 본능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
더불어서 조윤태는 녹음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말이십니까? 자식분들이 더 이상 해신 그룹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상태가 되어도요?”
순간 성진구의 말문이 막혔다.
대신 김정자가 약간 급한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드님은 아직 해신 그룹의 회장이 아닙니다. 아시나요?”
“네, 뭐…, 그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김정자를 향해 조윤태가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즉, 아직 회장은 정우호 회장님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정우호 회장님은 와이케이 그룹의 회장이신 최윤기 회장님의 고모부 되십니다. 이것도 아시나요?”
“알긴 아는데….”
김정자는 ‘안전하다고 애들이 그랬는데…’라고 혼잣말을 할 뻔했지만, 그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표정에서 드러나는 김정자의 속마음.
그렇기에 조윤태는 더욱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윤기 회장님은 정우호 회장님을 아주 각별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정서훈, 정난정 남매가 해신 그룹에서 하고 있는 일도 모두 알고 있지요.”
“아니,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깡마른 체형의 성진구가 금방이라도 씩씩거리며 화낼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조윤태는 그런 성진구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전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협박이 웬 말입니까? 저는 두 분을 협박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온 거지요.”
“제안이요?”
이번에는 김정자가 대답을 대신했다.
협박이 아니라 제안.
그렇기에 부부의 탐욕이 새로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앉은 자리 주변으로 놓인 쇼핑백만 거의 열 개 가까이 되는 상황.
이것만으로도 둘이 평소에 사치를 얼마나 부리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저는 전에 신상 그룹의 이사였습니다. 신상 그룹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는 아시죠?”
“그거야 JD 눈 밖에 나서 그런 거 아뇨?”
성진구의 말에 조윤태가 고개를 저었다.
“다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윤태는 공개해도 될 법한 수준의 말까지만 성진구와 김정자에게 말했다.
살짝 왜곡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성진구와 김정자는 와이케이의 권력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조윤태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하지는 못하겠지만.
“지, 지금 협박하는 거요?”
아까와 같은 성진구의 말에 조윤태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방금 언급했던 제안을 위해 먼저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제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성진구의 태도가 다시 누그러졌다.
“자, 와이케이 그룹이 해신 그룹을 박살 내려고 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재계 1위와 재계 5위의 대결이라고는 하지만, 한쪽은 국제적으로도 우량 기업이고, 나머지 한쪽은 대한민국에서 5위일 뿐.
그렇기에 성진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히 가능할 거 아뇨?”
자신이 갑이라 생각한 이후로 짧아진 성진구의 말.
확실히 부모와 자식의 성격이 꽤 비슷했다.
“아신다면 말이 빠르겠군요. 와이케이 그룹은 해신 그룹을 박살 낼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서훈과 정난정 남매가 어떤 말들을 했는지, 정우호 회장님과 최윤기 회장님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지요.”
조윤태는 자신이 들은 말들을 그대로 성진구와 김정자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부부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렇기에 정서훈과 정난정 남매의 해신 그룹을 박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해신 그룹이 박살 나면 어떻게 될까요? 두 분이 매입한 주식은 당연히 휴지가 되겠죠?”
“빨리 팔아야 해!”
성진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김정자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앉아.”
조윤태의 나지막한 말에 순간적으로 성진구와 김정자의 몸이 굳었다.
“앉으라고.”
깍듯한 예우는 끝났다.
이제 제안이라는 이름의 통보만 이어질 뿐.
* * *
크리스탈로 만든 고급 와인잔.
이 와인잔으로 한 병에 1천만 원을 호가하는 포도주가 가득 채워졌다.
“흠, 향이 좋군.”
정서훈은 두꺼운 손가락으로 크리스탈 잔을 잡고는 가득 채운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좋아, 좋아.”
그야말로 사치의 극치.
이어서, 정서훈은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어 입안에 가득 넣어 씹었다.
우물우물 씹을 때마다 다문 입의 틈 사이로 육즙이 흘러나왔는데, 그 육즙이 개기름과 섞여 바닥에 흐르지 않고 얼굴에 달라붙었다.
“우욱, 야, 조금씩 넣고 먹으라니까.”
정서훈의 앞에 앉아서 식사하던 사람은 정난정.
정난정은 정서훈이 먹고 있는 스테이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사이즈의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정난정의 스테이크는 송아지로 만든 스테이크라는 점?
고아로 계속 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사치였지만, 정서훈과 정난정은 정우호의 양자, 그리고 양녀가 된 덕분에 정말 어마어마한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고기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는 거라고.”
“어휴….”
살이 잔뜩 찐 정서훈이 솔직히 말해서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남매간의 우애는 좋은 편에 속했기에 정난정은 정서훈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무튼, 어떻게 됐어?”
“아, 그거?”
정서훈은 크리스탈 잔에 포도주를 한 번 더 따르더니, 정난정에게도 가볍게 따라 주고는 입을 열었다.
“노친네가 이제 경영 욕심은 없나 보더라고. 확실하게 ‘해 주겠다’라고는 안 했는데, ‘나는 이제 머리 아픈 건 질색이다’라고 대답했어.”
“그거면 사실상 지금처럼 지내겠다는 뜻 아니야?”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 이사회를 통해서 아버지를 압박해 보려고. 이사들이 그룹의 회장을 교체하는 것이 어떠냐고 안건을 내놓으면, 내가 못 이기는 척 아버지에게 들고 가는 거지.”
“아, 그러면 되겠네!”
“아무튼, 모든 것이 완벽해.”
“아니, 한 가지가 남았잖아.”
“아아, 걱정하지 마. 누나가 원하는 계열사 두 개를 우선으로 고를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경영권은 정서훈이 가지게 되는 만큼, 정서훈은 정난정에게 이권 일부를 양보했다.
그것은 바로 계열사 지분의 선택.
그렇기에 정난정은 아무런 불만 없이 정서훈의 경영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러면 우리 건배할까?”
정난정이 깡마른 손으로 잔을 들고는 허공에 올리자, 정서훈이 씨익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정서훈은 지금까지처럼 원샷 했고, 정난정은 입술만 살짝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물론, 정난정은 한 번 봉인을 푼 포도주는 다시 마시지 않았다.
이렇게 개미눈물만큼 마시고 남은 것은 모조리 싱크대행.
그야말로 사치가 극에 달한 두 남매의 만찬이었다.
* * *
정서훈은 임시 이사회를 소집했다.
물론, 정서훈이 소집하는 느낌이 아니라, 이사들이 원해서 소집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오늘의 안건은 당연히 정우호의 퇴진과 정서훈의 승계.
그렇기에 정서훈은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회장이 된다…!’
사실상 해신 그룹은 자신의 것인데 회장이 되지 못해서 얼마나 슬펐던가.
‘어차피 물려받을 거, 더 일찍 물려받는 게 좋잖아? 내 운영 능력 덕분에 재계 서열도 올랐고 말이야.’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정서훈은 이게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사회가 개최되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서훈이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해신 그룹의 직원 하나가 외쳤다.
“해신물산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이제 다른 모든 이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겠지.
왜냐하면, 오늘 이사회는 정우호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으니까.
따라서 오늘 이사회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정서훈.
‘크으, 드디어!’
그런데 상황은 정서훈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뭐야, 다들 뭐 하는 거지? 안 일어나?”
정서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이사들을 주욱 훑었다.
처음에는 오른쪽부터, 그리고 자신의 자리와 가장 가까운 왼쪽으로.
“헉!”
정서훈은 그야말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신이 여기 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