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4
남들이 보기엔 내가 지금껏 그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처럼 생각되었겠지만, 사실 전투에 있어서 나는 꽤나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편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내가 가진 힘을 수치화시켜 상대와 대조한 뒤, 그에 따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 왔다.
‘…….’
처음 내가 추측한 이지철의 힘은, 대략 10점 정도였다.
참고로 고든이 5점, 지금의 내가 8점이다. 즉, 나는 겉으로 내뱉는 말이 어쨌든 충분히 이지철의 강함을 높이 샀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아니었다. 방금의 일격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지철의 상한치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13점? 아니, 여차하면 15점까지.’
이러면 솔직히 꽤나 곤란해진다.
고든과 한스, 그리고 칸까지. 내가 준비해 온 조합은 말 그대로 10점짜리 이지철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빠가각!
콰아아앙!
“죽지 않는 병사인가. 이거 재미있군.”
쾅!
콰앙!
콰지지직!
언데드 듀라한인 한스의 생명력은 분명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졌다. 내가 열심히 레벨을 올린 덕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철과 정면에서 맞붙자 거의 재생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계속해서 파괴당하고 있었다.
“아피로스의 천둥.”
“커스드 랜스!”
후우웅!
쐐애애액!
쿠과과광!
파지지지직─!
고든이 저주의 창을 날리고 칸이 먹구름을 불러내 강렬한 전격을 퍼부었지만, 이지철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냈다.
그리고 거세게 몸을 털자, 두 개의 주문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어이구야.”
잠깐의 틈을 살려 빠르게 물러난 한스가 반쯤 재생된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음성을 내뱉었다.
“무식한 녀석이군. 이정도 강자는 이쪽에선 처음 보는데.”
“허어, 곤란하군요. 군주시여, 지금의 몸으로는 힘에 부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스와 칸의 의견도 나와 비슷했다. 지금의 조합으로는 이지철을 뚫어낼 수 없다.
결국, 무언가 다른 수단을 찾아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채화인은 가급적 불러내고 싶지 않은데…….’
그녀라면 충분히 이지철을 상대로도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겠지만, 채화인은 어쩐지 전투에 임하면 임할수록 스스로 내 통제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칸, 의식을 준비해.”
“의식 말입니까? 허나 그것은 아직 검증이…….”
“됐으니까 그냥 해.”
나는 이전, 주술의 대가인 칸과 함께 힘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되는 가설을 하나 세웠다.
‘강령술.’
몇 달 전 헬레나가 내 영혼을 직접적으로 건드렸을 때 발견했던 정체불명의 사슬.
그리고 그 당시, 헬레나는 영혼에 묶인 사슬을 살짝 풀어내는 것만으로 거대한 힘을 목격했다고 전해왔다.
그렇다면, 강령술의 의식을 통해 내 영혼을 직접 자극하는 것으로 일시적인 힘의 상승을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발상에서 고안해 본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고든, 너도 칸을 도와. 한스는 두들겨 맞으면서 시간이나 끌고.”
“…거 다짜고짜 무리한 요구를 하시네.”
칸이 지면 곳곳에 토템들을 뿌리며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한스는 망설임 없이 이지철에게 달려가 칼을 내질렀다.
스거억─!
카아앙!
‘솔직히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굳이 따지자면 위험부담이 더 크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답답해서 못 참겠다.
‘이런 놈한테 쫄아서 도망가야 한다고?’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명계의 주인이란 이름을 댄 지금의 내게, 절대로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압도적인 강자의 위치에서 적을 찍어누르는 것이 아닌, 보다 강한 상대를 앞에 두고 활로를 찾아내는 전투.
절대자가 되기 이전에는 수도 없이 경험했지만, 반대로 그 이후에는 잊고 살았던 감각이다.
‘원래라면 한주먹거리도 안 됐을 쭉정이가.’
덕분에 직접 영혼을 건드린다는 쓸데없는 도박을 하게 됐다.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다.
그저 탁상공론뿐인 가설에, 그마저도 임기응변으로 처음 시도해보는 도박이다.
허나, 만일 의식이 성공한다면.
이지철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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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군.’
근접 전투용 스킬까지 사용해가며 철저히 한스를 박살 내던 이지철은, 지금까지의 전투 속에서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그 괴물 같은 년의 하수인들과 비교하면 모자라다.’
절대로 약하다 보긴 힘들었지만, 단순히 힘의 총량만을 따지자면 헬레나의 언데드들이 더욱 강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 꺼림칙한 기분은 뭐지?’
