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34
그 뒤의 기억은 굉장히 흐려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두 가지.
사내는 결국 그 거대한 게이트를 클리어해내지 못했다는 것과, 패배한 사내에게 강대한 힘을 지닌 모종의 존재가 접촉했다는 것.
거기서 완전히 기억은 끊겨 버렸다.
허나, 우리는 그를 통해 굉장히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던전 사태가, 이곳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나무 장식에 담긴 흐릿한 기억을 통해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사내 역시 분명 세상의 위기에 맞서 던전을 공략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이건 꽤 흥미로운데요.”
“그러게, 생각 이상의 성과인걸.”
나는 기억의 추출을 갈무리하며 작게 혀를 찼다.
조금 더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지만, 벌써 해방되었던 힘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선은 해야 할 일을 마쳐두기로 했다.
“고든, 다시 한번 간다.”
– 예 스승님.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쓸만한 정보를 못 떠올리면 넌 그냥 아웃이야.”
– 그, 그런…….
지난번 실패로 돌아갔던 고든의 기억 되살리기.
그러나 그 뒤로 이따금씩 녀석이 무언가를 떠올려내려는 듯한 기색을 보였기에, 속는 셈치고 딱 한번만 더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라지는 힘을 모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의식을 마치자, 몸을 맴돌던 강대한 사기가 모두 흩어져갔다.
‘당분간은 강령술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두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랐던 기회이니만큼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리스크만큼의 성과를 얻었으니 불만은 없다.
나는 솟아오르는 탈력감에 풀썩 드러누으며 고든에게 명령했다.
“네, 네가 나와서 들고 집까지 가.”
이제는, 얻어낸 정보들을 정리하며 다시 일주일간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시간이었다.
#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뒷수습은 빠르게 치러졌다.
고작 세 명의 헌터가 S2랭크 던전을 공략했단 소식에 전세계가 놀랐고, 내 던전 소유권을 물고 늘어지던 대형 길드들은 쥐 죽은 듯이 몸을 숨긴 채 아무런 반론도 펼치지 못했다.
듣자 하니 이번 S4랭크 던전을 공략하느라 큰 손해를 감수했다는 모양이었기에, 아마 한동안은 자신들의 길드를 재정비하는 데만 해도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게 까불지나 말 것이지.”
진작 나한테 맡겨뒀으면 고생 없이 던전도 공략하고 손해 볼 일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자꾸 욕심만 부리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뉴스 기사를 읽고 읽자니, 신경 쓰이는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어제, 영국과 스페인에도 S2랭크의 던전이 출현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던 송하연이 그것을 확인하며 내게 물었다.
“설마 했는데 또 나왔네요. S2는 어땠어요? 다른 나라들도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그, 글쎄.”
우리야 그렇게까지 큰 어려움 없이 공략해냈지만, 사실 지구의 헌터들 기준으로 따지자면 무척이나 위험한 난이도였다.
적어도 칠성 급의 헌터가 없다면 큰 피해 없이 클리어하기는 요원할 게 분명했다.
송하연은 S2랭크 던전이 꽤나 궁금했는지, 애원하는 기색으로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에이, 스승님이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부, 붙지 좀 마. 걷어차 버린다.”
허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면 확실히 우려가 되는 부분이긴 했다.
“…영국은 몰라도, 일단 스페인은 못 깰걸.”
타국의 힘을 빌린다면 모를까, 자력으로는 확실히 무리였다.
내가 경험한 것만 놓고 봐도 그런데다가, 시기상 더욱 늦게 출현한 저 두 개의 던전이 조금이라도 더 강력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 정도에요? 그럼 헬레나 님도 위험할지 모르겠네요?”
“읏. 걔가 왜?”
“영국 소속이잖아요. 이번 던전에도 들어간다던데.”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동안 하데스 건에만 집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헬레나는 영국의 칼리오페 길드에 소속된 헌터였다.
“뭐, 뭔가 갑자기 불안한데.”