비록 미묘한 수준이었지만, 헬레나의 언데드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무언가가 이들에게는 있다.
분명 자신이 어렵지 않게 누르고 있음에도, 마치 훨씬 더 격이 높은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
“수왕격.”
쩌어억─!
쿠과과과광!
왠지 모르게 찾아오는 불쾌한 감각에, 이지철은 소모가 큰 주력 스킬까지 사용해가며 한스의 몸체를 완전히 분해시켜버렸다.
“…드디어 죽었군, 그 질긴 생명력만큼은 인정하도록 하지.”
설사 고위 언데드라 한들 치명상에 이를 상처를 몇 번이나 입었음에도, 조금 뒤에는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달려들어 온다.
그 순리를 벗어난 듯한 생명력에는 이지철마저 순간적으로 질색할 정도였다.
“헛수작은 끝이다. 어차피 네놈들에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역시 뒤에 숨어서 무엇인가 술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지철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번 몸 전체에 마력을 강하게 피워 올렸다.
맨 처음 전투를 개시했을 때 사용했던 스킬, 이번에는 그것을 전력으로 해방할 것이다.
조금 주변이 시끄러워지긴 하겠으나, 아까 전부터 느껴지는 불길한 감각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 확실한 한방으로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 짓는다.
후우웅.
쿠구구구.
“…대지 분쇄.”
그러나 바로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힘을 다한 줄만 알았던 듀라한 좀비 한스였다.
“골이 울리는군. 아까 건 조금 강렬했어.”
이지철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곧바로 타깃을 바꿔 한스를 팔로 내리찍었다.
쿠아앙!
빠가가각!
마력을 한껏 담고, 육체 강화 스킬까지 사용한 상태의 일격.
그에 한스의 몸체는 기괴하게 우그러지며 박살이 나 버렸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허나, 지금껏 몇 번이나 지켜본 광경이 또다시 이지철의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뿌드드득.
거의 산산조각나다시피 사방으로 비산했던 골격이 재조립되고, 터져 나간 살점과 부서진 갑주가 그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을 본 이지철이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언데드가 존재할 리 없다.”
“처음 나와 마주한 자들은 다들 그리 말하더군.”
그것은 마치 죽지 않는다기보다도, 죽지 못한다는 개념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모든 힘에는 당연히 비용이 있다. 저만큼이나 완벽한 재생을 행하려면 그 한번마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그러한 법칙을 무시하듯 끝이 없는 부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놈을 몇 번이고 부수어봐야 의미가 없겠군.’
그렇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술자를 처리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
척 보아하니 저쪽이 준비하던 술수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 이런 기괴한 언데드를 만들어낸 자이니만큼 좋을 대로 행동하게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이지철은 힘으로 한스를 떼어놓으며 곧바로 백은하가 있는 곳을 향했다.
정확히는, 향하려고 했다.
터업.
“그건 곤란한데. 의식이 끝날 때까진 막으라고 하셨거든. 기껏 일해놓고 구박받는 건 사절이라서.”
이지철의 팔을 붙잡은 한스. 그에 이지철은 코웃음 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력을 불러일으켜 그것을 떨쳐내려 했다.
허나, 어째서인지 붙잡힌 팔이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으윽?”
“하, 이러니 인간들이란. 제힘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면서 시건방을 떠는 꼴이라니.”
아까 전과는 명백히 다르다. 그것을 눈치채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지철은 싸움이 시작됐을 무렵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뿌득!
뿌드드득!
“전력을 낼 수만 있었다면, 네놈 따위는 곧바로 뭉개버렸을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어떻게, 이런 힘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지철을 압박하던 한스의 몸체가 금이 간 것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허용치 이상의 힘을 꺼내버린 탓이었다.
“뭐, 아무래도 시간은 제대로 끈 것 같군. 또 보자고. 다음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쩌저적.
파사사삭!
가루가 되듯 흩어져버린 한스의 잔재를 바라보며, 이지철은 떨리는 눈으로 이빨을 꽉 깨물었다.
‘이놈, 힘을 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설마 싶은 생각 한 가지가 이지철의 뇌리를 관통했다.
한스는 백은하가 불러낸 언데드다. 그런 그가 힘을 아껴두고 있었다는 말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입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놈도, 아직 진짜 실력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지철이 불길한 미래를 예감함과 동시에, 갑작스런 마력의 파동이 울려 퍼졌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력보다는 훨씬 더 무겁고 짙은 무언가였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기묘한 울림.
그것은 심장의 고동 같기도 했고, 마치 고요한 종소리같기도 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을 때.
이지철은, 한순간 죽음을 보았다.