지금의 나는 강령술의 부작용으로 힘을 쓸수 없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헬레나 역시 던전 안으로 들어가 한동안 밖으로 나오진 못한다.
만일 내가 하데스의 수장이라면, 무조건 이 타이밍에 부활 의식을 거행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걔들은 스승님이 힘을 못 쓴다는 걸 모를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무엇인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특히, 왕성하게 활동을 거듭하다 최근 갑자기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그것이 내게는 마치, 일종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그냥 가지 말라 하면 안돼?”
“그런게 어디 있어요? S2랭크면 국가 소속 고위 헌터는 전원 필참이에요. 국적을 버린다면 모를까.”
“하필이면 이럴 때…….”
하기야, 홀로 던전을 격파할 자신이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타국에 있어서는 중대한 위협이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게 당연했다.
‘촉이 안 좋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나는 될대로 대라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 다시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전념했다.
왠지 모를 찝찝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면서.
#
“우와, 일 났네…….”
고풍스런 전통 가옥.
그 안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한 여인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탁자 위에 놓은 카드들을 연신 매만졌다.
세간에서는 마술사라 불리는 한국의 S랭크 헌터, 서민아.
그녀에게는 사실 남모를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각성 능력을 활용해 약간이나마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불길한 점괘는 처음인데.’
미래라는 것은 굉장히 오묘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을 건드리는 것보다도 가만 놔두는 편이 더 나았다.
그렇기에 서민아는 지금껏 국가를 비롯해 그 어디에도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달랐다.
지금까지 있었던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더 힘을 끌어내서 확인해봐야 해.’
결심을 마친 서민아는 수련을 통해 연마한 모든 마력을 끌어올리며 다시금 카드를 움직였다.
후우웅.
촤라라락!
허공에 떠오른 카드들이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속도를 보이며 연신 춤을 췄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중 몇 가지가 서민아의 앞에 놓여지기 시작했다.
피잉!
핑!
텅!
터엉!
텅!
“…살벌하게 왜 이래 진짜.”
평소 몇 번이고 사용하던 능력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카드가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며 아예 탁자 위에 꽂혀버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예외적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후우웅.
티리릭.
틱.
서서히 힘을 갈무리한 그녀는, 천천히 탁자에 꽂힌 카드들을 응시하며 점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질문.
“우리의 앞길에 무엇이 보이나요?”
피잉.
첫 번째 카드를 뽑아들자, 난잡하게 칠해진 검은 색의 향연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엇인가가 비춰졌다.
언뜻 보기에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고작 이런 카드 쪼가리를 통해 마주하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두려움.
사람의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형상.
도무지 그 감상을 표현해낼 수가 없었지만, 그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가진 단어는 가까스로 머릿속에서 꺼낼 수 있었다.
‘죽음.’
그것이, 서서히 이 지구에 다가오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킨 서민아는 그대로 멈추지 않은 채 다음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뒤바꿀 수 있는 미래인가요?”
그러자 등장한 카드는, 흔히들 트럼프 카드에서 사용하는 조커의 모습과도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서민아는 한계까지 발현한 능력에 슬슬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이 흐르는 손으로 다시금 마지막 카드를 집어냈다.
그리고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
피잉.
이윽고 뒤집은 카드에 비춰진 것은, 오만한 표정으로 서민아를 내려다보고 있는 군주의 형상이었다.
허나 특이하게도, 그것은 권위를 풍기는 맹자나 영웅호걸이 아닌 소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도, 시리도록 눈부신 은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이 아이는, 설마…….’
왕좌 대신 그 몸을 바치고 있는 스켈레톤과, 마치 신하라도 된다는 듯 곁을 보필하고 있는 무수한 시체들.
그러한 힌트들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을, 공교롭게도 서민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결단을 내린 서민아는, 곧바로 카드를 내려놓은 채 방에서 벗어나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이윽고 텅 비어버린 방 안쪽에서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카드 뭉치가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져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